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과세 풍경, 사치세는 물론 창문세, 화덕세까지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태어나 살아갔던 사람들이 행해야 하는 여러 의무 중의 하나도 세금일 것이다. 위 그림에서도 보듯이 그림 속의 남자가 관청으로부터 세금 영수증을 받고선 “이렇게 많이...”라고 읊조리는 듯한 느낌이 그림에서 새어 나오는 것 같다. 시대마다 나라마다 얽혔던 세금 얘기를 간략하게 한번 보자.
로마시대다. 이때는 시민권자는 세금을 내지 않았고 대신에 노예들과 메퇴켄(Metoeken)들만 냈다고 한다. 메퇴켄은 오늘날로 치면 외국인 노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니 당시에 로마에 들어와 일을 하던 이들도 무거운 세금을 내었나 보다.
유럽에서 조금 떨어진 1699년의 러시아 얘기다. 당시에 황제가 “턱수염세금”을 부과했다는데 그 이유는 황제가 남자들이 수염을 깎으라고 명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수염을 기르고 다니자 이들에게 강제로 세금을 부과했단다.
중세 때에는 말, 모피, 그리고 사치스런 옷과 고가의 보석 등에도 무거운 과세를 매겼다. 이런 사치품 과세에 대한 얘기는 중세에 잘 알려져 있고, 심지어 개인이 모피 소유 개수를 제한하는 시대도 있었다. 화려하고 값비싼 그릇조차도. 그리고 건물의 창문 숫자로도 세금을 매겼다. 바같 쪽의 창문을 세어서 그 숫자만큼 세금을 매기자 세금 안 내려고 창문을 정원 쪽으로 많이 달았다고 한다. 이 창문세는 프랑스에서는 1798년부터 100년 가까이 유지했었고, 스페인은 1910년까지, 영국에서는 1696년부터 1851년까지 존속했다가 소멸되었다지만 그 대신으로 아궁이 화덕세를 매겼다고 한다. 이 세금을 걷기 위해 관리들이 집집마다 방문을 했다는데 오늘날 가스 검침 다니는 방법과도 좀 유사하겠다.
근데 중세 때는 에르케어(Erker)라는 것이 있었다.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중세의 대저택을 보면 바깥으로 뚝 튀어나오게 단 것인데 이것은 대개가 변소 역할을 하였다. 여기에도 세금을 물었단다. 이유는 바깥으로 튀어나온 만큼 시의 영역을 차지했다는 거다. 물론 유사한 세금인 건물의 발코니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한다. 아마도 오늘날 같으면 환경오염 문제로 세금을 매기지 않을까? 왜냐면 위에서 대소변을 보면 바로 밑에 특별한 장치가 없는 한 그대로 땅에 다 떨어졌기에 누가 뒷정리를 할까?
슈멜더러스 교수에 의하면 어떤 지방에서는 ‘살인과세’도 있었다. 살인한 범인을 잡으면 세금을 안 내어도 되었지만 사람들이 범인을 잡지 못할 경우는 시민들에게 과한 세금을 부과했다. 살인자를 잡는데 모든 이들이 합심하라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사람들은 세금을 안 내기 위해서 살인범인 잡기에 혈안이 되었을 것 같다.
슈멜더러스 교수의 언급에 의하면 독일 같은 경우는 1918년까지 3가지 유형의 세금이 있었다고 한다. 한 지역에서 많은 세금을 내는 자들은 공적인 투표에서 3표의 권리행사를 할수 있었고 그 밑에 속하는 부류들은 두 표 행사했다. 세금이 적거나 수입이 없어서 못 내는 자들은 단지 한 표만을 행사했는데 가장 많은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독일에서 세금정산 서류는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언젠가 아인슈타인도 이 독일 세금 서류가 너무 복잡해 세무사에게 맡겼다는 말을 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해가 갔다. 복잡한 이런 세금 서식을 가지고 누구에게나 철저하고 공평하게 세금을 매긴다는 것을 직접 독일에서 체험했다. 연필 한 자루를 사도 세금 계산서에 첨부하고, 집주인이 집을 세놓을 때 세입자들에게 집을 보여 주기 위해서 차에 쓴 기름값도 세금에서 삭감해주는 등등, 상세하게 쓰기엔 너무 긴 얘기인지라 여기서 그치기로 한다. 단지 한마디, 투명하게 벌어서 철저하게 세금을 내다보니 정말 이들은 1유로로 발발 떨 정도로 돈의 가치를 아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