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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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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잡고 농사짓고 축산하고, 노동과 신앙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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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 장로’가 27년 전 세운 울진 죽변 기독공동체

    17살부터 떠돌며 
  머슴, 구두닦이, 뱃일 등 허드렛일
  
  5년 만에 지쳐 고향 돌아와
  술 먹고 싸움질, 파출소를 집처럼
  23살에 폐종양 걸려 죽음 문턱
  교회 다니며 8개월 만에 살아나
  
  이후부터 덤으로 사는 인생
  은퇴 목회자와 불우자들의 삶터
  한때 200여명이 한식구로
    새벽에 배 타고 나가고
  오전엔 소·돼지 100여마리 돌보고
  점심 뒤에는 1만평 논밭 일
  하루 세 번 직업이 바뀐다


a6.jpg» 가을이 깊어가며 벼가 누렇게 익는다. 박진수 장로(왼쪽)과 그의 부인 김영희(오른쪽)씨가 꼴을 베다가 허리를 펴고 웃는다.

식당에 들어선 서준구(46)씨가 온장고에 있는 공기밥을 꺼낸다. 한 개가 아닌 네 개다. 따뜻한 밥 네 공기를 한 손에 들고 식탁 빈자리에 앉는다. 식사 기도를 대신하는 찬송가를 부른다. 미리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던 다른 식구들은 잠시 식사를 멈추고 함께 찬송가를 부른다. 반찬은 해산물이 많다. 가자미조림과 오징어무침, 게찌개 등등. 대부분 오늘 새벽에 바다에 나가 수확한 것들이다. 점심으로 네 공기의 밥을 맛있게 먹곤 두 시간 정도 쉰다. 그는 직업은 하루 세 번 바뀐다. 
 새벽엔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다. 아침 먹곤 축사에 가서 돼지와 소를 돌본다. 점심 먹곤 논과 밭에 나가 일을 한다. 벌써 20년째다. 영남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공병 장교로 군생활을 마친 그는 몸과 마음이 지쳐 헤매다가 울진 죽변의 한 기도원을 찾았다. 거기서 노동의 즐거움과 신앙이 주는 행복을 찾았다. 삼척산업대를 나온 심순원(46)씨도 서씨와 비슷한 시기에 이 기독공동체에 합류했다. 이곳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심씨도 밥 세 공기를 뚝딱 먹어치운다.
 
공기밥 네 그릇 뚝딱
 이 둘은 이 기독공동체를 세운 박진수(65) 장로와 함께 매일 새벽 3시에 죽변항에 있는 5t급 신양호에 몸을 싣는다.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의 뱃전을 두드리는 바다 물결 소리는 친근하다. 엔진에 시동을 건다. “두두두두”.  선장실에서 조종타를 잡은 박 장로는 낮은 목소리로 지휘를 한다. 서씨가 뱃전에서 불빛을 비춘다. 멍게 양식장과 정치망, 미역 양식장 등 피해야 할 것들이 많다. 부둣가에서 60m는 나가야 장애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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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그물을 내려놓은 부표를 찾아 항해를 계속한다. 다행히도 바람이 없다. 수십개의 부표 가운데 간신히 박 장로의 부표를 찾았다. 그물을 올리자, 문어, 가자미, 게 등이 딸려 올라온다. 잡은 해산물은 공동체 식구들이 먹을 것과 식당 손님상에 올릴 횟거리, 그리고 말리거나 가공해서 외부에 판매할 것 등으로 나눈다. 뱃머리를 돌린 박 장로는 걸쭉한 목소리로 바다를 향해 외친다. “그물아 잘 있거라, 내일 다시 보자.”

a2.jpg» 공동체의 핵심 일꾼 세 명이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선다. 서준구(왼쪽)씨와 심순원(오른쪽)은 대학 졸업하고 20여년 이 공동체에서 박 장로(가운데)와 함께 살아왔다. 두 사람 모두 부인을 공동체에서 만났다.

 동이 트는 새벽녘, 배가 부둣가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공동체 식구들이 나와서 배를 맞이한다. 사경미(45)씨는 이 공동체 황성욱(46·봉평제일감리교회) 목사의 부인이다. 헐렁한 작업복 바지를 입은 어촌의 흔한 여성의 모습이다. 장화에 목장갑을 끼고 남자들로부터 어획물을 건네받는다. 능숙하게 생선 배를 가르고 회를 뜬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매서운 바닷바람에 그을러 건강미가 넘친다.(전날 점심때 사씨는 두 공기 반을 먹었다. 좀 낯선 느낌이었다.)
 새벽에 학교 가는 공동체 식구들의 아이들 10여명의 식사부터 준비해야 한다. 식당 한편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책가방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빈자리가 된다. 이 공동체의 식구는 7가구, 모두 30명이 함께 식사하고, 예배를 보고, 공동 작업을 한다.
 
