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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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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 식사

2013.6.13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문양효숙 기자  |  free_flying@catholicnews.co.kr
 

지난 봄이었나보다. 무심코 전자레인지대 옆을 지나는데 검은 봉투 밖으로 보라빛 풀줄기가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응? 화분을 산 기억이 없는데, 무슨 화분이지?’ 하며 풀들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아! 나는 생명의 경이로움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몇 달 전에 사 놓고 방치한 고구마에서 솟은 줄기였다.

고구마야 고구마야, 너의 생명력은 정말 신비롭구나.
물 한 번 준 적이 없으나 마르지 않고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나의 부엌 한 구석에서 
너는 그렇게도 찬란히 줄기를 키워나갔구나~
그렇게도 길고 긴 줄기를.

생각해보니 고구마만 그런 건 아니었다. 양파 한 망을 사도, 감자 한 봉지를 사도, 늘상 마지막 한두 개는 썩거나 싹이 나 못 먹게 되곤 했다.

나의 장 보기 변천사

식재료를 버리는 건 적지 않은 스트레스였다. 처음엔 ‘다 먹어야 한다’는 강박에 1~2주 동안 같은 재료를 먹었다. 감자를 사면 감자조림, 감자볶음, 감자찌개를, 양파를 사면 모든 요리에 양파를 넣었다. 질렸다. 만든 음식 자체를 버리게 됐다. 카레를 만들어 일주일 내내 먹어본 사람은 안다. 5일째가 되면 카레를 외면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재료를 조금씩 사기 시작했다. 당근 한 개, 양배추 반 통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갔다. 시장에서는 한 개씩 사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것도 모두 여력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바쁘고 몸이 피곤해지면서 나는 요리에서 손을 뗐다. 집에 들어가 요리를 할 기력도 없고 애써 힘을 내 무언가를 만든다 해도 맛이 없었다. 분명 예전엔 손맛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낑낑거리면서 무언가를 만든 후 맛을 볼 때 그런 생각마저 든다. ‘이걸, 먹어야 하나?’

2%는커녕 30%는 부족한 맛이다. 싱겁다, 짜다, 밍밍하다 등 맛을 표현하는 단어들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그 뭐랄까 굳이 말하자면 ‘어설픈 맛’이 났다. 힘들다보니 하지 않고, 하지 않다보니 퇴화된 게 분명하다. 그렇게 믿고 싶다. (내가 만든 파스타와 된장찌개 맛있다고 먹었던 친구들아, 설마설마 너희들 너무 착한 사람인거니? 내 기대에 찬 얼굴에다 대고 차마 “이것도 사람 먹으라고 만든 거냐”고 할 수 없었던 거니? 아니면 우리 집에 오기 전에 너무 굶어서 미각이 둔해진 거니?)

어쨌든, 요즘은 가스불을 켠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지난 몇 달 동안은 취사용 가스비가 900원을 넘지 않았다. 이건 도시가스공사가 가스레인지를 쓰는 시민들에게 청구하는 기본요금이다. 일석이조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비루한 식생활은 에너지 절약의 기쁨마저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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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양 기자는 오로지 이 삼각김밥만 먹는다. ‘살짝 까탈스러운 취향의 소유자’시니까. ⓒ문양효숙 기자 


그렇다고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굶을 수야 있나. 다 살 방도가 있는 법. 일단 나의 살짝 까다로운 입맛을 먼저 언급해야겠다. 기본적으로 ‘집 밥’을 아주 좋아한다. 사먹는 음식은 식재료도 의심스럽고 MSG의 맛도 부담스럽다. 게다가 아침밥을 꼭 먹어야 한다. 아무리 늦게 자도 배가 고파서 새벽에 깰 정도다.

아침밥은 무조건 단품이다. 조리시간은 10분 이내. 주로 비빔밥이나 볶음밥 형태다. 고기를 먹지 않으니 생야채나 엄마가 “너는 대체 어떻게 먹고 사는 거냐”며 보내주는 나물반찬을 넣는다. 국물을 거의 먹지 않게 됐다. 국이나 찌개는 끓일 여력도 없거니와 마지막에 반드시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예외는 있다. 식당 음식의 MSG에는 그렇게도 까탈스러운 내가 면 요리에는 한없이 너그러워서 라면을 비롯한 우동, 국수 등은 언제라도 맛있게 먹는다. 이것 역시 단품이다. 식사 한 번에 그릇 하나.

아침을 제외한 끼니는 대부분 밖에서 해결하는데 요즘은 그것마저도 대강 먹는 편이다. 사실 끼니 챙기는 게 조금 귀찮아 식사 횟수 자체를 하루 두 번으로 줄이기도 했다. 요즘은 삼각 김밥과 친해졌다. 섭렵해본 결과 삼각김밥은 ○○ 편의점 게 제일 맛있다.

1인분을 팔아 달라!

지난주, 열심히 달린 어느 날이었다. 10시간을 쉬지도 않고 집중해서 기사를 두 개 토해내고 나니 집으로 터덜터덜 들어오는 길에 골뱅이와 맥주 한 잔이 훅 당겼다. 골뱅이? 왠지 간단할 것 같잖아? 일단 골뱅이 통조림을 사고, 대파를 사는 거야. 양념엔 뭐가 들어가지? 파, 마늘, 고춧가루, 식초, 설탕……. 포기했다. 집에는 이런 양념들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게다가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골뱅이 무침을 만들면 새벽이 되겠다 싶었다.

그러나 나는 욕구에 충실한 인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동네 맛있다고 소문난 ○○ 골뱅이 집을 향했다. 다음날이 휴일이어서 그랬는지 늦은 시간인데도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야외 파라솔에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펼쳤다. 골뱅이 만팔천 원. 옆 테이블을 살짝 보니 양이 엄청 많았다.

“1인분은 안 되나요?”라고 물었더니 안 된단다. (홍대 앞 ○○ 주점 사장님은 메로 구이도 일인분 만들어 주시고, ○○ 파스타 집은 2인분이 기본인 냉파스타도 기꺼이 반만 만들어주시는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골뱅이 하나와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고고하게 혼자 생맥주에 골뱅이를 먹었다. 아~ 좋구나. 바람은 살랑살랑, 골뱅이는 새콤달콤. 몇 번 더 오고 난 후, 단골인 척하면서 사장님께 1인분을 만들어 달라고 졸라야겠다.

○○ 기자님, 다시 먹고사니즘의 찌질함을 드러내고 말았어요. TV 드라마에는 혼자 살면서도 보글보글 된장찌개에 생선구이까지, 엄청 우아한 요리를 만들어 먹는 사람들도 많던데 혹시 저만 이런 걸까요. 게다가 ‘살짝 까다로운 입맛’이라면서 삼각김밥이라니, 이 언행 불일치와 논리의 일관성 없음은 대체 어쩌면 좋을까요. 혹시 요즘의 정신 이탈 상태는 식생활의 비루함에서 오는 것일까요. 혼자 살면서 건강하게 잘 먹고 살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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