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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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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김대중의 다른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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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환-.jpg» 1973년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도쿄에서 납치돼 현해탄에 수장될뻔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서울 동교동 집으로 돌아와 생환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김대중 이희호 부부. 벽에 십자가가 보인다.

 

이희호 여사와 남편 김대중 전대통령은 종교가 달랐다. 이희호는 개신교인 감리교 신자였다. 김대중은 가톨릭 신자였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같은 신을 섬기지만, 배타성이 강한 개신교에서는 가톨릭을 이단시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둘은 1962년 결혼 이후에도 신앙을 한쪽으로 합치지않고, 서로 다른 신앙을 유지했다. 그래서 매주 일요일이면 이희호는 서울 동교동 집에서 가까운, 연세대 정문 건너편 창천감리교회에 가고, 김대중은 홍대 인근 서교동성당에 갔다. 그리고 점심 때면 부부가 홍일·홍업·홍업 3남매 부부 및 손주들과 식사를 했다. 식사 전에도 김대중은 천주교식으로 성호를 그었고, 이희호는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했다.

 둘은 만나기 전에 이미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하더라도 그토록 애틋한 부부애와 존경을 지니고 산 부부가 왜 이렇게 ‘다른 종교’라는 불편을 감내하고 평생을 지냈을까. 아무리 가까워도 천부적 인권과 신앙에 대해서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려하지않는 특별한 두 사람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보자면 이희호가 김대중보다 선배다. 이희호는 모태신앙이었다. 어려서 충남 서산에서 의사인 아버지가 병원을 운영해 서산국민학교를 다닌 이희호는 서산국민학교 후문 근처의 서산감리교회에 다녔고, 학업상 서울에서 이화고녀에 다니면서 서산에 내려오면 교회에서 살다시피할 정도였다고 한다.

 

기도-.jpg» 기도하는 이희호 김대중 부부

 이희호는 서산의 잡지인 <갯마을>과 인터뷰에서  “크리스마스 때 연극을 한 일, 논두렁 밭두렁을 타고 새벽에 먼데까지 다니며 크리스마스 캐롤송을 부른 일, 음악회에서 노래를 부르고 동화구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서 상으로 시계를 탄 일, 추수 감사제 때 물품 수집을 해서 경매를 해 가지고 그 수익금으로 생활이 어려운 이들을 도운 일 등이 즐거운 기억들”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이화고녀의 학생 예배에도 사회를 보는 등 종교 활동에 열성적이어서 40년 3월에 이화고녀의 ‘종교상’을 수상했는데, 그때부터 단상에 서는 일이 익숙해졌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 서산의 순수한 신앙인들이 모인 시골교회 풍경을 늘 그리워하면서, 대형교회들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기독교 단체로 와이엠시에이(YMCA)와 함께 대표적인 와이더블유시에이(YWCA)의 대표격인 총무를 지냈다. 한국 개신교 여성의 얼굴격이었므로 그가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1972년부터는 창천감리교회 주일학교 교사를 했고, 장로로 시무했다.

 김대중은 1957년 7월 13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청 노기남 주교의 집무실에서 윤형중 신부의 주례로 세례성사를 받았다. 대부는 훗날 총리를 지낸 장면 박사였다.   목포의 청년사업가이자 신문 경영자였던 김대중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목포에서 출마해 낙선해 상경한 뒤 1956년 민주당 신파에 입당해 장면과 인연을 맺고 가톨릭 세례까지 받게 된다. 김대중의 세례명은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를 쓴 정치가이자 인문주의자로서 반역죄로 몰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가 훗날 성인으로 추대된 인물이다. 김대중은 자신의 세례명이 토마스 모어로 정해지자 “‘왜 하필 목 잘린 사람의 이름을 내 세례명으로 지어 주는가’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고 자서전에 회고했는데, 그는 세례명대로 그 이후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야했다.

 

결혼-.jpg» 김대중 이희호의 결혼식

 김대중은 연이어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가운데 아내 차용애 여사가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대부 장면에 의해 야당 대변인으로 발탁된다. 이희호와 김대중은 1962년 결혼을 하는데, 이희호는 주위의 반대에 부딪친다. 그도 그럴 것이 김대중은 국회의원도 아닌 고졸 출신의 정치 지망생에다 이미 상처를 하고 두 아들과 어머니와 함께 대신동의 월세방에서 살고 있었고, 이희호는 부친과 오빠가 의사인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처지였다.

 이희호는 훗날 “김대중씨는 그때에도 촌음을 아껴가며 많은 독서를 하였고, 거기서 얻은 지식을 관념이나 추상적인 상태에 머물게 하지 않고 실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응하려는 실천적 의지와 성실성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가 지니고 있는 꿈이 그저 꿈으로만 끝나지 않으리라는 신뢰를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하게 느꼈다. 그의 신념과 관용과 멋에 이끌려, 그리고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결혼을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1-.jpg» 현해탄에서 수장될뻔한 뒤 돌아온 남편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 이희호

 이런 험고를 마다하지않는데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타라와 같은 주체적 선택을 할 수 있는 1세대 페미니스트였던데다 크리스찬으로서 진취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혼식은 무일푼의 처지인 김대중보다는 처지가 나은 이희호쪽의 주도로 개신교식으로 진행됐다. 결혼식 때 청접장은 내지 않고 가까운 지인들과 이희호가 이끄는 와이더블유시 직원들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희호의 외삼촌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 창립자 중 한명인 경제인 이원순선생의 제부동 넓은 한옥에서 치러진 결혼식 주례는 조향록 목사가 맡았다.
 
 이희호와 김대중에게 그리스도 신앙은 무엇이었을까. 현대 한국 기독교에서는 대형교회들을 중심으로 ‘예수 믿으면 물질 구원, 건강 구원, 영혼 구원을 동시에 다 받을 수 있다’면서 기복적 축복 신앙이 풍미했다. 그처럼 개인적인 복을 받는다는 차원의 신앙은 모든 종교의 가장 낮은 차원의 선교·포교 전략에 해당되지만, 이는 고등종교들의 가르침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상징인 십자가는 고난을 상징한다. 또한 고난과 시련을 자처하면서도 구원으로 가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김대중과 이희호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통해 강고한 독재와의 지난한 싸움이라는 고난을 자처하며, 민주화와 인권, 평화의 새 길을 열었다. 김대중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신앙이 더욱 다져졌다.

 

면회-.jpg»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된 김대중을 면회하는 이희호와 김홍일 홍업 두 아들

 김대중은 대통령직을 마친 뒤 <기독교방송>과 가진 특별대담에서 ‘1973년 일본 도쿄에서 납치돼 현해탄 바닷물에 던져지기 직전, 죽음을 예감했지만, 바로 그 순간 예수를 만났다’며 이렇게 고백했다.
 “밧줄을 뜯을 수가 없나 손에 힘도 줘봤어요. 그 때 갑자기 예수님이 옆에 서시더라고요. 그래서 예수님 소매, 로브를 붙잡고 예수님 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국민들에게 할 일도 많다고 기도했죠. 그 때 그 순간 펑소리가 나요. 펑소리가 나니까 나를 묶었던 정보부원들이 ‘비행기다’하면서 뛰어나가요. 그래서 거기서 예수님을 실제로 뵈었는데 그 순간이 내가 산 순간이었어요. 그 때 조금 늦었으면 바다에 던져져 못 산거거든요. 너무도 우연의 일치로 됐는데 나는 확실히 예수님으로 믿어요.”
 김대중은 이를 계기로 “80년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도 이런 신앙의 힘 때문에 흔들림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80년대 초 죽음의 위기 속에서 이희호에게 보낸 29통의 편지를 보면 그의 독실한 신앙을 엿볼 수 있다. 1980년 9월 13일 사형언도를 받고 보낸 편지들에는 마치 유언을 하듯 절절한 내용이 이어졌지만, 글의 절반 이상은 예수 부활과 신앙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있다.

 

지관-.jpg» 고 지관스님(전 조계종 총무원장)을 반갑게 맞이하는 이희호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는 것이 현재 나의 믿음을 지탱하는 최대의 힘이며, 언제나 눈을 그분에게 고정하고 결코 그분의 옷소매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김대중은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당시 노르웨이 국왕 등 수많은 대중들이 참석하고, 전세계에 생중계되는 장엄한 분위기의 수상식 연설에서 마지막에 ‘저 개인에 대해 말씀드리겠다’며 신앙 간증을 이렇게 했다.
 “존경하는 국왕폐하 그리고 신사숙녀 여러분. 마지막으로 저 개인에 대해서 잠시 말씀 드릴 것을 허락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저는 독재자들에 의해서 일생동안 다섯번이나 죽을고비를 넘겼습니다. 6년동안 감옥생활을 했으며, 40년간 연금 망명 감시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 속에 살아오고 있으며 실제로 체험을 했습니다.

 1973년 8월 일본 도쿄에 망명하고 있을 당시 한국 군사정부의 정보기관이 저를 납치하였습니다. 전세계가 긴급뉴스에 경악을 금치못했습니다. 한국정보기관이 일본 해안에 정박을 하고 저를 그들의 공작선으로 끌고가 전신을 결박하고 눈과 입을 막았습니다. 그런 저를 바다에 수장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 때 저의 머릿 속에 예수님이 선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붙잡고 살려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저를 구원하는 비행기가 와서 저를 죽음의 찰라에서 구원하였습니다.”

 이희호도 그 고난의 기나긴 시절을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다.  그는 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이후 집에서 창천교회에서 매주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했다. 또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고난 받는 자들을 위한 목요기도회’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특히 고난의 시기에 새벽기도와 가족기도회를 가졌으며, 금식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이희호의 철저한 기도생활은 가족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최근 이희호에 앞서 세상을 떠난 장남 김홍일은 <나는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는다>란 책에서 “어머니를 건강하게 그리고 흔들리지 않게 지탱해준 것은 기독교였다… 어머니는 굳건히 선 채 온몸으로 기도하셨다. 이때부터 나도 하나님 앞에 간절하고 깊은 기도를 드리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부부-.jpg» 종교가 달랐지만 종교때문에 한번도 다투어본적이 없다는 이희호와 김대중

 이희호는 1980 11월 전두환 신군부로부터 사형을 선고 받은 남편을 면회하면서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울부짖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내 기도로서 평정을 회복했고, 모든 고난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김대중은 훗날 “내가 죽어도 (집사람은)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니 서운합디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김대중은 한 대담에서 ‘바른 기독교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란 물음에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예수님이 곧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신다고 했다. 이 때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하고 그들에게 많이 베푼 사람에게 상을 준다고 했다. 그게 바로 기독교의 정신이고 또 바른 기독교관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욕망만을 채우려는 기복적이고 이기적인 신앙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고통 받는 약자들을 구원하려는 신앙으로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꿰뚫고 실천하려 애쓴 것이다. 김대중과 이희호는 역대 대통령 부부 가운데 가장 독실한 신앙인이었지만, 그리스도교 이외 불교와 민족종교 등 모든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열린 태도로 이웃종교인들로부터 가장 존경 받는 대통령 부부로 기억되고 있다.

