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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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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열혈사제의 울화통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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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구순이 다된 어머니와 저녁을 하는데 어머니가 티브이를 보다가 “ 닮으셨네 ”한다. “ 뭐가요?”라고 물으니, 요즘 뜨고 있다는 <열혈사제>란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와 닮았다고 하길래 “되물었다. “얼굴이요, 아니면 성질머리요?”

 <열혈사제>란 드라마에서 재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갑자기 몇 년전 남가좌동에서 겪은 재개발에 대한 일들이 떠올랐다. 재개발의 재자도 모르던 내게 재개발 현장 한복판에서의 오년반의 시간은 우리사회가 어떤 수준이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신물 나도록 배운시간이었다. 합법을 가장한 무법행위 , 불도저는 매일 밀어붙이고 항의하던 노인들은 하나둘씩 밀려나는데 드라마처럼 그런 행위를 하는 깡패는 한놈도 보이질 않고 당시 지역구 국회의원이란 자에게 물으니 (지금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 자신이 재개발공약을 내세우고 당선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개발은 조합과 주민의 문제라고 발뺌을 하고, 구청도 자신들은 관계없다고 뒤로 빠지고 당연히 서울시는 오리발이고, 법에 호소했더니 이미 이렇게 진행이 되었는데 어쩌겠느냐고 시큰둥한 말이니 했다. 책임지는 사람은 하나 없는데 재개발은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진행이 됐다. 항의할곳조차 없다는 사실이 더 열불이 났다. ‘아하 짜고치는 고스톱이란 것이 이런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 들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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홧병이나 걸리지말자하고 방법을 찾은 것이 일본인 모리 박사가 사용했다는 일명 ‘걸으면서 욕하기’. 동네에서 하자니 노숙자들이 이미 하고 있고, 생각 끝에 사람이 없는 시간에 성당 안에서 하기로 했다. 십자가의 주님을 보면서 “주님 저런 비리를 저지르는 놈들 다리 몽둥이 좀 부러뜨려주시고 다 감방에 처넣어주십시오”라고 간절한 기도를 했는데 어느날 신자할머니들이 성당앞에 모여있었다. ‘미사도 없는데 웬일이냐’고 물으니 ‘신부님이 매일 기도하신다기에 저희도 왔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 손에 묵주를 들고 작은 소리로 욕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할머니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신부가 매일기도를 하더니 이젠 방언도 한다’는 소문이.

 욕하는 소리가 방언과 발음이 비슷해서 생긴 해프닝이다. 오년반동안 버티고 버텨서 보상을 받고 떠나면서 앞으로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않겠지 했는데 피정수도원에서 만난 수녀가 말하길 ‘저희 성당도 재개발에 걸렸어요’ 하는것이다. ‘아이고 돈에 환장한 놈들이 아직도 살아있네’.  그런데 수녀 말이 ‘법에 호소했는데 패해서 본당 신부가 너무 힘들어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재개발은 기도만 해서는 안되고, 동네방네 다니면서 재개발의 문제를 알려야 한다’고 조언을 했다.

 

 <열혈사제>를 본 신자들이 ‘에이 저거 순 뻥이야. 무슨 신부님이 저렇게 화를 못참고 사람을 두둘겨 팰까. 저건 그냥 드라마야’라고 하지만 재개발 현장에서 오년반을 보내보니 드라마보다 더한 일이라도 할것같았다. 현장은 그야말로 영악하다못해 사악한 돈중독자들이 판을 치고 있기에. 그 때 생각하니 다시 울홧통이 터지려한다.


내가 변한만큼만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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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을 즈음, 종교인들이 모여 대화하면서 당대 사회적 사건들의 부정적 키워드를 찾아본 적이 있다. 우리는 ‘강정’에서는 ‘군사주의’를, ‘쌍용’에서는 ‘고용불안정’을, ‘밀양’에서는 ‘에너지 탐욕’과 같은 키워드를 찾아냈다. 그러다 한 사람이 “그러면... ‘세월호’는요?”라고 물음을 던졌다. 짧지만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우리는 거의 동시에 “모든 거죠”라고 답했다. 그랬다. 세월호 침몰과 304명의 죽음은 한두 개의 키워드로는 나타낼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얽히고설켜 일으킨 총체적 참사였다. 그리고 여기에는 “죄를 짓는 자는 소수지만 책임은 모두에게 있다”는 아브라함 조슈아 헤셸의 말처럼, 탐욕의 체제를 보고도 가만히 있었던 우리 모두의 책임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게, 특히 꽃다운 나이의 무고한 아이들에게 더 미안하고 더 부끄러웠다.

 참혹했던 그 봄날,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약속했다. “잊지 않겠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세상을 바꾸겠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다섯 번째 봄이 돌아왔다. 그동안 세상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우리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촛불혁명이 있었고 정권이 교체되었고 남·북관계가 급진전되는 등 정치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개인적, 사회적 삶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 같지는 않다. ‘세월호 이전’의 가치인 물질주의와 경쟁주의는 여전히 우리 삶을 옥죄고 있고, ‘세월호 이후’의 가치인 생명존중과 공동체적 삶은 아직 충분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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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유예은 양의 아버지 유경근 씨는 “세상은 딱 내가 변하는 것만큼 변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가 세상의 변화를 나타내주는 지표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의문과 회의가 들 때면 유가족의 삶을 바라본다. 유가족은 세월호 참사 이후 스스로를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켜왔다. 그들이 보여준 가장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변화는 사회적으로 고통 받는 다른 이들과의 연대였다. 유가족은 그동안 케이티엑스, 쌍용, 콜트콜텍, 파인텍, 아사히글라스 등의 해고노동자,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단체 반올림, 강정과 밀양 주민,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 등 국가와 자본의 희생자들을 찾아가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슬픔과 슬픔이, 아픔과 아픔이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치유한 것이다.   

 그리스도인 유가족은 오는 4월 7일 안산 화랑유원지 416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있을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예배를 준비하며 “아직, 끝나지 않은 십자가의 길”이라는 제목을 정했다. 유가족이 어깨에 진 십자가의 고통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호소하는 메시지다. ‘모든 것’으로 인한 세월호 참사에서 밝혀진 것은 아직 ‘아무 것’도 없다. 진실은 여전히 거짓의 짙은 안개 속에 숨겨져 있고 유가족은 진실을 향한 거친 길을 맨발로 걸어가고 있다. 그 길을 곁에서 함께 걸어가는 것, 그 동행에서 세상과 우리의 변화가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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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감춘 암자서 생을 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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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은둔한지 오래거늘 다시 무엇을 구하려고 하겠는가

                         

암자-.JPG» 법장스님이 은거한 전남 화순 모후산 골짜기 무이정사

 

부음을 받고서 급한 마음으로 그가 머물던 자리로 달려갔다. 노재를 마친 후 글벗들과 함께 암자주변을 둘러보았다. 눈길이 멈춘 곳은 본채 가운데 방 양쪽에 걸린 주련(柱聯 기둥에 장식삼아 세로로 걸어놓은 글)이다. 붓으로 쓴 글씨가 아니라 탁본액자다. 원본은 임진란의 구국영웅인 사명(1544~1610)대사 열반지인 경남 합천 해인사 홍제암에 있다고 한다. 글씨는 만파의준(萬波誼俊)스님이 썼다. 하지만 만파의 행적은 묘연하다. 1860년 무렵 활동한 인물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추사 김정희(1786~1856)선생이 그 솜씨를 칭찬했다는 전설만 남아있다. 글씨 외는 별다른 흔적이 없는 까닭에 그 글씨는 인물과 동등한 대접을 받았다. 그래서 신비감이 한겹 더 더해진다

        

은거부하구(隱居復何求) 무언도심장(無言道心長)

은거함에 다시 무엇을 구하랴. 말없는 가운데 도심이 자라네.

