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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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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이 존재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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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_교회눈.jpg» 소금이 그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이, 교회도 교회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며칠전 경남 함양의 개신교공동체인 두레마을에서 열린 생태마을네트워크를 마치고, 참석자들과 함께 한 순례코스의 하나로 실상사를 방문했다.

실상사의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운동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점심을 함께 했다.

 이번 모임 참석자들의 대부분은 개신교인들이었고, 목사들도 10명 가까이 참석했다. 목사들과 점심을 하면서 실상사 회주인 도법 스님이 물었다.

"기독교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것을 강조하고, 또 `원수를 사랑하라'고도 하는데, 정의 구현과 원수 사랑은 상충되게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제대로 된 답이 없었다. 

 브루더호프 창시자 에버하르트 아놀드는 <빛과 소금>이란 책에서 정의와 원수 사랑을 동시에 얘기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힘은 사랑과 의를 드러낸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금은 소금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 존재한 것처럼 기독교인도 세상의 불의와 부패를 막기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의를 실현할 때도 사랑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기독교인에겐 자기 자신을 죽일지라도 남을 죽이지않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버하르트 아놀드는 "소금과 마찬가지로 교회도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톨릭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이후 이런 교회론을 늘 설파했다. 에버하르트 아놀드는 이미 100여년전 이런 교회론을 주창했다. 그가 <빛과 소금>에서 한 말들이다. 



소금의 본질은 소금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금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소금의 핵심은 그 역할에 있습니다. 소금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소금은 전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생명을 자기 속에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미래 즉,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이해하는 사람은 소금의 특성을 띠게 됩니다.하나님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내면의 자아아 감정에 일치하지 않는 태도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는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호흡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미래의 하나님 나라의 힘은 그들 안에서 사랑과 의와 순결을 드러내며 움직입니다. 다가오는 나라는 부패하는 모든 것에 대항하고 죽음과 생명이 없는 무기력하고 연약한 모든 것에 저항합니다.


 소금은 죽음을 지연시킬 수 있습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소금을 주사해서 죽음을 뒤로 미루고 장기의 재생력을 회복시키거나 유지시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세상의 불의는 그 자체가 죄이며 세상을 죽음으로 이끄는 병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는 우리의 임무는 세상의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불의를 막고 세상의 부패를 예방하고 세상의 죽음을 저지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반드시 멸망해야 합니다.그러나 소금이 그 맛을 지니고 있는 한, 소금은 이 세상에서 악이 활동하는 것을 저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세상을 새롭게 하는 힘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세상을 새롭게 하는 힘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만약에 교회가 더 이상 소금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죽게 될 것이며 반드시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소금이 그 맛을 잃는다면 무엇으로 짠 맛을 내겠습니까?


 세상의 소금은 오늘날의 시대가 소금으로 변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하지만, 예수님 나라 백성들의 존재는 소금 없는 음식이 맛이 나지 않듯이 교회 없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는 스스로 세상의 소금인 양 흉내를 낼 수는 없지만 죽음과 부패의 특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며, 그것들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류 앞에는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목표이자 자신의 삶을 바로 잡아 주는 한 존재, 바로 교회가 놓여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소금이 그 맛을 잃는다면 분명 내버려질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은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는 곳입니다. 그곳은 다가올 하나님 나라의 정의가 살아남은 곳이며 다가올 새 질서의 힘이 유기적인 생명과 성장을 촉진시키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깊은 곳으로부터 샘솟아 모든 생명에 흘러 넘칩니다. 하나님의 이 능력은 타락한 도덕성과 위선적인 사회관습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을 능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소금의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부패에 물들지 않는 담대하고 소박한 용기입니다. 거기에는 단순하고 간결한 말과 꾸밈없는 정직함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에 사랑이 없으면 그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치명적으로 위험을 끼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은 죽일지라도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없는 사랑이 있습니다.악의 눈이 온몸을 더립히도록 내버려두느니 차라리 그것을 뽑아버리려는 사랑이 있습니다. 결코 변하지 않는 충성심과 성실함이 있습니다. 그것의 약속과 사랑은 영원히 지속됩니다. 마지막으로, 외면적이고 비본질적인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자유, 모든 소유와 시간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친구와 형제자매들만이 아닌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세상적인 보물에 욕심내지 않는 자유이며 재산에 대한 근심과 염려에서 벗어난 자유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모습과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 안에서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브르더호프 공동체의 기독교 선언-하나님 나라 그리고 공동체' <소금과 빛>(에버하르트 아놀드 저, 쉴터 펴냄)에서 





에버하르트 아놀드(1883~1935)

=브르더호프 공동체 창시자. 신학과 철학과 교육학을 공부했으며, 학생 집회와 여러 가지 모임의 연사로 널리 초빙되었다. 1920년에 작가로서 장래가 보장된 직업과 베를린의 중간 상류층의 특권을 버리고 아놀드는 가족과 함께 독일 중부 지방의 작은 마을인 자네르쯔로 옮겨간다. 그들은 그소에서 산상수훈에 바탕을 둔 기독교 공동체를 세웠다. 그 결과로 탄생한 공동체 운동인 브루더호프는 8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으며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교회라는 이름의 유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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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기변환_예수와 제자들.jpg» 예수와 12제자들. 예수를 비롯한 12제자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남편 요셈, 사도 바울까지 모두 유대인이다.



 인간의 전체 역사를 통해 오늘날까지 읽을 만한 것으로 남은 어떤 저서에 의하면 선악의 싸움의 상징은 `로마 대 유대, 유대 대 로마'를 뜻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싸움보다, 이 문제 제기보다, 이 불구대천의 대립보다 더 큰 사건은 없었다.


 로마는 유대인을 반자연 자체와 같은 것으로, 마치 자신과 정반대되는 괴물과 같은 것으로 느꼈다. 로마에서 유대인은 `전 인류를 증오하는 죄를 지은'것으로 간주되었다. 인류의 구원과 미래를 귀족적 가치, 즉 로마적 가치의 절대적인 지배와 연관시키는 것이 옳다면, 이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유대인은 로마에 대해 어떻게 느꼈던가? 이는 수많은 징표에서 알아맞힐 수 있다. 그러나 가슴 깊이 묻어둔 복수심의 폭발을 적은 모든 기록물 중에서 가장 황폐한 저 요한묵시록을 다시 한번 마음에 단단히 새기는 것으로 충분하다.(그건 그렇고 사람들은 이 증오의 책에 사랑의 사도의 이름을 기록하고, 그리고 사람을 열광적으로 반하게 하는 저 복음을 바로 사도의 것으로 해버린 기독교적 본능의 심오한 논리정연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수많은 문헌을 날조하는 일이 필요했더라도 그 안에는 하나의 진리가 숨어 있다.)


 로마인은 강자이자 고귀한 자이다. 그들보다 강하고 고귀한 자는 지금까지 지상에 존재한 적이 없었고, 심지어 사람들은 그런 조냊가 있을 거라고 꿈꾸어 본 적도 없었다. 그들이 남겨 놓은 하나하나의 유물, 하나하나의 비명은 만일 거기에 무슨 글이 쓰였는지 알 수 있다면 우리를 크게 매료시킬 것이다. 이와 반대로 유대인은 유달리 원한을 품은 사제적 민족이며, 민중 도덕에 관해 비할 데 없는 독창성을 발휘한 민족이다. 이와 유사한 재능을 지닌 민족들, 예컨대 중국인과 독일인을 유대인과 비교해 보면 어느 쪽이 제1급이고 어느 쪽이 제5급인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로마와 유대 중에 어느 쪽이 승리를 거두었는가?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늘날 로마 자체에서, 그리고 로마에서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거의 전반에 걸쳐, 즉 인간이 길들여져 있거나 길들여지기를 바라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모든 최고 가치의 진수로 여기고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되는 사람이 누구인지 좀 생각해 보라. 이는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세 명의 유대인 남자와 한 명의 유대인 여자(나세렛 예수, 어부인 베드로, 양탄자 짜는 사람인 바울, 그리고 처음에 언급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이다. 로마가 의심의 여지없이 멸망했다는 사실은 크게 주목할 만하다. 물론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고전적 이상이, 모든 사물에 관한 고귀한 가치 평가방식이 무시무시할만치 찬란하게 부활했다. 로마 자체가 전 세계적인 유대교 교회당의 모습을 하고 '교회'라 불리는, 자기 머리 위에 세우진 유대화된 새로운 로마의 압박을 받으며, 마치 가사 상태에서 깨어난 자처럼 몸을 꿈틀거렸다. 그러나 곧장 유대는 종교개혁이라 불리는 저 철저하게 천민적인 (독일과 영국의) 원한 운동 덕분에, 그리고 종교개혁의 결과 필연적으로 뒤따른 교회의 부활과 또한 고전적 로마에서 그랬듯이 무덤 속처럼 예스런 깊은 정적의 부활 덕분에 다시 승리를 거두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그때까지보다 심지어 더 결정적이고 심오한 의미에서 유대는 또 한 번 고전적 이상을 누르고 승리를 거두었떤 것이다. 이로써 유럽에 존재했던 최후의 정치적 귀족주의, 즉 17,18세기 프랑스의 정치적 귀족주의가 민중의 원한 본능으로 인해 붕괴하고 말았다. 일찍이 지상에서 이보다 더 큰 환호성, 이보다 더 열광적인 함성이 들린 적이 있었던가!


  <도덕의 계보학>(프리드리히 니체 지금, 홍성광 옮김, 연암서가 펴냄)에서



왜 성모마리아를 숭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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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마리아-.jpg» 성모 마리아


땅이 하늘을 낳았고

11일 천주의 모친 대축일에  


천주교는 마리아의 교회로 이단과 같다고 합니다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르기 때문에 예수님 하느님보다 마리아를 더 숭배한다고 합니다.


저 역시 성모님에 대한 교리는 성모신심의 열정과열에 의한 역사적 산물로서 굳이 그런 교리를 갖지 않아도 구원받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건데 왜 그렇게 강조할까불만이었거든요쓸데없는 사족(蛇足)에 불과한 것으로 봅니다.


하느님의 창조 세계와 공동체 영성을 깨우치고 보니 교회의 통찰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은 존재만물의 아버지입니다모든 존재는 어머니 없이 태어날 수 없으니 땅과 만물이 어머니 이시고 하늘과 영혼이 아버지 이십니다.


하늘 없는 땅이 없으니 땅 없는 하늘 없으니 어머니 땅은 하늘을 낳으시고 아버지 하늘은 땅을 낳으십니다어머니는 하늘과 하느님 아버지의 모친이시고 아버지는 땅과 어머니의 아버지십니다.

성모님은 땅에서 난 예수땅에서 난 하느님의 어머니가 맞습니다그것을 부정하면 인간이 하늘에서 났다는 사실을 인정받지 못하게 됩니다.


강물은 흘러 바다에 이른다강과 바다는 다른 듯 보이지만 연결된 하나이다.

삶은 흘러 죽음에 이르니 삶과 죽음이 하나 아니던가어찌 굳이 나누어 보자 함인가.

이윤을 포기하고 부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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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배너1.jpg


  1.왜 공동체인가 

 

  타이 아속

 2.가장 ‘핫한 남자’ 포티락을 만나다

  3.이윤을 포기하고 부자가 된 사람들

 4.현대판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다

 

 인도의 오로빌

 5.자기로 살면 누구나 천재가 된다

 

 미국 브루더호프

 6.돈 없이 최고급리조트에서 살아보기

  7.공부보다 청소와 요리에 더 열심인 아이

 8.뒷담화 말고 앞에서 솔직하게 얘기하라

 

 일본 애즈원

 9.인간과 사회 탐구, 제로에서 시작한다

 10. 아무도 명령 하지않는 일터에서 일하다

 

 일본 야마기시

 11.못난이도 잘난이도 함께 살아가는 곳


3.숲에서 일1-.jpg» 시사아속 공동체 안 숲에서즐겁게 일하는 아속의 학생들


3.논 거름작업3-.jpg» 논에 거름을 섞는 작업을 하는 학생들


명절에 모든 식품을 단돈 30원에 파는 사람들


밑지는 장사는 다 거짓이라고?

밑지거나 거저도 주는 장사를 선호

원가와 판매가 차이 최소화가 최선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아속공동체


어른과 아이들이 어우러지는 

아속의 일터는 곧 놀이터

누구도 일하기 싫은 내색없고


만드는 것은 모두 생활필수품

쓰고 남은 건 이웃과 나눠

직영 마트에 멀리서 온 손님들


“이윤 적을수록 영적 이득”

적게 벌어 적게 쓰는 경제 철학

공동체 밖으로 공감 늘면서

금융위기땐 농민교육의 장으로


아속은 환희라는 뜻이다. 특히 ‘고통이 없는 상태’의 환희다. 몸이 아프면 배부른 돼지가 되긴 어렵다. 괴롭기에 자신을 철학하게 된다. 그런데 환자는 나만이 아니다. 세상이 아프다. 그러니 물을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은 이토록 발전하고 마천루가 치솟고 물건이 넘치고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데, 정작 다수는 지하 독방에 갇힌 죄수처럼 부자유스럽고 어둡고 괴로운 것일까.

