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교황 방문으로 차별 철폐 계기…관광 발길 북적
한센인 피땀으로 만들어 숨통 죈 4㎞ 둘레길 이젠 ‘숨통’
» 일제시대 6천여명의 한센인들이 중장비 없이 내몰려 조성한 치유의 길
소록도는 이제 한센인의 섬이 아니다. 힐링과 치유의 섬이다. 한해 50만명의 관광객들이 한때 한센병으로 단절됐던 섬을 찾아 온다. 국립소록도병원이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 자리를 잡은 지 100년이 흘렀다. 소록도에 한센인을 위한 병원이 생긴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 5월 17일. 17일이면 꼭 100년이다. 조선총독부가 소록도 부지 30만 평을 매입해 병동을 짓고 자혜의원을 개원한 것이 시초가 됐다.
» 일반인들이 예배를 보는 소록도 제1성당의 스테인글라스 천정. 한센인들의 아픔을 상징하듯 십자가에 붕대가 감겨있고, 눈물을 흘린다.
지난 세월 한센인들은 격리와 통제 속에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고 폭행·감금 등 인권유린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로 아픔의 세월을 겪었다. 현재 소록도에 있는 한센인 530명은 모두 전염 가능성이 없다. 이 가운데 400여명은 외모에 표시가 나고 나머지 130명은 일반인과 전혀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들이 모여 사는 소록도의 마을은 아직 일반인들이 출입을 하지 못한다. 일반인들이 개방된 곳에는 주말마다 관광객들이 몰려 온다.
» 소록도 한센인 마을 전경
개방이 아직 안된 한센인 마을을 다녀왔다.
먼저 한센인들이 예배를 보는 천주교 성당이다. 1962년 건립된 2번지(병사) 성당은 한센인들이 직접 땅을 고르고 벽돌을 만드는 등 공사에 참여했다. 성당 제단 중앙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선물한 십자가가 걸려 있고 왼편에는 교황을 위해 제작한 의자가 놓여있다.
천주교가 소록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35년이다. 장순업 등 일부 천주교 신자들이 신앙 공동체를 형성해 신부의 방문을 받다가 1960년대 초에 본당이 설립됐다. ‘소록도의 천사’로 불린 마리안느 스퇴거 수녀와 마가렛 피사렉 수녀의 헌신적 봉사활동,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 등으로 천주교는 한센인의 삶으로 들어가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특히 1984년 교황 방문은 소록도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 소록도를 방문한 교황이 앉았던 곳에 교황의 사진이 놓여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소록도를 방문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소록도가 전 세계의 눈길이 쏠렸다. 소록도를 취재하던 미국의 <NBC 방송>은 한센인에 대한 차별의 증거로 ‘제비 선창’을 지적했다. 당시 소록도 부두는 직원 전용과 환자 전용이 따로 있었으며 감염 우려가 없는데도 별도의 부두를 이용한 것이다. 이런 사실이 보도되자 당시 국립소록도병원장은 즉각 제비 선창 폐쇄를 지시했다. 교황 방문을 앞두고 한센인과 일반 직원이 같은 부두, 한 배를 이용하게 되자 한센인들은 이를 ‘교황님의 선물’이라 부르며 반겼다. 폐쇄된 제비 선창은 태풍의 피해로 파괴된 채 방치돼 있다.
» 이제는 수명을 다해 부둣가에 전시중인 소록호
통제구역에 있는 ‘치유의 길’은 일제강점기 수호 마사키 원장이 6000여명의 원생을 모두 동원해 만든 길이다. 해안가를 돌며 조성된 4㎞의 둘레길은 당시에는 한센인들의 탈출을 막기 위한 또 하나의 쇠창살이었다. 깊은 숲에 숨어 있다가 탈출을 하려는 한센인들을 적발하기 위해 해안가에 길을 만든 것이다. 1938년 1월 겨울철에 공사를 시작해 중장비 없이 한센인들의 맨손으로 20일만에 완성했다. 손발이 성치 않은 한센인들은 오로지 삽과 괭이로 언 땅과 바위덩이를 파헤쳤다. 이 길이 ‘치유의 길’로 이름 붙여진 이유는 한센인들의 피땀과 피고름으로 만들어진 길이기 때문이다. 땅을 만들면서 큰 상처가 생겼고, 그 바람에 작은 상처는 치유됐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명명이다. 물론 길을 만들며 생긴 큰 상처는 한센인들을 오랫동안 괴롭혔다.
» 한 여성 한센인의 생일날을 맞아 소록도 천주교 성당의 김연준 주임신부와 수녀들이 아침에 가정을 방문해 축하 케익을 선물하고 축하 기도를 해주고 있다.
비록 고통 속에서 탄생한 길이지만 걸어서 약 한 시간 거리의 ‘치유의 길’에는 소록도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소나무와 활엽수가 혼재된 울창한 숲길을 따라 걸으면 왼편으로 눈이 시리게 푸른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치유의 길 입구에는 최초의 한센인 병원인 자혜의원이 있다. 나즈막한 단층 건물인데, 안에는 한센인들을 치료하던 치료실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한때 결핵환자를 분리해 수용했던 병동은 이제는 폐허가 됐다.
» 한때 강제 낙태수술과 불임수술이 자행된 수술대
한센인들의 마을 한쪽에는 화장터가 있다. 이미 화장된 주검이 1만여 구이다. 화장을 한 뒤 합동 납골당에 모셔진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은 한센인들이 죽으면 강제로 해부하기도 했다. 2일장으로 장례가 치러지는 한센인들의 소망은 토요일에 죽은 것이었다. 일요일에는 의사들이 해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개된 장소인 옛 검시소에 가면 흰 화강암으로 된 수술대가 있다. 이 수술대 위해서 강제로 낙태 수술이 진행됐고, 불임수술도 자행됐다. 섬뜩한 느낌을 주는 수술대는 먼지만 쌓인 채 관광객에게 민낯을 보이고 있다.
» 소록도 중앙공원에 있는 한센인탑
역시 공개된 장소인 중앙공원에는 ‘한센병은 낫는다’는 탑이 한센인들에게 힘이 됐다. 중앙공원에는 한센인들을 위해 40여년 봉사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마리안느 수녀 등 3명의 공적비가 있다.
이제는 일반인과 한센인이 함께 사용하는 부둣가에는 오랫동안 한센인들을 싣고 소록도를 오갔던 배가 전시돼 있다. 수많은 한센인들의 절망을 담고 푸른 바다를 헤쳤던 배는 이제 자신의 온몸을 드러낸 채 과거의 아픔을 바닷바람에 씻어 내고 있다.
소록도/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