 

법장스님-.jpg» 최근 60중반에 열반에 든 법장 스님

 

법장책-.jpg» 법장스님이 2003년에 펴낸책 봄이 오는 길목에서 60대 중반 나이에 홀연히 저세상으로 떠난 법장(1954~2019)스님은 1990년 무렵 합천 해인사 도서관장으로 부임했다. 그 후 가야산에서 몇 년간 머물렀다. 그 때 만파글씨를 만났다고 한다. 번거러운 단체생활을 기꺼이 감수하면서도 늘 은둔을 꿈꾸었다. 그런 당신에게 꾸밈없는 소박한 글씨체와 무욕(無欲)을 추구한 내용이 함께 겹쳐지며 두 배의 울림으로 닿아왔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이 글씨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많은 발품 손품 끝에 귀한 작품을 얻었지만 걸어둘만한 기둥이 없었다. 드디어 이 암자에 은둔하면서 글씨도 비로소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동시에 왼쪽 서재 방문 위에 정와(靜窩고요한 작은 움집)’라는 이광사(李匡師1705~1777) 글씨 모작까지 달았다. 그리고 스스로 은둔자임을 두 배로 강조했다.

 

은거지로 점지한 전남 화순 모후산 골짜기는 앞뒤는 물론 좌우가 모두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아침해는 늦게 뜨고 저녁해는 일찍 진다. 인근에는 민가도 없다. 십리는 족히 넘을 것 같은 진입로는 암자가 있다고 도저히 믿기지 않을만큼 좁고 꼬불꼬불한 비포장 길이다. 군데군데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포장한 시멘트는 이미 누더기 상태다. 그런 곳이지만 내가 선택했다는 이유로 불편함 마저 즐기면서 도량을 가꾸었다. 밀려오는 외로움 때문에 사람을 그리워할 때도 많았다. 그런 반복되는 일상의 모습을 가감없이월간해인토굴일기라는 이름으로 일년간 연재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 매달 한 편 한 편 정성스럽게 읽었다. 전남 영광출신인 그는 토속어 사랑이 유별났다. 문장 곳곳에서 만나는 남도 사투리는 때로는 읽는 이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타지방 출신들은 문맥 속에서 대충 그 뜻을 짐작하며 읽으라는 식이였다.

 

정와(靜窩)’은거함에 다시 무엇을 구하랴라는 의미의 은구실(隱求室)’과 같은 뜻이다. 은구실의 원래 주인은 송나라 주희(朱熹1130~1200)선생이다. 복건성(福建省) 제일의 명승지라는 무이산(武夷山)에 거처를 마련하면서 무이정사(武夷精舍)’편액을 걸었다. 그 집을 배경으로 잡영(雜詠)’이라는 큰제목아래 12편 연작시를 남긴다. 정사는 작은 집을 말하며 잡영은 생각나는대로 읊는다는 뜻이다. 3번째 시의 작은 제목이 은구실이다. 세 칸 띠집의 왼쪽에 있는 방을 가르킨다. 시 전문은 이러하다. “새벽창에 숲 그림자 열리고(晨窓林影開) 밤중 베개머리에는 샘물소리 울리네(夜枕山泉響). 은거함에 다시 무엇을 구하랴. 말없는 가운데 도심(道心)이 자라네.” 

 

  113-.JPG» 정와라고 쓰인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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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性理學)을 완성한 주자(朱子 주희를 말함)는 화두선(話頭禪)을 완성한 대혜종고(大慧宗杲1089~1163)선사 어록을 (흠을 잡기 위해) 자주 읽었다. 욕하면서 닮는다고 했던가. 도리어 대혜어록의 편집자인 동시에 수제자인 도겸개선(道謙開善)스님과 교류로 이어졌다. 이런 연유로 그의 글에는 알게 모르게 선()적인 느낌들이 베어있다. 그래서 훗날 절집에서도 그의 시를 자주 인용하게 된다. 송나라 주자 시가 조선의 만파글씨를 통해 대한민국의 법장토굴까지 이어졌다. 이처럼 공감이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묘한 힘이 있다. 주자는 무이정사 잡영을 지은 이듬 해(1184)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발표했다. 아홉골짜기라는 구곡 명칭도 조선땅의 안동 도산구곡(퇴계), 괴산 화양구곡(송시열), 성주 무흘구곡(정구)으로 이어진다. 법장스님도 모후구곡을 꿈꿨을까?

 

스님이 은거지에 처음 당도했을 때 맨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계곡에 줄지어 선 감나무였다. 작은 감이 열리는 토종 고염나무도 몇그루 보인다. 감나무 시()자가 들어가는 이름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늘 추구하던 고요함을 살릴 수 있다면 더 의미있는 일이겠다. 그래서 시적암(柿寂庵)이라고 작명했다. 하지만 한문 좀 한다는 훈장들에게 시()자와 적()자는 글자조합이 제대로 맞지 않다는 잔소리를 여러번 들어야 했다. 그렇다고 이 터의 주인격인 감나무 이미지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소리만 빌려 ()’자로 바꾸었다. ‘감나무가 있는 고요한 암자에서 그냥 고요한 암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이미 감나무까지 숨어있다

 

암자2-.JPG암자1-.JPG          

 

감나무 행렬이 끝나는 암자입구의 밭두둑에는 화강암 흰빛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는 새로 만든 부도(浮屠 유골을 모신 탑)가 보인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스님의 모친 부도였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에 이 암자에서 치룬 어머니49재에 참석한 기억까지 떠오른다. ‘온 생을 일곱남매에게 오롯하게 바치셨던 위대한 어머니의 마음을 그리워 하며라는 내용의 기계글씨체가 뒤켠에 새겨져 있다. 근조 꽃바구니가 놓여있는 옆자리에는 아랫동네의 거사님들이 땅을 파고 있다. 이 자리에 당신의 부도를 세워달라고 지나가는 농담처럼 말했다고 한다. 그 농담은 이제 진담이 되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은둔지에서 20여년을 살아온 이력 때문에 몇 명 되지도 않는 문상객의 조촐한 마중을 받으며 화장을 마친 유골이 돌아왔다. 이렇게 모자(母子)의 인연은 또 이어진다.