 마르크스는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자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주창했는데, 왜 그 혁명을 했다고 외치는 곳조차 스탈린이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같은 국가주의 독재자들이 군림하는 암흑이 된 것일까.

 지구상에서 매일 3만7000명씩이 굶어 죽어가는데도, 소수 권력자와 부자의 욕망만은 암처럼 무한성장하는 것일까. 인간의 욕망은 어떤 정치체제와 법으로도, 어떤 도덕과 종교, 어떤 투쟁으로도 끝내 초월할 수 없는 것일까. 하지만 이런 물음엔 메아리마저 없다.


 ‘어차피 세상은 그런 것 아니냐’며, 부서지고 깨어진 상처를 안고 현실 도피를 위해 공동체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모순을 자각하고, 암흑 속에서도 가슴속에 타오르는 등불 하나만은 결코 꺼뜨릴 수 없어 공동체를 찾고 만들어가는 이들도 있다.

 공동체는 그런 ‘이상’ 없이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이상’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공동체에서도 먹고, 입고, 자야 한다. 그런데 많은 공동체가 중도에 파산한 것은 갈등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식주 같은 문제를 해결할 현실적 능력이 없어서기도 하다. 그러니 공동체도 이윤 창출이 필요하다. 


 시사아속 게스트하우스 2층에서 내려다보면 건너편엔 허브약들을 만드는 간이공장들과 그 약들을 파는 가게가 나란히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와 허브공장 도로 한켠엔 어디선가 줄기째 잘라온 꽃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장미처럼 줄기에 가시가 달린 빨간 꽃이다. 도로엔 줄기에서 잘라 햇볕 아래 널어놓은 선홍빛 그 꽃들이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앞엔 아침이면 학생들이 대여섯명씩 와서 꽃을 자르는 작업을 했다. 아이들과 어울려 나도 꽃을 자르다 보니, 그곳이 첫 일터가 되었다. 줄기에 달린 가시에 찔리지 않게 조심만 하면, 일은 어려울 게 없었다. 아이들은 아침에 2시간가량 수다를 떨며 그 일을 하고 돌아갔다. 그러면 허브공장의 아주머니 몇분이 와서 대체했다. 그들도 동남아시아 특유의 여유가 있었다. 이런 목가적인 일터는 아이들의 출입이 금지되는 외부 공장들과 달리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 아이들은 일하는 엄마 주위에서 친구들과 뛰어놀았다.


며칠 뒤엔 분위기를 바꿔 허브세제를 만드는 곳에서 일해보았다. 샴푸를 플라스틱병에 담고 라벨을 붙이는 일이었다. 몇번 해보니, 속도가 붙어 한나절에 할 일을 두 시간 만에 끝냈다. 그러면 그들은 새 일감을 가져오지 않고, 이제 쉬어도 좋다고 했다.


3.4 시사아속1-.jpg» 타이에서 유토피아로 떠오르는 아속3.맨발 청소-.jpg» 맨발로 청소중인 조현기자3.샴프라벨 붙이기-.jpg» 허브샴프에 상표를 붙이는 조현기자



 시사아속엔 유치원과 초등, 중고등, 기술학교 등 3개의 학교가 있다. 유치원과 초등학생들의 대부분은 이 공동체에서 사는 집의 아이들이다. 그러나 중고등학교와 기술학교 학생들의 대부분은 외지에서 왔다. 학비만이 아니라 먹고 입고 자는 것 일체를 공동체에서 해결해준다. 하지만 이들이 거저 먹는 것은 아니다. 시사아속 내엔 여러 개의 작은 공장들이 있다. 공동체 안뿐 아니라, 차로 10~20여분 거리에 여러 개의 농장들까지 있다. 

 40명 안팎의 중고등부와 기술학교 학생들도 많은 일을 했다. 공부를 위해 아예 일엔 열외인 한국의 아이들과는 너무 달랐다. 새벽이면 유치원생들까지 비를 들고나와 거리를 쓸거나, 공용 강당과 화장실을 청소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서 일을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 비결은 무엇보다 노동을 강제하지 않는 데 있는 듯했다. 공동체 외곽의 논에서 볏짚을 거름으로 뿌릴 때였다. 서너명의 아이들은 볏짚을 싣고 카레이서처럼 논을 질주했다. 다른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차로 싣고 온 볏짚이 흙과 섞이도록 곡괭이로 긁었다. 어떤 아이들은 볏짚을 친구에게 뿌리며 서로 뒤쫓고 뒹굴고, 어떤 아이들은 서서 수다를 떨고, 한 아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나 다른 아이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일하는 사람은 최선을 다했지만, 어떤 아이들은 놀 자유를 만끽했다. 아이들은 대강당에서 수업도 놀이처럼 했다. 교실엔 웃음과 소음이 진동했다. 공동체 가장자리엔 드럼과 기타, 북 등을 갖춘 야외 음악실이 있었다. 아이들은 자주 그곳에 모여 ‘신기’를 발산했다. 한국의 많은 아이가 새장에 갇힌 새라면, 이들은 스스로 살아가고 즐기는 법을 배우는 숲 속의 새들 같았다.





3..4 악기1-.jpg3.드럼 치는 아이들1-.jpg


 모든 공동체원들이 자유분방한 건 아니었다. 하루 한끼만 채식을 하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스님들과 독신 ‘수녀’들이 있었다. 한번은 학생들이 농장에 간다고 해서 20여명의 수다객과 동승해 가보니, 교장 선생님이자 ‘수녀’인 아수가 큰 밭에서 홀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 말 없는 실천적 삶이 아이들의 모델이 되어주고 있었다.

 촌장 격인 아뻠이나 아수는 출가 비구니가 아니었고 유니폼을 입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맨발로 다니며,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일을 했다. 그런데도 내가 두 시간 이상 쉬지 않고 일을 하면 아뻠은 가만히 다가와 “힘들지 않으냐”며 “쉬고 싶을 때는 언제든 쉬어도 좋다”고 말해주었다. 


 시사아속 정문 옆엔 대형마트가 있다. 시사아속이 운영하는 곳이다. 시사아속에서 생산하지 않는 의류나 생필품들도 판매된다. 마트 옆엔 우리나라 시골 오일장 같은 장이 있다. 아속에서 생산된 채소 등 농산물을 주로 판매하는 곳이다. 시골의 읍이나 면 소재지도 아닌 곳인데도 이곳 마트엔 멀리서까지 손님들이 찾아온다. 가격이 워낙 싸기 때문이다. 큰 마트도 가지고 있고 장사도 잘되니, 이 정도면 공동체원들이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바톰아속 슈퍼1-.jpg» 바톰아속 정문 옆에 있는 아속의 슈머마켓. 이 건너편엔 아속의 초대형마트도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아속의 경제 철학이 ‘이윤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사를 하면서 이윤을 남기지 않는다니, 이상치고는 너무나 허황해 보였다. 

 아속공동체는 ‘부니욤 네트워크’로도 불린다. 그들의 경제 원리가 ‘부니욤’(공덕주의)이다. 공덕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선행이다. 종교조차 ‘공덕 없이도 단박에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느니 ‘선행 없이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는 신념이 대세다. 각 종교에선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인간의 이기적 욕망에 편승하는 논리다. 성인은 운명을 아는 것을 넘어 운명을 만들어간다고 한다. 이기적 욕망의 약육강식만이 지배하는 세상은 지상천국이 아닌 지상지옥이 될 게 뻔하니, 선의를 가진 자라면 서로 돕는 공덕과 선행을 확산시키는 게 당연하다.


3.4.노는 아이들4-.jpg3.아이들 청소1-.jpg3.숲에서 일2-.jpg

아속창시자 포틸락스님이 설법중에도 장난을 치고 노는 아이들, 매일 새벽 청소를 함께하는 어린 아이들, 시사아속 숲에서 일하던중 장난스레 포즈를 취한 여학생들.


 공동체란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로부터 시작된다. 사람뿐 아니라 태양과 공기와 물과 농산물과 다른 존재들의 은혜가 없이는 한순간도 생명을 이어갈 수 없다. 그래서 혼자만의 깨달음, 혼자만의 구원은 공동체적 상생 원리에 반한다. 많은 공동체들도 자신들만이 뭔가를 얻겠다며, 이웃들과 단절된 폐쇄성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속은 철저하게 열려 있다.


 아속의 경제 행위도 이윤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이웃에 봉사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원가와 판매가의 차이를 최소화하는 것을 최고로 여긴다. 그래서 원가를 공개한다. 그리고 농산물은 원가 이하로 팔거나 거저 주기도 한다. 명절 때는 모든 식품 가격을 1밧에 판매한다. 1밧은 우리돈으로 30원가량으로 타이에서도 과자 하나 사 먹기 어려운 푼돈이다. 아속은 이윤을 높이려 할수록 부도덕해지고 영적 손실을 피할 수 없는 반면, 자기의 탐닉을 최소화할수록 ‘영적 이득’이 증가한다고 여긴다. 


 시사아속 입구 쪽엔 ‘의·식·주·약’이라고 쓰인 입간판이 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이다. 아속이 생산하는 것 가운데 소비주의에 부화뇌동하는 제품은 없다. 하나같이 삶의 필수품들일 뿐이다. 세상 사람들은 허영을 채우려 소비를 늘리며 생명을 죽이고, 지구를 파괴한다. 아속은 갈망과 혐오에서 벗어나는 실천을 가장 중시한다. 따라서 아속인들은 많이 팔아 많이 남기고 많이 소비하려는 갈망에서 벗어나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아간다. 이런 모범이야말로 허브약과 다른 ‘영혼의 약’이다.


 이들의 가장 독특한 점은 외부의 보시(헌금)로 유지되는 대부분의 종교단체들과 달리, 보시 없이 ‘자족경제’로 스스로 벌어 스스로 살며, 오히려 그 혜택을 고을 이웃들에게 나눠 준다는 것이다.

 아속공동체 안엔 밖으로 직장에 다니는 사람 등 다양한 부류가 있다. 그러나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는 승려와 수녀, 이에 동조하는 많은 공동체원들이 있다. 그래서 허황해 보이는 부니욤 경제가 실현된다. 또 이토록 싼 가격으로 물건을 공급하고 봉사하면서도 공동체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 전체적으로 더 커지고, 풍요로워진다.


 2008년부터 시작된 금융위기로 아시아 전체가 기우뚱거릴 때조차 아속은 조금도 장애 없이 발전해 자족경제의 힘을 보여줬다. 부니욤 네트워크는 현재 30개의 공동체와 9개의 학교, 6개의 채식 레스토랑, 4개의 유기농 비료 공장, 3개의 쌀방앗간, 2개의 허브의약품 공장, 하나의 병원, 160헥타르(㏊)의 농장을 갖추고 있다.


3.생산 제품들1-.jpg» 아속에서 생산하는 유기농 세제들3.선홍빛 열매-.jpg» 약을 만들기 위해 말리고 있는 허브 꽃들



 결실은 아속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990년대 푸미폰 국왕이 농업국가 타이의 자족경제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타이 교육부는 아속의 학교들을 모델로 지정해 서양 추종 교육이 아닌 타이다운 대안교육을 본받도록 했다. 또 포티락의 추종자인 짬롱 시므앙 전 방콕시장이 탁신 총리의 경제자문이 되면서 금융위기로 파산 위기로 몰린 농민들을 위한 ‘빚으로부터 탈출 프로젝트’를 실시해 농민들을 5일씩 아속에 보내 교육을 시켰다. 무려 30만명이 아속에서 자연농법과 자급자족 방식 등을 터득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많이 벌어 많이 쓰면서도 더 못 벌고 더 못 써 안달하며 괴로운 보통 사람들과 달리 아속인들은 적게 벌어 적게 쓰고 많이 베풀었다. 그러면서도 환희에 젖은 표정을 보니, 노래 ‘거위의 꿈’이 절로 흘러나왔다.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 /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제수준에서만 세상과 사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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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자기를 뛰어넘어 세계를 인정하지 못한다

, 모든 사람은 자기 기준에서 남을 평가하며,

자기의 지능 정도에 따라 남을 이해할 뿐이다

이 지능이 아주 저급하면 

아무리 정신적으로 뛰어난 사람이라도

그에게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다.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1788~1860)

=독일어권의 자유도시 단치히(현재 폴란드의 그다니스크)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자기 사업을 물려주려했으나 쇼펜하우어는 이 유산을 생활 수단으로 삼아 평생 철학과 저술활동에만 전념했다.

 칸트의 사상을 수정해 완성했으며, 칸트적인 철학도 아니고 자기 자신의 철학도 아닌 칸트쇼펜하우어 철학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확신했다.

