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등석으로 내려가보자
미국이 서부를 개척하던 시대에 마차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차에도 지금 비행기처럼 1등석, 2등석, 3등석으로 구별되어 있었습니다. 그 구별은 평지를 갈 때에는 함께 타고 가지만 언덕을 올라가거나 진흙탕처럼 어려운 길을 만났을 때 나타납니다. 언덕이나 진흙탕을 만나면 3등석 승객은 무조건 내려서 밀어야 하고, 2등석은 내리지만 따라만 가면 됩니다. 그런데 1등석은 내리지 않고 마차 안에 앉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이 세 등급의 구분은 평소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머나먼 서부로 갈 때 수없이 만나게 되는 험로에서는 1등석은 비싼 값을 충분히 하고도 남았습니다.
우리 인생도 서부개척시대 마차와 같이 세 부류의 자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1등석 인생은 스스로 특권층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로, 공동체에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내려오지 않고 앉은 채로 명령만 하려고 듭니다. 또한 2등석 인생도 있습니다. 어려울 땐 내려서 따라는 가지만, 결코 밀어주지 않는 기회주의자입니다. 그러면서 돈이 더 있으면 1등석을 타리라는 아쉬움과 원망 속에서 살아갑니다. 끝으로 3등석은 처음부터 앉을 생각도 않고 험한 일을 만났을 때 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부류의 자리와 상관없이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앉은 자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3등석에 탄 사람도 있지만, 1등석 표를 가졌음에도 험로에서는 함께 밀어주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리가 정해지지만 그 자리는 살아가면서 계속적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그 자리 바뀜이 있기에 인생은 역동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편안한 1등석을 원합니다. 그런데 그 1등석이 겉으로 볼 땐 좋은 것 같으나, 사실은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긴장하고 경계하는 가장 살벌한 자리라는 사실입니다. 2등석은 언제나 1등석을 침범하려고 호시탐탐 살기등등해야 합니다. 동시에 3등석에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그러나 3등석이 늘 비참한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경쟁의 대열에서 벗어나 맡은 일에 소명의식을 갖는다면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볼 수 있는 자리가 되기도 합니다.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1등석을 차지하려는 데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3등석을 지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3등석이 좋은 이유는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3등석은 섬김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3등석을 지향하는 사람의 마음 상태는 비굴이 아니며 여유입니다. 3등석에 앉으면 오히려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계급사회입니다. 이 계급사회에서 벗어나는 길은 1등석을 향한 투쟁을 멈추고 3등석을 지향하는 의식입니다. 지금 몇등석에 앉으셨습니까? 지금 자신이 몇등석에 앉았는지를 아는 것은 오직 자신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오늘은 3등석을 향해 눈길을 돌리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문병하 목사(양주 덕정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