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나이를 물었다.
다 큰 아이가 아버지의 나이도 모르는데
기가 막힌 아버지가 소리쳤다.
"아니 너는 벌써 열 살이나 된 놈이 아빠 나이도 몰라?"
그러자 아들이 대답했다.
"아빠, 저 올해 열 두 살이에요."
그러자 아빠가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열 두 살이나 된 놈이 아빠 나이 모르는 건 더 나빠."
사람은 자기 기준으로 보고 자기와 맞지 않는 것은 좀체로 용납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듣고 싶어하는 것만 듣고,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고 자기가 알고 싶어하는 것만 알려고 듭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부분의 것이 자기 관심의 결과물입니다. 신념이나 직관이라는 것도 사실은 자신이 관심을 둔 것에 결과물일 뿐이다.
» 사진 픽사베이.
미국의 심리학자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는 1979년 의미있는 한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학생을 두 팀으로 나눠 이리저리 움직이며 농구공을 패스하게 하고, 이 장면을 찍어 짧은 동영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실험 대상자에게 검은 셔츠 팀은 무시하고 흰 셔츠 팀의 패스한 수만 세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동영상 중간에는 고릴라 의상을 입은 여학생이 약 9초에 걸쳐 무대 중앙으로 걸어와 선수들 가운데에 멈춰 서서 카메라를 향해 가슴을 치고 나서 걸어 나가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험 대상의 절반은 패스 수를 세는 데 정신이 팔려서 그 여학생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 실험 후 두 심리학자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에 집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마는 현상을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고 이름 붙었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자기가 보고있으면 다 보고 있다고 착각을 하지만 실제 눈뜨고 보고 있어도 다 보고 있는 게 아닙니다.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 보게 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기업의 임원일수록 고릴라를 보지 못하는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즉 자신이 성공했다고 느낄수록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보느라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그렇게 절규를 해도 눈도 깜작하지 않고 도리어 유가족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무주의 맹시'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기준을 넘는 다른 것을 보고 듣고 알려면 먼저 귀와 눈과 머리가 아닌 침묵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