 그는 서양과 동양 사상에 유사점을 발견한 최초의 서양철학자일 뿐만 아니라, 당당하게 게다가 분명히 자기가 무신론자임을 표명한 최초의 철학자이다. 홉스나 흄도 무신론자지만 당시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책을 쓰는 것은 범죄와 같은 행위였으므로 두 사람 다 이 문제에 관여하는 것을 피했지만 쇼펜하우어는 용기있게 생각을 드러냈다.

 쇼펜하우어는 약육강식의 현실세계와 인간세계에 대한 강한 혐오감이 있었다. 사람을 욕망의 노예로 보았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범신론자로, 로크는 자유주의자로 보리고 있듯이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로 불렸다.

 쇼펜하우어의 영향이 가장 강하게 미친 분야는 문학이다. 러시아의 톨스토이와 투르게네스, 팡스 프루스트와 졸리, 독일의 토마스만, 영국의 하디와 콘래등 등 수많은 탁월한 작가들이 쇼펜하우어를 읽었기 때문에 자기 작품의 깊이가 생겼다고 말하고 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읽었기 때문에 철학자가 될 결심을 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쇼펜하우어 철학을 바탕으로 해서 독자적인 철학을 시작했다. 프로이트는 심리분석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억압 메커니즘은 자기보다 먼저 쇼펜하우어에 의해 상세히 설명되었다고 인정했다.



루터에 대한 교회의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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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박득훈 목사, 루터의 종교개혁을 재평가하다


들어가며

2016년 10월 초였다. <복음과상황> 편집부로부터 전혀 예상치 않은 요청을 받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2017년 한 해 동안 가톨릭 신학자인 김근수 선생과 글로 나누는 대화를 연재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마침 내가 섬기는 새맘교회 수요일 저녁 모임에서 한 성도의 제안으로 김근수 선생의 마태복음 해설서인 《행동하는 예수》를 몇 달에 걸쳐 읽고 나눈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게다가 우리 교회 선교부는 ‘박득훈이 묻고 김근수가 답하다’라는 대담 프로그램을 이미 기획해 놓은 상태였다. 우연의 일치 치고는 너무 신기했다. <복음과상황>의 요청을 받으면서, 《행동하는 예수》에서 읽은 한 대목이 떠올랐다.


요즘 가톨릭과 개신교에서는 그리스도교의 분열을 슬퍼하는 분위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별거한 부부가 나름 각자 살 만한 모양이다. … 그리스도교의 분열을 하느님이 바라시겠는가. 하느님은 슬프시겠다.(김근수, 《행동하는 예수》 (메디치, 2014), 706쪽.)


이 글을 읽으면서 맘이 참 짠했던 터였기에 두 말 없이 잡지사의 제안을 덜컥 받았다. 헌데 첫 글의 주제가 “개신교 목회자의 눈으로 본 루터의 종교개혁”이란다. 아뿔싸, 내가 계산 잘못했구나! 예수님께서 일찍이 망대를 세우려 하면 그걸 완성할 만한 역량이 자기에게 있는지 먼저 앉아서 셈하여 봐야 되지 않겠느냐, 말씀하셨건만…. 하지만 어쩌랴,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으니 그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이어질 김 선생과 진솔한 글의 대화를 통해 가톨릭과 개신교가 아름답고 건강한 방향으로 한 걸음 더 가까워지고 친해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러면 하나님의 슬픈 마음에도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소망해본다. 


루터에 대해 가톨릭 신학자와 대화를 나누는 게 조금은 민망하기도 하고 껄끄러울 것 같기도 한데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몇 가지 훈훈한 경험 때문이다. 2007~2008년 어간으로 기억되는데, 몇 번에 걸쳐서 수녀님들 교육 과정에 강사로 초대를 받아 기독교경제윤리를 강의한 적이 있다. 그때 환대받은 추억이 아직도 마음 한가운데 남아 있다. 한 수녀회에서 선물로 받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공인한 《성경》을 지금도 종종 참조한다. 게다가 요즘은 프란치스코 교종이 오히려 오늘의 루터 같은 생각이 든다. 가톨릭교회에서 저런 말씀을 해도 괜찮을까, 혹 목숨의 위협을 받는 건 아닐까, 염려가 될 정도다. 특히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서 개혁적 발언과 행보를 서슴지 않는 게 감동적이다.


마지막으론 김근수 선생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다. 우리 교회에서 대담을 나눌 때,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김근수 선생님께 루터는 어떤 분입니까?” 일말의 주저도 없이 즉각적인 답이 나왔다. “네, 아주 고마운 분이죠. 오늘의 가톨릭교회가 있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한 분이죠.” 덕담 차원을 넘는 진심이 느껴졌다.


가톨릭 신학자와 대담을 시작하려다 보니 이래저래 들어가는 말이 길어졌다. 이제 진지하면서도 편한 마음으로 오늘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내 역량이 닿는 대로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다음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배울 점,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한 왜곡, 루터의 종교개혁이 지닌 한계가 그것이다. 먼저 배울 점부터 시작해보자.


루터-.jpg» 500년전 종교개혁의 불을 당긴 루터



종교개혁의 시작점: 철저한 자기 성찰과 신학적 발견

루터는 면죄부를 공격함으로써, 오직 믿음에 의해 의로워진다는 교리에 도달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먼저 그 교리를 터득했고, 특정 형태의 면죄부를 판단하는 데 그 교리를 적용했을 뿐이었다.

(Owen Chadwick, The Reformation (Penguin Books, 1964), p. 47. (필자 번역))


흔히 역사가들은 루터의 종교개혁 원년으로 1517년에 주목한다. 그해 10월 31일 소위 면죄부에 관련된 ‘95개 논제’를 교회 앞에 공개함으로써 대대적인 논쟁을 촉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를 종교개혁 500주년으로 기념하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인용 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루터의 종교개혁의 진정한 시작점은 95개조 논제의 공개 자체가 아니라 루터 자신의 신학적·신앙적 개혁에 있다.


잘 알려진 대로 루터는 자신의 죄와 엄청난 씨름을 거치며, 말씀 연구를 통해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발견했다(롬 1:17). 그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인간이 제 아무리 많은 공로를 쌓아도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질 수 없다. 둘째,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선물로 받을 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진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다. 루터는 새롭게 발견한 복음 진리에 비추어 면죄부에 나타난 신학적 오류 즉 왜곡된 공로 사상을 정확히 잡아낸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루터의 면죄부 비판을 루터 이전에 있었던 면죄부 비판과 구별 짓는 특징이라 할 것이다.


한국교회 개혁에 헌신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은 이 점을 루터에게서 잘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교회를 비판하기에 앞서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새롭고 건강한 존재가 되어 있어야 하고, 개혁운동의 와중에도 그 정체성을 잘 지켜 내야 한다. 거기에 실패하면 자신의 정체성이 왜곡되기 십상이다. ‘한국교회는 썩었고 나는 깨끗하다’는 단순한 이분법에 갇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지금 어떤 존재인지를 더 이상 성찰하지 않게 된다.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다 보면 자기 의에 사로잡힌 아주 이상한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니체가 《선악을 넘어서》란 책에서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그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대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노라면, 그 심연 또한 그대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경고한 것도 바로 이런 상황을 우려해서가 아닐까 싶다.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는 존재들은 괴물이라 할 수 있다. 그 괴물들은 심연, 즉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 속에서 활동한다. 모든 사람이 보고 있을 때는 광명의 천사가 되어 정열적으로 활동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선 온갖 더러운 짓을 꾀하고 실행에 옮긴다. 교회개혁운동을 하다보면 바로 괴물들이 활동하는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게 된다. 그들의 악행을 포착해낸다.


그런데 무서운 건 그런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객이 전도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엔 내가 주체고 심연이 객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심연이 주체가 되어 나를 바라보고, 나는 오히려 그가 바라보는 객체가 되는 것이다. 그 심연은 내 깊은 곳 어딘가에 잠재되어 있는 심연을 건드려 활성화한다. 물론 겉으로 볼 땐 난 여전히 영락없이 교회 개혁자다. 그러나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두운 곳에선 교묘하게 탐욕을 추구한다. 개혁자로서의 명예를 탐하여 은근히 다른 사람을 짓밟는다. 영적 독선에 사로잡혀 주변 사람들을 무시한다. 결국 교회개혁은 실패로 돌아가고 괴물은 음흉한 승리를 쟁취한다. 사실상 이런 경우를 적지 않게 보아 왔다.


그러므로 루터를 잊지 말아야 한다. 섣불리 교회개혁운동에 나서기 전에 먼저 치열한 자기 성찰, 성경에 대한 묵상과 연구를 통해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을 바로 확립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개혁운동의 와중에서 그 정체성을 지켜내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


한국개신교회가 회복해야 할 ‘저항의 영성’

오늘의 한국개신교회가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꼭 배워야 할 두 번째 요소는 그가 온몸으로 보여준 ‘저항의 영성’이다. 슬프게도 대다수 한국교회에선 도무지 저항의 영성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니 교인들 거의 대다수는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온유와 겸손, 바울이 가르친 국가권력에 대한 순종은 저항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교회나 사회에서 지도자들이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교인들은 나서서 저항해선 안 되고, 그들의 심판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터의 종교개혁은 그런 생각과 태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확실히 보여준다. 종교개혁은 부패한 교회지배세력에 대한 저항으로 촉발되었다. 그래서 개신교를 영어로 프로테스탄티즘이라고 하지 않는가? ‘저항자들의 종교’란 뜻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개신교회의 지배세력은 교인들에게 절대 저항해선 안 된다고 가르치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는 가르침이니 말이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간 내내 한국개신교인들이 루터가 보여준 저항의 영성을 온 몸으로 익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루터는 당시의 교회법, 스콜라신학, 철학과 논리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다른 것을 채워 놓지 않는 한 교회는 결코 개혁될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당대의 교종과 지배동맹세력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이에 로마는 1520년 6월 15일 루터를 정죄하는 교서를 발표했다. 루터의 주장이 이단적이므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루터의 책을 발견하는 즉시 불태워야 한다며, 루터에겐 두 달 이내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면 파문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루터는 그해 12월 10일 오전 9시 비텐베르크의 시민들과 대학교 구성원들이 보는 앞에서 교회법 관련 서적들, 그리고 교종의 교령들과 교서를 불태웠다. 1521년 1월 3일 그의 파문이 확정되었다. 그럴수록 루터는 오히려 더욱 단호해졌다.


난 (1519년 라이프치히에서 있었던 논쟁에서) 콘스탄스 공의회가 후스의 주장 중 일부 즉 진정으로 기독교적인 부분을 정죄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말을 철회한다. 그의 주장 전부가 기독교적이다. 그를 정죄함으로 교종은 복음을 정죄한 것이다. (Chadwick, The Reformation, p. 55. (필자 번역))


그는 결국 1521년 1월 23일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가 소집한 보름스 의회에 출두 명령을 받는다. 그 당시 루터가 남긴 각각의 편지들엔 그의 결연한 저항의지가 담겨 있다. (Roland Bainton, Here I Stand (Lion Publishing plc, 1978), p. 179. (필자 번역))


단순히 철회를 목적으로 초청된다면 나는 가지 않을 거라고 황제에게 답할 것이다. 나에게 요구되는 것이 철회뿐이라면 바로 여기서도 하려면 할 수 있다. 그러나 황제가 나를 죽음으로 초대한다면 난 갈 것이다.


보름스 의회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철회선언을 할 것이다. 전에 나는 교종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말했다. 그걸 철회한다. 나는 이제 교종은 그리스도의 적이며 악마의 사도라고 말한다. 그런 각오로 보름스 의회에 참여한 루터는 너무나 유명한 선언을 한다.


성경과 명백한 이성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지 않는 이상 (난 교종들과 교회 회의들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 양심은 하나님 말씀에 사로 잡혀 있다. 난 어떤 것도 철회할 수 없거니와 철회할 뜻도 없다. 내 양심을 거역하는 건 올바르지 않을 뿐 아니라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시여, 나를 도와주소서! 아멘.  (Roland Bainton, Here I Stand (Lion Publishing plc, 1978), p. 185. (필자 번역))


루터는 이렇게 하나님 말씀이 증언하는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진리 수호를 위해 그리고 교회개혁을 위해 당당하게 부패한 교회와 그에 부화뇌동하는 국가권력에 맞서 저항했다. 핍박과 죽음을 각오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 작센의 선제후 프레드리히 3세의 도움과 당시의 정치적 상황 덕에 안전하게 보호를 받았지만 말이다.


오늘 한국개신교회에야 말로 이러한 저항의 영성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사실 저항적 영성의 원조는 이사야와 예레미야 그리고 아모스를 비롯한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이다. 예수님은 예언자들의 저항적 영성을 이어받아 완성하셨다. 예수님이 결국 체포당해 로마제국의 사형틀인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한 것은, 당시 부패한 유대교 지배세력과 그들이 결탁한 로마제국의 통치에 결연히 저항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저항을 빼놓고 십자가를 설명하기 시작하면, 그 십자가는 반드시 왜곡된다. 저항의 상징인 십자가가 그리스도인들이 불의한 지배세력에 순응해야 하는 신학적 근거로 둔갑해버린다. 얼마나 무서운 왜곡이요 거짓인가? 그렇게 뒤틀린 십자가 신학과 신앙이, 불의의 세력에 항상 타협해온 대다수 한국교회를 정당화해온 것이다.


