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발그릇을 들고 탁발에 나선 남방불교의 비구승들. 비구라는 말은 걸식하는 사람, 걸인이라는 뜻이다. 붓다 당시 출가 승려들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않고 걸인처럼 빌어서 먹고 수행했다. 사진 픽사베이 제공
한적한 오후 횅한 절 마당에서 지긋한 연세의 노인 한 분이 녹음 짙어가는 산등성을 휘 둘러보고 있었다. 좀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잠시 말동무도 괜찮을 듯싶어 합장하고 눈인사를 건넸다. 노인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내 몰골을 훑어보았다. 아마도 말이 통할 만한 작자인지 간을 보시겠다는 거겠지! 그러고는 운을 뗐다. “아, 거시기 말이오, 쩌그 머시냐 도솔산 선운사라고 써놨던디, 도솔이 거 무신 뜻인지 당최….”
내가 사는 이곳이 도솔산 선운사다. 이 아리송한 산 이름이 소싯적 글줄 좀 읽으신 노인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모양이다. 이럴 때 좀 난감해진다. 어학을 전공한 훈장 본색을 드러내어 “그러니까, 이게 좀 복잡한데요. ‘흡족하다, 만족시키다’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동사 ‘뚜샤띠’의 과거분사 ‘뚜쉬따’를 한자로 ‘도솔타’ 혹은 ‘도솔’이라고 썼답니다”라고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것은 일종의 고문이거나 노인 학대가 될 수도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적고 하찮은 것으로도 마음 편하고 느긋함을 뜻하는 ‘뚜쉬따’라는 인도 말을 음사한 거고요, 의역하면 지족이 된답니다. 그래 어르신은 평안하신가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노인은 조금 못마땅한 낯빛으로 나를 슬쩍 흘겨보고 혼잣말로 되뇌었다. “지족이라, 지족, 안빈낙도라 그 말이여?” 마치 나도 그 정도는 익히 짐작하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나도 안다. 지족,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러나 흐른 세월에 씻고 닦아냈어야 할 온갖 때는 켜켜이 쌓이고 낯가죽은 더 두꺼워진 것을! 8세기 초, 인도 힌두교의 중흥조로 추앙받는 샹카라차리아가 탄식조로 읊었다. “주름투성이 얼굴에 서리 맞은 머리, 수족은 힘없이 흔들리는데, 부질없는 욕망은 더욱 젊어져!” 내가 무슨 남의 속을 들여다보는 재주를 가진 건 아니지만 속으로 두런거리며 내 방으로 돌아왔다. “당신이나 나나 그저 그런 형님 동생 아니겠수?”
부처님 십대 제자 가운데 가섭존자(Mahā Kassapa)는 최고의 두타(dhutaṅga) 수행자로 존숭되는 분이다. 존자께서 말씀하셨다. “숙소에서 나와 탁발을 하러 성으로 들어갔다. 밥을 먹고 있는 한센병 환자 앞으로 다가가 말없이 섰다. 그가 피 묻은 손으로 밥 한 덩어리를 내 바리때에 넣어주었다. 손가락 한 마디가 떨어져 함께 들어왔다. 담장 밑에 앉아 밥을 먹었다.”(<테라가타>(Theragāthā) 1057~1059)
거기 더 이상 뒷이야기가 없어서 알 길이 없으나 피고름 비빔밥을 함께 나눈 그들은 그 담장 밑에서 필시 쓰디쓴 세상과 인생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냥 입에 붙은 얄팍한 지족 따위의 단어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기는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전하고 알았을 것이다. “당신이나 나나 그저 그런 형님 동생 아니겠수?” 연꽃 향기가 먹먹하게 가슴을 채우는 도솔천이 그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