강강술래와하나님나라
» 350명이 함께 강강술래를 하는 모습
‘알렐루야알렐루야! 얼쑤’ 남녀노소다모여한데어울러져흥겨운자진모리장단에맞춰부르는노래소리가눈덮인메이플릿지마을에높게울려펴집니다. 우리전통가락은뭔가사람들의마음을휘어잡는이상한힘을가지고있는듯합니다. 얼마전금요일저녁공동체설잔치풍경입니다.
설잔치가있기몇주전, 교회형제들이저를찾아와우리가한국을너무모르고있는것같다며한국의밤을열자고제안해왔습니다. 8년전영국에서미국메이플릿지공동체에이사온후한번도한국의밤을하지않았습니다. 한국의밤하면단연한국음식이빠질수없습니다. 그나마 영국공동체에선다른한국가족들이있어함께힘을모아여러번해보았지만이곳에선저희가족뿐이라 350명의한국음식을만든다는것이엄두가나지않아지난 8년간조용히지내왔습니다. 그러나이제는형제들이발벗고나서니더이상뒤로뺄수없어그동안우리에게보여준형제들의사랑에보답하는마음으로온공동체가한국설을보내기로했습니다.
» 한국에서처럼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큰절로 세배를 하고 있다.
일주일전부터한국의밤광고가있어많은이들이설잔치를기대를하고있었습니다. 이미여기저기서한국음식을먹어본경험이있는사람들은“메뉴가뭔가요?” 하고 궁금해합니다. 우리는드러내놓고말하지는않고 ‘불고기와다른음식몇가지를준비하고있어요’라고살짝귀띔을해주면“와! 내가가장좋아하는한국음식이예요. 그날을못기다리겠어요.”라며기뻐합니다. 잔치날에의뜸은음식이죠. 누군가한국음식을 아주좋아한다고말하면집에초대해더만들어주고싶어집니다. 어느누구라도맛있는한국음식을맛보면 그맛에빠져들고자연스럽게한국을사랑하고한국을더알고싶은욕망이생기게됩니다.
이번설날메뉴는모두가좋아하는불고기, 잡채, 김밥 3종세트(참치김밥, 캘리포니아김밥, 햄과치즈김밥) 와김치입니다. 드디어설날이다가오자아내와나는뉴저지에서설날사용할재료들을잔뜩사왔습니다. 주방에선그동안우리가정성스럽게길러도축한신선한소고기
100파운드를가져와불고기양념을해서재웠습니다. 한쪽에선자매들이음식에들어갈채소들을열심히채썰었습니다. 공동체식구들이워낙많아잡채에들어갈당근만채써는데도두세사람이붙어도두시간이넘게 걸립니다. 불고기에넣을파만채써는데도 2-3시간… 보통은야채를자를때기계를사용하는데한국음식인지라직접손으로자르니점점미안해집니다… 김밥을돌돌말때는다른일터에서열댓명의자매들이몰려와힘을보탰습니다. 모두들하하, 호호재미있어하면서자른김밥도집어먹고진짜잔칫집처럼떠들석합니다.
서너명의자매들은아내에게한국음악이있으면틀어달라고해우리가가지고있는국악CD을틀어주었더니더욱신나게일합니다. 불고기나김밥은그래도까다롭지않는데350명분의잡채를요리하는것이영쉽지않아보입니다. 인터넷에서레서피를발견해그런대로쉬운방법을찾아시도했는데도아니나다를까간장소스물이너무많아물빼느라한바탕야단법석을떨고그래도여전히맛이만족스럽지않은지아내가애를많이먹네요. 나는맛만있던데… 어쨌든이곳사람들어느누구도진짜잡채의맛을몰라모두들맛있다고좋아하니감사하지요.