루터의 저항적 영성을 회고하며 우리는 역설적으로(루터는 야고보서를 무시했기에) 야고보의 권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인내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약 5:10, 새번역) 예언자들은 당대의 부패한 권력에 맞서 정의로운 주님의 이름으로 저항했고 그 결과 고난을 당하면 기꺼이 참아내었다. 올 한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부지런히 예언자들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이제 500년이 흐르면서 루터의 종교개혁이 개신교 안에서 어떻게 왜곡되어 왔는지 살펴볼 차례다. 


세 가지 “오직”의 왜곡

잘 아는 대로 루터의 종교개혁의 세 가지 “오직”은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이다. 종교개혁 당시 이 세 가지 “오직”은 너무나 중요하고 올바른 명제였다. 부패한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을 바로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이 무언가 한 쪽으로 너무 강하게 치우쳐 있으면, 그걸 바로 잡기 위해선 그 반대편으로 매우 강하게 잡아당겨야 할 필요가 있다. 틀린 방향으로 관성이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오직 믿음’은 16세기 초반 ‘중세적 고딕신앙의 불안’에 사로잡힌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답으로 제시되었다.(김회권,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둔 한 신학자의 단상,” <복음과상황> Vol. 313 (2016년 12월), 10쪽.) 그와 더불어 ‘오직 은혜’는 부패한 면죄부 판매의 원천이 된 그릇된 공로사상을 바로잡기 위함이었으며, ‘오직 성경’은 부패한 교종과 교회회의의 권위를 무너뜨리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500년의 역사가 진행되면서 교회 상황은 바뀌었다. 세 가지 “오직”은 새로운 정황에 비추어 마땅히 새롭게 해석되어 때로는 비판적으로 때로는 창의적으로 적용되어야 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에 실패했다. 그 결과 세 가지 “오직”의 본뜻과 취지마저 왜곡되어 왔다.


첫째, ‘오직 믿음’은 이웃사랑의 실천이 배제된 ‘죽은 믿음’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루터가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행동과 실천을 지나치게 무시한 건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95개조 논제 중 특히 41~45조를 보면 루터의 ‘오직 믿음’이 결코 ‘죽은 믿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41조는 “교종의 면죄부가 다른 사랑의 행동들보다 더 선호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교종의 면죄부에 대해 조심스럽게 설교해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44조에선 “사랑은 사랑을 베푸는 행동을 통해 성장하며, 그로 말미암아 사람은 더 선해진다. 하지만 면죄부를 통해선 사람이 더 선해지지 않으며 다만 형벌로부터 자유로워질 뿐이다”라고 말한다. 본회퍼가 잘 보여준 것처럼 루터에게 ‘오직 믿음’은 결코 죽은 믿음에 대한 신학적 지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릇된 공로사상에 대한 도전이자 죄책에 시달리는 자에 대한 위로요, 동시에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기 위한 순종의 길이었다.(Dietrich Bonhoeffer, The Cost of Discipleship (SCM, 1948), pp. 35-47. 손규태 옮김, 《나를 따르라》(대한기독교서회, 2010).) 


둘째, ‘오직 은혜’는 본회퍼가 정확하게 간파한대로 ‘값싼 은혜’로 전락했다. ‘오직 은혜’가 원래의 취지인 그릇된 공로사상에 대한 교정의 차원을 넘어, 은혜를 받은 후에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다는 신학적 원리로 둔갑한 것이다. 은혜가 그리스도인에게 아무런 대가나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 아주 값싼 것이 돼버렸다. 그러나 이는 다시 95개조 논제 중 91~95조를 보면 루터에 대한 명백한 왜곡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루터는 92조에서 “그리스도의 백성들에게 평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되게 ‘평화, 평화’를 외치는 예언자들을 멀리하라”고 권고한다. 93조에선 그 반대로 “‘십자가, 십자가’를 외치는 예언자들은 모두 복되다”고 선언한다. 94조에선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따르되 형벌과 죽음 심지어는 지옥을 경험하는 데까지 부지런히 따르도록 권고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지막 95조에선 사도행전 14:22의 바울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거짓된 평화가 주는 안전을 통해서가 아니라,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된다는 확신을 가지라고 권면한다. 그러니 한국개신교회는 루터에 기대어 오직 은혜를 값싼 은혜로 둔갑시켜온 무서운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할 것이다.      


셋째 ‘오직 성경’은 온갖 잘못된 신학과 신앙을 절대화하는 자의적이고 선별적인 문자주의로 전락했다. 새로운 버전으로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되는 기복신앙을 살펴보자. 담임목사의 절대적 군림 그리고 리더십 세습을 정당화해주는 신앙적 논리, 아니 심지어 목회자의 성범죄를 가볍게 생각하게 만드는 근거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그 근저에는 저마다 성경구절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그리곤 ‘오직 성경’을 부르짖고 있지 않은가? 이는 ‘오직 성경’의 원리가 기존의 잘못된 주장에 누구도 감히 도전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한 억압적 장치로 타락한 것이자, ‘오직 성경’에 대한 사악한 왜곡이다.


루터는 물론 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장 첫 번째 임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직 성경’의 원리란 게 성경은 그저 문자적으로 읽기만 해도 언제든지 그 참뜻을 기계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낸다는 주장이 아니었다. 다만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과 전통을 분쇄하기 위한 원리였다. 보름스 의회 심문관 요한 에크는 의회에서 루터에게 다그쳤다. “마르틴, 그대는 어떻게 그대만이 성경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가정할 수 있는가? 어찌 그대의 판단을 그렇게 많은 유명인들의 판단 위에 올려놓고는 그들 모두보다 그대 자신이 더 많은 것을 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Bainton, Here I Stand, p. 185. (필자 번역)) 에크는 교회의 유구한 전통이라 하더라도 성경에서 빗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열어 놓지 않은 셈이다. 루터는 여기에 도전하고 저항하기 위해 ‘오직 성경’이라는 원리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이다. 즉 지금 교회가 전하고 있는 그리스도가 과연 성경이 증언하는 바로 그 그리스도인가를 점검하고자 했던 것이다.


루터를 포함한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성경’이란 원리에 기대어 누리고자 했던 이러한 ‘지적 자유’의 본질을 신학자 T. F. 토런스가 잘 정의해준다. 곧 “현재의 입장에서 돌이켜 언제든지 모든 선입견과 전제들을 다시 성찰하고 모든 전통적 개념들을 시험해볼 수 있는 준비가 된 상태”를 뜻한다고 말이다.(Thomas F. Torrance Theological Science (Oxford University Press, 1969), p. 75. Anthony C. Thiselton, New Horizons in Hermeneutics (Harper Collins, 1992), p. 186에서 재인용함.) 루터는 그런 자유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자기 나름의 해석적 도구를 사용했다. 자신이 판단할 때 그리스도를 가장 명확하게 가리키는 본문을 기준으로 삼아 성경 전체를 해석했다. 그런가 하면 성경 본문이 그것이 쓰여진 시대와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독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가를 질문하면서 해석했다. 예컨대 구약 유대 백성의 신정정치와 관련된 본문들을 고스란히 16세기 비(非)유대 정부로 옮겨 적용할 수 없다고 해석했다. 물론,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루터의 이러한 해석적 방법이 오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한계는 시공을 통틀어 모든 성경 해석자와 신학자에게 공통적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바로 이런 점이 모든 시대의 성경 해석과 신학적 작업에 살아 움직이는 새로움과 흥미로움 그리고 깊이를 더해준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허용하신 바라고 생각한다.


오늘 한국교회가 다시금 개혁되려면 이 점을 깊이 배워야만 한다. 기존의 전통적 주장이 아무리 옳아 보여도, 탐욕 혹은 불안과 염려에 이끌려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결과가 아닌지 물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런 건전한 의심을 품고 성경을 재해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어떤 해석적 도구를 사용할 것인지 고민도 되고 때론 불안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예수님께서 명확하게 보여주신 것처럼 자기의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순종하겠다는 실천적 의지다.


그런 의지를 갖고 성경을 읽고 해석하면 하나님의 참된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다(요 7:17).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뜻이란 각종 질병으로 몸이 망가진 사람들,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한 존엄성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삶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을 억압하는 기존 질서에 부딪히면 위험할지라도 기꺼이 그에 저항하는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요 7:19~24). 그렇게 살면서 성경을 읽다보

면 기존의 전통에 오류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용기 있게 그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로 말미암아 교회는 개혁되고 하나님의 진리에 한 걸음 더 다가선다.

이제 마지막으로 루터의 종교개혁이 지닌 한계를 아주 간략하게 다루고자 한다.


터와 종교개혁의 한계: 개인주의와 보수주의의 경향성 

루터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단독자로 대면해 믿음으로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는 ‘개인’을 발견했다. 그로 말미암아 사제와 평신도 사이의 권위주의적 계급 질서를 타파해나가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최근 제임스 던을 비롯한 소위 ‘바울신학의 새 관점’을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잘 보여준 것처럼 거기엔 개인주의라는 한계가 있었다.(James D. G. Dunn & Alan M. Suggate, The Justice of God: a fresh look at the old doctrine of justification by faith (Eerdmams, 1993), pp. 5-29.) 로마서에 나타난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해석하다 보니, 바울 자신이 처했던 역사적 맥락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바울이 치열하게 씨름했던 바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된 이방인도 할례를 받고 음식법 등의 율법을 준수하는 유대인이 되어야만 참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이었다. 바울은 이에 대항하여 이방인으로 머물러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 충분히 구원을 누리는 의로운 자가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루터의 이신칭의에 대한 개인주의적 이해를 버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신칭의를 통해 하나님께선 특정 혈통, 피부 색깔, 사회적 지위, 문화나 관습을 가진 그룹의 사람들에게만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 아니란 점을 깨닫자는 뜻이다. 이는 오늘 한국교회를 개혁해나가는 데 꼭 필요한 진리다. 같은 믿음을 갖고 있음에도 다른 부차적 요소들로 인해 부당한 차별이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산층 내지는 부유층의 문화와 생활습관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그룹의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더 귀한 대접을 받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혹은 지적 수준이 웬만큼 되는 그룹에 속해야 교회지도자로 쉽게 인정받는 건 아닌가? 이신칭의의 진리를 좀 더 폭넓게 이해함으로써, 자신과 단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착각하여 무시하거나 폄하하던 관행에서 확실하게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둘째, 루터의 종교개혁엔 소위 두 왕국론에 근거한 사회윤리의 보수주의적 성향이라는 한계가 드리워져 있다. 그 성향은 그의 <강도와 살인을 일삼는 농민에 반대하여>라는 글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물론 루터가 농민들의 고통과 억울한 형편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로마서 13:1~7에 근거하여, 아무리 정의로운 이상을 추구할지라도 국가권력에 폭력적으로 대항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거부하는 무서운 죄악으로 간주한 것이다. 루터에게 혁명에 가담한 농민들은 강도와 살인을 일삼는 범죄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제후들에게 그들을 ‘찌르고 때리고 살해하라’고 권고한다. 그렇게 폭력적인 진압작전을 펼치다 죽는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다 죽는’ 것이기에 세상에서 ‘가장 복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격려한다. 루터의 한계는 기존의 지배질서를 하나님이 정하신 정의로운 질서라고 너무 쉽게 간주한 데 있다. 


농민혁명을 부당하게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질서에 대한 정의로운 항거라고 볼 수 있는 눈이 아직 없었던 것이다. 그는 기존 질서를 일단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라고 간주하고 다만 그 안에서 무엇을 하든지 인격적 관계의 차원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권면한다.  


‘내 제품을 자기 마음에 내키는 가격 혹은 가능한 한 비싼 가격에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옳고 적절한 가격에 팔아야겠다’고 생각해야 한다. … 그대의 장사행위는 그대의 이웃을 위하여 수행하는 일이기 때문에 법과 양심의 테두리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 그래야만 그대의 행위가 이웃을 해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R. H. Tawney, Religion and the Rise of Capitalism (Penguin Books, 1922), pp. 103-104. (필자 번역)) 


루터로선 어쩔 수 없는 그 시대의 한계를 안고 있었다고 보는 게 공평한 평가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개신교회는 루터의 한계에 머물러 있어야 할 필요나 당위가 없어졌다. 다수의 의지에 따라 한 국가의 질서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소수 그룹에 속해 있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 또한 일정하게 갖고 있다. 혁명도 성공하면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며 억눌린 사회적 약자의 눈으로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하면 그 안에 매우 급진적인 요소들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이것이 바로 ‘오직 성경’의 원리가 진정으로 뜻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나가며

이제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에 기대어 그의 종교개혁에 대한 개신교 목회자로서 나의 단상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루터가 <독일민족의 기독교인 귀족들에게 고함>이라는 글에서 만인제사장설을 제창한 건, 사제들이 부패했으니 교회개혁은 평신도 몫이라는 걸 호소하기 위함이었다.


