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왜 공동체인가
타이 아속
3.이윤을 포기하고 부자가 된 사람들
4.현대판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다
인도의 오로빌
5.자기로 살면 누구나 천재가 된다
미국 브루더호프
6.돈 없이 최고급리조트에서 살아보기
7.공부보다 청소와 요리에 더 열심인 아이
8.뒷담화 말고 앞에서 솔직하게 얘기하라
일본 애즈원
9.인간과 사회 탐구, 제로에서 시작한다
10. 아무도 명령 하지않는 일터에서 일하다
일본 야마기시
11.못난이도 잘난이도 함께 살아가는 곳
» 시사아속 공동체 안 숲에서즐겁게 일하는 아속의 학생들
» 논에 거름을 섞는 작업을 하는 학생들
명절에 모든 식품을 단돈 30원에 파는 사람들
밑지는 장사는 다 거짓이라고?
밑지거나 거저도 주는 장사를 선호
원가와 판매가 차이 최소화가 최선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아속공동체
어른과 아이들이 어우러지는
아속의 일터는 곧 놀이터
누구도 일하기 싫은 내색없고
만드는 것은 모두 생활필수품
쓰고 남은 건 이웃과 나눠
직영 마트에 멀리서 온 손님들
“이윤 적을수록 영적 이득”
적게 벌어 적게 쓰는 경제 철학
공동체 밖으로 공감 늘면서
금융위기땐 농민교육의 장으로
아속은 환희라는 뜻이다. 특히 ‘고통이 없는 상태’의 환희다. 몸이 아프면 배부른 돼지가 되긴 어렵다. 괴롭기에 자신을 철학하게 된다. 그런데 환자는 나만이 아니다. 세상이 아프다. 그러니 물을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은 이토록 발전하고 마천루가 치솟고 물건이 넘치고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데, 정작 다수는 지하 독방에 갇힌 죄수처럼 부자유스럽고 어둡고 괴로운 것일까.
마르크스는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자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주창했는데, 왜 그 혁명을 했다고 외치는 곳조차 스탈린이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같은 국가주의 독재자들이 군림하는 암흑이 된 것일까.
지구상에서 매일 3만7000명씩이 굶어 죽어가는데도, 소수 권력자와 부자의 욕망만은 암처럼 무한성장하는 것일까. 인간의 욕망은 어떤 정치체제와 법으로도, 어떤 도덕과 종교, 어떤 투쟁으로도 끝내 초월할 수 없는 것일까. 하지만 이런 물음엔 메아리마저 없다.
‘어차피 세상은 그런 것 아니냐’며, 부서지고 깨어진 상처를 안고 현실 도피를 위해 공동체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모순을 자각하고, 암흑 속에서도 가슴속에 타오르는 등불 하나만은 결코 꺼뜨릴 수 없어 공동체를 찾고 만들어가는 이들도 있다.
공동체는 그런 ‘이상’ 없이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이상’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공동체에서도 먹고, 입고, 자야 한다. 그런데 많은 공동체가 중도에 파산한 것은 갈등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식주 같은 문제를 해결할 현실적 능력이 없어서기도 하다. 그러니 공동체도 이윤 창출이 필요하다.
시사아속 게스트하우스 2층에서 내려다보면 건너편엔 허브약들을 만드는 간이공장들과 그 약들을 파는 가게가 나란히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와 허브공장 도로 한켠엔 어디선가 줄기째 잘라온 꽃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장미처럼 줄기에 가시가 달린 빨간 꽃이다. 도로엔 줄기에서 잘라 햇볕 아래 널어놓은 선홍빛 그 꽃들이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앞엔 아침이면 학생들이 대여섯명씩 와서 꽃을 자르는 작업을 했다. 아이들과 어울려 나도 꽃을 자르다 보니, 그곳이 첫 일터가 되었다. 줄기에 달린 가시에 찔리지 않게 조심만 하면, 일은 어려울 게 없었다. 아이들은 아침에 2시간가량 수다를 떨며 그 일을 하고 돌아갔다. 그러면 허브공장의 아주머니 몇분이 와서 대체했다. 그들도 동남아시아 특유의 여유가 있었다. 이런 목가적인 일터는 아이들의 출입이 금지되는 외부 공장들과 달리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 아이들은 일하는 엄마 주위에서 친구들과 뛰어놀았다.
