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천주교가 이 땅에 들어왔을 때는 종교가 아니라 천주학, 서학이라는 학문의 이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조선시대 일부 양반계층만이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양반과 왕을 옹호하는 성리학이 학문의 주류를 이루었는데, 몇몇 학자들이 천주학을 찬찬히 살펴보니 성리학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과학기술, 지리, 천문 같은 신지식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이에 큰 충격과 함께 신세계를 발견한 듯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만난 것이 바로 천주교였습니다. 그들 중에 이승훈이라는 사람은 직접 청나라로 건너가 서양인 신부한테 세례를 받기까지 합니다. 어느 민족도 한 사람의 사제도 없이 자생적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인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교황청에서도 조선의 천주교 전래를 아주 예외적이고 특별한 일로 바라봅니다. 1830년대에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조선 천주교가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스스로 발전한 사실에 감동하여 중국 북경 교구에 조선 교구를 만들어주고 주교를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기존 질서에 안주하면서 세상이 변화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판국에 다산 정약용과 그의 형제인 약종, 약전, 그리고 이벽을 비롯한 몇몇 양반들은 서학을 접하다가 천주교가 조선 사회에 획기적인 변화를 요구하며, 조선은 이에 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대체 서학에 빠져든 양반들은 천주교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요? 그들은 만인 앞에 모두가 평등한 사회, 서로가 서로를 섬기고 존중하며 서로의 삶을 나누는 사회가 천주교를 통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들 가슴속에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기에 그것을 볼 수 있는 눈과 귀가 열렸습니다.
» 명동성당. 한겨레 자료 사진.200년 전 어느 날, 지금의 명동성당 자리에서 교인들이 모임을 가졌습니다. 양반과 소위 상놈이라 불리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주인님’이 아니고 ‘형제님’, ‘자매님’으로 부르는 새로운 세상을 열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느님의 아들과 딸 자격으로 만난 것입니다. 얼굴도 똑바로 못 보던 양반들과 무릎을 맞대고 한 방에 둘러앉아 친교를 이루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죽고, 안동 김씨들의 막강한 세도정치 시대로 돌입할 때였습니다. 열한 살 어린 나이에 즉위한 순조 임금을 제대로 보필하기는커녕 탐관오리들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잔혹한 학정과 수탈을 일삼으며 나라를 벼랑 끝으로 내몹니다.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밑바닥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백성들에게 천주교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었습니다. 천주교 교리를 알게 되면서, 그들은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나는 원래 개돼지만도 못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 천주님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니, 나도 소중한 존재로구나.”
“천주님 앞에 모두가 평등하니 나만 바르게 살면 나도 천주님 품 안에 들어갈 수 있겠구나.”
지옥 같은 세상이라도 나를 귀하게 여겨주는 천주님이 계시다니 겁날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죽음도 불사하고 천주교를 선택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천주교는 양반사회의 일부 선각자들을 넘어 조선 팔도 방방곡곡의 평민과 천민에게까지 무서운 속도로 파급되었습니다. 천주교는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펼쳐준 것입니다.
이렇게 들불처럼 퍼져나간 천주교는 세도가들에게는 큰 위기이기도 했습니다. 천주교가 살아 숨 쉬는 사회에서는 양반들이 큰소리 칠 자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금수만도 못한 존재로 여겼던 천민과 형제라고 부르며 동등한 위치가 된다니 이해할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천주교 신자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이고 핍박하기 시작합니다.
죄인을 고문하는 방법 중에 ‘주리를 튼다’는 게 있습니다. 어린 시절 과수원에서 서리하던 아이들을 붙잡고는 주인아저씨가 ‘주리를 틀겠다!’며 화를 내는 모습을 기억합니다. 주리를 튼다는 말은 원래 ‘전도주뢰(剪刀周牢)’라는 말에서 유래했는데, 양 발목과 양 무릎을 동여매고 정강이 사이에 두 개의 긴 몽둥이를 어긋나게 끼워 양어깨가 맞닿을 때까지 비트는 형벌입니다. 이 고문을 당하면 천하장사라 해도 다리뼈가 부러져서 걷지 못합니다. 더구나 생사람 다리뼈를 부러트리는 것이니 얼마나 고통이 심했겠습니까?
오늘을 사는 크리스천이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천주교를 믿지 않겠다는 단 한 마디만 하면 풀어준다는데, 잡혀온 사람들은 누구라도 이런 벌을 받아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60년 넘는 세월 동안 수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오로지 신앙 하나만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칩니다. 신앙의 힘은 그렇게 눈물 나도록 엄중한 것입니다.
이들이 나이와 성별, 신분과 과거 행적을 뛰어넘어 그토록 결사적으로 신앙을 지켜낸 것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나 높고 낮음 없이 평등하고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에 눈을 뜨고, 만인이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아끼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하느님나라에서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200년 전 우리의 신앙 선조들이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었던 ‘상호 존중 DNA’인데, 오늘의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모습입니까? 200년 전 그때 천주학을 처음 접했던 선각자들은 만인이 저마다 자기 자신의 삶을 힘껏 껴안아줄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단지 그것만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눌 줄 아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마음을 합치기를 기도했습니다.
» 천주교 대구교구 , 안동교구 및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등 3개 기관의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가 18일오전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성베네딕도회 수도원 대성당에서 '동북아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생명평화미사'를 마친 뒤 참석자들이 미군부대가 있는 왜관읍 캠프 캐롤 정문까지 평화 행진을 마치고 사드 한국 배치를 촉구하고 있다 칠곡/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저는 이것이 오늘을 사는 크리스천들이 잊지 말아야 할 최고의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돈이나 힘으로 만들어진 가짜 행복이나 혼자만 배부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관용, 나눔, 배려, 이해, 양보, 용서 같은 따뜻한 말들이 일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뜻을 모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