 그토록 독재로부터 악랄한 핍박을 받았으면서도 화해와 비폭력, 평화 외엔 남남과 남북이 화합과 통일로 가기 어렵다고 보고, 신앙의 힘으로 용서하고 피해자임에도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고, 평화를 실천한 김대중과 이희호는 사랑과 평화라는 그리스도의 본질을 삶에서 구현한 셈이다. 또한 이희호는 수많은 배신과 핍박의 삶을 헤쳐오면서도 한번도 사람을 먼저 내치지도, 화를 내지도 않은 신앙인의 모습으로 일관했다고 주위 사람들은 전한다. 사회운동가, 여성운동가, 영부인으로서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서 모범적인 삶을 살아낸 것이다.


패배를 인정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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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싱-.jpg

 

투세(TOUCHE)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내가 찔렸다. 내가 졌다. 너의 실력을 인정한다’ 등 상대의 승리와 자신이 패배를 인정하고 펜싱 경기에서 득점을 했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펜싱 경기는 점수를 판별하기 힘든 운동이다. 칼이 워낙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찌른 사람조차도 제대로 찔렀는지, 빗나가게 찔렀는지 파악하기 힘들다. 그래서 요즈음은 전자장비가 갖추어진 옷을 입고 경기를 한다. ‘삐’소리가 나면 전자장비에 의해 누가 누굴 찔렀는 지를 판별하고 점수를 낸다.

그런데 옛날에는 전자장비 없이 점수를 판독하는 방법이 있었다고 한다. 펜싱 경기 중에 단 한 사람 만큼은 점수가 났는지 안 났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바로 칼을 맞은 사람이다. 펜싱은 득점하면 ‘투셰’라고 외칩니다. 이 ‘투셰(touché)’는 ‘찔렀다’라는 뜻이 아니라 ‘찔렸다’라는 뜻이다. 자신이 찔린 것을 선언할 수 있는 겸손한 용기가 원래 펜싱의 정신이다. 자신의 실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 펜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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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정신은 무한 경쟁, 승자 독식의 시대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 남기 위해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꺾고 이기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사회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사람을 좋아하여 그런 사람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자장비에 의해 판독 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페어 플레이를 외치는 펜싱의 스포츠멘쉽이 그립습니다.

화가 나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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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jpg

 

용서를 못 하는 사람이 있으세요? 용서하지 마세요. 미움이 강할 때 용서하려고 하면 더 힘듭니다.
자신의 분노를 인정하고 미움이 일어날 때마다 저절로 올라오고 가라앉게 허용하세요.
화가 나도 괜찮아요. 미움을 허용 하세요.
하지만 미움에 빠지지 마세요. 미움을 착한 마음으로도 돌릴려고 하지 마세요.
감정이 강할 때는 허용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감정을 통과 시켜 보세요. ...
감정에 중요성을 두지 않고 자연스럽게 끝이 나도록 지켜 보세요.
유동적이고 일시적인 감정(생각)의 본질을 알아차려 보세요. 감정자체를 살펴 보세요.
감정이 뭡니까? 그냥 일어나는 생각 뿐입니다. 허공의 부는 바람처럼 어디에도 구체적으로 있지 않고 환영처럼 잠시 나타나지만 비어 있습니다.
저절로 일어나고 저절로 흩어지게 객관적으로 바라 보세요.
시간이 지나면 감정이 약해집니다. 시간은 몸의 상처도 마음의 상처도 치유합니다. 시간이 정말 약입니다.
상처에게 시간을 준다는 것은 공간을 준다는 것입니다. 시공(時空)이 치유입니다. 치유의 시간, 치유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일어나는 감정을 내버려 두고 조금만 기다려 보라는 겁니다.
감정이 약해지면 자비명상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답게 대할 수 있고 용서까지 할 수 있습니다.

동화작가 권정생이 믿은 최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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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완택목사-.jpg

 

기독교 환경운동의 선구자인 북산 최완택 목사가 지난 13일 밤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짧지 않은 5-6년의 투병 탓에 잊혀 진 듯했으나 이별을 아쉬워하며 장례식장을 찾은 이들이 많았다. 그로부터 배운 ‘자유혼’과 산(자연)에 대한 사랑이 가슴속 깊게 각인된 결과였다.

 

  황해도 해주 태생인 그는 목사와 장로를 부모로 둔 기독교집안에서 성장했다. 후일 경기도 연천에 거주하면서 새벽기차로 매일 거의 3시간 걸리는 기독교학교인 대광고까지 통학했고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입학한 것도 집안 내력과 무관치 않다. 캄캄한 밤에 귀가하는 소년 최완택을 초롱불 밝혀들고 기다렸던 부친에게서 하늘사랑을 느꼈다고한다. 그러나 그는 대학시절부터 99마리 양이 머무는 기존 교회 틀에 안주하지않았다. 그는 틀을 떠나 홀로 하느님을 찾고자 애썼다. 목산회(木山會)를 꾸려 동료, 후학들과 함께 산행을 즐긴 것도 산을 또다른 교회라 여긴 때문이었다.

 

 언젠가 목산회 등산을 갔다가 지천에 깔린 도토리를 줍다가 하산시간까지 놓친 적이 있다. 그렇게 비지땀을 흘리며 주워온 도토리를 보자 북산은 모두 다시 산에 뿌리라며 호통을 쳤다. 왜 산에 와서까지 욕심을 부리느냐는 것이었다. 도토리를 먹고 살 산생명과도 공명하며 매주 산에 오르던 북산을 기리며 우리는 장례식장에서 ‘오! 자유, 나는 자유하리라’는 노래를 북산에 오른듯 힘껏 불렀다.

 

 북산의 자유는 방종이나 무책임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회적 소임과 교회적 책임이 언제든 그의 자유 속에 녹아있었다. 경제성장으로 독재를 가리던 유신시대 때 그는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창립해 공해문제를 최초로 이슈화 시켰다. 고인은 숱한 위협과 경고를 받았으나 당시로서 생소했던 공해 피해를 올곧게 드러냈다. 지금은 환경, 생태문제가 이/저곳서 연구되나 이 주제를 공론화시킨 첫 주자가 바로 그였다.  그 연구소가 현재의 기독교환경운동연대로 발전했다.

 

 그는 서울 구로동 민들레교회에서 30년간 목회하면서 매주 10여쪽의 ‘민들레 교회 이야기’라는 주보를 손글씨로 썼다.  산을 오르내리며 얻은 지혜로 불처럼 뿜어낸 설교와 그의 친구 이현주와 ‘부르고 답하는’ 이야기가 담긴 그 ‘민들레편지’를 받은 수백 명이 다시 수천 명에게 돌려보면서 북산의 향기가 민들레홀씨처럼 조용히 퍼져갔다.

 

 북산은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의 유언에도 등장한다. 평생 교회 종지기로 가난하게 살면서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썼던 그는 인세를 모아 적지 않은 돈을 남겼다. 권정생 어린이 재단이 만들어진 것도 이런 삶의 결과였다. 권정생은 죽음 이후의 삶을 누구보다 앞서 최완택 목사에게 맡겼다. 술 먹고 객기를 부리는 일이 많으나 심성이 가장 깨끗한 사람이라 보았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유하며 진실했던 사람이 긴 세월 고통을 겪다가 세상을 떠났다. 자유 했기에 세상과 맞서 싸운 적도 많았다. 진실했기에 세상으로부터 배반당한 적도 있었다. 이렇듯 고되기도 했던 북산을 하늘이 두 팔 벌려 감싸 안을 것을 믿는다.

성서의 노래와 한문이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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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사색-.jpg<성서>와 한문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않다. 그러나 그건 상상력의 빈곤일 뿐이다. 실제 이미 635년 일군의 선교사들이 당나라에 도착해 그리스도교 일파인 경교를 전파한 것을 비롯 동서 종교 문명의 교류가 계속됐다. 이 교류는 현대에 들어 동양 고전에 해박한 그리스도교 중국인 오경웅(우징숑1899-1986)이나 임어당(린위탕)에 이르러 정점을 맞았다. 오경웅의 <선의 황금시대>는 현대 불서의 고전의 반열에 올라있다. 오경웅과 임어당은 1930년대 중국에서 <천하>라는 잡지를 공동발간하기도 했다. 

 

  오경웅은 미국 감리교 선교회가 상해에 세운 동오법과학원을 다니면서 감리교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처음에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으나 점차 식어졌다. 이후 미국에 유학하여 국제법을 전공하였고 중국에 돌아와 상해의 조계지역을 관할하는 법원의 판사를 지냈고, 1934년 입법원에 들어가 중국의 헌법을 기초했다. 그는 사회적 성공과 달리 정신적 영적인 황폐화를 경험하던중 1937년 말 가톨릭 성인인 소화 데레사의 글을 읽고 회심을 경험해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타이완 정부에서 교황청 대사를 지냈다.
 
 그 오경웅이 ‘성서의 민요’격인 시편을 중국 한시처럼 운율을 맞춰 해설한 <시편사색>이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880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다. 이 책은 1946년 가을 중국 상해에서 <성영역의초고>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되었다. 당시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터였음에도 무려 2만부나 팔려 큰 화제가 된 책이다. 그도그럴 것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수장인 장개석(장제스) 총통이 일제의 폭력을 피해 방공호에 있으면서 이 책의 교정을 직접 했을만큼 관심을 끌었다. 장개석 총통의 후원과 교정으로 오경웅은 이 때 <신약성서>도 번역했고, 이 책은 공식적인 공회의 번역이 아닌 개인차원의 번역임에도 가톨릭에서 최초로 교황이 뒤에 인정을 해준 성서번역본으로 알려져있다.  타이완에선 오경웅의 <성영역의>와 <신약성경>이 장 총통 수정본이라 하여 1946년 발간 당시부터 국가적인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배경 말고도 이 책이 다른 기독교 서적들보다 더 관심을 끈 것은 당송 팔대가의 시를 비롯 시에 익숙한 중국인들의 정서에 부합되는 시였기에 중국인들에게 시적 감흥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킨 때문으로 전해진다. 이 책을 중국에서 10년 동안 선교사로 활동하던 송대선 목사가 우리말로 번역해냈다. 중국에 머물며 서예와 차를 익혔다는 송 목사의 번역엔 독특한 문자향이 배어있다. 성서의 시편과 <시편사색>의 글이 어떻게 다른지 시편 1편만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성서 공역 시편 1편은 다음과 같다.
 

