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채식주의자
홍승희/ 예술가
한겨레 오피니언면 <2030 잠금해제 >
“그럼 뭘 먹고 살아요?” “치킨도 삼겹살도 못 먹어요? 어쩜.” “왜 그렇게 어렵게 살아요.” “채식주의자 처음 봐요. 멋있어요.”
고기를 안 먹는다고 하면 대개 돌아오는 반응이다. 궁금하다. 고기를 안 먹는 게 어려운 일일까. 나는 채식이 쉬워서 한다. 고기를 안 먹으면 되니까. 채식은 대단한 일도, 유별난 것도 아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매일 한 끼 이상은 고기를 먹어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허기진 마음과 몸을 달래려고 순대국밥에 들어간 돼지의 내장을 먹었다. 사람들과 도란도란 모여서 닭 뼈를 뜯고 돼지 살점을 굽던 추억은 얼마나 많은지. 목에 달라붙는 텁텁한 고기 기름은 술로 소독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삼겹살과 소주, 치킨과 맥주로 심심하고 힘겨운 밤을 버텨왔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 지 1년이 되어간다. 육식 사회에서 고기를 거부하기 힘든 순간도 많다. 해산물도 먹지 않으려고 했지만 가끔 구운 연어를 먹기도 하고, 사람들과 함께 들어간 고깃집에서 고깃국을 마시기도 했다. 고기 대신 밀가루를 많이 먹게 되어서 채식주의자라기보다 채소 먹는 밀가루중독자다. 요즘은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밀가루 중독에서 벗어나고 있다. 고구마, 양배추, 미역을 삶아 먹거나 카레수프에 채소를 넣어 먹는다. 여러가지 채소로 신기한 야채국을 만들기도 한다. 주변 지인들도 나처럼 서툰 채식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주문한 콩고기(콩으로 만든 고기)를 안주로 바나나막걸리를 만들어 마신다. 콩고기는 맛있고 값도 특별히 비싸지 않다. 고기가 없어도 즐겁고 배부르다. 아니, 고기가 없으니 가볍고 담백하다.
고기를 안 먹는 내게 어떤 사람들은 “고기를 먹어야 기운 나고 영양보충이 되지”라고 건강을 염려해주거나 “식물도 고통받는데 식물은 왜 먹어?”라고 논박한다. “채식을 한다고 세상이 변하는 건 아니야”라고 진단해주기도 한다. 고기를 안 먹는 게 별나고 무모한 일이라고 설득하려는 열정이 대단하다. 내가 특이한 게 아니다. 비인간 동물이 고기가 되는 과정을 보면 누구나 (실패로 끝날지언정) 채식을 결심하지 않을까. 공장식 축산과 육류 소비의 진실을 담은 글과 영상도 많다. 한번쯤 관련 영상을 보라고 추천해주면 대부분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한다. “저 그런 거 일부러 안 봐요. 고기를 못 먹게 되니까요!”
육식이 아니더라도 여러모로 지구에 민폐를 끼치는 인간이다. 지구나 다른 동물이 어찌되든 나는 밥맛을 망치기 싫으니까 아무것도 안 볼 거라고 말하는 명랑한 목소리가 서늘하게 느껴진다.
“내가 주장하는 바는 단지 이 세상에 역병과 희생자가 존재하며, 우리는 힘닿는 한 역병과 힘을 합치지 않으려 애써야 한다는 점입니다”라고 카뮈는 썼다. 인간에게 조류독감, 구제역, 광우병 ‘역병’은 뉴스지만, 비인간 동물에게 역병은 일상이다. 그들에게는 이 세상이 아우슈비츠다. 이런 세상에서 인간종에 속한 나는 유혹을 느낀다. 인간과 한 패거리가 되어 죽은 그들의 몸을 뜯어먹어도 누구도 나를 비난하지 않으니까.
나는 내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비겁하고 잔혹하기 쉬운 인간동물인지 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폭력에 힘을 보태지 않으려고 고기를 안 먹는다. 서툴러도 나는 채식주의자이고 싶다. 조금이라도 내 존재가 덜 가해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