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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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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세계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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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미국 서부지역의 유타라는 곳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저녁 때가 되어 식당에 갔는데 백인 엄마 아빠와 나란히 앉은 자녀들의 생김새가 암만 봐도 한국 아이들이었습니다. 그 식당에는 다른 미국 손님들도 세 가족쯤 있었는데 모두 한국 아이를 자녀로 두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 미국 국무부가 발표한 ‘연례 국제입양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에서 미국으로 아동을 입양 보낸 국가 1위가 대한민국입니다. 2위는 필리핀, 3위는 우간다, 4위는 인도, 5위가 에티오피아입니다.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들에 비해 훨씬 잘살고 있는 오늘날에도 해외입양 1위를 하고 있으니, 정말 부끄러운 세계 1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 아프리카 잠비아를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잠비아의 80만 평 땅에 농장을 꾸미고 소와 닭, 돼지도 기르고 옥수수밭과 감자밭도 일궜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난 3년 동안 10억 원 정도를 썼는데, 사람들은 제가 있는 평창 생태마을로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뭐하러 아프리카까지 가서 봉사하냐구요?

“우리나라에도 도와줄 사람이 많은데, 뭐하러 아프리카까지 가서 봉사합니까?”
요즘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의 오지에 나가 봉사하는 이들이 한결같이 듣는 말입니다.

1950년대 우리나라는 지금의 아프리카 나라들보다도 못살았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에 1인당 국민소득이 67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 배고픈 시기를 다른 나라의 원조로 겨우 버텨냈습니다. 그러던 우리가 2015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7,300달러입니다.
해외원조.jpg» 아프리카 어린이. 사진 핀터레스트
이 정도 살게 되었으면 우리보다 못한 나라에 나눠주는 건 당연합니다. 이것이 바로 양심 있는 인간이 할 일입니다. 세상 살아가는 데는 도리라는 게 있습니다. 기업인으로서의 도리, 직장인으로서의 도리,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사람다운 도리가 무엇인지 잊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들만 모여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가난한 나라를 돕는 데 가장 인색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해외입양도 세계 1등인데, 남을 도와주지 않기로도 세계 1등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여기다 보태서 또 다른 1등이 있습니다. 이기주의가 바로 그것입니다.

동창 모임에 갔다가 사회복지 시설을 운영하는 신부님한테 기가 막힌 얘기를 들었습니다. 서울 중심가에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작업장 건설 계획이 발표되자 주민들이 반대했답니다. 우리 동네에 쓰레기 처리장이 들어오는 한이 있어도 지적장애인 작업장만은 결코 안 된다고 했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우리 동네에 핵시설은 들어와도 지적장애인 시설은 절대 안 된다고 목청을 높였다고 합니다. 남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져 사회 적응이 어려운 사람들의 자립을 팔 걷어붙이고 도와줘도 모자랄 판에, 머리에 띠 두르고 결사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국 돈 때문입니다.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나보다 약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차별하는 이기적인 국민이 되었을까요? 사람의 도리를 포기하면서까지 돈만을 좇는 경제동물이 되어버렸을까요?

월급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라고 한다면?

북유럽에 있는 핀란드라는 나라의 건국이념은 ‘나눔’입니다. 한국과 비슷한 역사의 길을 걸어온 핀란드는 12세기 중엽부터 18세기까지 650년 넘게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고, 그 후 다시 러시아의 땅이 되어 100년 넘게 지배를 받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야 겨우 독립했습니다. 

이들은 독립을 이룬 다음, 어렵게 세운 나라를 어떻게 아름답게 꾸려나갈 것인지를 의논했습니다. 그때 핀란드 국민들이 세운 건국이념은 콩 한 쪽도 나눠 먹자는 나눔의 정신이었습니다. 그렇게 가난할 때부터 나누기 시작한 핀란드는 국민소득이 5만 달러에 이르는 지금까지도 잘 나누며 살고 있습니다. 나눔의 실천이야말로 핀란드를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 삶의 질 지수가 제일 높은 나라로 만든 원동력입니다.

핀란드는 대학까지 무료급식은 물론 무상교육입니다. 기숙사도 공짜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대학생들에게 한 달에 43만 원씩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사실입니다. 석사과정, 박사과정까지 계속 공부하겠다고 하면 전부 무료입니다. 만약 일하다가 실직을 하면 2년 동안 실직수당을 주고, 구직을 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줍니다.
핀란드.jpg» 핀란드. 사진 핀터레스트
핀란드처럼 무상교육이나 실직수당 같은 복지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당연히 세금입니다. 핀란드에서는 700만 원 정도 월급을 받으면 절반이 약간 안 되는 320만 원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 합니다. 어렵게 일해서 벌어들인 돈의 절반을 세금으로 낸다니,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핀란드 국민들은 기꺼이 세금을 냅니다. 콩알 한 쪽도 나눠 먹자는 건국이념에 따라 어려운 이웃을 위해 가진 재물을 기꺼이 나누는 핀란드는 결국 ‘국민행복지수 세계 1위’라는 성적표를 거머쥐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등록금 때문에 대출금을 껴안은 채 빚쟁이가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합니다. 이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무료로 제공하기 위해 어른들에게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한 달에 700만 원을 버는 사람에게 320만 원을 세금으로 걷겠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아마 모두들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결사반대를 외칠 것입니다.

비슷한 역사적 상처를 안고 오늘에 이른 두 나라가 하나는 ‘나’만을 위한 사회를 고집하고 있는 반면에, 또 다른 하나는 전체 국민이 더불어 잘사는 사회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정치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아니라 나눔과 배려, 관용과 헌신이라는 가치를 생각하는 인식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언제쯤 그런 고귀한 가치들을 일상의 습관으로 행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요? 없는 자들에게 함부로 으스대는 사람이 없고, 나보다 못하다고 차별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 늦기 전에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까지도 따듯이 껴안아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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