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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별거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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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별 거 있나요!

집짓고 농사짓는 김기열 씨 인터뷰


2015.7.17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이희연 기자  |  unexpectedn@gmail.com


여름빛으로 물든 산과 계곡을 굽이굽이 넘어 괴산의 조용한 마을로 들어섰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 가물은 논에 애써 물을 대던 농부는 전화 한 통에 집으로 달려왔다. 흙 묻은 옷을 툭툭 털어내며 반갑게 맞아준 농부 김기열 라파엘 씨를 만나 농사짓고 집 지으며 살아가는 행복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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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열, 서강대 사학과 82학번. 그가 발견한 천직은 농사와 집짓기. ⓒ한상봉


서울에 살다가 귀농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07년도에 귀농했으니 벌써 8년이나 지났네요. 서울에선 학원 강사로 일했는데, 직업적인 회의가 많았어요. 돈 있는 집 아이들은 학원에서 잘 가르치면 된다지만, 그런 기회가 없는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죠. 마침 형님이 암에 걸렸다고 해서 그 핑계로 학원을 그만두고 여기로 내려왔지요. 처음 내려와서는 할 줄 아는 게 없었죠. 도시에선 유용하던 재주가 여기서는 쓸 일이 없더라고요. 마침 근처에 성심회 남궁영미 수녀님이 무료 공부방인 ‘하늘지기 꿈터’를 운영하고 계셨어요. 거기서 영어를 가르치는 게 유일하게 재주를 쓰는 일이었죠. 대신 학원에 안 다니는 아이들에게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보람이 있었어요.


괴산에 내려오고 나서, 대치동에서 수학 학원을 운영하는 선배가 학원의 관리원장을 맡아달라고 연락하기도 했어요. 연봉을 오천 준다고 하니 솔직히 고민이 되더라고요. 며칠 고민했는데 다시 그 생활로 돌아가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한 달에 백만 원을 버는 한이 있어도 여기서 행복한 일을 해야겠다고 결정했죠.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하다고 느끼시나요?

누군가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알려면, 그 사람과 보내는 시간을 생각해봐야 하잖아요.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시간이 잘 가면 그게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불편한 사람과 있으면 시간이 언제 가나 싶고, 빨리 헤어지고 싶고요.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어떤 일은 시간이 잘 가요. 제가 그 일을 좋아하는 거죠.


저에게 그런 일이 세 가지 있어요. 첫 번째는 술 먹고 노래하는 것. 두 번째는 붓글씨. 서울 살 때 인사동에서 붓글씨를 배웠는데 시간이 후다닥 가더라고요. 붓글씨 쓰다가 인생이 끝나겠다 싶을 정도라 그만 뒀죠. 마지막으로 세 번째가 집을 짓는 일이예요. 나무를 다듬고, 대패질과 끌질 하는데 시간이 금방 가요. 처음 귀농해서 호구지책을 찾는데, 솔뫼농장에서 집 짓는데 막노동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집 짓는 걸 처음 봤는데 재미있더라고요. 원래 창조적으로 구상하고 꾸미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나무를 다듬어서 조립하는 과정도 신기했어요. 일하면서 틈틈이 배우고, 화천 한옥학교에서 6개월 공부도 했어요. 먹고 살려고 시작했는데 어느새 집쟁이가 되었죠. 요즘은 설계부터 짓는 것까지 총책임을 맡아서 해요. 올 여름에는 문경에 한옥을 한 채 지을 예정이라 설계하고 있어요.


돈을 쫓기보다 행복한 일을 선택하신 거군요.

1989년도에 가톨릭 아시아 청년 포럼에 참석하려고 인도 뱅갈로에 갔었어요. 그런데 인도 사람들이 자주 쓰는 두 가지 말이 “너 행복하니?”와 “문제없어.”예요. 인도 사람들은 항상 행복을 물어 볼만큼 불행한 건 아닐까, 문제가 워낙 많아서 어지간해선 문제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안타까운 마음도 들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다짐도 하고요. 제가 앞으로 오래 살아야 20년 살 텐데, 뭘 하고 살아야 행복할지 고민했어요.


