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는 그냥 일상…미국에선 소방관이 인기 1위
링컨 “비천한 직업은 없다. 비천한 사람만이 있을 뿐”
» 소방관. 사진 픽사베이.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소방관들의 삶을 조금 들여다보면 이 말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됩니다. 지난여름 알래스카에 강의를 갔다가 운 좋게도 캡틴이라 불리는 소방관 팀장님 집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인기 있는 직업 1위가 소방관이라는데 실례지만 소방관 초봉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대답은 이랬습니다.
“소방관이 되기 위한 18개월 훈련 기간에는 연봉 4,000만 원 정도이고, 훈련을 마치고 정식 소방관이 되면 6,500만 원을 받습니다.”
우리나라 소방관은 기본 훈련을 받고 정식으로 임명된 후 받는 첫 월급이 140만 원 정도입니다. 조금 경력이 쌓여도 연봉이 3,000만 원 내외밖에 안 되는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에 온몸을 던지며 자신을 희생하는 분들에 대한 대우치고는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허구한 날 쌈박질만 일삼는 국회의원들 연봉을 생각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으나 소방관들에 대한 처우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소방관 제도는 좀 특이해서 은퇴 한 뒤에도 다시 소방관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흔한데, 그럴 경우 팀장급 소방관이 받는 연봉은 1억 2,000만 원 정도입니다. 미국 경찰도 웬만한 위치가 되면 대부분 연봉 1억 원을 상회합니다. 이렇게 소방관, 경찰관, 군인처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에 10년 이상 근무하면 1억 원이 넘는 연봉을 제공합니다. 아무리 국민소득에 차이가 있다고 해도 우리와 너무도 큰 차이가 나는 것은 그분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차이 탓일 것입니다.
그에 반해 국회의원의 처우는 미국과 우리나라가 굉장히 다릅니다. 미국은 1인당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의 약 3배 수준으로 세비를 받지만, 우리나라 국회의원 세비는 약 5배 수준이나 됩니다. 여기에 더해서 별도로 지원 경비로 받는 돈이 연간 약 5억 6,220만 원입니다. 또한 KTX나 비행기를 타고 나서 비용을 청구하면 국가에서 따로 지급을 해줍니다. 소방관은 화재현장에서 자신의 생명을 던져 남의 목숨을 구하는데 허구한 날 쌈박질만 일삼는 국회의원은 억대 연봉에 별의별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잠비아에 있을 때, 한 수녀님이 20여 년 전에 독일 유학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수녀님은 장애인시설에서 일을 했는데 그곳에서 심리 상담을 맡고 있는 여교수가 항상 그곳 소속 운전기사를 기다려 함께 퇴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둘 사이가 궁금해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부부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수녀님이 당사자한테 물었답니다.
“당신은 교수인데, 남편은 운전기사입니까?”
그녀는 자기 남편은 운전하는 걸 좋아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아내가 대학교수인데 남편이 같은 직장에서 노란색 승합차를 몰고 있다면 어떨까요? 아내는 남편에게 당장 그만두고 그냥 자기 월급으로 살자고 할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고정관념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수녀님의 독일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 장애인시설에 일하는 청소부 아주머니가 동양에서 온 수녀님을 자기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하더랍니다. 초대를 받고 찾아간 집이 대궐같이 으리으리하여 이 집에서 셋방살이를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잠시 후 평소와 다르게 우아한 옷차림으로 나타난 청소부 아주머니가 놀란 표정을 짓는 수녀님에게 말했습니다.
“사실 제 남편은 철도청장인데, 저는 그곳에서 청소하는 일이 너무 즐거워서 계속하고 있는 거랍니다!”
대학교수의 남편은 장애인시설에서 운전기사로 일하고, 청소부로 일하는 여성의 남편은 철도청장이라는 사실은 독일 국민들의 직업관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비천한 직업은 없다. 비천한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독일 사람들에게는 상식적이고 평범하게 들릴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직업과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우리나라 정서에서 링컨의 말은 긴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남들의 눈에 귀하다고 생각하는 직업을 갖고도 비천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저급하고 비열한 뉴스를 볼 때마다 왜 우리나라에는 유독 그런 사람이 많을까 생각해봅니다. 멀리서 그 이유를 찾을 것도 없습니다. 남들과 경쟁해서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행복하다고 믿고, 인간다운 따뜻한 품성을 쌓는 일에는 게을리했기 때문입니다.
10년 전 우리나라 대학 입학생은 1년에 60만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이 되면 이 숫자가 딱 절반인 30만 명으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때가 되면 필경 대학교 숫자도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고 그리되면 현직 교수 중 상당수가 실직자가 될 것입니다.
어렵게 공부 마치고 직장을 찾지 못해 놀고 있는 박사, 교수들을 심심찮게 만납니다. 얘기를 들어보면 그냥 쉬고 있는 의사와 변호사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돈 때문에 사기를 치다가 붙잡힌 변호사도 있고, 돈에 눈이 멀어 엉뚱한 수술을 하다가 의료사고를 일으키는 의사도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학교 다닐 때 수재 소리를 듣던 사람들입니다.
평창 생태마을에서 얼마 전 신입직원을 채용했습니다. 자격은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입니다. 대학교나 대학원 졸업 예정자도 지원할 수 있지만 채용 후 그들을 우대하지는 않습니다.
학벌에 상관없이 생태마을의 첫 월급은 모두 똑같습니다. 여기서는 그저 성실하고 품성이 좋은 사람이면 충분할 뿐 명문대학 졸업장은 굳이 필요 없습니다. 지금까지 생태마을에는 직원이 100명 넘게 거쳐 갔는데, 가만히 보니 부모님 사랑을 받으며 가족들과 화목하게 성장한 사람들이 결국 꾸준하고 성실하게 일도 잘하고 진급도 빠릅니다.
그들의 편안하고 행복한 표정을 보며, 이제는 공부 잘한다고 살아남는 세상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행복의 조건으로 학벌, 돈, 출세, 자동차, 회전의자 같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사랑, 배려, 기쁨, 만족, 감사 같은 따뜻한 말들이 등장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용접하는 사람, 나무 잘 기르는 사람, 포클레인 운전하는 사람, 요리 잘하는 사람, 청소 잘하는 사람이 행복한 세상이 오는 겁니다.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고 적성에 맞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성공시대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