북토크-.jpg» 14일 오후7시 서울 용산구 청파동 청파감리교회에서 열린 <시편사색> 북토크를 시작하면서 인사말을 하는 꽃자리출판사 주간 한종호 목사


 1.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그런데 오경웅이 오언의 시처럼 옮겨놓은 한문과 이를 한글로 옮긴 송목사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
 1. 군자의 즐거움 오래 가누나 선을 행하니 온갖 복이 모이고
 장락유군자 위선백상집(長樂惟君子 爲善百祥集)
 무도한 이들과 어울리지 않으며 소인배와 함께함을 부끄러이 여기네
 불해무도행 치여군소립(不偕無道行 恥與群小立)
 2. 가볍기 그지없는 오만한 자 멀리하고 저들과 같이 앉음 탐탁치 여기잖네
 피피경만도 불설여동석(避彼輕慢徒 不屑與同席)
 거룩한 말씀 속에 한가로이 거닐며 온종일 말씀 안에 젖어들기 즐기네
 우유성도중 함영철조석(優遊聖道中 涵泳徹朝夕)
 3. 비유하노라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아 제때에 아름다운 결실을 맺고
 비여계반수 급시결가실(譬如溪畔樹 及時結嘉實)
 추위가 몰아쳐도 잎사귀 마르잖고 울창히 자라나기 한이 없어라
 세한엽불고 조창영무극(歲寒葉不枯 條鬯永無極)
 4.안타깝구나 미련한 자들이여 땅에서 하늘이 한없이 먼 것같이
 애재불소도 여사천연별(哀哉不肖徒! 與斯天淵別)
 이리저리 흩날려 아득히 멀어지니 바람에 나는 겨와 다르지 않네
 유유축풍전 표표여강설(悠悠逐風轉 飄飄如糠屑)
 5. 지혜로운 이들이 힘쓰는 바는 하나님 싫어하시는 것 끊어버리기라
 천심소불용 군현소엽절(天心所不容 群賢所棄絶)
 6. 우리 주님 바른 이를 인정해주시고 무도한 이들 끝내 사라지게 하시리라
  아주식선인 무도종윤멸(我主識善人 無道終淪滅)
 

북콘-.jpg


  지난 14일 오후7시엔 서울 용산구 청파동 청파감리교회에서 <시편사색> 북토크가 펼쳐졌다. 이 책을 발간한 꽃자리 출판사 한종호 주간이 마련한 이날 북토크엔 번역자인 송대선 목사와 청파감리교회 담임 김기석 목사외에도 한국 교회 안팎에 주요 인물들이 모여 시편에 걸맞은 화음과 운율의 ’토크’를 선보였다.

 경희대 교수인 김민웅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 북토크엔 전 대한성서공회 총무인 민영진 목사, <예수는 없다>의 저자 오강남 라자이나대학 종교학과 명예교수, <군자를 버린 논어>,<오늘을 읽는 맹자>의 저자인 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전문위원, <장기려, 그 사람>의 저자 지강유철 전 양화진문화원선임연구원, 출판평론가인 장동석 <뉴필로서퍼> 편집장이 나와 <시편 사색>의 출간 의미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먼저 번역자인 송대선 목사는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노래를 부르고싶었다”면서 “중국인들은 막혀 있는 것이 툭 터져 한 경계를 넘어설 때 ‘즐거울 낙(樂)’자를 쓰는데, 오경웅의 시편 글을 읽으면서 그런 즐거움이 느껴졌다>며 지난한 번역작업을 해낸 이유를 밝혔다.

 히브리어 전공이자 시인이기도 한 민영진 목사는 “송 목사가 곱고 예쁜말들을 골라서 쓴 것을 보며 시문단에 등단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번역이 아름답다”고 칭찬했다. 성서 공역과 출간을 주관하는 성서공의회 총무를 지냈던 그는 “성서 공역은 교회 예배에서 쓰인다는 전제로 하기에 전통적인 번역에서 벗어날래야 벗어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 이 시편사색은 전통적인 틀에 얽매이지않은 창조적인 번역으로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고 평했다. 민 목사는 이 자리에서 시편 찬송가를 직접 부르기도 해 환호를 받았다.
 

johnwu.jpg» <시편사색> 원저자인 오경웅(우숑잉). 미국명 JOHN.C.H.WU

 

 

wu-.jpg» 로마 교황청 대사로 재임할 당시 비오12세 교황과 함께한 오경웅과 그 가족들

 


 오강남 교수는 “오경웅의 저서들은 서양에서 불교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필독서이며, 가톨릭의 대표적인 영성가인 토마스 머튼이 서평을 쓰기도 했다”면서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으면 성서의 힘이 싹 빠져나가버린다”고 이런 한계를 넘어선 것을 평가했다.

 지강유철 전연구원도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최고로 평가받는 것은 아름다운 소리만 내지않고 가장 아름다운 소리부터 악마적인 소리까지 폭넓게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면서 이 책이 바로 그렇다”면서 “제 딸이 아이를 낳으면 그 손주에게 읽어주고 싶은 글”이라고 말했다.
 
 성서와 한문의 만남에 누구보다도 반가움을 표한 이는 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전문위원이었다. 그는 “기독교 전통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한문을 전공하면서 교회와 한문판 어느쪽에서도 환경 받지 못했다”면서 성서 시편을 한문으로 번역해 다시 한글화한 책을 대한 남다른 감격과 소회를 표했다. 그는 “시편의 시는 당·송(나라)의 시와 달리 민요 같은 것이서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 다 담겨 있으므로 굳이 한문에 구애받지않고 읽어보라”고 권했다.

 

송대선-.jpg» <시편사색>을 한글로 번역한 송대선 목사

  장동석 편집장은 “기독교 출간 서적의 80% 이상이 자기계발서인 기독교 출판 현실에서 이런 책이 출간된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면서 “매일 매일 150편의 1편씩 읽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기석 목사는 “어느 시인이 성경을 읽을 때 내 속에 있는 감정들도 함께 들여다보면서 마치 구토를 한 후에 그 안에 무엇이 있나며 구토물을 하나하나 뒤져보는 심정으로 자기 내면을 살피니 다소 내 삶이 정돈되는 것을 느꼈다고 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면서 “이 시편의 글들이 내 속의 절망과 좌절스러움 직면케하고 정화하도록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전광훈 목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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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면 6월19일자 21면 '쉼과깸'칼럼

 

전광훈2-.jpg»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가운데)이 6월1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하야 촉구” 단식농성에 들어간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류우종 기자

 

전광훈 목사가 감사하다. 최근 별세한 이희호 장로처럼 남편 김대중과 함께 그토록 핍박과 고난을 받고도 권좌에 올랐을 때조차 보복은커녕 용서와 화해를 더욱 크게 부르짖고 실행하는 기독교적 언행도 감동을 주지만 전 목사의 막언막행을 통해 배우고 깨친 것도 적지 않다.

 

 처음부터 이렇게 호평할 수는 없었다. 2006년 ‘빤스 발언’과 2011년 기독당 창당을 전후한 시점 등에 ‘전광훈’이라는 이름 석자를 드러나게 일조한 것을 자책했다. 파리를 말 꼬리에 붙여주어 천리를 가도록 도와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에도 엄청난 비판을 받았지만, 2008년 18대 총선에서 44만여표를, 2016년 20대 총선에서 62만표를 얻었다.

 

 전 목사는 지난 1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이 되어 권토중래의 호기를 맞았다. 한기총은 개신교 내에선 이미 군마도 없이 깃발만 나부끼는 단체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알지만, 전 목사는 지난 3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찾아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목소리를 높여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며 천만명 청원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전광훈3-.jpg» 6월11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시민들이 전광훈 한기총 대표회장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 류우종 기자

 

 그는 ‘기독교계의 90%가 자신을 지지한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자신을 과도하게 믿는 그의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 개신교 단체들이 성명을 내 ‘한기총은 개신교를 대표하는 기관이 아니다’라며 정치권력을 위해 교계 전체를 이용하는 것을 비판했다.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도 ‘종교의 이름으로 정치에 나서는 것은 정의, 인권, 평화운동에 국한해야 한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의 발언이 한기총 내부에서조차 공론 절차 없이 독불장군식으로 나온 것이라는 뒷말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 2012년 이후 대표회장의 돈 선거와 비리를 둘러싼 내홍으로 회원 교단 70%가 탈퇴해 이미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한기총이 결정타를 맞았다. 전 목사를 한기총 회장으로 밀어준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 이영훈 목사가 이끄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와 기독교한국침례회마저 한기총 활동 중단을 선언해버렸으니 그야말로 한기총은 껍데기만 남았다.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의 말고삐를 잡고 ‘물렀거라’고 외치던 견마배를 거덜이라고 불렀는데, ‘거덜거리다’(거들거리다)란 말은 이런 허세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전 목사로 인해 한기총이 거덜이 나버린 것이다.

 

 전 목사와 함께 기독자유당 창당을 주도한 장경동 목사도 <매일방송>의 <동치미>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면서 더 유명해져 교회 부흥사로 성가를 높였다. 그러나 ‘남한 인구가 5천만명이니 북한 2천만명을 한 사람씩 끌어안고 죽이자’고 한 설교 내용이 뒤늦게 알려져 방송국 심의실에서 출연정지 결정이 내려졌다. 초록 동색으로 자충수를 두었다.

 

장경동.jpg» <MBN> <동치미>에 출연한 장경동 목사. 사진 <매일방송> 갈무리

 

전광훈-.jpg

 

 전 목사는 히틀러에게 맞서다 사형을 당한 독일의 천재 신학자 본회퍼까지 언급하며 청와대 앞에서 단식을 공언했으나 단 한끼를 끝으로 단식을 끝내 언행 불일치의 완결판을 보여주었다.

 

 전 목사가 도산 안창호의 말대로 ‘사람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언행에 의해 흥하고 망한다’는 가르침만을 준 것이 아니다. 배타와 혐오를 선동만 하면 먹혀들 수 있다고 자신하던 한국 교회의 수준을 다시 돌아보게 해, 한국 교회를 한걸음 더 성숙하게 해준 공까지 있다.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를 위해 스스로 한기총과 자신을 패퇴시킨 그 ‘살신’의 희생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범사에 감사한다.

 

주는 것이 곧 받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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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부-.JPG» 남에게 베풀기 좋아하고, 부부 금슬 좋기로 유명한 강희목 이정희 부부. 강희목 선생 댁에 걸려있는 사진이다.

 

오직 정해진 코스만 간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때론 행로를 벗어나 뜻밖의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전국생태마을네트워크가 지난 7일 충남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 풍류도예술원에서 연 공동체 축제에 갔다가 풍류도예술원 신현욱 원장이 이 인근에 도인이 있다고 했다. 신 원장이 우연한 기회에 만난 이후 자주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는 노인이 있다는 것이다. 10분 남짓 차를 타고 간 곳은 같은 대둔산 자락이지만 충남의 도계를 넘은 전북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의 한 농가였다. 강희목(96) 선생이 흰옷을 입고 객을 맞았다. 선풍도골의 외모에 그 나이로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강건한 노인이 후천’(後天)으로 입을 열었다.