며칠 뒤엔 분위기를 바꿔 허브세제를 만드는 곳에서 일해보았다. 샴푸를 플라스틱병에 담고 라벨을 붙이는 일이었다. 몇번 해보니, 속도가 붙어 한나절에 할 일을 두 시간 만에 끝냈다. 그러면 그들은 새 일감을 가져오지 않고, 이제 쉬어도 좋다고 했다.
» 타이에서 유토피아로 떠오르는 아속» 맨발로 청소중인 조현기자» 허브샴프에 상표를 붙이는 조현기자
시사아속엔 유치원과 초등, 중고등, 기술학교 등 3개의 학교가 있다. 유치원과 초등학생들의 대부분은 이 공동체에서 사는 집의 아이들이다. 그러나 중고등학교와 기술학교 학생들의 대부분은 외지에서 왔다. 학비만이 아니라 먹고 입고 자는 것 일체를 공동체에서 해결해준다. 하지만 이들이 거저 먹는 것은 아니다. 시사아속 내엔 여러 개의 작은 공장들이 있다. 공동체 안뿐 아니라, 차로 10~20여분 거리에 여러 개의 농장들까지 있다.
40명 안팎의 중고등부와 기술학교 학생들도 많은 일을 했다. 공부를 위해 아예 일엔 열외인 한국의 아이들과는 너무 달랐다. 새벽이면 유치원생들까지 비를 들고나와 거리를 쓸거나, 공용 강당과 화장실을 청소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서 일을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 비결은 무엇보다 노동을 강제하지 않는 데 있는 듯했다. 공동체 외곽의 논에서 볏짚을 거름으로 뿌릴 때였다. 서너명의 아이들은 볏짚을 싣고 카레이서처럼 논을 질주했다. 다른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차로 싣고 온 볏짚이 흙과 섞이도록 곡괭이로 긁었다. 어떤 아이들은 볏짚을 친구에게 뿌리며 서로 뒤쫓고 뒹굴고, 어떤 아이들은 서서 수다를 떨고, 한 아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나 다른 아이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일하는 사람은 최선을 다했지만, 어떤 아이들은 놀 자유를 만끽했다. 아이들은 대강당에서 수업도 놀이처럼 했다. 교실엔 웃음과 소음이 진동했다. 공동체 가장자리엔 드럼과 기타, 북 등을 갖춘 야외 음악실이 있었다. 아이들은 자주 그곳에 모여 ‘신기’를 발산했다. 한국의 많은 아이가 새장에 갇힌 새라면, 이들은 스스로 살아가고 즐기는 법을 배우는 숲 속의 새들 같았다.
모든 공동체원들이 자유분방한 건 아니었다. 하루 한끼만 채식을 하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스님들과 독신 ‘수녀’들이 있었다. 한번은 학생들이 농장에 간다고 해서 20여명의 수다객과 동승해 가보니, 교장 선생님이자 ‘수녀’인 아수가 큰 밭에서 홀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 말 없는 실천적 삶이 아이들의 모델이 되어주고 있었다.
촌장 격인 아뻠이나 아수는 출가 비구니가 아니었고 유니폼을 입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맨발로 다니며,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일을 했다. 그런데도 내가 두 시간 이상 쉬지 않고 일을 하면 아뻠은 가만히 다가와 “힘들지 않으냐”며 “쉬고 싶을 때는 언제든 쉬어도 좋다”고 말해주었다.
시사아속 정문 옆엔 대형마트가 있다. 시사아속이 운영하는 곳이다. 시사아속에서 생산하지 않는 의류나 생필품들도 판매된다. 마트 옆엔 우리나라 시골 오일장 같은 장이 있다. 아속에서 생산된 채소 등 농산물을 주로 판매하는 곳이다. 시골의 읍이나 면 소재지도 아닌 곳인데도 이곳 마트엔 멀리서까지 손님들이 찾아온다. 가격이 워낙 싸기 때문이다. 큰 마트도 가지고 있고 장사도 잘되니, 이 정도면 공동체원들이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바톰아속 정문 옆에 있는 아속의 슈머마켓. 이 건너편엔 아속의 초대형마트도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아속의 경제 철학이 ‘이윤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사를 하면서 이윤을 남기지 않는다니, 이상치고는 너무나 허황해 보였다.
아속공동체는 ‘부니욤 네트워크’로도 불린다. 그들의 경제 원리가 ‘부니욤’(공덕주의)이다. 공덕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선행이다. 종교조차 ‘공덕 없이도 단박에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느니 ‘선행 없이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는 신념이 대세다. 각 종교에선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인간의 이기적 욕망에 편승하는 논리다. 성인은 운명을 아는 것을 넘어 운명을 만들어간다고 한다. 이기적 욕망의 약육강식만이 지배하는 세상은 지상천국이 아닌 지상지옥이 될 게 뻔하니, 선의를 가진 자라면 서로 돕는 공덕과 선행을 확산시키는 게 당연하다.