얼마 전 두레교회 오세택 목사님과 내가 강사로 참여한, 교회개혁실천연대에서 주관하는 7주간의 교회개혁 제자훈련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였다. 현재 다니고 있는 교회의 부패와 파괴적인 분란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다 답을 찾기 위해 제자훈련에 참여한 한 성도가 이런 말을 했다. “이제 교회개혁의 공은 평신도에게 넘어온 것 같아요. 이번에 국민의 힘으로 국격(國格)을 세운 것처럼, 예수님의 면은 아무래도 우리 평신도가 세워드려야 할 모양이에요.” 나는 순간적으로 기쁘게 반응했다. “이번 교회개혁 제자훈련은 대성공이네요.”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내며 한국교회의 평신도들이 한국개신교회 개혁의 주역으로 일어설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박득훈

한국 개신교의 교회개혁운동을 대표하는 실천적 지성인이자 목회자. 한국사회의 빈부격차에 대해 깊은 문제의식을 지니고 연세대 경제학과에 진학했으나, 선교단체를 통해 예수와의 깊은 인격적 만남 이후 경제학보다는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에 몰두했다. 영국 런던바이블칼리지(현 런던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국제장로교회(IPC)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이후 영국 더럼대학교에서 ‘경제정의’를 주제로 기독교사회윤리를 전공하여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새맘교회 전임목사,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로 섬기면서 한국 사회에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길을 깊이 고민하며 삶으로 씨름하고 있다. 《돈에서 해방된 교회》를 썼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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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노후, 가능할까?


                                                  도리 비영리단체 ‘명랑마주꾼’ 활동가  goscon@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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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로 너나 식구들에게 폐만 끼치고 부담이 된다면, 그래서 나를 스스로 침입자로 여기거나 불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해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이 지상에서 사라지는 게 더 나을 것이다.”

-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서


노년에 대한 청년의 상상

100세 시대다. 수명은 길어졌는데 일할 수 있는 나이는 점점 짧아진다. 오십 살에 퇴직한다면, 지금부터 한 달에 얼마를 모아야 할까. 얼마를 벌어야 남은 50년을 ‘명랑한 노후’로 보낼 수 있을까? 무의미한 계산이다.


나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한다. 나 같은 월급쟁이가 임금노동 없이 50년을 버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대기업에 다니는 내 친구도 사정이 별다르진 않을 것이다. 물려받을 부동산이 있어 ‘건물주’가 되지 않는 한 말이다. 또는 운 좋게 ‘자식이 없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도 된다면 모를까. (‘부양의무제’ 때문에 성인이 된 자녀가 있는 사람은 아무리 가난해도 지원을 받을 수 없다.) 혹 임대주택이라도 당첨된다면, 정말 행운이다. 1인 가구에 지급되는 생계비는 471,201원. 관리비, 공과금, 식비, 의료비만으로도 빠듯한 살림이다. 시간이 아무리 많이 주어져도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책을 읽는다든가, 친구들과 여행을 다닌다든가 하는 일상을 꾸릴 수는 없다. 그저 방안에서 죽지 않고 살아 숨 쉴 수 있을 딱 그만큼의 돈, 그만큼의 여생이 주어진다.


무료하다면 가끔 복지관의 무료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길어야 1~2시간. 그것만으로 시간을 채울 수는 없다. 하루에 5시간을 잔다면 주당 133시간은 깨어있을 나의 시간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물론 수업을 들으며 사람들하고 친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돈 걱정이 앞선다. 


어디 앉아 수다를 떨래도, 밥 한 끼를 먹어도 다 돈이지 않은가. 결국은 내 없는 살림이 판판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면 다들 수군대겠지. 젊은 날 뭐하다가 다 늙어서 저리 궁상맞게 사느냐고 은근히 비난하겠지. 동정 받느니 혼자가 편하다.


이건 모두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3년 넘게 내가 만나고, 보고, 들어온 이야기. 그것은 나의 미래이기도 하다. 들을수록 만날수록, 가슴 한편이 뻐근하게 저려오는 이야기들. “뜨끈뜨끈한 방에서 한 번만 자보고 싶어. 방이 원래 후끈해야 하는데…” 하며 방바닥을 짚던 할매의 손. 동사무소에서 김치도 안 갖다준다고 “내가 부자 다 됐나 보다” 하던 할매의 목소리. “즐거운 일은 없죠, 그런 건 없지요” 말하며 늘 혼자 멀뚱히 지낸다던 할배의 표정. 그 모든 것이 그토록 아렸던 건, 나 또한 노년에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었다.



고독사 아닌 ‘고립사’

“저녁 6시 되면 쩔뚝거리고 나가는 거야. 줍다가 고물상에 갖다 줘. 다 갖다 줘도 하루 2천 원이여. 우린 달 보고 나갔다가 별 보고 들어와.”

- 이금순 할머니 인터뷰 중


금순 할머니는 22년 전에 영구임대아파트로 이사 왔다. 그 시절에는 아이들이 어렸다. 자녀들이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할머니는 “자연적으로 영세민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월 임대료 20만 원만 안 밀렸으면 하는 욕심뿐이 없었다고 한다. 할머니의 일상은 생각보다 더 고됐다.


‘달 보고 나갔다, 별 보고 들어온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다. 폐지는 저녁에 나오기 때문에 저녁 6시면 집을 나선다. 폐지를 주워 몇 차례 고물상에 주고 집에 돌아오면 새벽 6시. 그마저도 하루 2천 원, 많으면 5천 원 벌 때가 대다수다. 아주 가끔 이웃의 누군가 세상을 떠나, 버린 옷을 뭉텅이로 팔면 그때야 만 원짜리를 만져본다. 그렇게 모으고 모은 돈으로 임대료 20만 원을 낸다. 할머니의 일상은 온통 임대료 20만 원을 내기 위한 노동뿐이었다. 집에 찾아간 날, 현관문도 열어줄 수 없을 정도로 할머니는 다리가 아팠다. 그런 다리로 할머니는 나와 처음 만난 날도 폐지를 줍고 있었다.


금순 할머니를 처음 만난 건, 정 씨 아저씨네 집을 청소하던 날이었다. ‘고독사.’ 기사나 책으로나 봤던 이야기였다. 정 씨 아저씨는 홀로 집에서 생을 마감했다. 아저씨가 발견된 건 며칠이 지나서였다. 옆집의 신고 덕분이었다. 그제야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저씨는 무연고자가 아니었다. 유가족은 유품 정리를 못 하겠다며 통장님한테 통사정했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던 나는 그날 그저 통장님을 돕겠다며 자청하여 방 청소에 따라나섰다. 집 앞에는 경비 아저씨와 금순 할머니 두 분이 있었다. 처음에 난 금순 할머니가 당연히 ‘유가족’이려니 생각했다. 짐을 정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 혼자 그 집을 치우게 놔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할머니는 주워다 팔 물건을 고르고 있었던 것이다.


정작 가족은 내가 막 도착했을 때, 떠난 사람들이었다. 나중에서야 친구 이야기를 듣고 알았다. 통장님 심부름으로 에탄올과 아저씨가 생전 좋아했다던 막걸리를 사 가느라 나는 유가족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청소가 끝나자, 같이 갔던 친구가 펑펑 울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그냥 가는 걸 봤다고 했다. 이혼한 부인이 “저 가구는 산 지 얼마 안 된 거니 가져가 써도 된다”고 했단다. 어떻게 가족이 있는데 그럴 수 있냐며 한참을 통곡했다. 먹먹했다. 가족이 있다면 마땅히 가족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나처럼 생전 본 적도 없는 이가 누군가의 유품을 치운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얼결에 통장님을 돕겠다고 따라갔지만, 상황이 그 지경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


어떻게 가족을 버려둘 수 있을까?’ 그날 이후 이 생각을 수백 번, 수천 번은 했다. ‘나라도 그랬을까?’ 나라고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보살필 수 있었을까. 보살필 마음이 있다 해도, 일을 안 하면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후유증은 생각보다 길었다. 시신이 오래 머물던 방의 냄새가 온몸에서 가시질 않았다. 그보다 더 오래갔던 건 ‘대체 사람이 왜 혼자 죽어가야 하는 걸까. 가족도 있는 사람이었는데…’라는 질문이었다. 죽음보다 더 우리를 괴롭힌 건 삶의 문제였다. 죽음은 삶을 반영했다. 왜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 아무 손길 없이 혼자 지내야 했을까. 생전의 아저씨는 그저 ‘고독한 사람’이었을까. 


‘고독’에 대한 선택권이 아저씨에게 있었을까. 선택이 아니라면 그건 ‘고립’이지 않을까. 돈 벌 능력이 없는 아무 쓸모없는 인간은 먹고 살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이 사회가 그를 ‘고립’시킨 게 아닐까.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얼마나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할까.


친구는 나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물었다. “그날 이후, 당신은 어떤가요?” 금순 할머니를 다시 만난 것도 그 과정에서였다. 금순 할머니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정 씨 아저씨네 옆집이었다. 가장 먼저 아저씨를 발견하고 신고를 했다던 부부. 옆집 아저씨는 부부 모두 장애인이라며 “장애인은 아예 자식을 안 낳는 게 낫다”고 했다. 자식이 셋인데도, 연락되면 지원금을 받을 수 없어 모두 연을 끊었다. (끊었다는 표현이 맞는 걸까.) 정부에서 자식들과 연락을 하는지, 통화 내역까지 다 조회한다. 몰래 연락하면 안 되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에는 “속상해서 안 보고 사는 게 낫다”고 답했다. 몰래 오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불안하다고. 옆집에서 감시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이웃과도 왕래하지 않는다고 했다. 방 안에는 양초, 퀼트, 조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울할 적마다 복지관에 가서 만들어 온 작품들이다. “복지관에 가도 1시간 금방 끝나고 오지. 그러다 집에 들어오면 또 답답한 거야. 꼭 감옥에 갇힌 기분이야.”


노동 이후의 삶

금순 할머니는 스스로를 ‘배고파 죽을 지경이어도 배 터져 죽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가난해도 자식이 있으면, 수급자가 될 수 없는 ‘부양의무제’ 때문이다. 가끔 자식을 볼 수는 있으나, 온통 노동으로 가득 찬 칠순 노인의 삶. 반대로 지원을 받아 편히 살지만, 영영 자식과 연을 끊고 사는 육십 대 부부. 두 삶 모두 아이러니하긴 마찬가지이다.


‘부양의무제.’ 현행법은 가난의 책임을 모두 다 개인에게 떠넘기기 바쁘다. ‘가난한 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두 가지다. 동정하거나, 비난하거나. 결국, 모두 ‘네 탓’이라는 거다. 네가 무지하고, 무력하며, 무능해서 안 됐지만,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게을렀던 건 모두 ‘개인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노동을 열심히 했음에도 가난하다면 그건 네가 분수에 맞지 않게 낭비를 해왔다는 증거다!


이것은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일종의 모욕이다. 고되게 노동하며 살아온 가난한 노인에게 주어진 삶은 두 가지뿐이다.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노동을 하거나, 멍하게 방 안에 앉아 TV를 보거나. 오늘도 TV에서는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새로운 기계가 끊임없이 소개되고, 그들의 자녀들은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인간의 노동은 점점 기계가 대체하는데, 노동하지 않는 인간은 모욕당한다. 모욕당하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은 내 방뿐이다. 주기적으로 리모델링을 해줘서 멀끔하고 비도 새지 않는 안전한 내 집, 내 방.인간(人間)이란 단어에 ‘사이 간(間)’ 자가 들어간 건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사람에게 ‘관계’와 그 안에서 받는 인정과 사랑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복지정책은 그 관계를 끊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 기저에는 가난에 대한 깊은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가난한 개인을 비난하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 방에 들어앉을 ‘누군가’가 계속 바뀔 뿐이다. 방 안에서든, 밖에서든 이제는 ‘노동 이후의 삶’을 상상하고 그려내는 힘이 필요하다.


손에 닿는 존재를 돕고 보살피는 일도 물론 중요하고 고귀하다. 내가 만난 노인들 대부분 교회, 복지관에서 받는 쌀, 반찬들 덕분에 조금이나마 생활의 근심을 던다고 했다. 하지만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는 삶’ 이상의 ‘존엄성 있는 노후’를 이제 새로운 복지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노동 이후의 삶. ‘시간의 빈곤’ 뒤에 오는 ‘시간의 습격’에 우리는 어떤 상상으로 대응할 것인가. ‘명랑한 노후’는 그 상상의 폭에 달렸다.