강강술래 도중 기와밟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
저희공동체는여러가지파이등디저트를워낙잘만들지만한국의디저트는과일을빼놓을수 없습니다. 그래서오늘은특별히한국을생각하며한국의겨울간식인귤과포도그리고파인애플로구성된 모듬과일접시입니다. (파인애플은내가좋아해식품담당형제에게요청했더니아주기쁘게지원해주었습니다.)
드디어저녁 6시설잔치시간이다가왔습니다.
식당로비문을열고들어오면한국의아름다운사계절풍경을담긴3분짜리동영상을볼수있습니다. 한국의사계절동영상을보고는사람들이놀라말합니다. “참아름다운나라입니다. 꼭한번가보고싶어요.” 다른볼거리는초승달처럼큰웃음을짖고있는양반탈, 독특한한국의색감을느낄수있는조각보, 청록빛깔을띤전복껍데기로만든자개보석함, 신실함과사랑을상징하는원양새, 대나무로만든단소, 도자기수저받침대와쇠숟가락과 젖가락, 둘째처형이국화와동백꽃을손수그려만든한국부채, 어린이한복, 전통개량활현무궁등등한국정서가가득히담겨있는것들을누구나눈으로보고손으로만져보게진열하였습니다.
어른들에게는빛깔이화려하고복잡한색상의자개가눈길을끕니다. “도대체어떻게이런오묘한빛깔을만들어낼수있나요?”라며감탄을자아냅니다. 그래도어린이들이게는활이인기만점입니다. 너도나도할것없이활시위를당겨봅니다. 유빈이는옆에서친구들이하는것을보고는한국의 활은크기는작지만탄력이높아세계최고로멀리쏠수있는기록을가진활이라며자랑스럽게설명합니다.
전시테이블한쪽에는접시에한국사탕을가득담아놓고는‘오직젖가락만사용해집으세요.’라는 글귀와함께젖가락을그릇옆에놓아두었습니다. 행사가끝나고로비에가보니 식기에가득담아놓아던사탕이하나도남지않았습니다. “아니모두들젖가락질을이렇게잘하나?” 혼자속으로생각했습니다. 다이닝룸테이블위에는하얀식탁보를깔고그 위에다가한국을상징하는빨강색과파랑색초와 같은색의네프킨으로장식하고, 오늘의메뉴와함께한국에관한OX퀴즈가담긴팜플렛이세워져있었습니다.
모두들들뜬마음으로즐겁게자리에앉자그날함께한 350명이한목소리로 흥이절로나는한국노래를신나게부름으로설날만찬이시작되었습니다. 젊은청년들이아침부터저녁까지하루종일준비한음식을식탁으로나르자마자여기저기서이렇게연하고맛있는소고기는처음먹는다며탄성을지릅니다. 역시한국의불고기가인기최고입니다. 보통식사때에는포크와나이프를사용하지만오늘은누구나 젖가락을사용할수있도록식탁위에젓가락을놓았습니다. 우리가족과같은테이블에앉은내친구데릭은나와함께종종한국음식을먹어서그런지이젠젖가락질이제법입니다. 하지만다른이들의 서투른젖가락질을보니절로웃음이나옵니다. 만찬도중에내가“젖가락으로완두콩한그릇을다먹는사람에게는푸짐한상품을줍니다.”라고광고를했습니다. 식사가끝나고한형제가찾아와“그렇게하려고했어요, 근데다른맛있는음식들이너무많아그것들을먹느라고포기했어요.”라며은근히자신의젓가락질솜씨를자랑했습니다.
호명된 연령대들이 함께 가운데로 나와 남생이(거북이) 흉내를 내며, 남생이춤을 추고 있다.
식사가어느정도끝나가고한국의관한상식퀴즈정답을맞추는시간입니다. 정답을모두맞춘자매와형제가한국배와유자차를상품으로타가자모두들너무부러워합니다. 한국배는이곳배와달리달고아식하며즙이많아한번맛본사람들은그맛을잊지못합니다. 유자차또한이곳에서맛보지못하는상큼하고새콤달콤한맛으로 이곳사람들에게아주인기만점입니다. 유자차맛에반한한자매는오렌지로유자차처럼만들어보았지만그맛이안난다며아쉬워합니다.
