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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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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관운장 사당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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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동묘(東廟)는 고요하다. 땅바닥에는 붉은 배롱나무 꽃잎 몇 개가 점점이 떨어져 있다. 아침 빗자루질을 용케도 피해갔다. 아니 비질하다 말고 일부러 남겨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재각이나 무덤 주변에서 만난 배롱나무 꽃에는 알 수 없는 처연함이 있다. 하지만 가로수나 정원에서 만나는 배롱나무 꽃은 화려한 자태를 맘껏 뽐낸다. 같은 나무인데도 이처럼 서있는 위치에 따라 상반된 느낌으로 와 닿는다. 배롱나무의 두 얼굴이다. 고층 아파트와 신작로에 둘러싸인 도심의 벽돌 기와집 사당에서 만난 꽃은 처연함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려하지도 않았다.
 중년의 중국인 부부가 참배를 왔다. 바깥양반은 본전 정면에서 정성스럽게 오랫도록 합장을 했고 안주인은 멀찌감찌 뒤쪽에서 두 손을 모은 채 공손하게 서있다. 한동안 지켜보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편다. 무신(武神)을 찾은 것일까? 재신(財神)을 찾은 것일까? 아마 재물신을 찾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것일까? 한국에 정착한 화교일까? 아니면 그냥 단순 관광객일까? 이른 아침에 부부가 정장차림으로 일부러 들른 것일 터니 유커(遊客) 같지는 않다. 믿는 사람이 없다면 결국 신도 죽는다고 했던가. 여전히 서울 한복판에서 살아있는 무신과 재신을 겸한 ‘소설삼국지’ 영웅인 관운장을 현재진행형으로 만난 것이다.
 관운장 사당은 임진란의 흔적이었다. 전쟁이란 승패를 떠나 그 자체가 이미 두려움이다. 모든 물정이 낯선 압록강 너머 남의 땅에서, 현해탄을 건너온 생면부지의 왜군과의 싸움은 명군에게 몇 배의 불안감을 주었을 것이다. 이것이 중국 무신(武神)을 조선 땅에 분사(分祠)한 이유이다. 영험이 있었던지 전쟁은 끝났다. 얼기설기 임시로 만들었던 사당은 정식으로 규모를 갖추었다. 말에서 내려 예의를 갖추고 들어오라는 하마비(下馬碑)와 잡스러운 행동을 하지 말라는 ‘금잡인(禁雜人)’ 표지판이 당시의 엄숙함을 전하고 있다.
 건립 이후 인근 종로를 무대로 대궐에 납품하던 상인들과 지방에서 오가는 보부상들은 동묘에 들러 기도했을 것이다. 삼천리에 걸친 험한 산길을 오가며 발생할지 모르는 모든 위험에서 안전은 물론 재물까지 지켜주길 부탁했다. 가게를 열기에는 힘이 부친 장사꾼들은 청계천 언저리에 좌판을 열었다. 내 가게를 꿈꾸며 손님이 뜸한 시간을 골라 소원을 빌며 들락날락하던 모습을 그려본다. 현재 동묘 주변의 벼룩시장에는 헌책가게ㆍ만물상회ㆍ구제품 옷가게 등에서 쌓아놓은 물건들이 골목골목마다 빼곡하다. 사잇길에는 가난한 지방상인들의 상경생활을 돕기 위한 여관과 여인숙도 보인다. 손님을 부르는 소리와 크게 틀어놓은 스피커 음성과 담장 둘레길의 차 소리가 서로 어우러져 사람 사는 냄새로 가득하다.
 관운장의 무덤인 뤄양(洛陽)의 관림(關林) 주변도 매달 3일 큰 시장이 열렸다고 한다. 그를 기억하는 산시(山西)성 고향 상인인 진상(晉商)들이 기일(忌日 )삼아 매달 장터를 열었던 것이다. 진(晉) 땅 출신이지만 지연에 관계없이 모든 이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향토를 빛낸 인물인 관운장은 그들의 우상이었다. 고향에는 해지(解池)라는 큰 소금연못이 있었다. 셀러리맨의 셀러리 어원이 소금이다. 월급을 소금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그 시절 소금은 금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을 만큼 귀한 물건이었다. 소금전매 상인으로서 상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가는 곳마다 관운장의 사당을 세우고 안녕과 부귀를 동시에 기원했던 것이다.      
 사람들의 이기심은 무신과 재신을 필요에 따라 다른 역할로서 불러냈다. 어떤 때는 무신으로, 어떤 때는 재신도 되어야 했다. 그야말로 두 얼굴의 남자다. 이런 자비심이야말로 지역과 직업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아우르는 힘의 바탕이 된 것이다. 지금도 군사적 긴장과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특징 때문에 무신과 재신이라는 동시역할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며 이역만리 객지에서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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