명랑마주꾼 도리

‘명랑마주꾼’(www.hellomapo.com)은 서울 마포구 성산동을 중심으로 도시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고립에 주목하여 활동하는 비영리단체다. “삶은 진지하고, 예술은 명랑하다”는 기치 아래 다큐 영상, 에세이, 그림, 음악 등 문화예술을 활용하는 이 단체의 이름에 들어 있는 ‘명랑’은 고립되고 소외된 마음을 마주하는 자세를 가리킨다. 글을 쓴 명랑마주꾼 ‘도리’는 고민과 걱정이 많은 맏딸로, 늘 답 없이 움직이고 로드맵도 채 그리지 않지만 그래서 불쑥불쑥 튀어오르는 사건들을 마주하며 사는 게 나름 즐겁다.


 이 글은 복음과상황(http://www.goscon.co.kr/)에 게재된 것입니다.

성자 슈바이처의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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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슈바이처

병고 시달리는 아프리카 위해 평생을 헌신한 밀림의 성자

                           알랭 베르디에  |  yayavara@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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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바레네 병원에서 수많은 수면병 환자를 돌보던 슈바이처 박사.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절대 변하지 않는 진실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셨고 인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의 인류에게 필요한 윤리들을 제시해 주셨다. 부처님께서는 전 세계 역사를 통 털어 가장 위대한 천재였음이 분명하다.”      - 알버트 슈바이처 -



철학과 신학으로 박사학위

신학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불교와 인도철학 접하면서

부처님 가르침에 크게 매료


아프리카 자원의사 광고에

교수직 버리고 의대 입학


아프리카에 병원 세우고

생애 대부분 진료에 매진


매일 전쟁 같은 일상에도

연주와 명상 통해 힐링 


불살생 가르침 특별히 강조

뭇 생명 향한 큰 자비 역설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1875년 프랑스의 동부 독일 접경 지역인 알자스(Alsace)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슈바이처는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9세에 이미 오르간을 연주했다. 슈바이처는 쟝 세바스찬 바흐(Jean Sebastian Bach) 음악의 권위자가 됐다.


슈바이처는 1893년 알자스주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대학에 입학해 철학과 신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6년 후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취득 후 슈바이처는 스트라스부르시에 위치한 성 토마스(Saint Thomas) 신학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교수로 일하는 동안 슈바이처는 예수의 일생과 성 바울을 주제로 책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슈바이처의 지적 호기심은 인도철학과 불교철학에 심취하게 했고, 결국 동양철학에 관한 수많은 서적들을 읽어가며 불교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짧게 배웠던 불교는 슈바이처의 호기심을 만족시키지 못했고 그런 이유로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사무실에 앉아 불교서적들을 탐독했다. 그리고 점차 불교의 가르침에 큰 영향을 받기 시작한 슈바이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됐다.


“내가 어떤 문제들에 직면할 때마다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의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까지 자비와 친절을 베풀라는 부처님의 가르침들을 기억하게 된다. 내가 아는 한 이보다 더 나은 충고와 해결책은 존재할 수 없다. 부처님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바른 길을 과학적으로 제시하신 최초의 인물이다. 삶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길은 부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부처님께 다가가는 방법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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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버트 슈바이처의 만년 모습



어느 날 신문을 읽고 있던 슈바이처는 파리의 기독교 협회에서 낸 광고를 보게 됐다. 아프리카에서 자원봉사를 할 의사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슈바이처는 불현듯 세상 곳곳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의사가 되어 봉사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그리고는 과감하게 교수직을 버리고 다시 의대에 입학했다. 오로지 의사가 돼 아프리카에서 봉사하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1912년 마침내 슈바이처는 의학박사 학위를 따냈다. 그리고 같은 해 학창 시절 친구였던 헬레네 브레슬라우(Helene Bresslau)와 결혼했다. 그들은 부모님과 동료, 친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령인 아프리카(현재는 가봉 공화국)로 가 오고웨라는 강변 근처에 랑바레네(Lambare´ne´)라는 병원을 설립했다. 그곳에서 슈바이처는 매일 천명이 넘는 환자들을 돌봤다. 당시 그 곳에 가장 흔한 병은 수면병이었다. 수면병은 중간숙주인 체체파리의 일종인 흡혈성의 침파리에 쏘임으로써 일어난다. 불규칙한 발열·발진, 림프절 종창 등이 일어나고 만약 중추신경까지 침투하면 심한 두통이나 신경증세가 일어나서 몸이 마르고, 말기에는 아무 때나 잠에 드는 기면(嗜眠) 상태가 돼 사망한다. 변변한 치료약이 없던 그곳에서 슈바이처는 끊임없이 환자들을 치료했다. 특히 나병환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돌보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병환자는 두려워 누구도 돌보려 하지 않았기에 버려지기 일쑤였다. 병원에서의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면서도 슈바이처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틈틈이 정글 깊숙이 들어가 오래된 피아노로 바흐의 곡을 연주하며 긴장을 풀었다. 또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불교서적을 읽으며 마음을 새롭게 했다. 당시 슈바이처의 관심사는 명상이었다. 


“때때로 우리 내면의 불빛이 꺼지면 다른 이가 가진 작은 불꽃에 의해 다시 켜지게 된다. 우리 모두는 우리 내면에 잠재적인 불빛이 존재한다는 증거일 것이다. 내가 간혹 약해지더라도 다른 사람의 작은 도움은 우리를 다시 강하게 한다.” 


슈바이처는 명상을 통해 깨달은 바를 친구에게 이렇게 전했다. 명상을 통해 슈바이처는 지친 육신과 피곤한 정신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더욱 강렬하게 보살행에 매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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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가봉에 있는 랑바레네 병원



그러나 병원운영에 들어가는 재원은 항상 만만치 않았다. 슈바이처는 아프리카에서 치료에 전념하다가도 틈틈이 유럽으로 건너가 바흐 작품을 연주하며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병원 운영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1927년 아프리카 곳곳에 세균성 이질이 퍼지며 환자수가 급격하게 늘자 슈바이처는 세 번째 병원을 세웠다. 아프리카는 그의 수행 장소였으며 평생을 일관되게 유지해온 헌신과 자비의 원동력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일부 종교인들의 극단적인 폭력, 더러운 정치판, 속 좁은 국수주의, 탐욕, 물질 만능주의로 신음하고 있다. 편견과 도그마, 증오와 욕심, 다른 생명에 대한 잔인함으로 세상은 더욱 각박해져 가고 있다. 슈바이처의 삶은 이런 환경에 진저리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는지 일깨우고 있다. 슈바이처는 특히 불교의 불살생과 비폭력주의에 매료됐다. 슈바이처의 책 ‘인도의 사상과 철학의 발전’에는 불교에 대한 그의 견해가 잘 드러나 있다. “세상의 작은 생명까지도 연민을 가지고 사랑으로 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이 세상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 없다.” 


그는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의 한 끼 식사를 위해 죽음을 맞는 동물들에 대해 큰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모든 동물들은 우리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기쁨을 느끼고 슬픔을 느끼며 두려움도 느낀다. 생명에 대한 숭배는 휴머니즘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에 적용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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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동안 슈바이처 박사는 아프리카에 남아 미국 정부로부터 재정적 도움을 받아가며 의료봉사를 계속했다. 그러나 1948년 건강이 악화돼 유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년 뒤인 1949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사람들은 슈바이처를 현 세기 가장 위대한 인물로 손꼽았다. 그리고 몇 년 뒤 슈바이처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여됐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노벨평화상 수상보다 상금이 더 중요했다. 상금을 받는 순간 슈바이처는 아프리카 나병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불빛 마을(the Village of Light)’를 세웠다. 슈바이처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부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다. 슈바이처는 1965년 90세를 일기로 평생에 걸쳐 봉사했던 아프리카 랑바레네 마을에서 눈을 감았다. 슈바이처의 육신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무덤 옆에 묻혔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박애주의자였던 슈바이처를 기억하기 위해 위그 드 쿠르종(Huges de Courson), 삐에르 아켄뎅게(Pierre Akendengue´)와 같은 클래식 음악계의 거장들은 바흐의 음악과 아프리카 대륙의 토속악기를 조합해 ‘아프리카의 바흐(Bach to Africa)’라는 훌륭한 음반을 만들었다. 아프리카 특유의 선율이 함께 하는 바흐의 음악들을 듣노라면 아프리카의 슬픔과 슈바이처의 헌신이 함께 오버랩 된다. 클래식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절묘하게 조합된 아프리카의 혼과 바흐의 웅장한 음악은 가슴 밑바닥 우리의 불성을 일깨우는 감동에 사로잡힌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의 의미를 삶을 통해 온 몸으로 웅변한 박애주의자 슈바이처의 삶은 불자들이 나아가야  할 참된 삶의 방향을 일깨우고 있다.


알랭 베르디에 저널리스트 yayavara@yahoo.com


이 글은 법보신문(http://www.beopbo.com/)에 게재된 것입니다.


왜 안절부절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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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절부절'을 뜻하는 영어 단어 fidget은 `간절히 바라다'는 의미의 고대 노르웨이어에서 왔다. 안절부절 못하는 지루함은 텅 빈 상태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는 증상이다. 


 우리는 손에 잡히는 무엇으로든 그 텅 빈 상태를 채우려 한다.그래서 30분 동안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거나 백만 달러를 따고 잃기가 더 쉽다고 여기기도 한다. 우리는 지루함을 느끼도록, 그리고 지루할 때면 손쉽게 덧없는 오락거리를 찾도록 교육받았다. 텅 빈 상태에 대한 두려움을 토대로 텔레비전, 술, 담배, 마약 등 수십조 규모의 산업이 번성하고 있다. 우리 눈과 두뇌가 두려움을 망각하게 하는 것이다. 주의집중 시간은 점점 더 짧아지고 신경과민 증세가 심해지며 이 때문에 집중력은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악순환에는 논리적인 출구가 없다. 어느 방법을 택하든 무한반복 실행이나 무한반복불이행의 덫에 걸려 선택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다행히도 비논리적 출구는 매우 많다. 그 출구를 찾기전에 우선 악순환의 밑바탕에 자리 잡은 것, 즉 두려움을 직시해야 한다.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스티븐 나흐마노비치 지음, 이상원 옮김, 에코의서재 펴냄)에서


스티븐 나흐마노비치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 시인, 교사, 그리고 컴퓨터 아티스트, 하버드대학교에서 심리학과 문학을 공부했고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인식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바이올린 즉흥연주 공연을 하며, 음악과 그래픽을 결합시키는 비주얼 뮤직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멀티미디어 작업에는 춤,연극,시,사진,그림,영화 등이 두루 포함되어 있다.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원생동물학과에서부터 종교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썼다. 현재 `미국의 선(禪)'이라는 멀티미디어 작품을 제작중이다.



심리 치료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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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안의 아이 같은 모습이 더는 두렵지 않은 경지에 이르려면 험난한 투쟁이 필요하다. 우리는 남들에게서 진지한 대접을 받지못할까봐, 충분한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비춰질까봐 걱정한다. 그리고 남들을 의식한 나머지 근원을 잊어버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경직된 가면을 뒤집어쓴다. 우리 안의 아이 같은 모습이란 꾸미지 않고 단순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뮤즈의 다른 모습도 다 그렇지만 그 아이 같은 모습은 우리 내면이 내는 목소리다. 이 내면의 첫 번째 목소리가 바로 놀이다. 심리 치료의 목표는 "놀지 못하는 상태에서 놀 수 있는 상태로 환자를 변화시키는 것"이며 "개인이 창조력을 발휘하며 자기 전체를 온전히 사용하는 것은 오로지 놀이에서만 가능하고 또한 창조적인 상태에서만 개인이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라고 한 신경정신과 의사 도널드 위나캇도 바로 이러한 점을 강조한 것이다.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스티븐 나흐마노비치 지음, 이상원 옮김, 에코의서재 펴냄)에서


스티븐 나흐마노비치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 시인, 교사, 그리고 컴퓨터 아티스트, 하버드대학교에서 심리학과 문학을 공부했고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인식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바이올린 즉흥연주 공연을 하며, 음악과 그래픽을 결합시키는 비주얼 뮤직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멀티미디어 작업에는 춤,연극,시,사진,그림,영화 등이 두루 포함되어 있다.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원생동물학과에서부터 종교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썼다. 현재 `미국의 선(禪)'이라는 멀티미디어 작품을 제작중이다.



이기적 인간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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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한 이기주의라는 유전자의 보편적 법칙에만 기초를 둔 인간사회는 매우 험악한 사회가 될 것이다.그러나 아무리 개탄스러운 일이라 해도 그것이 사실임에는 변함없다. 이 책은 독자가 흥미롭게 읽도록 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도덕을 이끌어 내고 싶다면 이 책의 내용을 하나의 경고로 받아들이기 바란다.


만약 당신이 나처럼 개개인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관대하게 이타적으로 협력하는 사회를 만들기를 원한다면 생물학적 본성으로부터 기대할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경고로 받아들이기 바란다.