한국상식문제가끝난후그동안우리가야심차게준비한‘브루더호프형제들불닭볶음면도전’
비디오를보여주었습니다. 얼마전우연하게‘영국남자불닭볶음면도전’
동영상을보고는너무웃겨우리도한번도전해보기로했습니다.
평소매운맛을아주즐기는몇몇형제들과그렇지않은형제들을섞어서 9명이핵불닭볶음컵라면에도전했습니다. 우리도사람들이하도맵다고해서시도할엄두를 못내아직먹어본적이없어아내가그만물을일반컵라면처럼부었네요. 그래서그런지매운맛에익숙한형제는생각보다별로안맵다며더매운것없냐며금새다먹어버렸지만그반면에매운맛에익숙하지않은형제들은땀을뻘뻘흘리며너무매워서2리터짜리우유한병을통째로마시며난리가났습니다. 온공동체가그모습을보며배꼽을잡고뒤집어졌습니다.
나중에몇몇형제들이제게찾아와자기들도도전해보고싶었다며아쉬워합니다. 스컹크소동때유빈이를격려한유빈이친구댄절은가만히제게오더니자기도매운맛을보고싶다고(?) 해서붉닭컵라면을선물로주었습니다.
맛있는저녁만찬이끝난후 식탁들을치우고모두들원을그리고앉아설날세배를설명한후모든어린이들과학생들이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세배를드렸습니다. 세배를받은몇분의할아버지께아이들에게덕담(Wish)를들려달라고부탁드렸는데왠일인지혀가자꾸꼬여wish 발음이잘안되어몇번이고헤매자랜디할아버지께서자기고향에선wish를성훈처럼발음한다고위트있게말하자모두들박장대소합니다. 주로‘부모님말씀잘들으라’는덕담과함께(동서양을막론하고부모님말씀잘듣는건가장중요한것같습니다^^) 할머니들께서세배돈대신미리준비한빼빼로를아이들에게나누어주었습니다.
세배후온공동체가함께하는강강술래시간입니다. 사실공동체에와서야한국을알리는춤으로강강술래를접하다보니보통우리가아는손잡고빙글빙글도는강강술래외에문지기놀이, 남생이놀이, 청어엮기, 덕석말이, 기와밟기등다양한춤이강강술래춤에함께 있다는걸알게되었습니다. 손잡고도는건 한국에서텔레비전을통해자주봐서알겠는데. 그외의춤들은잘몰라아내가여기저기묻고, 유튜브를통해배웠습니다. 그러나 350명이강강술래를하는것이쉽지가않아유빈이선생님인어니형제에게도움을청했습니다. 어니는오랜세월아이들가르친경험이있고댄스를가르치는데도일가견이있습니다. 먼저어니와 유빈이반아이들이 강강술래를배웠습니다.
공동체전체가강강술래를시작하기전에이춤은추석이나, 설날, 정월대보름에우리민족이추던춤이라는설명을하고나서어니는통솔력있게강강술래춤을이끌었습니다. 다함께원을만들어손을잡고제아내가메기는소리로강강술래앞부분을부르면온공동체전체가받는소리로‘강강술래’하며 후렴구를답하며중모리, 자진모리등의장단에맞춰천천히걷다가거의뛰어가며원무춤을열었습니다.
덕석몰이는 ‘몰자몰자덕석몰자’하는메기는소리와‘비온다덕석몰자’ 받는소리를부르면서맨앞사람이달팽이같이안쪽으로 둥글게돌아가면뒤의놀이꾼들이차례로덕석(멍석)을말듯이겹겹이돌아드는춤입니다. 이어‘풀자풀자덕석풀자’와 ‘해난다덕석풀자’를부르게되면 말아놨던멍석을다시풀듯이다시돌아나와원래의원형태로돌아오게되는데돌면서 옆으로비껴가는형제들의얼굴들을보고서로기뻐하며 활짝웃는모습에마음까지훈훈해집니다.