 

 후천은 주로 신도안을 비롯한 계룡산·대둔산·모악산 일대에서 조선조 후기와 일제강점기 암울한 세상의 변화를 희구하던 민초들 사이에서 풍미하던 종교 사상이었다. 그래서 그런 유의 이야기를 재탕 삼탕 들어야 하는가라는 우려가 없지 않았다. 그래도 노인 한 분 한 분이 박물관이라는 생각으로 경청한 지 세 시간. 견강부회가 없지 않지만 그의 말엔 분명히 뼈와 살을 발라낸 졸가리가 있었다. 그는 양심이 곧 천국이고 극락이라고 했다.

 

1강희목-.JPG» 양심을 찾는 후천 개벽이 곧 올 것이라는 강희목 선생

 

 하늘 나라는 이곳에 있거나 저곳에 있는 공간이 아니다. 내가 나라요, 내가 하늘이다. 내 가슴과 일 안에 있는 사랑과 기쁨과 창조의 빛을 내는 그런 삶이 하늘 나라다. 물고기가 물이 아닌 그 어디에서 온 것이 아니듯이 내가 하늘 나라가 아닌 그 어디에서 온 것이 아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고 갈 수 없듯이 내가 하늘 나라가 아닌 그 어디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 안에서 소생하고 생멸하는 물고기처럼, 우리는 이미 하늘 나라에서 태어나 하늘 나라에서 살고 있고 하늘 나라 안에서 사라질 것이기에 좋고 나쁘고, 아름답고 추하고, 태어나고 죽는다는 이원성이 사라지고, 사랑과 기쁨과 행복이 있으면 그곳이 하늘 나라다. 그러니 양심이 열리면 지금 여기가 그대로 하늘 나라고, 그대가 부처님이고 하느님이다.”

 

그는 주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의 부인(이정희)2년 전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 집에 누가 오든지 먹이고 재우고 대접한 걸로 유명했다고 한다. 강 선생은 부인이 떠난 뒤 홀로 살면서도 텃밭 500여평을 직접 가꾸어 검은콩, 검은깨, 오가피 등으로 환약을 만들어 복용해 건강을 유지하는데, 손님들에게도 그 약을 쥐여주며 베풀기를 멈추지 않는다.

 

 베푸는 것은 어디서 주든지, 얼마를 주든지, 무엇을 주든지 손해를 보지 않는다. 먼저 주고, 항상 주고, 없는 데 주어야 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은 지금 이 시간이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지금 만나는 사람이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기쁨과 평화와 웃음을 주는 일이다.”

 

1개태사-.jpg» 강희목 선생이 젊은날 매달 한차례씩 개태사 중창주인 김광영 보살을 찾아 배웠다는 충남 논산 개태사 전경

 

1미륵-.jpg» 신이한 능력을 지녔다는 김광영 보살이 땅 속 등에서 찾아 모셨다는 개태사의 미륵 삼존불상

 

 그는 이처럼 주는 것이 곧 받는 것이라는 인과를 모르고 자기 것만 챙기려는 것을 옛시대(선천)의 비양심으로 꼽는다.

 저 사람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내 말을 듣지 말라는 것이요, 저 집에 가지 않는 것은 내 집에 오지 말라는 것이다. 저 사람을 내 친구로 만들려면 내가 먼저 저 사람 친구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만 이롭게 욕심 부리는 것은 저 사람은 손해를 보라는 것이다. 자기 것이 중하면 남의 것도 중한지 알아야 한다. 너를 불신한 것은 곧 나를 불신했다는 것을 깨치고, 존중받고 싶으면 먼저 존중해야 한다.”

 

1김간수-.JPG» 감희목 선생이 젊은날 후천 개벽사상과 정역 등을 배웠다는, 전남 영암의 도인 김간수 선생

그는 과거는 양반 세대, 현재는 물질 세대이고 앞으로는 양심 세대가 온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애초엔 글 공부를 해 과거시험을 보아 양반이 되었다. 그러나 양반은 쓰는 재주만 있지 버는 재주가 없으니 나라를 망해 먹었다. 점차 양반 같은 신분도 사고팔게 되어 사람들은 상놈의 멸시를 피해 양반과 같은 권세를 사기 위해 너나없이 돈벌이에 혈안이 되었다. 일심전력해 돈 세대, 물질 세대가 되어 이만한 부도 일구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자기 이익만 원하게 되니, 자기에게 손해를 끼치는 비양심가를 누구나 꺼리고 양심가들을 찾게 된다. 모두가 양심가를 찾으면 양심의 시대가 올 수밖에 없다. 세상은 홀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고, 양심가가 양반이나 부자보다 대우받으면 이기주의 시대가 양심의 시대로 변혁된다.”

 

 그의 이런 사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는 한문도, 불경도, 성경도 읽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 개벽사상들은 젊어서부터 두 도인으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했다. 한 명은 태조 왕건이 창건했다가 폐사 지경이었던 개태사를 재건한 김광영 보살이다. 그에 따르면 김 보살은 일제강점기 시절 방치돼 있던 미륵 삼존불을 발굴해 세웠고, 병자들을 고치는 신이한 능력을 보였으며, 평생 개태사에서 국태민안과 평화통일을 기원했다고 한다. 또 한 명은 전남 영암 출신의 김간수 선생으로, 남의 집 머슴살이 중에 넘어져 고통받던 중 도를 깨친 이후 후천개벽을 주장했다고 한다.

 

1강19-.JPG» 인근 대둔산 자락 풍류도예술원 신현욱 관장이 강희목 선생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강 선생은 1957년 명륜회를 창설해 둘에게 배운 개벽운동을 펼쳤다. 일제가 말살한 백의민족 정신을 되찾기 위해 흰옷 1000벌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심 봉사처럼 양심의 눈을 떠 마음이 맑은심청이 되자며 심 봉사 잔치와 효 운동을 벌였다. 또 백일잔치, 돌잔치보다 아기가 태중에 있을 때 마음 간수가 중요하다며 태중교육 운동을 펼쳤다. 그는 양심이 드러난 후천이 되면 신분과 빈부 차별이 없어지며, 여성과 어머니가 더욱 중요하고 앞서게 된다며 말을 맺었다.

 

 아이들은 치우는 것과 힘든 일을 싫어하기 마련이다. 이제는 어른들까지 그렇다. 그러나 어머니는 괴로움과 피곤을 감수하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다들 놀고 즐거운 것만 찾아 헤맬 때 고난을 마다하지 않은 분이 예수요, 석가요, 공자다. 가정에도 회사에도 나라에도 남이 하기 싫은 고난을 감내해 어머니 같은 분이 있어야 가정 꼴, 회사 꼴, 나라 꼴이 된다.”

 

신자 전에 사람이 되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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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1-.jpg» 한국가톨릭문화원장으로서 독서콘서트 등을 통해 ‘인문학붐’을 일으켜온 김민수 서울 청담동성당 주임신부는 지난 14일 디지털 중독 예방활동으로 정보문화 유공자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그는 오는 27일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천주교·개신교·불교 등 3대 종단과 함께 출범하는 스마트쉼 문화운동본부의 천주교 본부장도 맡고 있다.

 

2천년 역사의 가톨릭은 전통과 위계, 전례를 중시하는 철옹성이다. 그만큼 교회 밖과 경계가 뚜렸하다. 성서나 교리가 아닌 인문학이나 대중문화는 경시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서울 강남구 청담동성당 주임 김민수 신부가 머무는 성당은 달라도 많이 다르다. 그가 서울 은평구 불광동성당에서 시작한 가톨릭 독서콘서트가 대표적이다. 이 콘서트는 전국 여러 성당으로 퍼져나가 90회를 넘기며 성당의 인문학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9일 청담동성당에서 김 신부로부터 독특한 사목의 이유를 들었다.

 

 신자가 되기 전에 사람이 먼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성당에 나온 신자 중에도 밖에선 비신자들보다 못한 몰상식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인문학을 통해 사람으로서 품성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그는 2012년 불광동성당 주임으로 부임한 지 6개월만에 가톨릭 독서콘서트를 시작했다. 2000년부터 무려 17년간 한국가톨릭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를 지낸 그는 가톨릭 언론인들과 공조해 콘서트를 열었다. 조정래, 한비야, 공지영, 정호승, 안도현, 김형석, 혜민스님 등 인지도 높은 강사들을 초청하자 성당이 미어터질만큼 신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는 수천·수백만원의 강사료를 지불해야 하는 유명강사들에게 성당의 특수성으로 양해를 구했고, 대부분이 50만원 가량의 강사비만으로도 흔쾌히 초청에 응해주었다. 불광동에서 입소문이 난 독서콘서트는 서울 도림동성당, 청담동성당, 중계양업성당과 대구 김대건성당 등으로 번져가고 있다.

 

조정래-.jpg» 지난해 조정래 작가를 초청해 청담동성당에서 연 가톨릭독서콘서트

 

 2년 전 청담동성당에 부임한 이후 김 신부는 두 달에 한권씩 인문학 책을 선정해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신자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또 주보엔 책에 대한 서평을 직접 써서 독서열을 돋운다. 성당 안에 작은도서관도 지어 오는 9월 개관할 예정이다. 작은도서관 옆엔 책 약국도 열어 독서치유사가 신자들에게 맞춤형 책을 고를 수 있게 상담도 해줄 계획이다.

 

 항공대를 졸업하고 서울가톨릭대를 다시 다녀 1985년 서품을 받은 김 신부는 미국에서 신학이나 철학이 아닌 커뮤니케이션으로 석·박사과정 공부를 하면서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시대의 징표를 읽는 눈이 떴다고 한다. 2005년엔 김수환 추기경 시절 구중서·노길명·조광 교수 등 가톨릭 지성인들이 설립한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원장을 맡았다. 교계 어른들이 그의 현실 감각을 높이 산 덕분이었다. 그는 이 연구원 산하에 디지털과의존연구소를 열어 디지털 중독을 예방하는 전문 강사를 양성하고, 종교간 협력을 통해 스마트쉼문화운동에 나선 공로로 최근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박람회-.jpg» 김민수 신부가 청담동성당 주임신부로 와서 시작한 동호회박람회

 

박람회2-.jpg» 신자들이 취향대로 동호회를 찾을수 있도록 성당에 설치된 부스들

 

 그의 새로운 시도는 인문학 독서만이 아니다. 김 신부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착안해, 성당 안에서 60여개의 각종 동호회 부스를 차린 박람회를 열고 있다. 신자들이 주일 오전 9·11시 미사 뒤에 퇴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부스를 들리도록 하고, 동호회에선 희한한 의상도 입고 노래와 쇼를 하면서 회원을 모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성당에도 지역별로 구역, 반 등 소공동체가 있다. 그러나 너무 거주하는 지역만 중심으로 의무적으로 모이라면 답답해하는 이들도 있다. 지금은 자유로운 노마드 시대 아닌가. 좀 더 유연하게 취향대로, 관심사대로 또 다른 공동체를 이루도록 해주는 게 필요하다.”

 

 이 박람회를 열 때마다 200~300명의 신자들이 취향대로 새롭게 소속될 공동체를 찾았다. 소문이 나면서 이 박람회를 도입하는 성당들도 늘고 있다.