 

이른 봄날의 하루 해는 기울었고 돌아갈 길은 멀기만 하다. 서둘러 암자를 떠나며 남은 이에게 유품을 정리하다가 혹시 저서가 나오거든 한 권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법장스님의 유일한 저서인사람이 그리운 산골이야기(2003)가 갑자기 생각났기 때문이다. 발문을 필자가 직접 쓴 책인 까닭이다. 몇일 후 서가에서 그 책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고 우편을 통해 받았다. 사람은 가도 책은 남는 법이다. 책도 그렇게 그렇게 이어진다.

 

 

 

 

 

기회는 있었고 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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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 힐먼의 『하나님의 타이밍』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고대 아라비아에 광야를 건너는 세 상인이 있었다. 세 사람은 낮에는 광야의 햇빛을 피하기 위해 천막을 치고 쉬다가 별이 빛나는 서늘한 밤에 낙타를 타고 이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른 강 바닥을 걷고 있던 그들에게 “멈춰!” 하는 음성이 들렸다. 셋은 너무나 놀라 낙타에서 뛰어 내리며 “누구세요?” 하고 물었다. “두려워하지 말라.” 어둠 속에서 또 음성이 들려왔다. “너희는 내가 말하는 대로 하면 나는 너희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발 앞에 조약돌이 보이느냐?” 희미한 별빛에 수많은 조약돌이 반짝이고 있었다. “각자 조약돌 하나씩 주어 호주머니에 넣어라.” 세 상인은 순순히 강바닥에서 조약돌을 하나씩 집었다. 그러자 또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이곳을 떠나라. 그리고 날이 밝을 때까지 쉬지 말고 계속가라” 한 상인이 너무 궁금한 나머지 그 음성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러자 그 음성은 “한 가지만 애기하마. 아침이 되면 너희는 행복한 동시에 슬플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 상인은 걸음을 재촉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행복한 동시에 슬플 거라고?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뜻일까?” 드디어 저 멀리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상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자기 호주머니에 있던 조약돌을 꺼내 들었다. 조약돌은 아침 햇살에 반짝거렸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보석이었다. 하나는 루비, 다른 하나는 에메랄드, 나머지 하나는 사파이어였다. “보석이다!” 한 상인이 기쁨에 들떠 큰 소리로 외쳤다. “이런 젠장!” 옆 사람이 말했다. “그럼 강바닥에 수많은 보석들이 깔려 있었는데 우리는 겨우 하나씩만 가지고 왔다는 거야?” “저것 좀 봐!” 세 번째 상인이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광야에 심한 바람이 불더니 그들이 왔던 발자국을 모두 지워 버린 것이다. “이젠 우린 그 길을 찾아갈 수가 없어!” 광야에서 들린 음성이 옳았다. 상인들은 행복했지만 동시에 매우 슬펐다. 광야에서 부를 발견했지만 더 많이 취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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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생의 광야를 통과합니다. 인생의 광야를 지나는 동안 수 많이 깔려 있는 조약돌들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하찮게 여기고 한 두 개의 조약돌만을 주을 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그 하찮게 여겼던 조약돌들이 보화임을 알았을 때는 발견한 그 보화로 인해 행복하지만 동시에 더 많이 챙기지 못해 슬퍼합니다.

명상의 세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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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 3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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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도적인 알아차림: Deliberate Awareness처음에는 의도를 가지고 대상을 알아차립니다. 소리나 호흡이나 어떤 한가지를 집중해서 알아차림의 힘을 키웁니다. 첫 번째 단계가 가장 어렵고 노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생각은 많고 빠르고 마음을 안정 시켜서 고요함을 경험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 조작없는 알아차림: Unfabricated Awareness알아차리는 것이 용이하고 자연스럽고 노력이 거의 필요 없습니다. 아주 쉽게 아무것도 안하면서 깨어있는 마음자리에 쉴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을 알아차리는 단계입니다. 생각이 얌전하고 마음의 평화와 고요함을 평소 많이 느낍니다. 생각이 거의 이어가지 않고 감정은 여전히 일어나지만 쉽게 풀 수 있습니다. 가끔 어려움도 경험 하지만 오래 가지 않습니다. 이 단계에 도달하는 수행자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분명히 가능하지만 많은 노력으로 첫 번째 단계를 넘겨야 합니다.


자생의 알아차림: Spontaneous Awareness꽃이 향을 품듯이 태양이 빛을 주듯이 알아차림이 저절로 아무 노력 없이 자연발생 됩니다. 생각이 정말 많지 않고 깊고 광대한 마음의 평화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도움이 되는 생각만 일어나고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좋게 봅니다. 무엇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지혜롭게 자비롭게 하게 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첫 번째 단계를 넘기지 못합니다. 명상은 처음에는 굉장히 어렵지만 나중에는 노력 없이 즐겁게 하게 됩니다.
피아노를 배우면 당연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데 명상을 배우는 사람들은 몇 달도 안 하고 기대만 많고 쉽게 포기합니다. 명상을 배운지 오래 됐지만 하루에 30분도 죄선을 안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면서 마음의 변화가 없다고 불평만 해요.
어떤 것도 연습으로 쉬워지지 않는 것이 없어요. 어떤 것도 잘 하려면 마음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합니다. 명상은 자신을 위한 행복을 위한 투자이며 고통의 유일한 약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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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는 아버지와 함께 외할머니 집에 놀러 가 함께 들길을 걸었다. 그때 아버지는 들에 핀 풀꽃으로 손목에 시계를 만들어 주고 손가락에는 반지를 만들어 주었다. “참, 멋진 시계지? 이 세상에서 향기가 나는 시계는 이거 하나밖에 없을 거야, 참 예쁘구나.” 그날 밤 어린 아빠는 풀꽃 시계가 망가질까봐 조심하면서 잠을 잤다. 이제 또 물어보자. 그때 그 풀꽃 시계는 값은 얼마였을까. 그는 과연 풀꽃 시계를 누구에게 팔 수 있었을까. 이 물음에 답을 할 수 있다면 그대는 다시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 쯧쯧쯧.

세상에는 소중한 것들이 참 많다. 그래서 그것들을 가지고 싶어 한다. 오래도록 간직하면서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내게 의미가 있고 유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가치’라고 한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나를 기쁘게 하는 가치를 찾고 누리면 우리는 행복한 삶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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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에는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 고유의 가치, 특별한 가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빠의 풀꽃 시계는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그만의 고유하고 특별한 가치다. 오월에 부는 솔바람의 멋을 감수하는 일은 저마다의 취향이다. 그러나 지상의 ‘공기’는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절대적이다. 풀꽃 시계의 추억과 의미는 아빠와 아이가 교감하는 소중한 가치이지만 ‘시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누려야 하는 소중하고 절대적인 다수의 가치이다. 

