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인 김회권 목사가 <복음과 상황>에 쓴 글을 3회에 나누어 연재합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동력은 무엇이었는가 <1>
» 프랑스 한 성당의 석상. 사진 pixabay
한국교회 안팎의 엄중한 현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기독교한국루터회를 필두로 대다수 한국 개신교단들과 여러 단체들이 다양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행사들을 기획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전시용 연례행사의 일환이거나 16세기 종교개혁의 전체상을 파악하려는 연구 노력이라기보다는 개신교의 몇 가지 교리를 되뇌고 오래 전에 사라진 로마가톨릭교회의 여러 가지 모순들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데 주력하는 듯하다. 이런 회고적이거나 연례행사용 기념사업들은 정작 한국교회 자체의 개혁과제를 심층적으로 다루거나 한국교회 안에 누적된 적폐(積弊)들을 정직하게 대면하려고 하지 않는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둔 이 즈음 한국교회 안팎의 상황은, 확실히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 역사에 대한 복고주의적 기억 재생이나 개신교 분리독립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몇 가지 교리를 재확증하는 수준으로 기리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엄중하다. 한국교회는 정치-경제권력의 총체적 부패와 타락을 방조하거나 그 배후에 있는 주류 지배 체제를 종교적으로 재가하는 고무도장 역할을 수행해왔다. 한기총과 여러 주류 교단들은 대체로 체제순응적, 분단체제 고착적이며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체제 옹호적인 입장을 피력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진보와 발전을 가로막는 수구세력의 대표자로 행세해왔다. 한국교회 강단은 권력층과 지배엘리트 연합세력의 죄를 무섭게 추궁하고 탄핵할 예언자적 기백을 상실한 채 사회 전체의 붕괴조짐을 미리 감지하고 경보음을 울리는 영적 지도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대언하고 성문과 광장에서 공평과 정의의 담론을 설파함으로써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하는 전도 사역에 오랫동안 불순종한 일과 관련이 깊다. 하늘로부터 오는 예언자적 묵시(비전)가 없는 경우 지배층부터 보통 사람들까지 다 방자하게 행하고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 요구를 묵살하기 마련이다.
현재 청와대와 여당을 정조준한 하나님 심판의 손이 언젠가는 교회와 영적 지도자들을 겨냥할 수도 있다. 한국 사회를 향한 무섭고 충격적인 하나님의 정화적 심판이 이미 작동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초래한 한국의 누적된 타락과 공평과 정의 붕괴를 일소하기 위해 백만촛불 민심의 아우성을 들어쓰실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향해 영적 각성과 정화를 위한 회초리를 드신다고 하더라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맘몬숭배가 극에 달한 제도권 기독교는 이제 한국 사회의 진보와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역기능할 위기에 놓여 있다.
한국교회의 7가지 적폐
한국교회 안팎의 깨어있는 관측자들은 한국교회의 많은 적폐 중 대략 일곱 가지 정도를 지적한다. 한국교회의 무정부 상황적 교파분열(장로교단만 70여 개), 주류 교단들의 성장 하락세와 사회적 신인도 추락, 그리스도인들의 윤리도덕적 타락과 부패, 세상을 하나님께로 이끌 영적 지도력 결여, 교회의 정치경제권력 시녀화, 목회자와 당회원들의 교회 사유화, 그리고 더 이상 성령의 중생사역과 영적 쇄신사역이 일어나지 않는 원인이 되는 하나님의 임재 철수다. 이 마지막 현상은 앞의 여섯 가지 현상들의 원인이면서 결과다. 에스겔 8~11장은 우상숭배의 소굴로 전락해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단계적으로 떠나는 야웨의 영광(쉐키나)의 동선을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예루살렘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타락이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하여금 당신의 성전을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한국교회의 오래된 불순종과 불충성이 하나님을 교회에서 떠나도록 압박하는 수준에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회에는 이제 성령의 역사로 인한 중생과 새 신자의 입교, 그리고 교인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정결케 하시는 성령의 성화 역사가 점차 희소해져가고 있다. 어린 사무엘이 야웨의 법궤 앞에서 불침번을 서면서 예언자로 부화하던 시기에 야웨의 말씀과 이상이 희귀했듯이, 지금 한국교회에도 하나님 말씀을 진정성 있게 청취하여 세상에 기탄없이 대언하는 예언자적 중보와 소통 사역이 사라져가고 있다. 교회와 교인을 넘어 한국인들의 양심 가장 깊은 곳을 진동시키는 하나님의 대언자가 없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한국교회 중심교단들이 마치 자신들이 종교개혁의 유산을 이어받은 개혁교회의 후예라고 자임할 수 있는지 자체가 의문스럽다. 지금 한국교회는 16세기 개혁교회를 거의 하나도 닮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도적 정통교회의 네 가지 표지 어느 하나도 뚜렷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사도들의 신앙전통을 계승하며 십자가의 도(道)로 세상을 이기는 사도적 정통성, 한 분 하나님·그리스도·성령으로 결속되어 누리는 단일성, 말씀과 치리와 권징으로 자기를 개혁하고 고결한 삶과 인격으로 세상을 놀라게 만드는 거룩성, 종과 자유자, 이방인과 유대인 등 온갖 차별을 초월해 모여드는 국제적 친교공동체의 토대인 인적 구성의 보편성을 결여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자신이 바로 이런 주류 교단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그 교단 중 하나에 속한 목회자로서 행세하는 자다. 필자가 속한 주류 교단의 모든 한계와 연약한 점을 나눠지며 이런 뼈아픈 자성(自省)을 하지만 우리에게는 한국교회를 단순간에 거룩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전망과 통찰이 없다. 이런 좌절을 의식하면서 루터를 종교개혁자로 등장시킨 사태의 진면목을 알아보고 그의 종교개혁 횃불의 발화점을 추적해보려고 한다. 이 글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둔 한국교회가 이를 의미있게 기리려면 종교개혁의 근본동인이었던 이신칭의 구원과 그 열매인 디아코니아 신학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교개혁 이전의 루터 : ‘그리스도인’의 탄생
루터의 종교개혁이 이룬 성취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 탄생하는 과정을 명료하게 보여준 점이다. 루터를 일생동안 로마가톨릭에 맞서게 하고 그의 양심을 한없이 담대하게 만들어준 것은 ‘하나님의 의(義)’의 복음이었다. 그것은 로마서 1:16~17과 3:24~26에 기록되어 있다. 이 두 본문이 루터가 주창한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와 솔라 피데(sola fide) 복음 즉 이신칭의 복음의 핵심구절이다. 루터가 바울의 이신칭의 복음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가 걸어온 황량한 영적 여정을 생각하면 그가 왜 종교개혁자로 추앙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로마가톨릭교회에 맞싸운 투사였기 때문에 종교개혁자로 추앙받는 것이 아니라 중세교회 천 년 동안 은폐되었던 하나님의 복음을 재발견했기에 종교개혁자로 각인되었다.