걷기와 여행은 요즘 시대의 대세다. 김 신부는 이런 대중들의 욕구를 적극 살려주고 있다. 묵주기도와 성체조배 방식에서 벗어나 돌아다니고 걷지 않으면 몸살이 나는 신자들을 위해 불광동성당 재임 때부터 우하하 성지순례단을 만들었다. ‘우하하우린 하느님 안에서 하나라는 의미다. 한달에 한번씩 전세버스 두 대로 전국 111곳의 성지를 샅샅이 훑고 다녔다. 한번도 빠지지 않은 40여명 중엔 89살 두 할머니 신자도 있었다.

 

우하하-.jpg» 김민수 신부가 서울 불광동성당에 있을 때 시작한 우하하성지순례단

 

우하하2-.jpg

 

130여명의 성당 사목위원을 비롯한 신자들과 늘 카톡을 공유하는 그는 소통을 중시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중세부터 근세까지는 교회문화가 세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근대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이뤄져 문화산업이 발전하면서 대중문화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신자들도 마찬가지다. 대중문화를 퇴폐문화로 부정적으로 보면 세상과 벽을 쌓을 수밖에 없다. 복음의 빛 속에서 성당 안에서도 대중문화를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좋은 사람, 좋은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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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 부정적인 남자가 있었습니다전쟁 중에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했다는 이유로 총살형을 받았습니다그런데 형 집행 며칠 전에 총살형이 교수형으로 바뀌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남자는 투덜대며 말했습니다. “이놈의 나라그렇게 전쟁을 하더니 결국 총알이 다 떨어졌군.” 그리고 얼마 뒤에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그는 다시 냉소적으로 말했습니다. “망할 놈의 나라밧줄도 다 떨어졌네.” 다행스럽게도 며칠 뒤에는 사면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그는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이런 빌어먹을이제는 죄수들에게 먹일 식량도 다 떨어졌군.”

 

 사람은 본성적으로 부정적입니다사람의 뇌는 긍정적인 생각보다 부정적인 생각에 더 빨리 반응을 합니다같은 사람에 대한 같은 수의 좋은 평가 항목과 나쁜 평가 항목을 동시에 보여주고 나중에 물으면 나쁜 평가 항목을 훨씬 많이 기억한다는 실험 결과도 있습니다이렇게 부정적인 원인은 죽음 때문입니다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안고 살기 때문에 그 죽음의 무의식이 부정적인 생각을 양산합니다죽음은 세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첫째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이 땅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둘째는 나도 죽는다는 것입니다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자기 죽음을 생각하게 합니다이 지구상에는 77억명 이상의 인구가 사는데 매해 평균 5천만명이 죽습니다매일 14만명이 죽음을 맞이합니다그렇게 죽어가다 보면 머지않아 내 차례도 오는 것입니다그래서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셋째는 죽음은 예기치 않고 찾아온다는 것입니다오늘이 내 죽음의 날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이 무의식 속에 있습니다이러한 부정의 종결자인 죽음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에 사람은 본능적으로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 모든 삶이 오로지 부정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습니다그런데도 여전히 행복이 존재하고긍정적인 일이 주변에 많습니다죽음만을 생각하고 살면 염세적이지만 죽음이 있기에 생명이 더욱 귀한 것이며 죽음의 날이 있기에 오늘을 소중한 것으로 여긴다면 긍정적입니다오히려 부정의 바다에 긍정의 배를 띄워야 합니다바닷물에 사는 산 물고기는 소금물에 절지 않습니다갤럽 선임연구자인 셰인 로페즈는 책 <인간의 강점 발견하기>에서 세개의 긍정이 하나의 부정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부정적인 말을 들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긍정적인 말을 하고 긍정적인 말을 들어야 합니다그럴 때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긍정의 말은 격려와 칭찬으로 시작됩니다부정의 두려움을 이기는 것은 긍정의 용기입니다부정적인 생각이 시나브로 들어올 때 좋은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을 떠올려보십시오오늘은 세 사람에게 세 가지 긍정의 생각과 세 마디의 긍정적인 말을 하는 날로 정해봅시다.

바보처럼 살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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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바보같이 살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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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같은 짓 13가지

◦ 머리속에 있는 것을 다 말해버리는 것. 자신의 모든 의도를 쓸데없이 밝힐 필요 없어요. 
◦ 자신의 이름을 앞새우고 자신을 계속 홍보하는 것. 이런 사람은 욕을 먹고 인정을 못 받아요. 자기만 아는 이상한 사람이 되요. 자의식이 강하지 않고 겸손한 사람이 행복하고 남의 인정을 받아요. 


◦ 안 먹고 싶을 때 먹고 하기 싫은 것을 습관적으로 하는 것. 안해도 되고 안할 수 있다는 거에요. 
◦ 남의 조언을 생각 없이 따르는 것. 무조건 남의 말을 따르지 말고 스스로 잘 결정하세요. 
◦ 남의 일에 끼는 것. 엉뚱한 관심으로 오지랖 넓은 사람은 남들도 자신도 힘들게 해요. 

◦ 있기 싫고 안있어도 되는 자리에 남아있는 것. 스스로 고문할 이유가 없죠. 친절하게 변명을 대고 일어나세요. 
◦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자신의 고집으로 계속하는 것. 알면서 남에게 해가 되면 해가 배로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 규칙을 집착해서 자신의 직관을 무시하는 것. 규칙이 중요하지만 이순간에 살아있는 지혜가 더 중요합니다. 

◦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 비교하면 불행해 집니다. 스스로 잘 하고 만족하면 되죠. 
◦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는 것. 부끄러울 줄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무엇을 입어도 무엇을 해도 자신 있게 하세요. 
◦ 사소한 것을 위해 큰 손해를 보는 것. 만원을 아끼기 위해 백만원을 쓰지 마세요. 작을 것을 희생하고 혜택을 누리세요. 

◦ 고집으로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 하면 좋다는 것을 자기도 알면서도 작은 마음으로 훌륭한 기회를 놓칩니다. 아집을 버려서 바른 결정을 하세요. 
◦ 계속 참는 것. 참지 말고 내려놓으세요! 바꿀 수 있는 상황은 바꿔보도록 하고 바꿀 수 없는 상항은 태도를 바꿔서 받아들이세요.

 

눈치로 의리로 의무로 습관적으로 바보 같이 살지 말아요! 
내면의 지혜로 살아요! 지혜란 자기가 안다는 거에요! 할 수 있어요! 자신감을 가지세요. 
Follow your heart! 가슴을 따르세요. 항상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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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무섭다 내세가 무섭다 심판이 무섭다고 고백하는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들은 심리적으로 어떤문제가 있을까요.


아이들이 힘이 없을때에는 부모의 화난, 얼굴이 그 아이 마음 한복판에 각인됩니다. 그러고나면 아이는 불안증 환자처럼 쫄아든가슴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가 신앙을 가지면
무섬증을 기반으로 한, 신경증적 신앙인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아도 단죄론적인 내용만 선택적으로 보고, 하느님에 대한 공포심을 키웁니다.

'자비없는 하느님, 작은죄도 용서않는 하느님'


그런 망상적 신개념에 시달리는사람들이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구호를 외치는것입니다. 마치 독재자를 옹호하는 의존성공포증 환자들처럼. 그런사람들의 마음에는 죄짓고 사는 사람들을 안아주셨던 주님, 사람들을 벗이라 하겠다고 하신 주님은 없고, 공포로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하느님을 가장한 괴물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상숭배가 이런것이지요.


종교인들은 사람들 마음안의 이런 우상을 깨뜨려주는일을 당연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기는 커녕 더 조장을 하는 종교인들이 적지않습니다. 목적은 신자들을 노예화하려는것입니다. 노예화된 신자들은 맹목적 순종을 해야하고, 가진것을 바쳐야하고, 덜 바친것에 대해 죄책감과 두려움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모 종교인이 십일조를 안내면 암에 걸린다고 협박성 설교를 했다는 것은 그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설교했다지만 그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느끼게 합니다.

벗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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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벗을 기다리며

 

         -휴정선사

 

 밤은 깊은데 그대 아니 오고

 새들 잠드니 온 산이 고요하다

 소나무 사이로 달이 꽃밭에 내리니

 붉고 푸른 그림자 온 뜰에 가득하네

구만리 장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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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만 리 장천에

 

           -황산곡

 

 구만 리 장천에

 구름 일고 비 내린다

 사람이 없는 텅 빈 산에

 새냇물 흐르고 꽃은 피더라

생태마을축제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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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7(쇠·금) - 9(해·일)까지 충남 논산 풍류도마을에서 열린
<제3회 한국 생태마을 공동체> 축제에 다녀왔습니다.
올해 세번째 대회인데요, 저는 충북 보은 기대리 선애빌 마을에서 열린
첫번째 대회도 참석했었습니다. 
이번 대회는 쇠(금)날과 흙(토)날 오후까지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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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를 열고 손님을 맞아주신 풍류도마을은
그야말로 산 좋고 바람 좋고 공기 맑은 곳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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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고 개인 하늘과 산은 맑고 곱게 빛낯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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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움터와 비슷한 원형집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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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로 숙박할 수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좀 멀긴 하지만 피정 다녀와도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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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 자락이 꼭 끄러안듯 고이 품은 아름다운 마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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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간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한 자리에 둘러 앉아 
서로 소개하며 환대하는 시간 가졌습니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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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고운 물 떠 놓고 대회가 흥겹게 진행되고 무사히 마치도록
함께 두 손 모아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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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금)날 일정은 축제 속 작은 행사인
<제2회 생태마을 영화제>가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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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산업 역시 자본에 좌지우지 되는 현실에서
생태, 환경, 마을, 공동체와 관련된 문제의식을 담은 독립영화들이
상영할 곳이 마땅치 않은데,
마을이라는 토대 위에서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해가려는 취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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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시간에 세 편의 단편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눠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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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서 독립영화관을 운영하면서 지역에서 일어난 문제를
영화로 담아내고 있는 정성우 감독과 영화평론가이신 정근원 선생님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마을이라는 토대 위에서 영화 역시 다양한 꿈을 꿀 수 있겠구나, 생각드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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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기 전 비개인 마당에 나가 오래 앉아 굳었던 몸을 
참석하신 분들과 함께 춤추며 풀었습니다. 

넥스트젠 지체들이 이끌어 주어
재미나고 신나게 한바탕 놀았습니다.
흥겨운 소리가 들리자 삼삼오오 많은 분들이 모여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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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날 아침 맑게 개인 하늘 아래 아침 먹기 전
선선한 공기 들이키며 선애빌 마을 분들이 알려준 동작을 따라 하며 몸을 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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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체들이 한 자리에 모이니 각자 재능을 따라 자연스럽고 다채롭게 일정이 꾸려졌습니다.

