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호스피스 현장에 있으면서 가끔은 떠나가는 이들이 남겨질 이들에게 얼마나 큰 염려와 걱정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관심은 떠나가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가득차 있지만 사별가족 모임을 오래 하고 있는 나는 도리어 앞으로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내고 오랜 시간 슬픔과 고통으로 살아 가야만 하는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염려가 더 많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얼마 전 방송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에 대한 리뷰가 있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아들이 연로한 아버지에게 비디오 트는 법을 알려 드리는 데 이게 쉽지 않았다. 아버지의 유일한 낙은 비디오 빌려다 보는 것인데 아들이 떠나고 아버지가 그 즐거움을 계속 누리시도록 반복해서 가르쳐 드리지만 아버지는 잘 따라하시지 못하신다. 아들은 몇 번을 가르쳐드려도 잘 못하시는 아버님을 보며 속상한 마음에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린다.
최근 우리들의 가슴을 울린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영화로 감상하지 못하고 교재로 읽어내리고 있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암튼 그 영화는 또 우리의 곁에 있는 사별가족들을 많이 생각나게 했다. 주인공 엄마는 자기가 떠난 후에 또 곧 이별을 하게 될 아빠의 빈자리에 혼자 남겨질 아들에게 달걀 후라이하는 법을 가르치고 빨래 너는 법을 가르친다.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짜증도 낸다.
»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오랜 투병하다가 떠나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최씨 할머니는 본인이 떠나면 제대로 밥도 해 먹지 못하고 청소니, 빨래니 집안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은 남편을 위해 70이 넘은 나이에 남편에게 요리 학원을 다니라고 채근하셨다. 언제까지 자녀들이 드나들며 빨래며, 반찬을 해 줄수는 없지 않느냐고 하시면서 호스피스 병동에 계실때도 남편에게 요리학원은 빼먹지 말고 다니라고 늘 잔소리를 하셨다. 덕분에 아내가 떠난 5년이 지난 지금 그 남편분은 왠만한 음식은 혼자서 다 잘 해 드신다. 가끔은 요리 학원에서 배운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놓고는 아내 사진을 바라보며 ‘여보, 나 오늘 이거 배워서 했는 데 정말 맛있네, 잠깐 내려와서 먹고 가면 안될까?’ 라며 눈물을 흘리시기도 하지만 혼자서도 불편없이 잘 드시고 청소도 잘 하시고 빨래도 잘 하시면서 지내신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남자 주인공이 아버지에게 화를 낸 것이나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엄마가 어린 아들에게 짜증을 낸 것이나 최씨 할머니가 남편에게 채근을 한 것이나 떠나가는 이들이 남겨질 가족에게 가지고 있는 사랑이고 안타까움이다. 떠나가는 이들의 그런 작지만 절박한 사랑은 그 임종 직전의 고통스러운 시간까지도 남겨질 이들에게 형광등 교체하는 법, 세탁기나 밥솥을 사용하는 법, 된장찌개 끊이는 법, 꼬박 꼬박 제 날짜에 세금을 내는 일정 등을 알려 주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저 ‘그것은 사랑’ 이렇게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