 우리는 이기적으로 태어났다.그러므로 관대함과 이타주의를 가르쳐 보자. 우리 자신의 이기적 유전자가 무엇을 하려는 녀석인지 이해해 보자.그러면 우리는 적어도 유전자의 의도를 뒤집을 기회를, 다른 종이 결코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이상임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에서


 리처드 도킨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이자 저술가인 리처드 도킨스는 1941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이후 동물행동학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니코 틴버겐에게 배운 뒤 촉망받는 젊은 학자로 학문적 여정을 시작했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과학의 대중적 이해를 전담하는 석좌교수직을 맡았으며, 1987년에 왕립문학학회상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문학상을 수상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와 영국의 정치평론지 <프로스펙트>가 공동 선정한 `이 시대 최고 지성 100인'에 오른 바 있다.

 지은 책으로는 <확장된 표현형>, <눈먼 시계공>, <에덴 밖의 강>, <불가능한 산 오르기>, <무지개를 풀며>, <조상 이야기>, <만들어진 신>, <지상 최대의 쇼> 등이 있다.



다다미 한 장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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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이러한 격언이 있습니다.


“일어나 반 장, 누워서 한 장, 천하를 취해도 두 홉 반.”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앉아 있을 때는 다다미 반 장분의 공간, 잘 때에는 다다미 한 장분의 공간만 있으면 충분하다. 천하를 다 가졌더라도 한끼에 먹을 수 있는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이란 가버리면 그뿐인, 딱 그만큼의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족함을 아는 자가 되겠습니까? 족함을 알지 못하는 자가 되겠습니까?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불필요한 것과 헤어지기-걱정거리의 90퍼센트를 없애는 46가지 마음 정리법>

(마스노 슌묘 지음/장은주 옮김/웅진지식인하우스) 중에서


물건 버리면 집중력 높아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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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버리면 집중력마저 높아진다. 왜일까?

물건이라고 해서 그저 가만히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물건이든, 어떤 상태로 놓여 있든 물건은 우리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다. 특히 소중하게 취급되지 않는 물건일수록 그 메시지는 강렬하다.

도중에 내팽개친 영어 회화 교재는 “할 일 없나 본데, 슬슬 다시 한번 도전해보는 게 어때?”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수명이 다 된 전구는 “사오는 걸 또 잊었어? 이런 손쉬운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다니!”, 개수대에 잔뜩 쌓인 그릇은 “항상 이 모양이군. 이제 네겐 기대도 하지 않겠어.”라고 불만을 터뜨린다.

평소 사용하고 있는 물건에게서도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늘 보는 텔레비전은 “녹화한 방송이 벌써 여러 편 밀려 있어요. 이제 슬슬 먼지를 털어줄 떄가 되지 않았나요?”, 텀퓨터는 “프린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목욕 비누는 “이제 거의 다 닳았어요!”, 침대 시트는 “바쁘신데 죄송하지만 저도 함께 세탁해주시겠어요?”라고 아우성이다.

어떤 물건이든 소중한 대우를 받고 싶어 한다. 당신이 제대로 상대해주고 메시지를 들어주기를 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물건을 버린 후 찾아온 12가지 놀라운 인생의 변화>

(사사키 후미오 지음/김윤경 옮김/비즈니스북스) 중에서

 

설날에 더 슬픈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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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끼니를 잇지못하는 이웃들과 나누기 위해 음식을 준비한 민들레국수집 서영남 베로니카 부부



지난 25일 저녁에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집으로 왔습니다.

필리핀에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 지냈던 3년을 뒤로하고, 이제는 필리핀 민들레국수집 스콜라쉽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마무리하고 돌아왔습니다.
감기에 며칠을 고생 조금 했습니다.
설날인 어제는 집에서 민들레 식구들과 함께 세배를 나누고 설날 음식을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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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국수집에서 설 다음날 식사하는 브이아이피 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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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나누기 위해 쌀을 싣고 온 후원자

오늘은  설날 연휴 3일째입니다.
우리 손님들이 너무너무 힘이 듭니다.
아침에 손님들에게 물어 봤습니다.
설날인 어제는 무엇 좀 드셨어요?
컵라면 하나 먹었다는 분,
집에서 라면에 식은 밥 말아 드셨다는 분,
빵 몇 개로 떼웠다는 분.....

명절 음식으로 푸짐하게 내었습니다.
손님들이 참 맛있게 드십니다.

꽃섬고개에는 눈이 내립니다.

고마운 분께서 아드님과 함께 쌀 일곱 포를 후원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은 오늘까지 문을 열지 않습니다.  어린이 밥집 봉사자들도 민들레국수집에서 설거지를 도와 줍니다.
민들레희망센터는 오늘 민들레국수집 과 함께 문을 열었고, 오후에는 독후감 발표도 있습니다.

내일 오후 5시에는 민들레희망센터에서 "인문학 강의"비슷한 모임이 있습니다.  참석하시는 손님께는 찜질방 표와 5천원의 지원금.  그리고 간단한  다과를 대접하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오늘은 씨튼 까리따스 수녀회 수녀님이 오셔서 설거지를 도와주십니다.  고맙습니다.

다시 처음처럼 민들레국수집에서 VIP 손님들을 환대하는 삶을 살도록 애를 쓰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함께 사는 행복 맛보느냐가 공동체 성패 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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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행복 맛보느냐가 공동체 성패 좌우



5월 세계생태포럼 앞둔 준비 워크숍

 

공동체 상생의 틀 논의

함께한는 행복 싹 틔워

 

함양-남원-구례 지리산 마을 돌며

성과-실패 공유하고 네트워크 모색

 

황대권 영광생명평화마을 대표

“정부 지원으로 기계공학적 접근 문제

지역사회 손잡고 인간관계 조성을”

 

도슨 영국 슈마허대학 교수

“히피나 공산주의자 아니냐 눈총

인간과 자연과 생산물 공존이 출발점”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성공하고 실패하건 교훈 축적

틈 비집고 사회의 중심을 이동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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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마을에서 참가자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함께 어우러져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보고 싶은 사람 다 모여라’

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지난 1월 20~22일 지리산 일대에서 야단법석을 펼쳤다.

개신교공동체인 경남 함양 두레마을과 전북 남원 일대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네트워크의 구심점인 실상사, 개신교 생명학의 산실인 전남 구례 향토원 등에서다.


이번 모임은 공동체나 생태마을에서 이미 살고있거나 살아보기를 원하는 이들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 도움을 주고받아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그동안 각기 성과와 실패의 경험을 나누지못하고 모래알처럼 살아왔지만 이제는 공동체적 상생을 위해 정기적 모임을 갖고 교류해보자는 것이다.


오는 5월엔 이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들이 모이는, 세계생태마을포럼이 한국에서 개최된다. 포럼 준비차 조나단 도슨(슈마허대학 생태경제학부) 교수가 방한했다. 도슨 교수는 세계생태마을네트워크(GEN) 전 사무총장을 지냈고, 줄곧 공동체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그의 방한을 계기 삼아 ‘준비 워크숍’이란 이름으로  이 분야의 매니아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강의를 듣고, 토론을 벌이고, 뒷풀이 잔치를 열며 우정을 나눈 것이다.


20일 함양 두레마을에서 열린 ‘생태마을 간의 네트워킹 컨퍼런스’에는 큰눈이 내렸음에도, 애초 예상한 20명을 3배나 초과한 67명이 전국에서 산골마을로 모였다. 두레마을(이사장·황호열 목사)은 일체 비용을 받지않고 숙식을 제공하고 잔치까지 마련해 주었다.


컨퍼런스에선 황대권 영광생명평화마을 대표가 ‘한국생태마을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강연했다. 황 대표는 10여년 전 생태공동체운동센터를 출범시키고, 고향인 전남 영광에서 생태공동체만들기를 실험중이다.


그는 “서양에선 에코빌리지라면 의도적으로 새롭게 만든 공동체를 말하며, 이런 공동체가 미국의 ‘공동체 디렉토리’에만 1천여개나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사회적 여건상 공동체운동이 빈약하다”며 “생태마을공동체라고 할만한 모델을 찾아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에서 ‘마을 만들기’는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마을만들기 사업의 절반은 영혼 없이 기계공학적으로 접근하는 용역회사와 전문가들을 먹여살릴 뿐이어서 안타깝다”고 밝혔다. 그는 생태공동체가 성공하려면 지역사회와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영성적, 생태적, 공동체적 인간관계가 조성되어야 한다”며 “가정과 교육현장에서 제대로 교육되지 못한 ‘인간 관계’ 훈련을 위한 센터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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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 박사의 강연 모습.


이어 도슨 교수는 ‘세계생태마을의 현황과 전망’을 강연했다. 그는 “예전엔 서구에서도 땅값이 비싸지않고 규제도 심하지않아 생태마을공동체를 쉽게 만들 수 있었는데,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면서 “이에따라 이미 존재하는 마을을 생태공동체로 전환하는 트랜지션(전환)마을운동으로 흐름이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슨 박사는 영국의 토트네스란 전환마을에서 살고 있다. 그는 또 ‘젊은이들의 동향’과 관련해 “젊은 세대들은 어디서나 윗세대들과 일하려 하지않는다”며 “윗세대와 다른 방식의 문화와 개성을 가진 젊은이들의 다양성과 소소한 마음에 대한 관심이 더 필요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안(야마기시)마을에서 살아가는 김현주씨도 뒷풀이 잔치에서 비숫한 얘기를 해 주목을 끌었다. 산안마을엔 10여가구 가운데 7~8년전 4가구가 나가 위기에 처했으나 근래 6명의 젊은이들이 합류했다. 김씨는 “젊은이들은 공동체에 들어와도 ‘가치’나 ‘대의명분’같은 큰담론을 싫어하고 ‘희생하는 것’은 더욱 싫어한다”며 “얼마나 재미 있느냐를 중시한다”고 말했다. 갈수록 대화가 단절되는 세대간의 소통이 공동체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도슨 교수는 “공동체에서 산다면 영국에서도 히피나 공산주의자 아니냐며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도 하며 저한테도 ‘공동체로 함께 하는게 힘들지 않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너 혼자 사는건 힘들지 않니’, ‘남편이랑 아내랑만 사는 건 안힘드니?’라고 묻는다”며 “공동체는 인간과 자연과 생산물들이 모두 함께 연결되어있고, 함께 할 때 행복해진다는 지점에서 시작된다”고 밝혔다.


다음날 향토원에선 ‘글로벌 상생경제포럼’이 이어졌다. 포럼을 주최한 아시아태평양생명학연구원 김용복 이사장은 “기업의 자유가 무한대로 확대된 신자유주의로 인해 과학기술과 국가권력을 등에 업은 군사체제가 모든 생명체를 공멸시킬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면서 인간과 식물 동물 뿐 아니라 돌멩이 하나까지 한몸으로 여기며 동양의 전통 종교들까지도 하나로 연대해 새 지평을 열기위해 이곳만이라도 지리산특구를 만들어 상생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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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원에서 열린 포럼.


이승무 순환경제연구소장은 “도시인들은 스트레스 때문에 전원을 동경하고, 시골 사람들은 문화적 갈급 때문에 도시를 동경하는데, 생태마을은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전남 화순 백아산의 100헥타르 임야에 10가구가 공동으로 마을공화국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을 추진중인 김한중(솔성수도원 원장) 목사는 “인간이 사소한 감정으로 해방돼 의식이 진화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그래야 뭇존재들과도 화합하는 태평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환경연대 유정길 운영위원장은 “공동체는 성공과 실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공하면 성공한만큼 나아가는 것이고, 실패하면 실패하는대로 인류에게 교훈을 축적하는 셈”이라며 “공동체운동의 사회전략은 틈을 비집고 넓히면서 사회의 중심을 이동하게 하는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독특한 실험을 해온 불교공동체로 생태적 마을공동체를 실현한 ‘실상사 사부대중 공동체’와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을 기치로 만들어진 수행공동체 정토회의 활동을 소개했다.


이 토론에선 풀무농업학교를 중심으로 지역공동체와 결합해 성공한 충남 홍성지역 사례와 협동조합의 메카인 강원도 원주 등이 공동체운동의 세계적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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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에서 도법 스님(맨 왼쪽)의 설명을 듣는 참가자들.


참가자들은 이틀째 남원 실상사를 찾아 심각한 이농현상을 겪는 농촌들과 달리 10여년 동안 산내면에만 450명이 귀농한 현장에서 회주 도법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생태마을의 희망을 엿보았다.


※문의 : 한국생태마을공동체네트워크 임진철 준비위원장 dreamska@hanmail.net


함양(경남)·구례(전남)/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내가 꿈꾸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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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죽음의 시


이종태 / 광양시 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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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원과 하루> 중에서


칠순이 되니 벗과 지인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종종 접하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만남의 대화에서 죽음이 화두가 되곤 한다. 공통된 의견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마지막 자존을 지키며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고 최소한의 고통과 두려움 속에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소위 죽을 복을 희망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것이 죽음임을 왜 모르겠는가. 북미 인디언의 말처럼 ‘너무나 당연한 먹이사슬의 순환’임도 익히 알고 있다.