화창해진 날 탓에 실내에 설치했던 부스를 야외로 옮겨 다시 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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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고는 비개인 마당에서 야외영화제 상영이 있었습니다.
황윤 감독의 <잡식가족 딜레마> 였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육식에 대해 성찰하며
생명과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해 고민하며 찍은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영화 보는 동안 비가 다시 내려 다 보지 못하고 급하게 실내로 들어왔습니다.
야외 영화제의 묘미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영화를 다 보진 못했지만
영화를 보며 느낀 것, 궁금한 것, 서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 꽃을
한껏 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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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누리도 널찍한 곳에 부스를 차려 한몸살이 소개하고
밝은공방에서 준비한 절기 달력, 꿀초, 부채 등을 전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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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초 찾는 분들도 많았지만 뜨거워진 날씨 탓에
부채를 찾은 아이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지혜가 밑 글씨와 그림을 그려주면 아이들이 색칠을 하며
저마다 부채를 예쁘게 꾸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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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주제별 좌담회가 다섯 곳에서 다양한 주제로 열렸습니다.
저는 야외에서 진행한 <적정기술> 모둠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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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용 작은 화덕은
과학이 준 지혜와 옛 조상들이 주신 구들의 지혜를 잇대어
적은 나무로 강력한 화력을 자랑한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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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과 실내 요리까지 가능한 대형 화덕 역시
구들 원리를 적용해서 나무 젓가락 10-15개 정도로
라면 한개를 끓일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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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고 오후에는 본격적인 잔치 한마당이 시작되었습니다.
돌아올 먼길 탓에 잔치 마당 여는 시간을 뒤로 하고 인수로 향했습니다.

 

 

때 마침 하늘에는 커다란 해무리 무지개가
축제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하늘의 기운이 풍류도 마을 축제에 모이는 듯 했어요.
 
앞으로도 이어질 만남과 연대가 기대되는 대회였습니다. 
다음 번엔 더 많은 지체들이 함께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밝은누리 누리집(www.welife.org)에 기재된 글입니다
 

불타버린 안심사에서 안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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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이 아니라 복원을 통해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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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 대둔산 자락에 도착하니 안심마을이란 표지판이 나타난다. 장거리 운전을 마쳤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밀려온다. 오래 전부터 이 산아래 마음이 편안한 터에 옹기종기 모여 대대로 마을을 이루고 살았을 것이다. 물론 이곳 뿐만 아니라 같은 이름이 경북 팔공산 자락에도 있다. 왕건(뒷날 고려 건국)이 후백제 견훤 군사의 포위망을 뚫고서 탈출한 후 안도의 한숨을 쉰 곳이 현재 대구시 동구 안심이라는 마을명칭의 유래라고 한다. 전란과 기근이 잦은 시대에는 백성들이 전국에 산재한 십승지(十勝地)를 찾았다. 이 역시 안심을 얻기 위한 방편이었다. 십승지는 안심마을의 또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절집도 마찬가지다. 안심마을 끝에 자리한 안심사(安心寺)는 신라 자장(慈藏)법사가 안심입명처(安心立命處 어떤 일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평정심을 갖추고 편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곳)를 찾아 절을 지었다고 사적비에 전한다. 중국의 명문가 출신인 혜가(慧可)대사가 달마대사가 머물고 있는 심심산골인 숭산의 소림굴을 찾은 것도 불안한 마음을 해결하고자 함이였다. 그리고 대사의 한 수를 듣고자 눈밭에서 밤새도록 기다리면서 서있는 고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게 배운 안심의 비방책으로 뒷날 당신을 찾아온 승찬(僧璨)스님의 불안한 마음도 일거에 해결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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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심을 위해 안심마을을 찾아왔고 마음의 번뇌를 해결하고자 찾아온 안심사가 도리어 안심처가 되지 못했을 때 그 불안감은 몇 배로 커지기 마련이다. 1950101일 육이오의 전화(戰禍)가 이 마을까지 미쳤고 근처의 사찰 역시 적군의 은거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무사하지 못했다. 사하촌에 살면서 그 광경을 멀리서 목격한 현재 팔순나이의 어떤 할머니는 오후 7~8시쯤 불길이 치솟았고 30리 밖에서도 보였으며 3일간 탔다고 증언했다. 조상대대로 다니던 우리 절이 재만 남긴 채 사라지자 주민들은 그 자리에 삼삼오오 모여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인간이란 괴로웠던 기억은 빨리 망각하기 마련이다. 망각을 통해 불안함을 털어버리는 방법을 자주 사용했다. 하지만 지역민들은 그런 쉬운 안심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복원을 통해 본래의 안심처를 만들고자 소매자락을 걷어붙인 것이다. 1966825일 안심마을을 비롯한 인근마을의 주민은 물론 반장 이장 면장 그리고 당시 안심사 주지 김창수 스님이 뜻을 모아 직인까지 찍힌 서류를 군부대에 접수했다. 권위주의 군사정부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답장이 왔다. 6.25때 안심사에 진주했던 사단장 연대장 대대장 이름까지 밝힌 회신이 도착한 것이다. 접수된 미확인징발재산신고서에 대하여 철발중소각(徹發中燒却 철수하면서 소각함)’이라는 답신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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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결과적으로 해당기관에서 소각사실을 인정한 매우 희귀한 기록유산이 되었다. ‘작전상 불가항력의 사유로 (징발재산)불인정이란 단서가 붙어 보상은 받을 수 없었지만 그 의미는 적지 않았다. 이후 복원을 위하여 역대주지와 지역주민의 정성을 지속적으로 모을 수 있는 끈이 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국가의 지원을 받아 2층 대웅전을 2015년 낙성하기에 이르렀다. 소실 후 70년만의 일이며 청원 후 50여년만의 결실이었다. 현 주지스님은 그동안 인근 주민들의 합심과 역대주지의 노력이 무르익어 비로소 중심건물 한 채를 옛모습대로 완공할 수 있었다고 하면서 모든 공로를 앞세대 어른들께 돌렸다.

 

그런 전후사정을 기록할 기회 덕분에 묵은 서류까지 접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누렇게 바랜 갱지와 올드한 디자인의 노란 관공서 봉투도 만났다. 반백년 전의 국한문이 혼용된 민간의 탄원서 손글씨와 답신으로 온 한글전용 관공서 타자기 글씨가 어우러진 문서들을 교차로 뚫어지라 살폈다. 누구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아팠던 전쟁역사를 함께 극복하는 아름다운 사연이 함께 있기에 더욱 감동을 준다.

안심사(安心寺)와는 달리 인근도시인 전주 한옥마을의 경기전(慶基殿)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임금 초상화)과 조선왕조실록을 온전히 보관할 수 있었다. 임진란 때 전주사고(史庫)를 지키던 참봉과 인근 유생들이 합심하여 실록을 안심처인 정읍 내장사 인근의 계곡동굴로 피신시켜 이를 무사히 지켜낸 결과이다.

 

문화재청은 622일을 문화재지킴이 날로 정했다. 전주본 조선왕조실록이 내장산 용굴암에 도착한 날을 기념한 것이다. 당시 시골선비들이 피땀어린 노고를 통해 안심처로 옮겼던 일은 실록보존기적비를 세울만큼 역사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실록의 보존정신과 아울러 안심사 복원정신을 함께 되돌아보는 호국의 달 6월이다.



아버지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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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 씨의 '연탄길'이라는 책 속에 '먼 불빛'이라는 실화를 배경으로 한 글이 있다.

현태라는 아들이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부모의 속을 썩였다. 아무리 타일러도 막무가내인 아들이 교도소로 들어가게 될 예감을 느낀 아버지는 자식의 교도소 행을 무슨 수를 써서 라도 막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충격요법을 사용하여 동네의 귀금속 가게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는 척 하다가 체포가 되어 교도소를 들어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아내와 함께 면회를 온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아 이 애비를 용서해 다오.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아버지가 순간적으로 잘못을 저질렀다. 애비가 이 모양이니 너인들 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었겠니? 그러나 이 애비가 아들에게 한 가지 꼭 부탁할 것이 있다. 내가 온 이곳에 너만은 오지 말아야 한다. 너는 꿈에라도 이런 곳을 기웃거려서는 안 된다. 교도소란 인간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나쁜 곳이란다."교도소를 나온 어머니는 아들을 붙들고 통곡하면서 절규...하듯 아들에게 말했다. "현태야 할 말이 있다. 네 아버지 도둑이 아니야! 내가 누구보다 네 아버지를 더 잘 알아. 네 아버지는 절대로 도둑질할 사람이 아니야. 바로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교도소가 사람 있을 곳이 아니라는 것을 너에게 보여주려고, 너의 젊은 시절을 그곳에서 다 썩힐까봐 네가 갈 그곳에 미리 가서 네가 거기 가는 것을 막아보시려고 그런 거야."이 일로 아들 현태는 자기를 위하여 희생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게 되어 새로운 인생길을 걷게 되었다.
작가는 마지막에 이런 글로 끝을 맺는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스스로 어둠이 되었다. 빛을 거부했던 아들의 어둠 속으로 들어와 끝내는 그르치고야 말 그의 인생 앞에 불빛 하나를 밝혀주었다 어두운 밤바다 같은 인생에서 표류할 때마다 두고두고 바라볼 먼 불빛, 아버지,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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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닮아 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등을 보고 닮아갑니다. 자식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삶을 듣고 따르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아버지라는 말을 듣는 아버지일 것입니다.

두더지 촌장의 사랑어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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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JPG» 매일 아침 바닷길로 농로를 따라 등교하는 아이들과 함께 학교로 걸어가는 순천 사랑어린학교 김민해 촌장


2.JPG» 폐교터인 사랑어린학교 마당에 선 김민해 촌장



남들 버는만큼 벌어야하고, 남들 쓰는 만큼 쓰고싶다. 그 소비에 맞춰 지출을 늘이려다보면 늘 삶이 쫓기게 마련이다. 일할 마음이 나지않아도, 병이 나도 일을 쉴 수도 없다. 그러다보니 행복의 수단이었던 소비를 위한 돈벌이가 삶의 주인이 되고, 정작 삶은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그래서 돈과 소비에 주인 자리를 빼앗긴 영혼은 휴식과 여유가 없이 피폐해지고만다. 개인의 삶 뿐만이 아니다. 선의를 위해 시작된 교육기관도 사회복지시설도 엔지오도 수단인 돈이 우위를 점해 본말이 전도된 경우가 적지않다.


 전도되지않는 삶을 사는 곳이 있다. 전남 순천시 해룡면 하사길5 사랑어린학교다. 순천만 인근 폐교터에 자리잡은 이 학교는 초중등 과정 50명의 학생과 교사인 배움지기 7명, 그리고 학부모들과 마을사람들이 어우러지는 공동체다. 지난달 27일 사랑어린학교를 찾아 김민해(62) 촌장을 만났다. 개신교 목사지만 여기서는 다른사람들처럼 그도 예외없이 닉네임으로 불린다. 그의 닉네임 ‘두더지’는 어둠 속에서 개벽 세상을 도모하는 혁명가의 느낌이 풍긴다.