어떤 일을 할 때면 공구 욕심이 많았어요. 집 지을 때 필요한 목공도구, 농사지을 때 필요한 농기구 같은 거요. 사실 농기구는 필요할 때만 빌리면 되

고 정 안 되면 제가 손으로 해도 되거든요. 살아봐야 20년이라고 생각하니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원체 호기심이 많아서 새로운 재주를 배우는 것도 좋아하는데, 더 이상 재주를 쌓을 생각도 안 들어요. 이미 쌓은 재주를 쓰는 것만으로도 죽을 때까지 걸리겠더라고요. 그래서 버릴 것은 자꾸 버리고, 하루라도 화내지 않고 살려고 해요. 살아갈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하루라도 화내면 손해 보는 거 같아서요.


욕심 버리고 화내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대학교 4학년이던 1985년도에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국제통화기금(IMF) 서울 총회 개최를 반대하는 시위를 했어요. 그 일로 인해 같은 해 10월에 청량리에서 체포되었어요.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의 문익환 목사님이 사주해 반국가 시위에 참석한 사람이 되어, 영등포 교도소에 수감되었죠. 교도소에서 일 년을 꽉 채우고서야 나올 수 있었어요. 0.8평정도 되는 독방에 수감되었는데, 왼쪽으로 누우면 왼 팔이 닿고 오른쪽으로 누우면 오른팔이 닿을 정도로 좁은 방이었어요. 위아래로 팔다리를 쭉 뻗으면 손과 발이 벽에 닿았죠. 처음엔 숨이 턱 막히고 폐쇄공포증이 생길 것 같더군요. 적응하는데 사나흘 걸렸는데, 한 달쯤 지나니까 방이 넓게 느껴졌어요. 운동도 하고 책도 읽기 시작했죠.


그러던 중 카렐 코지크라는 동독 철학자가 쓴 <구체성의 변증법>이 교도소에 들어왔다는 걸 알았죠. 그 책을 달라고 했더니 주지 않더라고요. 책을 내놓으라고 단식투쟁을 했어요. 8일쯤 굶으니 교도관이 와서 밥 먹으라고 달래고 협박하다가 결국 고문실로 끌고 갔어요. ‘비녀꽂기’라는 고문 방법이 있는데 앞에서 묶은 두 손을 등 뒤로 넘겨서 엉덩이까지 잡아당기는 거예요. 가슴뼈, 어깨뼈, 등뼈가 활처럼 휘어지고 틀어지죠. 고통스럽고 혈압도 올라서 10~20분이면 거품을 물고 기절해요.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이게 죽는 거구나 싶었죠. 그게 반복되니까 나중엔 삶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고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문 이후로 지금 주어진 삶은 덤으로 주어졌다는 느낌으로 살고 있어요.


결국 <구체성의 변증법>을 받았는데, 고문을 당하고 받은 책이라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막상 서문을 읽고 나니 더 읽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희열이 느껴지는 한 문장을 만났거든요. “모든 사유는 물자체를 지향한다.” (젓가락을 집어 들고) 이걸 막대기가 아니라 젓가락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오랜 시간동안 쌓여온 언어, 풍습, 문화, 관념이 여기에 껍데기처럼 씌워져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떤 관념도 형성되지 않은 갓난아기가 이걸 보면 그냥 이것 자체를 인식하잖아요. 더해서 인식하는 사람도 없을 때의 이것 자체가 물자체거든요. 결국 눈에 보이는 껍데기가 아니라 그 속에 본질을 이해하는 것, 문자 그대로의 말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덤으로 주어진 삶이니 이 삶을 세상을 변화하는데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정말 하려는 말을 듣고, 화내고 싸우는 대신 양보하며 살겠다고 마음먹었죠.


행복하게 살기 위한 나름대로의 선택기준이 있다면?