아속창시자 포틸락스님이 설법중에도 장난을 치고 노는 아이들, 매일 새벽 청소를 함께하는 어린 아이들, 시사아속 숲에서 일하던중 장난스레 포즈를 취한 여학생들.
공동체란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로부터 시작된다. 사람뿐 아니라 태양과 공기와 물과 농산물과 다른 존재들의 은혜가 없이는 한순간도 생명을 이어갈 수 없다. 그래서 혼자만의 깨달음, 혼자만의 구원은 공동체적 상생 원리에 반한다. 많은 공동체들도 자신들만이 뭔가를 얻겠다며, 이웃들과 단절된 폐쇄성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속은 철저하게 열려 있다.
아속의 경제 행위도 이윤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이웃에 봉사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원가와 판매가의 차이를 최소화하는 것을 최고로 여긴다. 그래서 원가를 공개한다. 그리고 농산물은 원가 이하로 팔거나 거저 주기도 한다. 명절 때는 모든 식품 가격을 1밧에 판매한다. 1밧은 우리돈으로 30원가량으로 타이에서도 과자 하나 사 먹기 어려운 푼돈이다. 아속은 이윤을 높이려 할수록 부도덕해지고 영적 손실을 피할 수 없는 반면, 자기의 탐닉을 최소화할수록 ‘영적 이득’이 증가한다고 여긴다.
시사아속 입구 쪽엔 ‘의·식·주·약’이라고 쓰인 입간판이 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이다. 아속이 생산하는 것 가운데 소비주의에 부화뇌동하는 제품은 없다. 하나같이 삶의 필수품들일 뿐이다. 세상 사람들은 허영을 채우려 소비를 늘리며 생명을 죽이고, 지구를 파괴한다. 아속은 갈망과 혐오에서 벗어나는 실천을 가장 중시한다. 따라서 아속인들은 많이 팔아 많이 남기고 많이 소비하려는 갈망에서 벗어나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아간다. 이런 모범이야말로 허브약과 다른 ‘영혼의 약’이다.
이들의 가장 독특한 점은 외부의 보시(헌금)로 유지되는 대부분의 종교단체들과 달리, 보시 없이 ‘자족경제’로 스스로 벌어 스스로 살며, 오히려 그 혜택을 고을 이웃들에게 나눠 준다는 것이다.
아속공동체 안엔 밖으로 직장에 다니는 사람 등 다양한 부류가 있다. 그러나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는 승려와 수녀, 이에 동조하는 많은 공동체원들이 있다. 그래서 허황해 보이는 부니욤 경제가 실현된다. 또 이토록 싼 가격으로 물건을 공급하고 봉사하면서도 공동체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 전체적으로 더 커지고, 풍요로워진다.
2008년부터 시작된 금융위기로 아시아 전체가 기우뚱거릴 때조차 아속은 조금도 장애 없이 발전해 자족경제의 힘을 보여줬다. 부니욤 네트워크는 현재 30개의 공동체와 9개의 학교, 6개의 채식 레스토랑, 4개의 유기농 비료 공장, 3개의 쌀방앗간, 2개의 허브의약품 공장, 하나의 병원, 160헥타르(㏊)의 농장을 갖추고 있다.
» 아속에서 생산하는 유기농 세제들» 약을 만들기 위해 말리고 있는 허브 꽃들
결실은 아속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990년대 푸미폰 국왕이 농업국가 타이의 자족경제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타이 교육부는 아속의 학교들을 모델로 지정해 서양 추종 교육이 아닌 타이다운 대안교육을 본받도록 했다. 또 포티락의 추종자인 짬롱 시므앙 전 방콕시장이 탁신 총리의 경제자문이 되면서 금융위기로 파산 위기로 몰린 농민들을 위한 ‘빚으로부터 탈출 프로젝트’를 실시해 농민들을 5일씩 아속에 보내 교육을 시켰다. 무려 30만명이 아속에서 자연농법과 자급자족 방식 등을 터득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많이 벌어 많이 쓰면서도 더 못 벌고 더 못 써 안달하며 괴로운 보통 사람들과 달리 아속인들은 적게 벌어 적게 쓰고 많이 베풀었다. 그러면서도 환희에 젖은 표정을 보니, 노래 ‘거위의 꿈’이 절로 흘러나왔다.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 /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