‘남생아놀아라’ 춤은남생이는거북이를지칭하는말로써거북이가등껍질에서고개를뺏다가넣었다하는모습과뒤뚱뒤뚱옆으로걷는웃긴모습을흉내내선창하는사람이‘남생아놀아라’를부르면남생이가앞으로나와춤을추게되고나머지사람들은‘촐래촐래가잘논다’하며답합니다. 어니선생님이남생이대신‘수염기른형제’, ‘이름에알파벳 S’로시작하는사람들을부르자거기에해당되는사람들이정말가관도아닌웃긴춤을추면서원가운데로왔다가사라져갑니다. 이후 ‘3-4학년어린이들놀아라’ 부르자갑자기아이들이땅을기면서진짜거북이처럼흉내내며춤을춥니다. 그모습이얼마나귀여운지역시아이들답습니다. 다른사람들은 흥겹게박수치며 ‘촐래촐래가잘논다’로답하면서형제들과아이들의춤을지켜보며웃느라장난도아닙니다.
남생이춤에이어기와밟기시간입니다. 50대미만의모든형제들이나와허리를숙여앞에있는형제의허리를잡고기와를만들면어린아이들이아빠엄마의손을잡고형제들의등을밟고지나갑니다. 그중장난끼있는형제들몇몇은일부러등을이리저리움직여아이들이휘청휘청스릴넘치게걷게합니다. 옆에서이것을지켜보는재미가만만치않습니다. 마지막아이가기와밟기를끝내자모두가손뼉치며환호합니다. 춤이끝나고아이들이와서춤중에서도기와밟기가제일재미있었다며여전히흥분되어우리에게말해줍니다.
다이닝 룸에 삼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둥근 원을 그리며 추는 춤은 어린 아이 청년들 노인들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멀찍감이 떨어져 지켜보니 사람들이 신명나게 노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드문 풍경이였습니다. 이곳이 미국인지 한국인지 나도 잠시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춤은 한국 놀이이지만 춤을 추는 이들이 모두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는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한바탕 춤으로 한국의 열정을 몸으로 경험한 후 끝으로 분단을 상징하는 비무장지대(DMZ)를 소개하며 한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생각하는 시간으로 한국의 밤은 막을 내렸습니다.
모든 행사를 마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우리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 주었습니다.
“ 내모든게휴식을취하는시간이였어요. 일년에한 3번씩은이런행사를해야겠어요.”
“한국을마음으로몸으로느끼는소중하고의미있는시간이였어요.”
“한국의분단의현실을정말가깝게느끼게되었어요.”
“어떻게한국의미래를하나님이인도하실지기대가되요. 한국을위해기도할께요.”
그중다른공동체에살면서이날한국의밤에초대받은한형제의감사편지입니다.
‘….. 어제한국의밤행사는경이로웠습니다. 무엇보다도하나님께서그분의일을위해우리모두를함께모이게하심을감사드립니다. 다이닝룸에이렇게많은형제들, 자매들, 어린아이들이함께하는것은우리에게훗날언어를초월해모든민족과족속이천국잔치에초대되어질하나님나라를맛보게하는시간이었습니다. 어제밤은좋은시작이었습니다. 이는하나님의도움으로계속되어지고성장할것입니다. …..’
그분의편지를읽으면서 한국의밤이이땅에하나님나라의전진을위해조금이나마기여했다는것에그동안의 수고한모든피로가씻겨나가는것같았습니다. 우리가경험한‘한국의밤’은초창기브루더호프에조인한스위스형제한스마이어의말을생각나게합니다.
“물줄기를따라거슬러올라가면물이흘러나오는근원과꼭만난다” -
한스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