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차가 예사롭지 않네
사월 하순부터 오월 중순까지 땅끝마을 대흥사의 스님들과 아랫마을 사람들의 손길이 차분하면서도 바쁘다. 때를 놓치지 않고 한 해 마실 차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혼자 찻잎을 따기에는 양이 너무 많아 암자에 오는 탐방객들을 불렀다. 차나무도 처음 보려니와 찻잎을 따는 체험을 하게 되니 모두들 좋아라 한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 맑은 공기 마시며 몸을 쓰는 일은 또다른 즐거움이다. 그러나 곧 차 따는 일이 즐겁지만은 않다는 것을 한 시간만 지나면 금방 알게 된다.
차를 따는 일은 인내와 집중을 필요로 한다. 특히 변화가 빠른 일상에 살고 있는 도시인들은 단순한 일이 이내 시들하고 힘겨워진다. 노동이 그저 멀리서 보기에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도 찻잎을 딴 수고에 보답하고자 차 한 잔을 대접한다. 일행 중에 제일 나이가 어린 중학생에게 차 맛이 어떠냐고 묻는다. 아이는 질문의 의도를 알아차린다. 그동안 엄마가 해준 밥을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하게 먹은 것 같다고 에둘러 답한다. 내가 짐짓 한마디 곁들인다. 어디 차 한 잔 밥 한 그릇에 사람의 공력만이 깃들었겠는가. 흙과 바람과 구름과 비와 미생물이 기꺼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지금 여기 나는 여유롭고 향기로운 차 한 잔을 마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많은 것이 돈으로 거래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뿌리고 가꾸고 거두는 과정과 수고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기 어렵다. 그래서 이해와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한 시간 남짓 찻잎 따는 체험에서 사람들은 이렇게나마 관계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만물과 만인의 은혜를 알고 마시는 차는 곧 환희이고 멋으로 이어진다. 고려의 백운거사 이규보는 “우리 인생에 남는 것은 차 마시고 술 마시는 일이니 오고 가는 풍류가 이것에서 시작한다”라는 시를 남겼다. 공부하고 일하며, 더불어 멋스러운 흥취와 풍류가 함께할 때 진정 사람답게 사는 품격을 누릴 수 있으리라. “석 잔 술은 대도와 통하고 한 말 술은 자연에 합한다”며 호탕하고 걸림 없는 풍류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술은 자칫하면 몸을 망치고 삶의 질서를 무너뜨린다. 감정을 흥분시키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차를 마시면 무심과 무위가 함께하고 깊은 마음의 눈을 열어주며 좋은 벗과 정신을 나눌 수 있다. 그 품성이 몸을 평온하게 하고 감각을 맑게 깨우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술과 차는 멋스러움과 맛스러움이 같고도 다르다. 그래서 술 마시는 일에만 기울지 않고 차를 마시는 균형과 조화의 문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삶의 의미와 성장은 만남에서 이루어진다. 좋은 만남이 어디 사람에게만 있겠는가. 우리의 미각도 좋은 만남을 이루어야 한다.
그럼 이 나라 이 강산이 더없이 수려한 오월, 초의 선사(1786~1866)의 <동다송> 한 구절을 음미하는 일로 올해 해차의 맛과 향기를 누려볼까?
대숲에 이는 바람, 솔가지 흔드는 파도소리/ 모두 함께 소슬하게 서늘하고/ 맑고 찬 기운 뼛속 깊이 파고드니/ 심간(心肝)을 깨우는 듯하네/ 오직 허락하노니/ 흰 구름 밝은 달이여/두 손님 맞이하노니/ 수행자의 찻자리 이보다 수승하겠는가
법인 스님(대흥사 일지암 암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