중퇴하고 동네 망나니로
 1988년부터 공동체를 가꾸어온 박 장로는 ‘호랑이 장로’로 불릴 만큼 매사에 엄격하다.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하고, 거칠었다. 9대를 이어서 살아온 땅이다. 조선시대 유배지였던 경북 울진에 자리잡은 그의 선조들은 대대로 가난했다. 할아버지는 평생 선비로 살았다. “울진에 박가 거리가 있을 만큼 ‘선비짓’을 하며 살아오셨어요.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훈장이셨어요. 아버지는 그런 가난을 못 견디고 농업과 어업을 닥치는 대로 하셨어요. 저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를 다니다가 포기했어요. 동네 망나니였어요.”  
 17살부터 5년간 강원도 고성, 서울, 대구, 경북 포항 등지를 돌아다니며 세상의 쓴맛을 보았다. 머슴살이, 구두닦이, 뱃일 등 허드렛일을 했다. 타향살이에 지쳐서 고향에 돌아왔지만 세상에 대한 증오와 불만을 해소하지 못했다. 주정을 부렸고 싸움질도 했다. 동네 파출소는 안방처럼 친숙했다. “술에 취해 파출소에서 밤을 보내고 나오면 온몸이 욱신거리고 불편했어요. 그래서 하루는 술에 덜 취해 파출소에 들어가 자는 척했더니 당직 근무자가 자는 나에게 발길질을 해대는 거였어요. 모른 체했지만….”

a5.jpg» 박 장로 공동체에서 기르는 돼지들. 현재는 100마리이지만 곧 축사를 키워 1000마리까지 키울 계획이다.

 23살 때 그는 폐종양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그에게 “보름을 넘기기 힘들 것 같으니, 집에 가서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삶이 모질었다. 병원에서 나와 아픈 몸을 이끌고 무작정 교회를 찾아갔다. 기도할 줄도 몰랐지만 신에게라도 하소연하고 싶었다. 눈만 감고 있는데도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떨었다. 절망과 육체의 아픔으로 삶을 포기하려는 순간 ‘울컥’ 하고 뭔가 올라왔다. 피고름 덩어리를 토했다.
 죽음은 쉽게 오지 않았다. 8개월 동안 투병생활을 한 끝에 거짓말처럼 건강을 회복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 시작됐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헌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부인 김영희(58)씨를 만나 결혼도 했다.
 
모텔까지 한다고 손가락질
 비록 배운 건 많지 않으나 가난하고 힘든 이웃을 위해 1988년 갖고 있던 과수원 자리에 기도원을 세웠다. 천성이 부지런한 덕분인지 조금씩 돈을 모았다. 남들은 땅을 팔고 도시로 나갈 때 그는 그들이 팔려고 내놓은 땅을 헐값에 사곤 했다. 1997년에는 은퇴 목회자와 홀로 사는 노인, 소년소녀가장, 불우한 이웃들이 무료로 살 수 있도록 2개 동의 ‘골장타운’을 지었다. 골장은 마을의 골의 깊다고 붙혀진 이름이다.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몸을 의탁할 곳이 없는 이들이 몰려왔다. 한때 하루 밥 먹는 이가 200명까지 됐다.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능력이 되는 데까지 그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했다. 취업을 못 한 젊은이들도 왔다. 박 장로는 그들에게 일거리를 주었다. “일하지 않으면 교만해집니다.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는 이들은 이 공동체에서 버티기 어려웠어요.”

a1.jpg» 바닷가에 공동체가 운영하는 모텔과 횟집.

 박 장로는 바닷가에 24개 객실이 있는 모텔도 지었다. 주변에서는 “기독교 공동체가 모텔까지 운영한다”고 손가락질도 했지만 박 장로의 생각은 달랐다. “전국의 원로 목사와 기독교 신자들에게 실비로 휴식하고 세미나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싶었어요.”
 박 장로와 함께 13년째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는 황 목사는 “공동체가 생명력이 있기 위해선 경제적 자립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공동체는 어업과 농업, 축산업, 그리고 서비스업까지 합니다.”
 박 장로는 논 5000평, 밭 4500평에 벼농사는 물론 매실, 배추, 고추 등 각종 농산물을 재배한다. 직접 지은 깔끔한 축사에는 소 33마리, 돼지 100마리가 크고 있다. 공동체 식구들이 직접 키운다. 농번기 때는 이앙기와 콤바인을 몰고 가 일손이 없는 마을 이웃들을 돕기도 한다. 수요일 저녁 예배인데도 아이들이 10여명 참석해 부모들과 함께 예배를 본다. 
 “부지런히 일하지 않으면 이웃들에게 베풀 수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박 장로를 부인 김씨가 말없이 바라본다. 부인의 손가락은 마디마디가 눈에 띄게 부어 있다. 평생 박 장로와 함께 살아오며 켜켜이 쌓인 흔적이다. 부인이 살짝 미소를 짓는다. 바닷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울진/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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