누구나/모두와 함께 누려야 하는 것들, 우리는 그것을 ‘공공재’라고 한다. 공공재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냥 ‘공공의 가치’라고 하자. 함께 누려야 할 것들은, 더불어 누리지 못하면 균형이 깨진다. 소수가 불공정하게 독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의 법칙은 참으로 엄정하다. “혼자만 살고자 하면 혼자도 살 수 없다. 함께 살고자 하면 나도 너도 살 수 있다” 공공의 가치 존중은 선심성이 아니다. 당위성이다. 이치가 그러하기 때문에 그러해야 하는 당위성이다. 

공기, 에너지, 토지, 물의 사대 원소는 우주의 원천이며 인간사회의 공공재이다. 생명, 안전, 건강, 주거, 교육은 나도 살고 너도 사는 삶의 공공재이다. 공공의 가치란 다름 아닌 공공의 이익을 말한다. 교육을 앞에 두고 사업과 장사의 논리로 횡포를 부린 유치원 사태는 실로 공공의 적이 되었다. 왜 수학에 ‘공통분모’가 있는지 생각해 본다. 우리 사회의 공통분모가 많을수록 좋은 세상이리라. 

* 이 글은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월간 참여사회> 2019년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묶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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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승자박(無繩自縛)

         

-임제록

친밀감이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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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과의 친밀감이 결여되면, 우리는 인간 존재로서 깊어지지 못한다. 천박해질 뿐이다.

 

                                                         -아난다공동체의 스와미 크리야난다


타인은 나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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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세계에 살고

 증오하는 사람은 증오의 세계에 산다.

 당신이 만나는 사람은 모두 당신의 거울이다.

 

     미국 오리건주 쿠스베이의 켄키즈센터와 리빙러브교회 설립자 켄키즈

어른의 치유는 자기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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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탓은 아니지만 치유의 주체는 당신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상처 받은 주부 “엄마가 용서 안 돼요”

 

사진31-.jpg»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Q. 두살 된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종종 과거에 어머니가 내게 했던 일들이 떠올라 화가 나요. 수많은 육아 지침서들과 교육 프로그램을 보면 엄마인 내가 먼저 내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고 합니다. 대부분 상처를 준 사람은 부모님이지요. 그래서 그 마음을 풀어 보려고 어머니에게 내가 상처 받았던 얘기를 하면, 어머니는 미안하니까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하라고 합니다. 속상하다고요.
하지만 내 안에는 아직 못다 한 말들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차별과 무관심, 화풀이 속에 많이 상처 입었던 내 마음은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요. 데이지  

 

A.육아 지침서를 비롯해 대부분의 심리학 서적들이 어린 시절 상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지금 당신이 불행한 건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았던 영향과 상처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아마도 이 같은 주장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3세 이전의 부모자식 관계를 집중 조명하는 대상 관계이론의 영향이 적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이 고통 받는 건 당신 탓이 아니라 당신의 부모 탓입니다’라는 말은 고통의 당사자에게는 위로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우울이나 불안, 분노 등의 감정 때문에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자존감이 꽤 낮아져 있을 수 있는데, 그럴 때 ‘당신 탓이 아니다’라고 누군가 말해 준다면 크나큰 위로가 되겠지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어디를 가나, 우리 부모가 어린 시절 내게 어떤 상처를 줬는지, 그것 때문에 내가 지금 어떤 후유증을 겪고 있는지 말하는 걸 자주 듣습니다.  

이런 류의 심리학 이론이 가진 문제점은 그 해결의 주체를 모호하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의 고통이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할수록, 그리고 어린 시절의 상처가 어른이 된 뒤에도 자신의 감정을 좌우한다고 말할수록 고통의 주인공은 문제 해결을 할 힘이 없어집니다. 결국 내 상처는 부모님이나 부모님을 대신할 심리전문가가 해결해 주어야 하는 것이 되지요.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냉정하고 엄격했던 아버지가 지금도 원망스러워서 찾아가 따졌는데, 지금은 너무 늙고 약해져서 마음이 편치 않다. 어머니가 과거에 분노가 많아서, 또는 자식을 차별해서 내가 이렇게 자존감이 낮은데, 과거 얘기를 꺼낼라치면 펄펄 뛰면서 되레 화를 낸다. 그래서 상처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당연히 그렇습니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성찰을 하신 분들이 아닙니다. ‘내가 왜 이렇게 화를 내지? 내가 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하고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자식들은, 남편은 왜 나를 이렇게 화나게 하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당신이 과거에 어린 나에게 상처를 줬다고 하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죽을힘을 다해 키워 줬더니 이제 와서 무슨 가당치 않은 소리냐며 다시 분노의 불길을 되살릴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데이지님의 어머니는 미안하니까 그만하라고 하시니 상당히 좋은 부모님입니다.  

실제로 부모의 사과를 받고도 여전히 마음이 치유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제는 부모님과 사이가 좋아졌는데, 부모님을 이해하게 됐는데, 나는 여전히 우울하고 자주 수치심을 느낀다는 겁니다. 이럴 때 자신에 대한 좌절감은 몇 배로 커집니다. 상황이 달라졌는데 나는 왜 달라지지 않지? 아직도 속 좁게 용서를 못 하는 건가?  

이런 심리적인 상태를 설명하는 데 ‘내적 불행’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합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받아들였던 불행이 결국은 내면의 불편감을 유지하려는 힘이 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지요.

이제 부모는 없지만 내면화된 부모가 내게 힘을 행사한다는 말과도 비슷합니다. 내가 부모의 태도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어른이 된 뒤에도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이지요. 너는 가치 없어. 욕구를 참아. 너는 나를 힘들게 해. 타인을 위해 봉사해야만 좋은 애가 되는 거야…등등으로요. 혹시 데이지님도 이런 주문을 스스로에게 걸고 있지는 않은지요?  

사실 저는, 과거에 부모가 원인이었다는 주장에도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실제로 긍정심리학을 중심으로, 성격의 많은 부분이 타고난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언급되고 있습니다만, 인간의 성격이 양육의 결과냐 아니냐에 관한 논쟁을 여기서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데이지님처럼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어머니를 자기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시게 되면 자식을 키우는 일이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우울한 일이 됩니다. 나는 어머니처럼 아이를 키우지 않을 거야, 어머니처럼 내 자식에게 상처 주지 않을 거야, 하면서 긴장하고 쩔쩔매다가 그 스트레스 때문에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초보 엄마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되는 게 있는데, 아이들은 참으로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처 입었다가도 이내 밝아지고 깔깔 웃고, 또다시 부모를 사랑해 줍니다. 상처의 회복 속도가 느린 사람들이 있는데(저 역시 그랬습니다만), 그들도 어른이 되면 그 상처를 자양분 삼아 한층 성숙해지기도 하지요.  