자신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선택한 것이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살면 행복할 수 없어요. 많은 철학자, 사상가들이 이야기하는 도덕률이라는 게 소극적으로는 나에게 고통스러운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거고, 적극적으로는 고통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그를 도와주라는 거죠. 예수님이 하신 말씀도 다르지 않고요.


다른 사람이 고통을 느낄만한 일은 제가 먼저 포기해요. 저도 고통에 빠진 사람을 도와줄 정도로 적극적이진 않아요. 요즘은 다들 ‘모니터 앞의 투사’잖아요. 모니터 앞에서 분개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엔 쉽지 않죠. 저도 가끔씩 서울에 세월호 집회를 찾는 정도예요. 가끔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으면 예수님이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형식이나 껍데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의 본질, 삶의 본질을 꿰뚫어보시잖아요. 그걸 거침없이 용기 있게 선포하시고요. 그런 모습을 떠올리면서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껍데기가 없는지, 내가 옳은 행동이라고 확신하는 것이 정말 올바른지 되돌아보곤 하죠. 그 외엔 제가 좋아하는 대로 술 먹고 농사짓고 지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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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농사를 지으면서 어떤 기쁨과 어려움이 있나요?

농사라는 게 집 짓기처럼 먹고 사는 방편이죠. 그런데 자본주의의 교환가치를 따지면 농사는 절대 지으면 안 돼요. 집 앞에 있는 논에서 열심히 농사지으면 쌀이 세 가마정도 나와요. 한 가마에 25만원을 받으면, 일 년 농사지어서 75만원 버는 거죠. 서울에서 막노동 하면 일주일이면 벌 수 있는 돈이에요. 돈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일주일 막노동하고 쌀 사서 오는 게 옳은 거죠. 교환가치로는 농사짓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어요. 가을에 타작하는 흐뭇함과 빈 들판을 바라보는 허전함을 어떻게 돈으로 설명하겠어요.


처음 괴산에 와서는 친구들도 없고 심심한 시골 생활이 낯설었어요. 시골생활에는 많이 적응했지만, 친구들이 놀러오는 건 여전히 기뻐요. 농사를 지으면서 그 핑계로 친구들을 종종 불러 모으죠. 모내기 할 때면 와서 일손을 거들게 하고, 감자 캘 때면 와서 돕게 하고 일당 대신에 감자 한 박스씩 쥐어주고요. 오랜만에 친구들이 모이면 솥단지 걸어 먹고 노는 재미도 있죠. 된장을 담글 때면 친구들에게 메주를 주문하라고 해요. 제 집에 다 같이 모여 장을 담그고 때 되면 와서 퍼가라고요. 기열이네 논에 내 쌀이 자라고, 기열이네 옥상에 내 된장이 익어가고 있다는 그런 느낌을 주고 싶어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집 앞에 논이 작으니 사람 손으로 다 해볼까 해요. 요즘 쌀농사는 외롭잖아요. 돈만 주면 기계가 와서 다 심고 거둬들이고. 어릴 때 시골에서 보던 타작마당의 느낌이 없어요. 타작하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서 말린 볏단을 들고 타작을 하죠. 먼지가 날리고, 한쪽엔 볏단이 쌓이고... 아이들은 볏단 위를 뒹굴며 놀고, 어른들은 솥단지 걸어서 먹고 마시고... 타작마당만의 흐드러진 기분이 있어요. 마을 잔치죠. 친구들과 함께 모여 줄을 따라 모내기를 하고, 낫으로 베어서 햇볕에 잘 말리고, 다시 모여서 타작마당의 분위기를 내보고 싶어요. 직접 담근 술을 나눠 마시고요. 뙤악볕에서 힘든 노동을 하고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면 취하는 게 아니라 몸이 시원해져요. 해방이죠, 해방. 돈이나 교환가치를 벗어나서 손에 잡히는 걸로 먹고 담그고. 그걸로 친구들과 재미있게 지낼 거예요. 사는 게 별 거 있나요!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실린 것입니다.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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