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애 시절의 박근혜 대통령과 영세교 교주 최태민
인도 북동부를 흐르고 있는 갠지스강 지역은 기원전 6세기에 이미 화려하게 문명이 꽃을 피운 곳이다. 갠지스 강가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콜리야 부족이 살고 있었다. 콜리야족은 석가족 사람인 붓다와는 아주 가까운 사이다. 어머니인 마야부인과 출가하기 전 아내였던 야소다라가 콜리야족이기 때문이다. 이런 콜리야족 마을에 붓다가 찾아왔다. 그러자 마을 우두머리가 한달음에 찾아왔다. 그는 평소 궁금한 것이 꽤 많았던 모양인데 온갖 것을 다 묻더니 결국 이런 질문까지도 풀어놓았다.
“이 세상에는 종교 지도자들이 참 많습니다. 그들이 펼치는 교리도 아주 다양합니다. 저마다 자신들의 가르침을 믿고 따라야 복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붓다여, 대체 이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 가운데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까? 그걸 좀 밝혀주십시오.”
지금으로부터 2600여년 전의 인도 땅에는 그야말로 종교와 철학이 흘러넘쳤다. 브라만 신을 믿고 제사를 올리는 브라만교를 비롯해서, 사문이라 불리는 자유로운 사상가들이 너도나도 각자의 주의주장을 펼치고 다녔다. ‘도덕과 종교와 윤리는 필요 없다’, ‘닥치는 대로 살자’, ‘인간은 그저 원소의 결합에 지나지 않는다’, ‘전생에 딱 정해진 것만큼만 살아갈 뿐이다’, ‘물 마시고 숨 쉬는 것도 죄짓는 일이니 고행해야 한다’….
이들은 이렇게 외치며 사람들의 공양과 존경을 구했다. 종교인들을 극진히 섬기고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아낌없이 바쳐야 복을 쌓는다고 굳게 믿던 인도 사회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헷갈렸을까. 서로가 자기주장만 옳다고 외치며 다른 사상은 틀렸다고 외쳐댔으니 말이다. 이런 판국에 한 마을의 촌장이 붓다에게 대놓고 “대체 무엇이 바른 종교인가? 어떤 종교인을 믿고 따라야 하는가? 누구를 믿어서는 안 되는가?”라고 물었던 것이다.
붓다는 아주 간단하게 의견을 내놓았다.“그런 것 따지지 말고 이런 것부터 한번 직접 해보시지요. 살아 있는 생명을 해치지 말고, 주지 않는 것은 빼앗지 말며, 그릇된 이성 관계를 맺지 말며, 거짓말을 멈추고, 이간질도 하지 말고, 거친 말과 과장되게 꾸며서 하는 말을 멈추어 보십시오. 그리고 욕심과 증오와 그릇된 견해를 마음에서 덜어내십시오. 나아가 세상을 향해 우정 어린 마음을 품어보십시오.”
어떤 종교를 믿어야 할지 정답을 구하는 사람에게 들려주는 붓다의 대답은 좀 엉뚱하다 싶다. 하지만 붓다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만약 당신이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당신은 이미 확실한 행운의 주사위를 쥔 셈이 됩니다. 날마다 스스로를 잘 다스렸다는 행운과, 다음 생에도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행운입니다. 설령 그 어떤 종교인이 그 어떤 주의주장을 설파한다 하더라도 그에 상관없이 당신의 행운은 확실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해지려고 신앙생활을 한다. 그런데 교주를 믿고 교리를 받아들이는 신앙생활의 출발은 윤리다. 스스로 도덕적으로 반듯하게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영생이니 현몽이니 구원이니를 들먹거리는 종교인의 주장이 필요하지 않다. 이미 그에게서 진리가 실현되고 있으니 말이다.
시국이 어수선하다. 사이비 종교의 교주도 문제고 거기에 마음이 빼앗겨버린 이도 문제다. 그러려고 종교가 생겨난 건 아닌데 말이다.
이미령 불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