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들을 믿지 않습니다
2015.07.01 / 법인_해남 일지암 암주
요즘 틈틈이 <맹자>를 읽고 있다. ‘사람의 길’이라는 부제가 달린 도올 김용옥의 번역본과 해설집이다. 치열한 문제의식과 탁월한 안목, 예와 오늘을 상통하는 해석과 통쾌한 직설 때문에 나는 도올의 고전 강의에 매번 매료된다. 또한 원문의 뜻에 상응하는 그의 가필과 의역은 이해와 더불어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잘 알다시피 <맹자>의 중요 핵심에는 민중과 함께 살아가는 〔與民同樂〕 상생의 길이 있고, 사사로운 이해의 길을 버리고 모두에게 의로운 길이 있다. 그리고 의롭지 못한 군주는 끌어내리는 것이 천명이라는 역성혁명을 외치고 있다. 책을 읽다가 ‘양혜왕 상’ 편의 한 대목에 마음이 강하게 전율한다. 도올의 음성을 빌려 옮겨본다.
제선왕이 물어 말하였다: “은나라의 탕왕이 하나라의 걸桀 임금을 추방하고, 주나라의 무왕이 은나라의 주紂 임금을 토벌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었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문헌에 확실히 기록되어 있습니다.”말한다: “그런데 신하된 자로서 그의 임금을 시해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요?”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일컫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일컫습니다. 잔적殘賊의 인간은 ‘한 또라이 새끼’라고 일컫지 임금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무왕이 한 또라이 새끼 주紂를 주살誅殺하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으나, 임금을 시해하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나이다.”
1994년 조계종 개혁회의에서 멸빈된 서의현 전 조계종 총무원장이 복권된, 이른바 조계종 재심 폭동을 맞아 거의 모든 불교도들이 지금 허탈하고 참담한 심정으로 분노를 억누르고 있다. 이렇게 종단의 정통성이 부정되고 정법이 송두리째 훼멸 당하는 사태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94년 개혁의 주체들은 대부분 침묵하고 있다. 더구나 존경과 권위의 상징이라 일컫는 자리에 계시는 어른들이 서의현의 복권을 동의하고, 찬탄하고, 증명하고 있다. 이를 눈 뜨고 지켜보아야 하는 사부대중의 가슴은 더없이 서글프다. 낙망이고 절망이다. 거짓스럽고 썩어 빠진 세력이야 어느 시대에나 있는 것이기에, 대중은 그것에 쉬이 희망을 내려놓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악한 무리들이 판치는 세상 속에서도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있고 지혜의 칼이 존재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은 공의에 의하여 계행이 청정하고 안목이 탁월하며, 자비롭고 정의로우며 용기 있다고 믿는 분을 존경의 직위에 모시는 것이다. 그리고 혼란하고 삿된 무리들이 밝은 세상을 흐려놓으려 하면 ‘옭은’ 소리와 ‘용맹’한 처신을 그분들에게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분들이, 그 이름과 직위만으로도 종단과 사회의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는 그 분들이, 우리 대중의 등짝에 비수를 꽂고 있다. 대중은 의아해 한다. 그 자리에 계시는 분들이 어찌 그리 하실 수 있는지, 그리고 의심한다. 평생 수행했다는 결실이 무엇인지를, 마침내 알아차린다. 당신들의 속마음과 평생의 행보를, 아프지만 선고를 내린다. “이제 당신들을 더 이상 믿지 않습니다.”
1994년 조계종의 모든 종도는 승려대회와 사부대중의 궐기를 통하여 서의현과 그를 상징하는 부패세력을 추방했다. 그때 대중은, 출가수행자이고 조계종의 총무원장인 자를 몰아내지 않았다. 탕왕과 무왕이 인仁을 해치고 의義를 해친 잔적殘賊을 몰아내냈을 뿐 임금을 시해하지 않았듯이, 사부대중은 정법을 훼손하고 불자를 담보로 사익을 탐닉한 마군魔軍을 몰아냈을 뿐이다.
2015년 지금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황량한 시절이다. 편법과 탈법이 숫자와 돈을 무기로 득세하고 질주하는, 낙망하고 참담한 시절이다. 이러한 때에 불의에 침묵하고 한숨 쉬는 것만으로도 그 죄업이 수미산을 넘는데, 존경과 신뢰의 직위에 계시는 분들의 그 천부당하고 만부당한 언행을 우리는 어찌 해석해야 하는가?
그리고 두렵다. 불자들의 낙담과 냉소를 느낀다. 무관심과 결별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종교계는 “지배층은 있어도 지도자는 없다”는 말이 단순한 염려가 아님을 절감한다. 자본과 권력을 업은 권위주의는 있어도 존경과 애정의 ‘권위’는 상실되고 있음도 사실로 다가온다. 1994년 사부대중과 대한민국 여론이 패왕 서의현을 몰아냈다면, 2015년은 사부대중은 마음에서 누구를 지우고 있을까? 진정한 권위는 언言과 행行, 지知와 행行의 일치에서 나오는 것일진대, 그들의 ‘언’과 ‘행’과 ‘지’는 일치는 그만 두고 모두가 얼굴 들기 민망한 수준 이하다. 인과응보라고 했는가? 누가 그분들을 믿겠는가? 대중은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자업자득이다.
*이 글은 불교포커스에 실린 것입니다.
http://www.bulgyofocus.net/news/articleView.html?idxno=73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