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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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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산내 사람들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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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1--.jpg» 실상사 농장을 논두렁을 걷는 사부대중공동체. 사부대중이란 비구, 비구니, 우바이(남자신도) 우바새(여자신도) 등 승속을 초월해 함께한다는 의미다


농장--.JPG» 실상사 농장으로 체험학습을 온 서울의 대안학교 학생들과 함께 참깨를 심고 있는 윤용병 한생명 위원장(앞줄 오른쪽)과 농장지기 조의제씨(앞줄 왼쪽)


전북 남원 산내면 실상사는 남원 기차역에서도 차로 40~50분을 가야 나오는 촌 절이다. 그런데 그 주위는 여느 시골과는 다르다. 절 앞 친환경 농산물 매장인 ‘느티나무’와 마을카페 ‘토닥’엔 시골에서 보기 드문 젊은이와 아이들의 출입이 잦다. 카페 유리창에 붙은 온갖 동아리 모임 공지문도 이채롭다. 온갖 공부와 책읽기와 명상과 요리해서 먹기, 농구·탁구·국선도·몸살림 등 운동, 술 만들기, 목공 등 모임 동아리가 산내에만 50개 넘게 있다니 별난 시골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산내면 인구 2200명 중 450명이 귀촌인이다. 실상사 앞 산내초등학교엔 초등생·유치원생이 100여명, 산내중학교에 50여명, 중등부인 실상사작은학교에 30여명이 다닌다. 실상사에서 운영하는 생명평화대학까지 있으니 면 단위에 유치원·초·중·고·대학까지 있다. 인구가 두 배나 많은 인근 면과 학생 수가 비슷할 만큼 산내면엔 20~30대 젊은층의 유입이 많다. 그러니 아이들이 많은 것이다.


 귀촌의 진앙지는 실상사다. 실상사가 귀농인을 위한 농업실습용 땅 1만평을 내놓으면서 1998년 실상사귀농학교가 시작됐다. 이곳에서 장·단기로 25기 1천여명의 졸업생이 배출돼 이 가운데 500여명이 전국의 농촌으로 귀촌했다. 이 중 20%가량은 이곳 산내면을 택해 내려왔다. 이들이 산내면의 18개 자연부락 속으로 스며들면서 해가 지지 않는 산내가 되어버린 것이다.


강좌-.JPG강좌3-.JPG경운기-.jpg공연1-.jpg급식-.jpg나눔-.jpg나물밥집-.JPG냉장고-.JPG놀이-.jpg농사1-.jpg농사2-.jpg농장2-.jpg느티나무-.JPG모내기-.jpg밥해먹기-.jpg설날-.jpg수행날-.jpg실상사-.jpg아이들-.JPG아이들3-.JPG 


 모든 것이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다는 ‘인드라망’ 사상에 따라 1998년 도법 스님 등이 설립한 인드라망생명공동체가 이들의 정착을 적극 도왔다. 2001년엔 대안학교인 실상사작은학교와 ㈔한생명이 문을 열었다. 이것은 기구가 생겼다는 게 아니라 이 궁촌에도 젊은이들이 할 일이 생겼다는 의미다. 가령 ‘한생명’에만 상근자 8명, 비상근자 5명이 일하고 있다. 산내여성농업인센터에서 한생명이 운영하는 어린이집과 방과후교실에만 5명이 일하고, 느티나무 매장 등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인력이다. 실상사작은학교엔 11명의 교사가 있고, 생명평화대학에선 6명의 활동가가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귀촌자 중 10여명은 이곳에서 목수일과 건축일을 배워 자활길을 찾았다.


 마을에 뭔가 전에 없던 활력이 생기니 산내초등학교 교사 10여명 중 절반도 산내에 집을 마련했다. 전주시나 남원시내에 거주해 ‘땡 소리’와 함께 번개처럼 시골을 떠나버리지 않고 교사들이 학교를 마치면 동네 아저씨 아줌마, 이웃이 된 것이다. 귀촌자들이 넘치면서 20가구의 귀촌자 정착지 작은마을도 생겨났다. 이 마을에서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조창숙(47)씨는 “도시에선 20평대 아파트에 살면 30평대에 가고 싶고 차도 더 좋은 걸 타고 싶어 끊임없이 열등감과 욕구로 불만스러웠다면 이곳에선 자기들이 선택해서 온 때문인지 열등감이 없고, 쓸데없는 욕구로 인한 소비에 관심을 갖지 않고 모두 중고 옷을 걸치고도 비교하지 않고 당당하게 열등감 없이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보기 좋다”고 했다.


