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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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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리고 아픈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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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리고 아픈 손가락 


<법보신문> 한명철/농부 


원래는 오늘이 콘크리트 타설하는 날이었습니다. 새벽에 현장에 갔더니 사람이 많지 않아서 의아했습니다. 보통은 타설 인부 열 두엇 명에 콘크리트 펌프카가 위치를 잡고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더군요. 뭔가 현장분위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아침조회를 들어보니 건물 보 거푸집이 설계도면과 차이 나게 짜진 것이더군요. 타설은 취소되었고 철근공들의 항의가 거셌습니다.


서둘러 내려가 거푸집을 지탱하던 서포트와 지지대를 치워야 했습니다. 그래야 보 거푸집을 뜯고 다시 붙일 수 있거든요. 얼마 지나지 않아 눈발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춥고 바람이 심상치 않은 날씨였습니다. 이윽고 눈은 비가 되어 내리기 시작했고 현장은 점점 젖어들었습니다. 콘크리트 타설을 하려고 상판을 덮어버려 작업장 안은 어두웠습니다. 건물 높이가 높은데다가 조명을 켜도 그림자가 져서 잘 안보이는 상황에서 바삐 움직여야 했습니다.


고친 보 거푸집을 다시 설치하고 서포트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단단하게 고정하려다가 제 왼손 검지를 망치로 때려버렸습니다. 서포트에 묻은 빗물과 녹을 방지하려고 칠해 놓은 기름이 장갑에 잔뜩 묻어 있었던 것이었죠. 손이 차가운 상태에서 망치에 맞은 손가락은 표현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 그것 자체입니다. 장갑을 벗을 새도 없이 저를 부르는 사람들과 자재들과 일들로 인해 왼손검지의 아픔은 그저 끄어억! 비명 한마디를 외치는 것으로 나에게서조차도 위로받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일은 촉박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잊고 있었던 기억이 번쩍였습니다.

 

아픈손가락2.jpg


저는 자취시절이었던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고 3때까지 신문배달을 했었습니다. 학업 이전에 생존하려면 돈이 필요했으니까요. 학교를 다니면서 새벽에 할 수 있는 일은 1998년 당시에는 신문배달 뿐이었습니다. 우유배달은 학생을 받아주지 않거든요. 새벽 5시에 자전거를 끌고 보급소에 가서 세 종류의 신문을 받아옵니다. 자전거에 달 수 있는 바구니가 최대 3개뿐이니까요. 


아침 7시 반 정도까지는 어떻게든 배달을 마쳐야 됩니다. 그래야 중학생이던 동생의 점심 도시락을 싸주고 저도 학교 갈 시간을 확보할 수 있거든요. 그러려면 처음 소장님께서 배달할 집과 상가들을 알려주실 때 정신 바짝 차려서 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잘못 배달하거나 빼먹는 경우를 줄여야 시간을 아낄 수 있으니까요. 그 다음엔 최대한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배달해야 합니다. 자전거를 탄 채로 손목스냅을 이용하여 신문을 정확히 던져 문이나 샷따 밑으로 쏙 들어가게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새벽에 빗소리가 들리면요...... 하아~~~~저는 미칩니다. 신문이 젖지 않도록 비닐을 씌워서 배달해야 하거든요. 문제는 싸는 데만 시간이 드는 게 아닙니다. 신문을 말아 비닐을 씌우니까 뭉뚝해져서 던질 수 없으므로 일일이 자전거에서 내려 배달해야 하거든요. 이런 날은 평소보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몸도 너무 힘듭니다. 우비를 입었던 몸이 땀으로 흠뻑 젖으니까요. 자취집에 와서 우비를 벗으면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납니다. 그런 날은 아침에 등교를 하여 책상에 앉는 것까지가 하루의 1차 목표가 됩니다.


아침밥은 늘 굶는데다가 너무 피곤해서 오전 수업시간엔 정말 잠을 잡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느라 못들은 수업내용을 밤에 공부하다보면 자정을 넘기게 되지요. 그렇게 피곤은 다시 새벽으로 대물림됩니다. 그러던 고3 1학기말 즈음, 장마로 연일 비가오자 새벽에 일어나질 못해버렸습니다. 피곤이 겹치고 겹치다보니 알람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더군요. 다음엔 안 그래야지 하고 다시 각오를 하였으나 이번엔 늦잠을 자버렸습니다. 부리나케 움직이고 서둘러 신문을 돌렸습니다. 그러던 중에 미끄러져 자전거를 탄 채로 넘어졌습니다.


아아아~~~~~여름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제멋대로 뒤엉켜 나뒹구는 신문들이 길 위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내 몸의 아픔보다 저것들을 다시 자전거에 담아 일을 마쳐야 집에 가서 동생 도시락을 싸고, 학교에 가야하는 하루를 산다는 사실이 잔인했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하는지 울분이 올라와 눈물을 꺼억꺼억 가슴으로 삼키는 동안, 다친 나의 왼쪽에서 유독 왼손 검지가 너무 쓰리고 아팠습니다. 손톱이 벌어져 빗물이 들어가고 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신문을 주워 담기 위해, 배달을 마치기 위해 왼손 검지는 나에게서조차 위로받지 못한 채 지나쳐 버렸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 여름 장마를 끝으로 신문배달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겨울을 나게 자취집 연탄만은 꼬옥 마련해주시라고........) 

 

아픈손가락1.jpg


참 이상한 것은 그 후로도 유독 왼손 검지가 다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칼과 낫에 베인 것은 부지기수이며 핸드 그라인더에 다치고, 망치에 맞아 멍들고, 뜨거운 것에 데고, 차 문짝에 끼여 손톱이 빠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왼손 검지가 아픕니다. 이번엔 아픈 왼손 검지를 위해 오후일은 접고 집에 왔습니다. 따뜻한 물로 샤와를 하고 잠시 눕습니다. 그리고 왼손 검지만을 아끼며 떠올리며 글을 씁니다. 이제야 왼손 검지를 위로합니다. 나의 오른손이 한 일이니 용서를 바란다고.


여전히 창문 너머로 낙숫물 소리가 들립니다. 비가 내리는 중이지요. 문득 비오는 오늘 당신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이천십칠년 이월 스물 두쨋날, 비내리는 오후 한명철 쓰다-

 
 *이 글은 불교포커스에 실린 것입니다.

http://www.bulgyofocus.net/news/articleView.html?idxno=77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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