인간 스스로는 유일하게 생명연장만은 진화하지 않았다고 하나, 의술의 발전은 병원과 관광지 등이 노인들로 넘쳐나게 하고 있다. 건강에 대한 나의 희망과 타인의 늙은 모습을 바라보는 시각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 또한 사실이다. 사마천은 죽음은 죽음을 맞는 당사자보다 죽음을 지켜보고, 전해들은 사람들에 의해 인식되고, 이해되고, 해석되고 있다며, “사람의 죽음은 태산처럼 무거울 수도 있고, 깃털처럼 가벼울 수도 있다”는 소중한 말을 남겼다. 죽음을 자주 불러내어 친숙해져야 옳은지 가능하면 잊고 살아야 하는지도 짐작이 서지 않는 대목 중 하나다.


퇴직 후 750여평의 논에서 50여 작물을 기르며 삽과 괭이 등 재래식 농기구로만 농사를 지으면서 땅과 누구보다 친해졌고 그 정직함과 포용력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고된 하루가 숙면을 가져오듯 일생을 열심히 살다 보면 죽음이라는 가장 큰 잠 또한 매일 밤 잠의 연장이라 생각하고 있다. 나는 매 순간 이러한 죽음을 꿈꾸어보며 ‘죽음의 서’라고 이름 지어 보았다.


나에게는 소중한 꿈 하나 있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질까?

사랑하는 처자식 지켜보는 앞. 내 인생 마지막 자존 지키며.
내 생애 최고의 미소 보이며. 최선을 다해온 삶이었노라!
아직은 견딜 만하다고. 붙들려 가지 않고 찾아간다고.
정말로 궁금하고 기대된다고 당당히 가슴 펴고 떠나간다고.
이제는 푹 쉬어도 여한 없다고. 제발 부탁하니 깨우지 말라고.


인간이 출생의 고통을 모르는 것으로 보아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죽음을 맞는 지혜와 방법도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진화시키며 우리가 모르는 곳에 감추어 둘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불편과 생경함에 조금이라도 익숙해지기 위해 나는 요즘 위내시경도 마취 없이 받고, 치과에도 망설임 없이 가고 있다.


농사는 모든 욕망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의 삶에 충실하라고 일러준다. 죽음이 “삶의 의미를 깨우쳐 주고 삶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라고 어렵게 말하지 않고, 그저 누구와 경쟁하지도, 누구를 원망하지도, 시기할 필요도 없이 살라고 말한다.



*이 글은 한겨레신문 2017년 1월31일자 '왜냐면'(시민사회 토론 공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보기 :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780618.html



짧은 인생의 마지막 열흘을 함께 한 기적같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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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짧은 인생의 열흘, 또래의 사랑이 ‘기적’

혜은이와 혜진이 이야기

 


가끔 호스피스병동에 아이들이 입원하는 경우가 있다. 몇년 전 이맘때쯤 갓 중학교 2학년이 된 혜은이가 입원했다.


몇달 전부터 계속 ‘팔과 다리가 아프다’, ‘학교 가기 싫다’고 징징거릴 때마다 부모님들은 그저 요즘 흔히 말하는 ‘중2병이다’, ‘이제 사춘기가 왔나 보다’ 하며 무심결에 지나쳤다. 아픔을 호소할 때마다 파스 붙여주고 찜질해주면서 ‘키 크려고 성장통’을 앓고 있으려니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병원에 가보니 ‘골육종암’이었다. 그것도 어떤 치료조차 해볼 수 없는 말기 상태였다. 부모의 심정은 얼마나 끔찍했을까? 혜은이는 얼마나 무섭고 아프고 화가 났을까? 밥도 안 먹고 늘 병실에서 울기만 하고 집어 던지고 화를 내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자원봉사자뿐 아니라 심지어 간호사, 의사까지도 곁에 못 오게 했다. 눈을 한번 감으면 다시는 새로운 날을 맞지 못할 것 같은 공포감으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눈을 부릅뜬 채 버텨서 수면제도 그 아이를 편안하게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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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암환자들의 사랑과 우정을 다룬 영화 <안녕, 헤이즐> 중에서


모든 이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참으로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다. 주변 중학교에서 폭력 사건에 휘말려 정학을 받은 혜진이가 두 주 동안 자원봉사를 오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 아이에게 적당히 시킬 만한 일이 없어서 그냥 청소하는 아주머니를 따라다니면서 각 병실의 화장실 휴지통을 비우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혜은이 방에 들어간 혜진이가 자기 또래의 아이를 보더니 다짜고짜로 ‘야, 너 몇학년이야?’라고 물었다. 혜은이가 ‘나, 중학교 2학년’ 그러자 혜진이가 ‘나는 중3이야, 내가 언니네. 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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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친구 사이. 영화 <써니> 중에서



순식간에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는데 그다음부터 더 신기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도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던 혜은이가 혜진이와 금방 친해지더니 같이 게임도 하고 밥도 잘 먹고 함께 침대 위에서 만화책을 보면서 깔깔대기도 하고, 둘이 아이돌 스타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괴성을 지르고 꽃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진통제도 효과를 발휘해 고통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밤에 잠도 잘 자더니 열흘쯤 뒤에 엄마, 아빠에게 아주 많은, 그리고 예쁜 인사말들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 짧은 인생의 열흘을 함께해준 혜진이 언니에게도 아끼던 인형 하나를 남겨둔 채.


호스피스 현장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한 사람의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고 완성시켜주는 것은 의료진이 아니라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선입견 없이 다가가는 사랑이라는 것을. 늘 그렇듯이 혜진이와 혜은이가 나의 스승이며 교재였다는 것을 또 한번 깨달았다.


손영순 까리따스 수녀(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착취없는 세상의 행복한 젖소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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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아, 어미 소의 모성을 쥐어짜지 마라

 



까마득히 오래전에 읽은 소설이라 저자가 누구였던지 제목이 뭐였는지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거기 쓰인 비유 한 대목은 너무 생생하고 선명해서 이따금 써먹곤 한다.


17세기 후반, 인도의 데칸 남서부 지역에서 일어나 근 150년 동안 온 인도를 휘저었던 마라타(Maratha) 왕국의 지배자들에 관한 소설이었다. 전성기에는 대무굴 제국을 무너뜨리고 남쪽 타밀나두에서 서쪽 파키스탄, 동으로 벵골 지역까지 지배하기도 했지만 끝내 영국군에 패하고, 폐위된 왕이 있었다.


그는 본거지였던 푸네에서 멀리 떨어진 갠지스 강변의 칸푸르에 유배되어 영국의 연금으로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이 왕국의 마지막 왕이자 주인공인 바지 라오 2세(Baji Rao II)가 정치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적당히 살을 붙여 풀면 이렇다.


“한 농부가 곰곰 생각했지. ‘어떻게 하면 어미 소의 젖이 멎지 않게 해서 주야장천 짜 먹을 수 있을까?’ 하고. 묘책이 떠올랐어. 송아지 가죽에 지푸라기를 욱여넣어 어미 소가 잘 볼 수 있는 곳에 세워둔 거야. 그랬더니 이 미련한 어미는 먼발치에 서 있는 죽은 제 새끼를 바라보며 우걱우걱 되새김질하면서 끊임없이 젖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겠어! 기발하지? 국가 혹은 군주라는 게 실은 그 송아지 박제에 불과한 거야. 그걸 바라보고 젖을 만들어 내는 어미 소는 백성들이고! 젖 짜는 농부는 곧 우리네 크샤트리아 칼잡이들임은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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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 돌아가는 일을 보고 이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영 입속이 떨떠름하고 메슥거린다. 아마 노자(老子)도 이런 일을 겪고 겪으면서 그 주옥같은 말씀을 남기시지 않았을까? 그리고 수많은 아저씨, 형님들의 배알을 뒤틀어 아나키스트가 되게 했던 것도 지금 이런 기분 때문이었을까? 이 수상한 시절에 저 죽은 송아지가 허수아비 나라님을, 그리고 젖 짜는 자는 누구, 누구를 연상케 한다며 이니셜이라도 썼다가는 미련한 소 떼들이 온갖 패악질에 악다구니를 쏟아낼 게 분명하니 각설하고….


그토록 찬양해 마지않는 애국심, 조국, 민주주의 등등이 저 죽은 송아지일 뿐이고, 손에 손에 깃발을 들고 모여든 군중이 교활한 수탈꾼들이 던져준 검부저기로 젖을 만들어 바치는 우매한 소라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저 비유는 비유일 뿐이라고 넘기기에는 우리네 살림살이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말에도 맛이 있다면 착취, 수탈 등의 단어는 늘 쓰고 찝찔하다. 그런 말을 우물거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 살 만한 세상을 꿈꾸는 깨인 소들은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박제 송아지를 거부한다. 스스로 풀밭을 찾고, 우리의 기름진 젖으로 키운 송아지는 맑고 초롱한 눈빛으로 튼튼하게 자라야 한다. 그렇게 자란 소가 다시 그대에게 젖을 베풀 것이다.”



재연 스님(선운사 승가대학장)





천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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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사람을 천하게 만드는가


불타 석가모니는 『숫타니파타』에서 '천한 사람'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한다.


"얼마 안 되는 물건을 탐내어 사람을 죽이고 그 물건을 약탈하는 사람,

증인으로 불려 나갔을 때 자신의 이익이나 남을 위해서 거짓으로 증언하는 사람,

가진 재산이 넉넉하면서도 늙고 병든 부모를 섬기지 않는 사람,

남의 집에 갔을 때는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면서 그 쪽에서 손님으로 왔을 때 예의로서 보답하지 않는 사람,

사실은 성자(깨달은 사람)도 아니면서 성자라고 자칭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전 우주의 도둑이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천한 사람이다.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귀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그 행위에 의해서 천한 사람도 되고

귀한 사람도 되는 것이다."


 <개에게 우유를 먹이는 방법>(글·풍경소리, 전각· 정고암,그림· 박준수, 운주사) 중에서






히말라야에선 누구나 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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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자 덕질기

조현의 히말라야 트레킹 체험기

 


외로우니까 혼자 걷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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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트레킹 중인 조현 기자



여행이 운명론처럼 정해져있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뜻하지않은 사건을 만나면 ‘이것도 하늘의 뜻이려거니’하고, 항로를 벗어나볼 필요도 있다. 그때부터가 진짜 여행이다. 


인도에서 네팔로 들어갈 때만해도 ‘그 좋다는’ 포카라의 페와호수에서 나룻배나 타며 요양할 셈이었다. 그런데 포카라행 항공편이 기상악화로 결항이란다. 숙소를 찾던중 만난 한 청년이 ‘안나푸르나 라운드’를 했다고 자랑한다. 포카라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댓명이 의기투합해 함께 13일간 안나푸르나 5416미터 트롱라를 넘고 200여킬로미터를 완주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쿵했다. 설산이 시야에 가득찼다. 10년전 달라이라마 제자 청전스님과 함께 인도 라다크의 5080미터 싱고라를 넘을 때 너무 무리해 죽을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생고생을 까마득하게 망각하고, 설산이란 말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그러나 병이 나 휴직한 몸으로 트레킹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하지만 고민이란 안가면 후회할 것이란 뜻이다. 다만 안나푸르나에 묻힌 산악인 박영석 대장처럼 설산에 묻힐까봐 두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을 버리려, 하고싶은 일마저 버릴 수는 없다. 두려움은 달래며 안고가야할 어린아이지 버리는게 아니다. 여차하면 설산에 묻히리. 찬란한 설산을 거닐다 피라미드보다 수만배나 큰 무덤에 안기는 것을 어찌 불운이라고만 할것인가. 병석에 누워 죽어가는것보다는 나은게 아닌가. 겁많은 내가 그런 기특한 생각을 다 하다니. 그래 이왕 가는김에 가이드도 포터도 없이 혼자 가보는거다.


안나푸르나 초입 베시사하르에서 입산허가증을 발급받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하산객들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등산객은 입대하는 군인처럼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데, 하산객들은 해탈한 제대병의 표정이다. 내게도 저런 날이 오긴 오는걸까. 그 때부터 걸었다. 먹고 걷고 자고 걷고 또 걸었다.


외롭지않느냐고? 외롭다. 그래서 혼자 가는거다. 인간에 대한 지겨움에서 해방돼 인간들을 그리워하려 그리 하는거다. 철다리를 넘은 가토라는 마을에 객은 나뿐이었다. 어둠에 잠긴 롯지(숙소)에서 만두와 라면을 안주삼아 현지 막걸리인 창을 마시는데, 화톳불가에 불을 쬐던 야크몰이꾼 둘이서 군침을 흘린다. 그들에게 창 한잔씩을 돌리니, 눈동자에 별빛이 반짝인다. 히말라야에서는 누구나 이렇게 서로 별이 되는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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