데이지님, 저는 묻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그토록 차별과 무관심과 화풀이로 당신을 괴롭혔다면 지금의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따뜻하고 친절하고 너그러우신가요? 당신은 당신을 귀하게 여기시나요? 당신의 아픔을 눈물로 위로해 주시나요? ‘괜찮아. 어떤 모습이어도 내가 곁에 있어 줄게’라는 마음을 갖고 있나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고통이 당신 탓이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자신을 치유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하는 생각이, ‘모두 내가 부족해서’ ‘내 탓’과 같은 것들입니다. 당신 탓이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껏 어려운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했고, 잘 버텼고, 그리고 이렇게 상담을 원하는 글을 써서 보내셨으니까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당신 탓이 아니지만, 어른이 된 뒤에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권리와 의무는 바로 당신에게 있다’는 점입니다. 아직 못다 한 말들, 상처들을 이제 스스로 위로하고 치유해 주세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 것도 권합니다. 당신에게는 상처만큼 강력한 회복과 치유의 힘이 있습니다.

메일플시럽의 달디단 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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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의수라상도부럽지않은아침식사

 

 

10상량식2-.jpg» 메이플 시럽 헛간을 짓는 메이플릿지 공동체마을 사람들

 

겨울내내꽁꽁얼었던대지가무언가새로운기운을맛본듯조금씩꿈틀거리기시작합니다.   제일먼저얼어붙은대지를박차고나오는놈은노란아코나이트(노랑너도바람꽃) 입니다. 길을지나다하얗게  눈덮인대지를뚫고나와노란꽃망울을내민꽃을보노라면그동안매서운겨울로지친마음이녹듯사르르녹아마음도봄을기다리는설레임으로가득하게합니다아코나이트를바로쫓아오는놈은스노우드롭 (설강화) 입니다눈송이가떨어지듯자그마한하얀꽃망울이난초같이기다란잎에매달린꽃으로청초하기그지없습니다뒤론보라색의크로커스와작은아이리스가  마중하고싶어  안달이쫓아나옵니다

꽃들1.jpg

 

 1노란아코나이트-.jpg» 노란 아코나이트

 

되면봄내음가득한부드러운흙을만지고싶어손도근질근질해집니다. 이렇게봄을기다리는뿐만아닙니다. 지난가을화려했던단풍잎을모두떨어뜨리고벌거벗은추운겨울을기다려온메이플나무도슬슬몸을뒤틀기시작합니다요즈음같이밤에영하3-4떨어지면메이플나무는지난겨울내내  뿌리에저장했던양분을(체관)으로  빨아들이게됩니다그러다낮에햇살을듬뿍받아기온이영상으로올라가면수분과공기가팽창해수액을배출하려는힘이생기게됩니다. 메이플나무껍질에  구멍을내면  메이플수액이밖으로흐르게됩니다.   비가오거나 바람이 불고 흐린 날에는 나무 줄기 속의 밤과 낮 압력차이가 없어 수액이 나오지 않고, 기온이 영상으로 지속되면 더이상 흐르지 않아 사실 기온차가 가장 심한 1월에서 3월 사이에만 메이플 수액을 얻을 수 있습니다.

 

 

 

 

3쇠파이프 박기-.jpg» 메이플 시럽 나무에 쇠파이프 박기

 

이맘때가되면저희가족도공동체모든아이들도메이플시럽을만드느라바빠집니다지난해깨끗하게씻어말려놓았던양동이를꺼내수레에싣고메이플나무가가득한숲으로갑니다. 아빠들과형아들이수액이나오도록메이플나무에15각도로구멍을작은파이프를꽂으면동생들은양동이를파이프위에걸어놓고눈이나비가들어가지않게뚜껑을덮습니다양동이를걸자마자수액이졸졸졸떨어지는소리가들리네요아침에일어나면아이들은지난기온이영하로떨어졌는지부터살피며낮에메이플숲으로달려가수액이얼마나모였는지들여다봅니다. 바로나온수액을자리에서마시기도하는데아주시원하면서약간달달한맛이몸이상쾌해지는합니다. 어느정도수액이양동이를채우면드럼통을가져와수액을모읍니다. 이렇게모은수액을나무장작을태워 24시간졸이면메이플시럽이되는데40리터를끓이면 1리터의시럽이나옵니다.  

4수액체크--.jpg5수액먹는--.jpg6수액끓이--.jpg2드롭꽃--.jpg

 

   

얼마전우리메이플릿지학교에서는그동안사용했던메이플시럽만드는헛간이너무오래되고  낡아7-8학년을중심으로아이들이힘을합쳐새로운메이플시럽헛간을짓기로했습니다. 지난 7-8개월동안아이들은  숲에가서건물에쓰여질소나무와참나무를  잘라날라오고, 아빠가잘라온나무를재목을만들어주면, 아이들은선생님과함께  올드패션방법으로기계를사용하지않고직접톱과망치와끌을사용해재목들을깎고다듬어홈을건물에쓰여질목재를준비했습니다. 나무를다듬을조금이라도오차가생기면나무와나무를연결할애를먹기때문에여간정확도를필요로하는일이아닙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아이들의손은연장질에집중하면서도내내재잘거리며신나서일합니다. 주말에는아빠들도와서나무를다듬으며아이들과함께하는즐거음을만끽합니다.

드디어메이플시럽헛간을세우는상량식 날입니다. 아이들이 미리 잡석을 깔고 브릭을 놓아 터를 잡아 놓은 부지 위에 아침 일찍부터 아이들과 아빠들이 모여 그동안 정성들여 준비한 나무로 모두 힘을 합쳐 기둥을세우고 보를얹어뼈대를맞추었습니다. 연결된나무들은나사못을사용하지않고아이들이직접만든나무못으로고정시켰습니다.

이제는 서까래를 지지하는 도리를 얹을 차례입니다. 그동안나는밑에서보조만하다가  기둥위에올라가돕기시작했습니다. 어릴적엔제법나무를잘 타고나무위에오래있어도끄떡없고좋기만 했는데 한시간 반넘게높은곳에서일을 하다보니다른아빠들과함께일하는재미도있었지만몸이금방지쳐오는게 이제나이가들어가나 봅니다.

 

아침 7시쯤시작된상량식은놀랍게도 11시가쯤에서까래까지끝내지붕을올리기시작했습니다.  12시엔공동체사람들과주변의이웃들과친구들도초대에잔치를벌렸습니다학교선생님들과몇몇 남자아이들이 24시간돌아가며장작불을피워구운통돼지바베큐와아침부터여자아이들과몇몇자매들이분주하게만들어놓은마늘빵도브릭오븐에굽고, 사과에카라멜을입혀놓은꼬치와50-60년대골동품으로보이는사이다프레스에직접사과를넣어만든애플사이다등을먹으니지친몸에힘이돋는같습니다. 역시  잔치날에는음식이빠져서는안되겠죠.

