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레기국은 맛이 참 좋구나”
전통 산사에서는 삼삼오오 식탁에서 하지 않고 각자 4개의 식기(발우)를 펼치고 큰방에서 대중이 둘러 앉아 공양을 한다. 일종의 사찰 뷔페식이다. 그런데 많은 대중들이 수행하는 어느 큰 절의 아침 공양 시간에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은 시레기 된장국이 나왔는데, 이를 어이하랴! 국에 멸치가 둥둥 떠있는 게 아닌가? 순간 당황한 스님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어쩔줄을 몰라했다. 이어 대중의 시선은 절의 제일 어른인 조실스님에게로 쏠렸다. 그런데 큰 스님은 아무런 표정없이 국을 드셨다. 이어 한말씀, “오늘 시레기국은 유난히 맛이 있구나”. 큰스님이 저리 말씀하시고 맛있게 드시니 대중스님들은 마지못해 멸치가 들어간 국을 먹으며 공양을 마쳤다. 공양이 끝나고 조실 스님은 공양간에 들러 오늘 누가 국을 끓였느냐고 물었다. 당사자는 얼마 전에 갓 입산한 행자였다. “절집에서는 육식이 금기인줄은 불자가 아니어도 모두가 아는 터인데 너는 어이하여 국에 멸치를 넣었느냐” 조실 스님의 물음에 잔뜩 주눅이 든 행자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대중 스님들에게 맛있는 국을 공양하고 싶은데 이리저리 해봐도 맛이 나지를 않아서 멸치를 양념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허허! 그런 뜻이 있었구나. 오늘 국은 참 맛이 있었다. 그렇지만 다음부터는 멸치를 넣지 말거라” 인자한 미소와 함께 조실 스님은 행자를 위로했다. 이 사연은 절집에서 ‘화합’을 강조하면서 거론하고 있다. 행위의 결과를 지나치게 따지기보다 의도와 동기를 먼저 파악하고 사태를 수습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너그러운 이해와 따뜻한 격려가 화합의 바탕이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실수에 대한 질책에 앞서 의도와 동기를 살피는 지혜
부처님 당시 수행승단은 늘 청정과 화합을 강조했다. 깨달음과 자비의 실천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출가했지만, 각자의 기질과 습관,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때로는 부처님의 설법에 대해 이해하는 견해가 달라 극심한 언쟁과 반목으로 편이 나뉘기도 했다. 사상과 견해가 갈리면 중재자의 요청에 따라 대화의 자리가 마련된다. 그리고 침착하고 진지하게 서로의 주장을 듣고 질문하고 답변하며 토론 한다. 대부분 의견의 일치를 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일지라도 그동안의 언행을 서로가 참회하고 감정적 앙금을 해소한다. 차이를 인정하면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접점을 추구하는 일이 화합의 요소임을 알았던 것이다.
석가모니, “나의 허물을 지적해주십시오”
화합을 위하여 승단은 무엇보다도 ‘자기성찰’을 생활화하고 제도화하였다. 부처님 재세시부터 지금까지 승단은 포살과 자자라는 의식을 정기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포살은 승단이 규정하고 있는 금지사항들을 법사가 조목조목 낭송하면, 해당하는 금지를 범한 사람은 스스로 대중 앞에 고백하는 의식이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나도 당했다”(me too)가 아니라 “내가 그랬다”(I did)는 자발적인 고백인 셈이다. 자자는 삼개월 안거수행을 마치는 전날에 대중이 모여 서로 상대방의 허물을 지적해주는 의식이다. “대중들이여, 벗들의 도움으로 한철을 공부했습니다. 혹여 공부하는 동안 제가 저지른 잘못이 있다면 ‘자비로운 마음’으로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성찰과 참회를 일상화하고 있는 수행자일지라도 공개의 광장에서 허물을 지적 받는다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 이런 광장에서 석가모니부터 제일 먼저 대중 앞에서 자신의 허물을 지적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기록들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떨리고 부끄럽다.
오늘날 여기저기서 상생과 동반성장을 말하고 공동체의 붕괴를 염려하고 있다. 바른 가치의 정립, 자기성찰, 역지사지, 솔선수범, 고통분담, 감사와 격려, 친절과 우정... 이런 덕목들은 익숙하여 자칫 진부한 말일수도 있겠지만 함께 살아가는 세상, 공동체 실현의 바탕이다. 또한 ‘내부자들’의 화기애애한 공동체를 위하여.
* 이 글은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월간 <참여사회>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