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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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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학들이 깨버린 절친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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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 밀양캠퍼스의 점필재연구소에서 응천학당을 맡고 있는 청선 선생 일행과 함께 가야산 문화권의 비석 몇 기를 답사했다. 따라온 제자들의 현장학습에 즉석 합류한 덕분에 불가와 유가의 금석문을 함께 살피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서로 번역 일을 하다보니 선어록에 나오는 이해되지 않는 유가의 글을 가끔 문의했고, 선비들의 문집 속에 나오는 불가의 글을 대신 찾아주는 협업을 오랫동안 함께 해온 사이다.
 출발지는 해인사였다. 사명(1544~1610)대사를 기리는 사당인 홍제암으로 안내했다. 대사의 비석은 두 종류다.  원문은 조선 최고의 문장가라는 소설 홍길동의 저자 허균(1569~1618)선생의 글이고, 번역문은 근·현대 한학의 대가인 임창순(1914~1999)옹이 1979년 번역 요약한 것을 동판에 새겨 가로로 눕혀 놓았다. 한 인물을 기리는 비석이 시대를 달리하며 같은 장소에 한문과 한글로 나누어 건립한 역사성을 지닌 귀한 공간이다. 옛 비석은 일제 강점기 때 인위적으로 파괴하여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나라살림이 펴지면서 발굴하여 다시 복원한 것이다. 임진란이라는 두 나라간의 전쟁감정을 대물림한 증표가 된 비석은 4조각을 이어붙인 자국이 선명하다. 말없이 서있는 금석문에도 알게 모르게 국가적 이해관계에 편승한 인간의 분별심이 함께 작용되기 마련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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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비게이션은 “가야산이 키운 참외의 고장 성주”라는 멘트를 날리며 유교문화권으로 진입했음을 알려준다. 가야산 뒤쪽 들머리의 한강 정구(1543~1620)·동강 김우옹(1540~1603) 선생의 두 비석이 십여 리의 거리를 두고서 각각 사연을 안은 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도로명 주소인 한강동강로가 두 비석 주인의 우정을 현재까지 이어주고 있다고나 할까. 두 어른은 대가면에서 태어났고 몇 살 터울로 함께 자란 고향 동무이다. 흔히 ‘성주의 양강’으로 불린다.
 본래 회연서원에는 두 어른의 위패가 나란히 모셔져 있었다. 하지만 절친이라고 정치적·사상적 노선마저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당시 노론의 영수였던 송시열은 거제도 유배가 풀리면서 올라가던 길에 이 서원에 들러 “두 위패를 동시에 참배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한강 위패만 독배(獨拜)했다”는 말을 굳이 남겼다. 이후 격화된 당쟁은 급기야 두 사람의 위패까지 분리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청천서원을 새로 지었고 분사(分祠)가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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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두 신도비(神道碑: 무덤 곁에 세운 비석)의 비문은 내로라하는 인물들의 글이다. 비문은 본래 대가의 글을 받아오는 것이 불문율인 까닭이다. 하지만 두 비석은 여러 가지 면에서 대조를 이룬다. 동강비는 외형에 공을 들인 아름다운 비석이며 한강비는 내용에 전력투구한 속이 꽉 찬 듬직한 비석이라 하겠다.
 동강비(갈암 이현일 글)는 당대 최고 명필이라는 미수 허목의 글씨를 후손이 한 자 한 자 집자한 것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글씨체의 아름다움에 더욱 신경을 썼다. 그리고 쑥빛으로 된 비신은 오랜 세월동안 세척 과정을 생략해도 이끼 한 점 끼지 않은 채 씻은 듯이 말간 모습을 현재까지 자랑하고 있다. 재료인 돌 선택까지 만전을 기한 까닭이다.
 한강비는 청탁한 원저자(상촌 신흠)의 글을 한 줄 한 줄 살피면서 고치고 또 고친 글이다. 사람은 ‘같이 살아봐야 안다’고 했다. 제자(투암 채몽연)는 스승을 자기가 제일 잘 알고 있다고 믿었다. 비문의 내용을 이렇게 저렇게 고쳐달라고 하는 것은 원저자에게는 엄청난 결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면서 동의와 허락을 받는 수고로운 과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과정을 ‘투암집’(投巖集)에 자세히 남겼다. 청선 선생이 얼마 전 이 문집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그 연유를 보다 자세히 알게 되었노라는 부연 설명을 했다.   
 명필의 글씨를 한 자 한 자 집자하여 비석을 완성한 후손이나 스승의 비문을 꼼꼼히 살펴 내용의 완성도를 높인 제자의 정성은 그야말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난형난제라 하겠다. 
 물 한 방울에도 천지의 기운이 스며 있고 곡식 한 톨에도 만인의 노고가 배여 있는 법이다. 비석 역시 저마다 이런저런 사연을 안고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땅을 딛고 하늘을 이고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저 씩씩하게 서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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