 

7헛간나무-.jpg8헛간나무2--.jpg

메이플 시럽 헛간 나무 다듬기

초대되어온많은이들이그동안아이들의수고와땀이맺힌건물이올라가는것을보며감탄하고놀라워합니다. 지역킹스턴고등학교교육감이신분이초대되어왔는데행사를지켜보며요즈음많은아이들이테크놀리지에잡혀있는데우리아이들이직접손으로수고하며함께일하는가치를아직도간직하고있음을부러워하며아이들을격려했습니다.  돈만있으면홈디퍼에가서지어진헛간을사서지게차로실어올수도있겠지만아이들이손수흘려만든것과비교할있나요. 우리아이들도그동안힘들게일해것에열매를맺게되어뿌듯해합니다

헛간이지어지자아이들이디자인을조각해만든멋진헛간간판도달고, 그동안우리가알고지내던아미쉬마을에서메이플수액을끓이는팬도새로구입했습니다. 새로운팬은사이즈가크고성능이좋아한꺼번에 800갤런의수액을빠른시간내에끓일있습니다.

한국에메이플시럽이뭔지도모르다가이곳에와서야처음으로맛보게되었는데맛이장난아닙니다아무것도첨가하지않은100% 메이플수액을나무를때서졸인거라나무태운  스모크향도나면서질리지않는순한단맛이나는게한번사람은두고두고맛을잊지못합니다.

 

메이플시럽1-.jpg» 담궈진지 오래되면서 색이 진해지는 메이플 시럽

저희가8메이플릿지공동체에이사왔을때(Maple Ridge-공동체마을을둘러싸고있는전체가메이플나무가덮여져있어메이플릿지라고부릅니다.)  옆집에사는네이슨이저희가족에게메이플시럽을함께만들자고제안해왔습니다. 당시하빈이는초등학교 3학년, 유빈이는 4살로우리아이들도신나서참여했습니다. 네이슨은말을모는데수레를가져와  드럼통에수액을모아집으로나를유빈이와하빈이는수레에올라타수액이넘치지않도록드럼통을붙잡습니다다음에는젊은청년앤드류가트렉터뒤에짚단을놓아앉을자리를만들고드럼통을실어수액과아이들을나릅니다. 아이들은말타는재미와트랙터타는재미로열심히이리저리뛰어다며메이플수액을모읍니다.

메이플시럽은아메리카인디언들이  처음으로수액을채취해시럽을만들어사용하던것을유럽정착자들이받아들인것이유래라고합니다. 인디안전설에따르면마나부시라는소녀가할아버지가메이플나무에구멍을뚫어메이플시럽을모은것을맛보고는메이플시럽을얻기위해남자들이일이란나무에구멍뚫는밖에없어남자들이점점게을러질거라염려되어양동이에물을받아메이플나무에올라가나무  한가운데부었습니다. 이후로메이플시럽이희석되어 1-2%당도만남게되어남자들이열심히일해야만시럽을얻을있게되었다고합니다. 그래서인지메이플시럽을만드는일은많은힘과시간과공을들이는것이여간힘든일이아니지만아이들과함께하는일이니재미또한만만치않습니다

지난 8년간형제들과함께메이플시럽을만들면서많은것을배우게되었습니다메이플수액채취시즌초기에만들어진시럽은위스키처럼색이연합니다. 시간이지나면서메이플시럽색은점점진한갈색으로변하게됩니다. 색이연할수록최상급으로치게되는데연한색의메이플시럽은시럽향은덜하지만깔끔한맛으로  메이플시럽메니아들은주로시즌초기에만든연한색의메이플시럽을찾게됩니다반면  시간이갈수록색이진한갈색으로변하면서메이플시럽맛은강하게됩니다저는개인적으로연한색을좋아하고아내는진한나는다크한것을좋아합니다.

한번은공동체에서각자만든메이플시럽을가져와대회를열었는데심사하시는이안과  할아버지께서  돋보기를가져와살펴보시더니위스키빛깔의 연한메이플시럽을보고는누가주방세제를가져왔나요?”, 색이진한메이플시럽을보고는누가간장을갖다놨나요?”하며장난기있게말해공동체가한바탕웃었습니다.

 

9상량식1-.jpg11상량식3-.jpg

메이플 시럽 헛간을 짓는 사람들

 밖에서메이플수액을끓이다보면마지막을지켜봐야하는데잠깐이라도한눈을팔게되면메이플시럽이타버리게됩니다. 작년에초보총각선생님이학교에서만들던메이플시럽을 8갤런이나태워버린일이있는데선생님이여름에약혼을하자형제들이약혼을축하하는연회에서  메이플시럽태운일을패러디해두고두고놀렸습니다.  

가족들이만드는메이플시럽은마지막 1-2시간은장작불에서꺼내집에서끓이게됩니다. 그래야태우지않고안전하게만들있습니다. 제가화씨 216도정도까지메이플시럽을끓이다집으로가져오면아내는베개입에수액을부어  잔여물을걸러다시끓입니다. 이때는특별히독일분이신다비드할아버지께서전수해주신방법으로우유를약간넣어같이끓이면우유가엉키면서  모든더러운것들을잡아내시럽을맑게합니다더러워진우유를걸러내다시끓여 221-222도까지다시끓입니다. (기압에따라온도가달라집니다.) 이렇게깨끗한메이플시럽이만들어져유리병에담아부엌에놓으면집에사는애니가학교선생님인남편  어니에게  ‘박가족시럽은아주맑은데우리것은새까맣다핀잔을줍니다. 그러면어니는내게나는평생메이플시럽을만들었는데도색깔이이렇게어두침침한데  당신부인은불과년밖에안만들었는데  이렇게색이맑을있냐며비법을물어보면 아내가와서어니한데내가보기엔병에조선간장을넣은같은데요하며어니를놀리면서 며느리도 안 가르쳐 준다는 다비드 할아버지 비법을 알려줍니다.  이후론애니도남편의메이플시럽색에아주만족해합니다. ^^

13메이플헛간-.jpg» 디 지은 메이플 시럽 헛간

 

이곳에선  메이플시럽을주로팬케잌이나와플에부어먹습니다것을별로좋아하지않는저희가족은일년에어쩌다한번씩먹게되어주로아는지인들이나이웃에게나누어주는재미로만들었습니다. 그러다얼마전메이플시럽이당뇨예방과암을예방하는데블루베리나브로콜리보다높게작용한다는보고서를읽게되어이후론  아침식탁엔  아내가공동체에서키운젖소에서나온신선한우유로만든요거트에메이플시럽을스푼넣어먹고있습니다. 그릭요거트같은맛에  스모크향이나면서순한단맛이찰떡궁합인게이젠임금님의수라상도부럽지않은아침식사가되었네요. 언제든지메이플릿지저희집에놀러오세요. 구운바삭바삭한와플에홈메이드요거트와메이플시럽을살짝얹어드리겠습니다.

 

노인의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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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松老雲閑 曠然自適(송로운한 광연자적)

 

소나무는 늙었고 구름은 한가한데

마음은 텅 비고 밝고 환하여

모든 것이 저절로 잘 맞다.

 

                               -임제록

평등심이 깨달음의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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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원하는 것이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면, 보리심을 닦지 않고서는 여기에 이를 수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순서대로 닦아야 한다.