4.JPG» 식사를 담는 공동체원들



3.JPG» 식사 전 기도하는 사랑어린학교 공동체원들인 배움지기(교사)들과 학부모들



5.JPG» 마을인생학교를 시작하면서 기도를 하는 공동체원들



6.JPG» 사랑어린학교의 배움지기(교사)들과 학부모들, 마을사람들이 함께하는 마을인생학교


7.JPG» 마을인생학교에서 피리공연을 하는 학부모들


 2011년 시작된 사랑어린학교의 운영 방식이 이미 개벽이다. 이 학교는 정해진 학비가 없다. 학년초 2박3일의 수련회 때 학부모들은 분기별로 납부할 돈을 써내고, 학교는 이 예정수입에 따라 교사 월급인 용금과 학교 운영비 등 지출액을 정한다. 그러니 교사 월급과 운영비는 수입에 따라 달라진다. 먼저 지출을 정해놓고 고액의 학비를 일률적으로 정하게 되면, 애초 공립학교와는 다른 삶을 추구한 대안학교조차도 통상 월 70만~1백여만원의 고액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는 금수저들만 다닐 수 있는 학교로 전락할 수 있다. 단지 돈이 없어서 이 학교에 자녀를 보낼 수 없는 일이 없도록 하려, 부잣집 자녀들만 뒷바라지나 하는 일이 없도록 그는 이 원칙을 실행했다.


 버는 범위 내에서만 쓴다는 ‘양입이위출(量入而爲出)’은 원래 중국 고전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로 가정경제와 국가경제의 대원칙이었으나 지금은 정반대가 됐다. 지출 예산을 먼저 짜놓고 어떻게든 수입을 맞추고, 안되면 빚을 내서 살아가 볼모가 되는게 현대인의 삶이다. 감히 실제 삶에서 적용할 생각을 하지못하는 것은 ‘자율’에 대한 불신, 즉 인간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이 학교에서도 어느 학부모가 얼마 내는지 서로 알길이 없다. 그런데도 이 학교의 재정은 어느 대안학교보다 탄탄하다. 이 학교는 학생들의 순례여행비와 간식비까지도 정해진게 없다. 모두 낼 수 있는만큼 낸다. 자기 자식것만이 아니라 남의 자식것까지도 마음을 십시일반한다.


8.jpg» 학교 인근 순천만 바닷가에서 마라톤을 하는 사랑어린학교 아이들


9.jpg» 농사순례를 떠나 모심기를 하는 아이들과 배움지기들


10.jpg» 지리산 종주에 나선 아이들이 노고단에서



 두더지는 이미 생태·영성 월간지인 <풍경소리>를 그렇게 발행해왔다. 그는 만약 구독료와 원고가 들어오지않으면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는 하늘의 뜻으로 알겠다고 했으나 단 한차례로도 거르지않고 지난 3월로 20년을 넘겼다.


 이런 운영방식으로 ’돈,돈,돈’거리는데서 벗어나 치중하는 본질은 무엇일까. 이들을 지탱하는 철학은 ‘드림정신’이다. ‘태어날 때 이미 모든 것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제 할 일은 도로 내어 드리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부모인 노라(49)는 “처음 학교에 왔을 때 지난 삶을 돌아보는 장문의 자기고백서를 쓰면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타인과 밖에만 머물던 시선을 처음으로 안으로 거둬들여 성찰을 시작했다”면서 “이곳은 아이들만이 아니라 부모와 마을사람들까지 함께 성장해가는 곳”이라고 말했다.


 교사와 학부모들은 매월 1박2일씩, 여름 겨울엔 2박3일씩 수련회를 열어 이현주 목사와 도법 스님, 안상수 화가, 박두규 시인, 김용우 무위당사람들 이사, 이귀원 대천마을학교 대표, 최은숙 교사 등을 ’스승’으로 모시고 자신을 단련한다. 또 매일 아침 6시30분와 토요일 밤 7시엔 명상수련을 한다. 목요일과 토요일엔 마을인생대학이 열린다. 일요일 오후3시엔 한님살기교회를 한다. 이 ‘한’님이란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 조상님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광주에서 민중교회를 개척해 목회한 이래 1990년대에서 당시 기존학교에 부적응 학생들로 이뤄졌던 원불교의 영광 성지고에서 마음공부를 가르치고, 다시 강진의 시골 남녁교회에서 목회하고, 실상사 도법 스님을 중심으로 한 생명평화결사의 운영위원장을 한 그는 이미 ’목사’나 ‘개신교’란 틀에 머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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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종교적 도그마때문에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생명을 해치는것도 서슴지않는 종교가 아니라 어떤 수련을 하든 모두 인간 생명을 살리고 돕고, 나를 찾아, 함께 행복해지자는 본질의 추구만이 있을 뿐이다. 매끼 식사 때마다 생태적 감사기도를 올리고, 삼종기도때마다 하는 일을 멈추는데서도 수행심을 놓치지않으려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부모들이 이러니 학생들도 남다르다. 9학년생들을 데리고 스페인 산티아고길을 40일간 순례한 두더지는 “여기서만 있을 땐 과연 아이들이 잘 자라고있는지 몰랐는데 그곳에서 보니 달랐다”고 말했다.


 “타학교 학생들은 교사가 음식을 해 바치는데도 날마다 불평불만만 했지만, 우리 아이들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신이 났고, 자기들이 밥을 해서 내게 가져다주니, 외국인들이 보고 신기하고 대견해하며 요리법을 가르켜주기도 하고 음식을 가져다주며 모두 좋아했다.”


15.JPG» 아침 8시, 낮12시, 오후 6시 세번 종이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모두 기도를 한다.


16.jpg» 스페인 산티아고를 순례하는 아이들


17.jpg»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아이들



18.jpg» 인도 히말라야 다람살라에서 티베트불교 지도자 달라이라마를 만난 김민해 촌장과 아이들



19.jpg» 김민해 촌장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현주 목사가 이끄는 마음공부 시간



 그도 그럴 것이 사랑어린학교 아이들은 아침이면 모두 학교에서 2~3킬로 떨어진 유룡마을에 내려 학교까지 바닷길로 농로와 마을길을 따라 걸어온다. 초등학생들은 개구리나 게를 관찰하고 장난을 치고 노느라 1시간이 넘게 걸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자연공부이자 단련의 시간이다. 28일 아침 산책길은 1~3학년 저학년들만이 함께 했다. 4~6학년생들은 완도 청산도로 순례를 떠났고, 중등과정인 7~9학년생들은 10일간 농사를 짓는 농사순례를 다녀와 귀가해서다. 초등과정생들은 집에서 통학하지만 7~9년생은 마을의 허름한 농가를 빌러 7~10명 단위로 직접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며 살아가니 단단해지지않을 수 없다. 학생들은 매년 하나의 테마를 정해 어른들과 함께 직접 극본을 쓰고 연극을 만들어 공연한다. ‘어린왕자’도 했고, 학생들이 순례에서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던 티베트불교의 지도자 ‘달라이라마’도 연극에 올렸다. 올해의 연극 주제는 마을이다.


 두더지는 “무엇보다 자신의 길을 찾게 도와야한다”고 했다. 이 교육관은 틀과 도그마 속에서 문제아, 부적응아로 교교를 세번이나 옮겨야했던 두더지 자신의 신산한 삶을 통해 터득한 것이기도 하다. 두더지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저마다 남의 길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가야해. 그러나 그 길은 홀로 찾을 수 없어. 함께 어울려야 가능해. 그 어울림 속에서 자기 길을 찾아야 돌이 금이 되는거야.  네가 바로 너의 연금술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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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이 본것을 우리도 볼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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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한겨레신문 지면 휴심정 '쉼과 깸'칼럼>

정우성-.jpg» 난민 아이들을 만나는 배우 정우성. 사진 유엔난민기구 제공


#지난 2003년 인도를 순례하며 인도 중부 푸나강가에 있는 비노바지아슈람을 찾았을 때다. 간디의 제자로서 부단(토지헌납)운동을 펼쳐 스코틀랜드 넓이만큼의 토지를 지주로부터 헌납받은 비노바 바베가 머물던 그 아슈람엔 그의 제자 40여명이 살고 있었다. 대부분이 ‘시스터’로 불리는 독신여성 수도자들이었다. 그들이 기도하는 제단엔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으로 꼽히는 원숭이 형상의 하누만이 모셔져 있었는데 ‘멍키’라고 부르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런데 시스터들은 불경을 탓하거나 증오하기는커녕 10대 소녀처럼 웃었다. 자기 것이라곤 한평 땅도 내놓지 않으려는 지주들에게 갈 때마다 ‘이기심의 벽에 둘러싸인 완고한 성벽에도 작은 문이 있다’며 누구에게나 선의가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으며, 악의보다 선의를 보았던 비노바 바베의 제자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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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선악 이분법으로 피아를 구분해 적대케 하는 극단주의자들의 부추김에 부화뇌동하다 보면 세상 사람들을 천사와 악마로 나누게 된다. 공화당의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제치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순간 암울함이 몰려든 것도 이분법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트럼프가 카터나 클린턴이나 오바마보다 한반도 평화의 전기를 가져다줄 수도 있는 극적인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기대는 어느 때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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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달 전 <한겨레>가 ‘가짜뉴스’의 출처가 극우 개신교 단체라는 내용을 보도하자 해당 단체들이 연일 시위를 벌였다. 비가 많이 내리던 날에도 몇사람이 시위를 계속했다. 한겨레신문사 앞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홀로 먹고 있는데, 시위하던 5명이 비를 피해 식당으로 뛰어들어왔다. 식사를 마치고 그들의 점심 값까지 계산하고 나오려는데,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얼른 “이분이 식사 값을 냈다”고 했다. 청일점인 목사가 일어나 “누구시냐”고 묻자 아주머니가 또 말을 가로채 “<한겨레> 기자”라고 했다. 그 목사가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자 “억울하면 이렇게라도 호소하셔야지요” 했더니 “고맙다”며 “우리도 이제 시위를 끝내려 했다”고 말했다. 그때 신도인 듯 보이는 여성들이 일어나 “<한겨레> 기자처럼 안 생기고, 참 좋으시네요”라고 했다. <한겨레> 기자는 훨씬 험상궂게 생겼을 거라는 말을 내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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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jpg 멕시코 국경에서 강을 헤엄쳐 미국으로 가려던 중남미 이민자 부녀가 주검으로 떠올랐다. 한반도에서 ‘희망의 트럼프’와는 전혀 다른,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이 낳은 그늘이다. 그런 비극은 이번만이 아니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는 배우 정우성씨는 난민을 돕는 활동을 하다가 엄청난 비난 댓글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정우성이 만난 난민 이야기’인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원더박스 펴냄)이란 책에서 그는 “누구라도 난민촌에서 난민들을 만나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에겐 직접 만나 들을 수 있는 행운이 주어졌다고 했다.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고,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그와 직접 만나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행운의 기회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운아가 되어야 한다.