밥해먹--.jpg» 밥해먹기모임에서 장 담그기를 하는 산내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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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순례--.jpg» 순례 중 휴식을 취하는 실상사 사부대중들




 이런 시골살이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들을 주었다고 한다. 교대 출신으로 마을활동가로 정착한 김한나(36)씨는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보고 배울 어른이 없어서 답답했다”고 한다. 그가 이곳에서 활동비로 받는 돈은 한 달 60만원이다. 그는 “그런데도 거처와 먹거리 등을 대부분 실상사 등 공동체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부족함을 모른다”며 “시골에 간다고 했을 때 ‘시집 잘 가봐야 이장 며느리’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내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작은학교 교사와 곧 결혼한다. 실상사작은학교 농업담당 교사인 하수용(30)씨는 아내와 아이 둘과 작은학교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월 100만원을 받지만 대부분 공동체 내에서 생활하기에 달마다 30만원씩 저축도 한다”며 “아내와 아이 둘 정도 더 낳기로 했다”며 웃었다.

유치원-.jpg인드라망-.jpg작은교1-.JPG작은학-.JPG잔치1-.jpg잔치2-.jpg잔치3-.jpg잔치4-.jpg 장터-.JPG장터1-.jpg조창숙-.JPG족구-.jpg


 느티나무매장 인근 가게엔 ‘행복나눔냉장고’가 있다. 가게 주인이 남은 냉장고를 마을에 내놓았다. 마을사람 누구라도 자기가 길렀지만 자기 집에서 다 소화할 수 없는 채소도 넣어놓고 음식도 넣어놓는 곳이다. 그러면 누구든 필요한 사람이 가져간다. 나눔의 화수분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풍요를 누리게 된 것은 귀촌자들만이 아니다. 인드라망처럼 산내면 사람들이 연결돼 어우러지면서 어떤 동아리는 음식을 만들어 홀몸노인들에게 배달하고, 간호사 출신 귀촌자가 주축이 되어 마을마다 진료를 돈다. 또 농한기면 약장수들이 곡마단패처럼 시골에 자리잡고 노인들 쌈짓돈을 홀랑 털어가는 것을 본 젊은이들이 산내놀이단을 만들어 겨울이면 산내초등학교 강당으로 주민들을 초청해 자신들이 만든 춘향전과 별주부전을 보여주고, 자기들이 주점을 해서 번 돈으로 잔치를 베풀었다. 그랬더니 3년 전부터 산내에선 약장수가 자취를 감추었다.


 7년 전 귀촌한 조의제(52)씨는 실상사 농장에서 일하고 아내는 산내초 병설유치원 교사다. 그는 “도시에선 삶에서 갈증이 해소가 안 되니까 늘 미래만 꿈꾸고 살았는데, 이곳에선 지금 이대로가 더 바랄 것 없이 좋다”고 했다. 그는 “불자는 아니지만, 실상사에선 스님이라고 목에 힘주지도 않고 늘 신자들과 함께해 신뢰가 가고, 이게 바로 부처님이 말하는 삶 그대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울력--.jpg» 실상사에서 풀뽑기 울력을 하는 스님들


작은1--.JPG» 귀촌자들을 위해 새로 조성된 작은마을 전경하수용--.jpg» 실상사작은학교 농업담당 하수용 교사와 가족들


 22일은 ‘무차별 세상’을 선언한 ‘부처님 오신 날’이다. 그날 실상사에선 ‘성평등이 살아 숨쉬는 산내 마을 공동체를 위한 성차별·성폭력 경험 이어 말하기 행사’가 열린다. 윤용병(58) 한생명 위원장은 “이런 행사처럼 마을에서 하기 어려운 것만 실상사에서 판을 벌여준다”며 “이제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것은 실상사도 한생명도 나서지 않고 스스로 해갈 수 있도록 응원만 한다”고 했다.


 부처는 자신의 빛을 감추고 세상 속으로 스며들어 중생들이 스스로 빛나도록 돕는다고 했다. ‘화광동진’(和光同塵)이다. 산내엔 불교도, 부처의 형상도 없는 부처들이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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