일체중생이 어머니임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평등심이 먼저 생겨야 한다. 일체중생에 대한 평등한 마음이 없으면 비록 자애심과 연민심 등이 일어나더라도 한 쪽으로 치우치기 때문이다.


 일체중생을 향한 평등심이 필요한데 보통 우리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면서 집착하고, 다른 사람들은 싫어하면서 무시한다. 그러므로 평등심을 갖기 위해서 자기 앞에 원수나 친척, 그도 저도 아닌, 다른 세 가지 관계의 사람을 놓고 관상해야 한다.


 그러한 세 가지 마음이 떠오르게 될 때 싫어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는 이유를 살펴 보면 저넹 자기를 해쳤거나 좋지 않게 행동을 했던 이유 때문에 화가 나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 원수는 어느 전생에 나와 여러 번 친척이었을 것을 사유해서 화가 남을 막아야 한다.


 현재의 친척이라고 해서 좋아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거나 도와주거나 하는 사소한 이유로써 좋아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렇지만 그도 전생에 여러 번 나의 원수로 태어났음을 알아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지금 원수도 아니고 친척도 아닌 사람들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전생의 원수이거나 친척과 같이 그 사람들도 그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관상의 세 가지 대상이 똑 같은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면 누구를 좋아하고 싫어함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알게 된다. 친척에게 그와 같이 집착할 필요가 없음은 전생에 원수였을 수도 있고, 지금의 원수는 전생에 여러 번 친척이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하나하나씩 살피면 평등심을 가질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지금 눈 앞에서 원수나 친척으로 보이는 것뿐이지 영원히 그러한 관계가 유지되는 경우는 어디에도 없다. 본인 스스로를 애착하고 남을 싫어함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으며, 대상으로서 그들을 볼 때에도 행복을 바라고 고통을 바라지 않음이 나와 똑같음을 알아야 한다.


                              <티벳 스승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묻는다면-람림>(초펠 편역, 하늘호수 펴냄)에서

어디서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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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小確幸)'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어요. 소확행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합니다.
저도 소확행을 즐기는 편입니다.
소학행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이루어서 무엇을 가져서 어디로 가서 누구랑 같이 있어서 무엇을 해서 갖는 행복보다 존재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확행은 행복을 찾는 것보다 우리안에 이미 있는 근본적인 행복과 연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차 한잔에 행복이 있습니다.
꽃 한송이에 기쁨이 있습니다.
누구랑 같이 있는 기쁨
혼자 있는 기쁨
바다로 가면 바다가 좋고
산을 타면 산이 좋고
도심에 있으면 도시가 좋은 것입니다.
도시가 좋아요. 산이 좋아요. 커피가 좋아요. 사람이 좋아요. 나도 좋아요. 걷는 것이 좋아요. 앉는 것이 좋아요. 쉬는 것이 좋아요. 일하는 것이 좋아요. 당신도 좋아요.

사소한데 목숨걸지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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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철이와 종필이가 함께 짜장면을 먹으러 중국 식당에 갔다. 짜장면을 먹던 식탁에는 단무지가 한 개 남았다. 두 사람의 젖가락이 동시에 단무지를 향했다. 서로 양보하지 않다가 종필이가 영철이에게 제안을 했다. “뺨을 있는 힘껏 때려서 울지 않는 사람이 먹기로 하자.” 종필이가 먼저 영철이의 뺨을 있는 힘껏 때렸다. 눈앞에 별이 보이고 너무 아팠지만 꾹 참은 영철이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이제 내 차례야.” 그때 종필이가 말했다. “잠깐! 이 단무지 너 먹어!” 그러고는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아줌마! 여기 단무지 한 그릇 더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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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로 하찮은 것에 목숨을 거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로의 자존심이 걸리면 그 강도는 더 합니다. 양보하자는 말은 도덕책에 나오는 이야기고 실제는 양보하면 늘 양보해야 하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습니다. 차 운전을 할 때도 양보해주면 더 늦게 갑니다. 되래 우기는 사람이 더 대우받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에 하찮은 것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닌 것이 현실입니다. 양보하면 손해보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왜 사람들은 자꾸 양보하라고 하는 것일까요?


선악 어느쪽에 에너지를 주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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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교리ㅡ사람의 오른쪽에는 수호천사가 왼쪽에는 마귀가 잇어서 양쪽에서 사람의 영혼을 두고 싸운다는 교리ㅡ순박한아이들은 그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왼쪽은 보지도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영성심리를 공부하면서 그 교리가 심리적으로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의식세계 그 이면에는 선한자아와 악한자아가 존재함을 말입니다. 선한자아는 사람으로 하여금 세가지 생존요소 믿음 사랑,희망을 잃지않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악한자아는 사람들이 불신 미움 실망의늪에 빠지게하려고 기를 씁니다.


 아주 단순한 이분법적인 이 정신관은 삶의현장에서는 여러가지 복잡미묘한 이론으로 덮여져있지만 그 껍질을 벗기면 결국 선과악으로 나뉘어 있음을 보게되고, 그래서 사람의 삶이 영적인 전쟁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그런데 내면의 세계뿐만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도 선과 악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시궁창같은 삶의 현장에서 서서히 절망의늪으로 빠져드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구해보려는 사람들과 사람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끌어들여 파멸시키려는 사람들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매일 계속되고 있는것입니다.


 천사와 마귀는 옛날이야기이거나 어린이용 동화가 아니라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절망과 불신과 미움의 늪으로 부르는 소리에 귀를 막으세요. 그 소리는 달착지근하고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유혹자가 던지는 미끼입니다. 절대로 삶을 포기하지 마시고 주님과 성모님께 믿음 사랑 희망을 가지시고 버티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드센태풍도 가라앉을 날은 옵니다.

부처님오신날 축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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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5월 12일)을 앞두고 1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미륵사지탑 조형등 점등식을 시작으로 다양한 봉축행사가 열린다.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회와 연등회보존위원회는 올해 부처님오신날 표어를 ‘마음愛 자비를! 세상愛 평화를!’로 정해 사회적 갈등을 ‘자비정신’으로 극복하고 세상과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기로 했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탑’을 본따 광화문광장에 조성된 조형등은 높이가 20m에 40호 크기의 한지 500여장이 사용돼 느낌은 화려하되 은은한 맛을 살렸다.
 5월 3∼5일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이자 봉축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연등회’가 진행된다. 3일 시작하는 전통등 전시회에서는 한지 고유의 멋을 자아내는 전통등이 조계사 옆 우정공원, 삼성동 봉은사, 청계천 일대를 수놓을 전망이다.
 4일 오후 4시 30분부터는 동국대 운동장에서 40여개 단체의 율동단, 연희단 공연 등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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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오후 7시에는 참가자들이 손수 만든 수만개 행렬등과 장엄등을 들고서  거리를 행진하는 ‘연등행렬’이 시작된다.
 연등행렬과 축제가 열리는 5월 4~5일에는 시간별로 종로, 장충단로,세종대로, 우정국로의 교통이 통제된다. 연등행렬 이후엔 당일 오후 9시 30분부터 종각 사거리에서 참가자들이 회향 한마당 행사를 열며, 5일 정오 조계사 앞에서는 120개 부스가 참여하는 전통문화 한마당 행사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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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저녁 시간대에는 인사동과 종로 일대에서 다시 한번 연등행렬이 펼쳐지며 종각인근 공평사거리에서는 연희단 공연과 율동이 이어진다.
 법요식은 부처님오신날인 5월 12일 오전 10시 전국 사찰에서 동시에  거행된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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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관승-.jpg» 일러스트페이션 김대중