자신과 맺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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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지도 않고 허물만 보이고 불평불만이 가득한 사람과 평생 같이 산다고 상상해보세요. 끔찍하죠? 우리는 나 자신과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합니다. 자신과 맺은 관계가 관계 중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을 어떻게 보고 대하는지에 따라서 다른 사람과 세상을 보는 것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조화롭게 지낼 수 있으면 모든 것이 괜찮습니다.

자신과 맺은 관계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을 혐오하는 관계입니다. 자신을 과소평가해서 싫어하기 때문에 남도 자신을 싫어한다고 오해합니다. 열등감이 많은 사람은 화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이 무시하지 않는데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화를 냅니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남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못난 점이 들킬까 봐 겁이 납니다. 마음이 늘 불안합니다. 이런 사람은 칭찬해주고 에고를 키워주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에고가 너무 아프기 때문에 에고를 건강하게 해야 합니다.


사회의 기준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고 자신을 가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못났고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낙오자로 결론을 내립니다. 누구나 가치가 있습니다.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며 본성적으로 훌륭하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자신이 나름 잘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는 자신을 너무 좋아하는 관계입니다. 재산이 많거나 지식이 많거나 학벌이 높거나 지위나 권력, 명성이 있는 사람은 오만하고 자기 가치를 과대평가합니다. 자신이 특별하고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만족에 빠져서 독선적인 태도로 잘난 척하며, 자신이 우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하찮게 여깁니다. 그런데 오만함을 자신감이나 자부심으로 착각해서 허물인 줄도 모릅니다. 오만의 대치법은 존중심, 존경심입니다. 모든 존재를 신성한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죠. 달라이라마 존자님은 누구를 만나든 자신보다 더 나은 자질을 찾아내서 존경을 표한다고 합니다. 좋은 자질은 무한한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라서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습니다. 나도 잘할 수 있지만 누구나 잘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무관심한 관계입니다. 자신을 방치하거나 포기하고 돌보지 않습니다. 성장할 생각이나 의욕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도 없고 좋은 관계를 맺고자 시도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위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나를 위해 요리도 하고 운동이나 여가를 즐기며 자신을 돌봐주세요. 자신을 위한 배려는 사치가 아니라 존재를 보존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는 자존감이 낮았는데 지금은 높은 것 같습니다. ‘용수란 허상에 대한 집착과 관심이 지나칩니다. 구체화해서 딱딱한 아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는 참본성에 기반을 두어야 합니다. 무한한 자비, 무한한 지혜, 무한한 능력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우리는 물질의 존재가 아니라 영성의 존재입니다. 참본성을 알면 오만하지도 열등하지도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부르더호프의 은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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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하늘을 보세요. 반지 구름이 있어요. 너무 멋있어요.” 집에서 막 뛰어오던 막내 유빈이가 다급하게 빨리 와서 보라고 우리에게 소리를 쳤습니다. 그 때 우리 부부는 다음날 있을 은혼식 준비로 분주했습니다. 우리의 은혼식을 미리 축하하기 위해 평소 가깝게 지내던 몇몇 부부들과 함께 근사하게 스낵이 준비된 넓은 마당에 함께 모였습니다대화를 나누고 있던 우리는 마당 끝 쪽으로 달려나가 하늘을 쳐다보고는 너무 놀라 그곳에 함께 있던 모두에게 와서 보라고 외쳤습니다. 우리 부부는 멋진 금가락지 구름을 배경으로 잊지못할 사진을 남겼습니다. 이 날 놀랍게 하늘에 나타난 금가락지 구름은 우리의 25주년 결혼을 축복해 주는 듯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우리 공동체 안에서도 은혼식은 참 특별합니다. 지난 25년간 많은 갈등속에서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살아온 날들을 감사하고 축하하기 위해 이웃이나 지인들을 초대해 공동체 온 식구가 다 모여 큰 찬치를 엽니다공동체에 오기전 저희 결혼 생활이 거의 바닥을 쳐 위기 가운데 있었는데 이제는 형제, 자매들의 도움으로 우리의 결혼을 든든한 바위 위에 다시 세울 수 있었기에 저희에게도 이날은 형제들의 대한 사랑과 감사의 날이기도 합니다

 

 이런 잔치의 날은 누구든지 feel 받는 사람들은 앞에 나가 커플을 위해 준비한 것들을 선보입니다. 하빈이는 우리 가족에 속해 있는 청년 러셀과 함께 현 시사문제에 우리 가족 상황을 패러디해 위트있게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유빈이는 아빠, 엄마를 위해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첼로곡을 들려 주었습니다. 어떤 부부는 한국 시를 번역해 우리를 위해  읊어 주었고형제 몇몇은 브라스밴드로 우리가 평상시 알던 곡들을 연주해 주었습니다그 중 두 부부는 어디서 구했는지 영어로 부르는 아리랑 곡에 맞쳐 구호를 외쳐 (Right hand!  Left hand!  Make rainbow!! 등등) 부채춤을 추게 하는 음악을 구해 열심히 부채춤을 추었습니다. 진짜 부채도 없는지라 부채 모양을 컴퓨터로 다운받아 프린트해서 스티로폼에 붙여서 열심히 무지개 물결도 만들고 춤을 추는데, 이들의 표정도 가관인지라 모두들 배꼽잡고 신나게 웃었습니다우리 부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애쓴 노력을 보니 눈물나도록 고맙고 웃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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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형제는 영어로 번역한 신형원의 개똥벌레를 불러 주었는데 후렴부분이 재미 있는지(가지마라 가지마라-don’t go away! Don’t go away!  나나 나나나나) 그 날 이후 이곳 저곳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흥얼거리는 브루더호프 뮤직챠트 1위가 되었습니다. 끝으로 하빈이와 유빈이가 함께 결혼 케이크를 가져와 우리 부부가 서로 먹여주는 시간이 되었는데 제가 케이크 한 조각을 아내 입속에 거의 넣다가 빼 약을 올리자 제 아내는 케이크를 제 코에 박아 버려 온 공동체가 통쾌해 하며 웃느라 뒤집어 졌습니다.  

 

처음 우드크레스트 공동체에 방문하고 형제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우리 부부의 삶이 얼마나 빗나가 있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던 약속의 말씀도 잊어버린 채 처음 가졌던 사랑과 인내심도 모두 잃어 버리고 서로에게 무례하게 대하며 마음의 상처를 남겼습니다.

 

각자가 가진 연약한 부분을 용납하고 감싸주면서 부부가 한마음이 되어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곳 형제들의 삶을 보며 많은 도전과 위로와 격려를 받고 우리 부부 또한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고 결혼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공동체 삶에 부르심을 느끼면서 멤버가 되는 종신 서약을 하기전 브루더호프 장로이신 크리스토프 할아버지께서 저희를 부르셨습니다. 제가 교회 안에서 우리의 결혼을 새롭게 하길 원한다며 우리 부부가 끼고 있었던 결혼 반지를 드리고 교회가 주는 새 반지를 끼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할아버지께선 우리의 뜻을 기쁘게 받아 주셨습니다. 제가 할아버지께 결혼반지를 드리면서 우리가 새롭게 결혼을 했으니 신혼여행도 가야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껄껄껄 웃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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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서약을 하는날  크리스토프 할아버지께서 종신서약과 함께 우리 부부에게 교회안에서 결혼을 든든히 세우는 새로운 결혼 서약을 물으시고 우리 부부의 이니셜과 함께  ‘Love &Unity ‘ (사랑과 하나됨)라고 새겨진 새로운 금가락지를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곳에 모인 형제, 자매들에게 이제 이 부부가 새롭게 결혼했으니 켓츠킬 마운트로 신혼여행을 보내겠다고 말씀하시자 모두들 하며 기뻐하셨습니다

 

막 돌을 넘긴 유빈이와 유치원생인 하빈이를 이제 갓 결혼한 젊은 신혼부부가 돌보게하는 배려도 해주셔서 우리 부부는 한창 단풍이 절정인 계곡과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캣츠킬 마운트로 제 2의 신혼여행을 맘 놓고 떠날 수 있었습니다. 호수 옆에 있는 산장에는 벽난로가 있었고 이미 불이 지펴져 따뜻하고 훈훈했습니다. 주방에는 3일동안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스테이크를 비롯한 온갖 음식들로 가득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 캣츠킬 공동체에 사는 세, 네살의 조그마한 어린 아이들과 선생님이 찾아와 문 밖에서 우리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갔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신나는 결혼 생활은 형제들의 사랑 가운데서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크리스토프 할아버지의 큰 마음에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미소를 짓게 됩니다.  몇일전 크리스토프 할아버지의  ‘, 하나님, 결혼이 비아토르 출판사에 새롭게 출판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이 발간되기 전 크리스토프 부인이신 버레나께서 한국에있는많은 청년들과 젊은부부들이 이 책을 읽을수 있었으면 하는 뜻을 전하셨습니다.



114-.jpg» 생전의 크리스토프와 버레나 부부


다음은 버레나가 돌아가시기전 한국의 독자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한국젊은이들에게,

결혼은 중요한 일입니다. 결혼에 시간을 들이세요! 결혼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평생하는 헌신이며,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기도생활이 중요합니다. 기도를 통해 저와 크리스토프는 지난  51년동안 하나가 될수있었습니다.

여러분을위해기도합니다.

2018515 

버레나D. 아놀드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시며 51년 평생을 함께 살아가신  크리스토프와 버레나를 기념하며 한국에 있는 휴심정 독자분들께 100권의 책을 선착순으로 1인당 한 권씩 무료로 드리려 합니다. 이 책을 받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이메일 주소로 연락을 주시면 우편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sunghoonpark@mailstack.com


111-.jpg» 크리스토프와 버레나의 결혼 당시 모습


 

아래의 글들은 “ ‘, 하나님, 결혼'에 대한 추천 평입니다.

성, 하나님-.jpg 결혼과 가족에 관한 하나님의 이상을 분명한 비전 안에 담은 책이다. 단순하고 명료하지만 깊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성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돕는다
- 제임스 패커 (하나님을 아는 지식저자)

 

이 책에 있는 메시지는 오늘날 세계 모든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순결을 지키려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 대가는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결을 아름답게 여기시며 순결을 지키는 데 필요한 힘을 언제나 주십니다. 순결은 기도의 열매입니다. 가족이 함께 기도하면 하나 됨과 순결을 지킬 수 있고, 하나님이 각 사람을 사랑하시듯이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 마더 테레사 (먼저 먹이라저자)

명쾌하고 긍휼이 가득하고 타협하지 않는 기독교 정신으로, 가슴에서 우러나온 말을 단도직입적으로 독자의 가슴을 향해 말한다. 오늘날 예수님이 성에 관한 책을 쓰신다면 이렇게 쓰셨을 것이며, 그때 사회에서 받으신 저항을 똑같이 받으실 것이다
- 피터 크리프트 (보스턴 대학 철학 교수)

 

자세한책소개는아래사이트에서살펴볼수있습니다.

 

https://www.plough.com/ko/topics/life/healthy-families-ko/sex-god-and-marri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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