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에서 절 수행 200일째 무위거사 정준식 씨
서울 종로 조계사 앞마당. 한 중년 남자가 절을 한다. 자신의 몸을 최대한 낮춘다.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한 다음, 천천히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인다. 엎드린 채 두 손바닥을 하늘 향해 올리며 발원을 한다. 윗몸을 일으켜 세워 두 손을 활짝 핀 연꽃 모양으로 만들어 다시 머리 위로 치켜든다. 절 한번이 지루할 정도로 느리다. 시작은 아침 8시 반. 오후 5시 반에야 끝난다. 그렇게 하루 천배씩, 200일, 20만번의 절을 했다. 그는 앞으로 800일 동안 지금처럼 하루 천배를 올릴 작정이다. 2년9개월, 천일 동안, 매일 천배씩, 백만번의 절을 하려는 것이다.
지난가을에 시작했으니 계절이 두번 바뀌었다. 겨우내 모진 찬바람이 불어도 그는 앞마당을 떠나지 않았다. 분주히 지나가는 사람들 누구도 그를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그 역시 이처럼 홀로 고행을 하고 있는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그저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 세월호의 아픔이 치유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배 일배 정성을 다할 뿐이다. 그는 바로 ‘무위거사’로 불리는 정준식(48)씨다.
“우리 사회 불균형·부조화 드러낸 참사”
지난 가을부터 생업 접고 홀로 절 시작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앞마당서 고행
개인사 번뇌 씻으려 11년째 ‘매일 108배’
내가 바뀌면 주변도 변하는 깨달음
“누구나 한번씩 동참 ‘백만배의 기적’을”
‘거사’는 출가한 스님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 20년 동안 명상 수행을 해왔다. 10년 전부터는 본격적인 수행자의 삶을 살아왔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천배 절을 시작했다. 그에게 세월호 참사는 남의 일이 아니라, 스스로가 발가벗겨져 거울에 비추어진 느낌이었다. 자신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대로 드러난 처참함이었다.
그는 이미 11년 동안 날마다 108배를 해왔다. 마음을 닦기 위해서였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고교를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도 했다. 그러다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번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수행자로 산다는 것은 수행과 깨달음이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느꼈어요. 주변의 모든 존재들과 평화롭게 살아야 하는 거죠.” 명상 수련에 매달렸다. 불교 수행의 방편인 위파사나와 사마타 수행도 했다. 깨달음을 얻고자 간절히 바랐다. 어쩌면 큰 깨달음에 대한 갈망도 집착이었다. 조그만 깨달음도 소중히 여기게 됐다.
“몸에 병이 나는 것은 불균형과 부조화 때문입니다. 세월호는 사회의 불균형과 부조화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결과입니다. 병을 치료하려면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이 사회의 고통과 괴로움을 치유하기 위해서 절을 하기로 했어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약’으로 절을 택한 겁니다.”
“혼자서 절을 한다는 것은 소극적인 대처가 아닌가요?” 그는 강하게 반응한다. “아뇨. 아주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절을 한다는 것은 나의 몸과 마음을 최대한 낮추는 것입니다. 절을 하면 밖으로 향한 눈과 귀가 안으로 향하기 시작합니다. 모든 문제가 남의 탓이 아닌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우선 내가 바뀌면 주변도 바뀌기 시작합니다.”
지난 14일은 그가 천배를 시작한 지 2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세월호 참사 1년이 됐지만 사고 원인과 책임, 희생자 보상 등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는 절을 하면서 간절히 발원한다. “하루빨리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길 기원합니다. 지금의 고통과 사회적인 혼란의 원인은 진실이 감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진상 규명을 피한 채 돈으로 문제를 덮으려 하고 있어요. 하나도 남김없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야 희생자나 유가족의 마음이 치유가 됩니다. 모든 이의 의구심이 풀려야 합니다. 그래야 더 크고 아픈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지금 어떤 경제적 활동도 하지 않고 오로지 절만 한다. 식사는 조계종 경내 식당에서 해결한다. 숙소는 도법 스님이 자신의 숙소 한켠을 제공해주었다. 한번에 50분간 절을 계속 하고 10분간 쉰다. 쉬는 시간에는 좌선을 하든지, 천천히 조계사 경내를 걸으며 포행 수행을 한다.
솔직히 그동안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100배만 해도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무릎 관절이 부어 고통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어떤 깨달음 덕분일까? “모든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맡기게 됩니다. 그냥 맡깁니다.”
그의 옆에는 빈자리가 하나 더 있다. 그의 곁을 지나치다가 함께 절하고 싶은 이가 있으면 같이 하고픈 마음으로 그가 깔아놓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천배-천일’ 수행이 끝나기 전에 세월호 문제가 해결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는 ‘백만배의 기적’을 소망한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한번이라도 같이 절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각자의 마음에서 변화와 변혁이 일어나 이 사회를 맑게 해주기를 바랍니다.”
무위거사는 다시 절을 시작했다.
글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