 

유럽행 루프트한자 항공기 기내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읽기 시작한다. 헤밍웨이가 죽은 뒤 출간된 <파리는 날마다 축제>다. 헤밍웨이? 많은 이들은 카리브 해안에서 요트 타고 모히토 한잔하거나 킬리만자로에서 사냥을 즐기는 미국 백인 중년 남자의 이미지를 연상한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만나려 하는 사람은 가난과 배고픔의 서러움을 톡톡히 겪고 있던 무명 시절의 헤밍웨이다.

 

항공기를 갈아타느라 하룻밤 스탑오버(24시간 이상 경유지에 체류하는 것)를 하게 된 도시가 뮌헨인 것은 대단한 우연이었다. 이 도시에는 헤밍웨이와 마찬가지로 1899년에 태어난 동년배 한국인 작가 이미륵이 잠들어 있는 곳이니까. 이미륵은 서울대 의대의 전신인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 중 3·1운동을 벌이다 상하이로 도피했다. 그 뒤 독일인 신부와 안중근 의사 조카의 도움으로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뮌헨에 정착한 사람이다. 독일어로 쓴 그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는 당시 서독 교과서에 실릴 만큼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헤밍웨이는 미국에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다친 뒤로 1920년대 초반 특파원을 하기 위해 파리로 날아간다. 스콧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에즈라 파운드와 교류하면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발견하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뒤 신문사에 사표를 낸다. ‘글로생활자’의 원조인 셈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글을 써서 생활한다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파리를 발바닥으로 만나기로 했다. 걷기에 최적화된 도시니까. 제일 먼저 리옹 역을 찾은 까닭은 그의 인생에 큰 변곡점이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변곡점이란 지금까지 이어지던 힘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는 시점으로, 인생이나 스토리텔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헤밍웨이의 입을 통해 들어보자.

 

“아내는 나를 기쁘게 해주려고 당시에 내가 머물던 로잔으로 내가 그동안 썼던 모든 원고를 가져오다가 리옹 역에서 가방을 도둑맞았다. 그녀는 알프스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에도 내가 틈틈이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려는 기특한 마음에서 내가 손으로 쓴 초고, 타자기로 친 원고, 그리고 사본들을 모두 폴더 속에 잘 정리하여 가방에 챙겨넣었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지금도 리옹 역을 비롯한 파리의 기차역 앞은 소매치기들의 주요 활동 공간이다. 스위스 출장을 마치고 이제 전업 작가로 막 시작하려던 참에 그동안 써두었던 4년치 원고를 잃어버렸으니 그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몇 년 전 나도 책을 쓰기 위해 유럽 출장에 왔다가 모든 사진이 들어 있는 카메라를 기차역에서 소매치기당했던 경험이 있기에 악몽을 꾼 것 같은 그 심정에 공감한다. 참담함을 누르고 헤밍웨이는 간신히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오른쪽 주머니에 마로니에 열매와 토끼 발을 넣고 다니며 행운의 부적으로 삼던 습관이 있었다.

“나는 걱정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나는 내가 쓴 단편 작품들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언젠가는 미국에서 내 책을 출간할 출판사를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신문사 일을 그만둘 때 나는 내 작품을 출간하게 되리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내가 보낸 원고는 모조리 되돌아왔다.”

 

수입이 없으니 점차 생활비를 줄이게 되고 마침내 하루 한 끼로 연명하는 상황에까지 몰렸다. 점심시간이면 집에서 가까운 공원에서 시간을 때우다 들어오곤 했다 한다. 뉴욕의 브라이언트 공원처럼 뤽상부르 공원은 점심시간이 되면 거대한 도시락 잔치가 벌어진다. 산책과 점심 해결 모두 좋은 곳이다. 작가라고 하면 문약한 인상을 떠올리지만 그는 정반대로 건장한 상남자였다. 그러니 육체적 허기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된다.

 

그때 헤밍웨이에게 또 다른 변곡점이 찾아오니, 서점 ‘셰익스피어앤드컴퍼니’의 여주인 실비아 비치를 만난 것이다. 비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배고픔과 실의에 빠진 헤밍웨이에게 책을 빌려주고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소개해주며 심지어 생활비까지 빌려주었다.

“내가 썼다가 잃어버린 글의 주제가 아니면서 내가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주제는 무엇일까? 내가 진정으로 잘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는 자문했다. 결국 파리의 특파원과 문인들의 사회,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미친 투우 축제인 에스파냐 팜플로나의 체험을 녹여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펴낸다. 작가로서 명성을 얻게 해준 책이며, 유명한 ‘잃어버린 세대’(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의 시작을 알리는 글이었다. 결국 자기만의 언어와 이야기를 찾아냈다.

 

서점 셰익스피어앤드컴퍼니는 노트르담 성당이 눈앞에 보이는 센강 변에 그대로 서 있다. 물론 여주인 실비아 비치와 헤밍웨이는 이 세상에 없다. 헤밍웨이의 책 두 권을 사서 계산하는데 젊은 직원이 이렇게 말한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헤밍웨이 책을 사시는 것을 보니 진짜로 열정이 있으시군요. 아마도 태양이 다시 뜰 겁니다.”

빈말이라도 좋았다. 누구에게나 잃어버린 가방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일이 안 풀린다고, 뒤통수 맞았다고 풀 죽지 말자. 그가 이 작품에서 강조하려 한 것도 허무함이 아니라 땅은 영원히 그대로 지속된다는 긍정성이다.

 

독립 후 첫 원고료를 받고 몽파르나스 카페 립(Lipp)에 가서 굴 한 접시와 화이트와인 한잔 주문하던 헤밍웨이의 글이 떠올랐다. 마침 내 통장에도 원고료가 들어온 날이다. 카페 립으로 달려가 조용히 건배를 외치지 않을 수 없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바다로 튀어나온 곳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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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로 튀어나온 곶처럼 존재해보고 싶지 않은가.

 파도가 아무리 부서져라 부딪쳐온들 곶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곶은 바다의 노여움을 달래주기도 한다.

 그런 곶 같은 존재가 되어보고 싶지 않은가.

 

   아우렐리우스 <자성록>에서

불안정이 뱌로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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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정한 상태.

그것이 바로 세상이 이곳에 존재할 대에 보이는 가장 안정된 형태이다.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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