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간 저는 마치 마약에 중독된 사람처럼 한국소식에서 눈과 귀를 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모두들 하는 얘기지만 저도 할 수 밖에 없네요; 남북의 두 정상이 만나 시멘트로 된 나즈막한 경계를 넘나든 것! 이까짓게 뭐라고, 한 순간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간단한 것을… 가슴이 벅차고 뜨끈해지며 눈물이 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는데, 많은 사람들이 저 처럼 그 장면을 되돌려 되돌려 다시 보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남북한의 문제를 넘어서, 근본적으로 사람이 그리워하는 그 무엇이, 경계없는 자유로움이 잠시나마 이뤄졌다는 느낌 때문이 아닐까요. 제대로 숨도 못 쉬고 빛도 받지 못하며 빙산 속에 갇혀 있다가 해방되는 느낌. 얼었던 마음이 꿈틀거리며 녹아내려 눈물이 되는 거겠지요.
그 나즈막하면서도 견고한 시멘트 분계선 - 그런 것은 우리 각자의 마음에도 참 많이 놓여 있어 갈등을 야기하고 소통을 어렵게 만듭니다.
몇 년 전, 전시회 준비로 큐레이터와 여러가지 의논을 하는데, 많은 부분을 메일로 주고 받았습니다. 그녀의 메일은 꼼꼼하고 세세한 설명으로 짜증스러울 정도로 길어서, 인쇄를 하면 A4 용지 한 두장을 넘겼습니다. 반면 제 메일은 점점 간략해져 갔습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그녀는, 저처럼 꼼수가 많고 솔직하지 못한 사람과는 더 이상 같이 일을 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만 둘 땐 그만두더라도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니 만나자고 했지요. 얘기인 즉슨, 내 제안이 네 것과 다른 것이 많았는데, 왜 설명도 없이 동의하고 넘어가느냐, 더이상 수정이 불가능한 막판에 가서 뒤집으려는 속셈이 아니냐, 뭐 그런 거였습니다. 저는 그녀의 마음 속 깊이 똬리를 틀고 있는 그 불신과 두려움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너무나 궁금해서 많은 질문들을 했습니다.
소위 일컫는 68세대인 그녀에게 나치청산과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임은 가장 큰 이슈였다고 합니다. 국민을 속이고 불투명한 정치를 하면서 무조건의 복종을 요구했던 나치독재와 그에 동조한 기성세대에게 그 세대는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까놓으라 했지요. 그래서 그녀는 해명도 없고 정당화도 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수상하게 보는 습관이 생겨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한 말의 뒤에는 아무 다른 꼼수가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그건 내 개인적 성향일 수도 있고 문화적 차이일 수도 있다고 여러 예를 들어주며, 충분한 설명을 필요로 하는 그녀의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하다 했습니다. 그토록 완고해 보였던 불신은 넘어갈 수 있는 경계였다는 것을 경험했고, 독일사람들이 왜 그렇게 따지길 좋아하는지 이해가 되는 참 고마운 대화였습니다.
불신이라는 울타리와 고정관념이라는 경계가 무너질 때 우리는 감동하고 행복해집니다. 울타리를 세울 때, 울타리는 ‘네’가 오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도 가두기 때문이지요. 하늘과 땅과 바람은 우리가 세워놓은 말뚝에 상관없이 자유롭지 않습니까. 존 레논의 imagine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