루터가 비텐베르크의 쉴로스교회(Schlosskirche) 문에 95개 조항의 쟁점들을 붙였던 10월 31일이 해마다 종교개혁절로 지켜지지만, 그의 종교개혁은 그 한 날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후대 역사가들이 강력한 세계사적 순간이라고 명명한 루터의 95개 조항 벽보 게시는 로마교황청에 대한 직접적 개혁 요구가 아니라 당대에 중요했던 일련의 신앙 쟁점들에 대해 학문적인 토론을 해 보자는 초청장 게시였다.
루터로 하여금 95개 조항을 교회벽에 게시하도록 격동한 것은 순회 하급 성직자들(friars)이 주도하던 면죄부 판매행위였다. 루터는 면죄부가 이미 죽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최후 심판에 소환되기 전에 연옥에 머무는 시간을 줄여주기 위해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죄에 대한 징벌을 경감시켜 줄 수 있는지 없는지부터 토론하자고 동료들을 초청한 것이다. 그런데 결국 면죄부 판매행위에 대한 루터의 항의가 로마가톨릭교회의 중추신경계를 건드렸고 루터 자신을 교황청의 대적자로 등장시켰다. 루터는 어떻게 이렇게 대담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었을까? 그는 교황보다는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더욱 더 사실적으로 느끼고 의식했기 때문에 그토록 용감해질 수 있었다. 그는 로마가톨릭교회가 구축해놓은 보편적 객관세계의 틀을 뛰쳐나가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가 되었다.
1483년에 태어난 마틴 루터가 자신의 신앙문제로 고뇌를 거듭하던 16세기 초반은 중세적 고딕 신앙의 불안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중세적 고딕 신앙의 불안이란, 하나님과의 신비주의적 접촉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인을 쳐주신 구원확신을 갈망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직접적인 어루만지심을 맛보지 못해 생긴 불안을 말한다. 죄책감과 죄의 형벌에 대한 두려움은 커져가는데도 용서의 확신이 사라질 때 오는 불안이 바로 고딕적 불안이었다. 이런 불안은 미사와 성인숭배 등에 대한 광적 몰입을 촉발했다.
예를 들면 1년에 64명의 신부가 비텐베르크에서 두 시간 반 걸리는 미사를 8,881번이나 드렸다. 쾰른에서는 심지어 11개 대학교와 22개의 수도원, 19개의 교구교회, 100여개의 예배당에서 매일 1천 번의 미사가 열렸다. 특히 죽은 자들의 영혼을 천국으로 보내준다는 미사가 가장 많았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구원의 터치를 목말라 하며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려고 많은 수도원들이 성업을 이루었다. 이런 영적 환경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 시대의 아들 루터의 양심에도 이 고딕적 불안은 쉴새없이 질문을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나는 은혜로운 하나님을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최후 심판 때 하나님의 기꺼운 영접을 받을 수 있을까?’
이 질문들 앞에 선 루터에게 일곱 가지 성사는 도무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심지어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사실상 죄사함의 복음을 매개해주는 고해성사와 성만찬마저도 쓸데없었다. 하나님과의 직접적 만남을 갈구하던 중세신비주의, 일상생활에서 마귀가 마음대로 사람들의 영혼을 지배하고 가위누를 수 있다고 믿었던 마귀활성론적 신앙, 종교교권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까지 살릴 수 있다고 믿는 무시무시한 돈 중심의 구원론 등이 착종(錯綜)된 시대에 태어난 루터는 그 시대의 아들답게 하나님께 용납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청년이었다.
김회권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공부했으며, ESF(한국기독대학인회)에서 회심하고 신앙 훈련을 받은 뒤 11년간 ESF 간사로 섬겼다. 장신대 신대원을 나와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성서신학석사 및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모세오경 1, 2》 《김회권 목사의 청년설교 1, 2, 3》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사도행전 1, 2》 등 다수가 있다.
이 글은 <복음과상황>(http://www.goscon.co.kr/)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