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5천m 넘나들며 고행, 내 안의 산도 오르며 수행
‘최후의 성지’ 티베트 카일라스 순례
» 티베트 수도 라싸의 포탈라궁 앞에 선 순례단 일행들
<한겨레> 테마여행단 14박15일 여정,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길 왜 나섰나 화두
대초원 너머 빛나는 설산이 눈앞에, 그 사이 검은 바위는 ‘천국의 계단‘
카일라스 2박3일 한바퀴 도는 꼬라, 첫날은 장관 보며 걷는 평지 ‘꽃길’
둘쨋날은 추위와 저산소로 잠 설친 채, 20km를 하루에 가야하는 ‘마의 코스’
고산증세에 다치고 조난 위기까지, “왜 신들은 이 높은 곳에 계셔서…”
셋쨋날 오체투지 현지인에 마음 여며, “죽을 고생 하면서 생각 가다듬어”
“마음껏 울어볼 수 있는 시간…, 나의 고뇌보다 오히려 감사 깨우쳐”
» 지구 최후의 성지로 불리는 카일라스(수미산)
<한겨레> 테마여행단 18명이 티베트 순례에 나섰다. 7월28일부터 11일까지 14박15일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순례단이 중국 시안을 거쳐 항공편으로 도착한 곳은 티베트 수도 라싸 조캉사원 옆 호텔이었다. 조캉사원은 7세기 통일대왕 송첸캄포가 지은, 티베트 순례자들의 최종 목적지다. 최종 목적지에 직항으로 갔다고 해서 치러야할 고난들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었다. 평균 해발 410미터인 시안에서 해발 3600미터로 급작스럽게 상승하자 산소부족으로 숨이 막혔다.
그러나 아직 설렘까지 가라앉힐 수준은 아니었다. 조캉사원에 이어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달라이라마의 겨울궁전 포탈라궁과 여름별장 노블링카의 풍경은 고산에서 숨길을 열어줄 만큼 화려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살다 1959년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한 티베트불교 지도자 달라이라마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불상들만이 위용을 자랑했다. 이 화려한 불상들은 티베트의 수난 때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의문이 외부의 부처가 아니라 내면의 부처를 향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 카일라스로 향하던중 해발 5200미터 고개에서 내려 법인 스님을 따라 걷기 명상을 하는 순례객들
숨은 가빠왔지만 내적 경험 나눠
일행 중 3명은 라싸에서부터 숙소에 의사를 불러 산소를 주입 받고, 포도당 주사를 맞아야 했다. 고도에 적응하기 위해 라싸에서 이틀을 체류했다. 3일째 해발 5560미터 캄발라 고개를 넘어 암드록쵸 호수에 들르는 코스도 뒤로 미루고 해발 3900미터인 티베트 두 번째 도시 시가체로 향했다. 고도를 조금씩 높인 것이다. 누구나 높은 곳에 오르고 싶어한다. 그러나 오를수록 숨이 가빴다. 순례단은 버스에서 내적 경험을 나누었다. 이혁(55) 변호사는 초임검사 시절 사형이 집행된 두 명의 사형수의 마지막 모습을 증언했다. 차창 가엔 주검을 토막 내 독수리밥으로 던져 하늘로 오르게 하는 조장터가 스쳐 지나갔다. 우리가 향하는 곳은 삶일까, 죽음일까. 법인 스님(일지암 암주, 참여연대 공동대표)은 “왜 우리는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고행길을 나선 것일까”라는 화두룰 던졌다.
시가체와 사가에서 일 박씩을 하고 카일라스를 향하는 주위엔 대초원이 펼쳐졌다. 마치 수천 개의 골프장들이 이어진 듯 했다. 그 초원 위에서 양몰이를 하는 소년의 티없는 미소가 부족한 산소를 대신해주었다. 초원 위에선 야크떼들이 풀을 뜯고, 그 너머로 설산이 빛나고 있었다. 저산소로 인한 두통과 절경의 부조화를 싣고 버스가 다르첸으로 다가가자 꿈에 그리던 카일라스가 나타났다. 지구 최후의 성지, 신비의 영산이었다. 카일라스 한가운데 설산 사이로 비치는 검은 바위가 마치 누군가 딛고 올라올 이를 기다리는 계단인 듯 보였다. 누군가 ’천국의 계단’이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흥분으로 서둘러 발길을 옮기기에 이곳은 너무도 산소가 부족했다. 다르첸은 백두산보다 2천여미터가 더 높은 해발 4800미터였다. 일행 모두가 애초 카일라스를 2박3일간 한바퀴 도는 ‘꼬라’를 목적으로 이곳까지 왔다. 6명이 고산증세로 꼬라를 포기했다. 꼬라 첫날은 카일라스의 장관을 보면서 걷는 평짓길이었다. 하지만 순례가 그런 꽃길로만 깔려 있을 리 만무했다.
» 온몸을 엎드려 절하는 오체투지로 카일라스산을 돌고있는 티베트인 순례자
고통으로 마음 성숙시키는 수행
롯지에서 추위와 저산소로 잠을 설친 일행들이 새벽 어둠을 뚫고 이틀째 꼬라에 나섰다. 5630미터 돌마라를 넘어 무려 20킬로미터를 하루에 가야하는 ‘마의 코스’였다. 두 명이 말을 타고 오르기로 했다. 말의 도착이 늦어 말을 타는 두 명과 현지가이드를 제외한 일행들은 서둘러 돌마라로 향했다. 그런데 임영희(59)씨가 말에서 떨어져 팔목이 골절됐다. 한 손으로 더 이상 말에 오를 수도 없었다. 그가 그런 몸으로 돌마라를 넘는 것은 기적과도 같았다. 몸이 성한 사람들도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 되기 십상인 돌마라였다. 롯지에서 일행들을 위해 주먹밥을 싸줄 만큼 상태가 좋았던 오화숙(63)씨도 “(고산을 잘 모른) 내 무지와 가벼움이 후회가 됐다”고 할 정도였다. 돌마라를 넘으면서 조난를 당할 위기에 처할 만큼 지쳤던 최윤석(50)씨는 “왜 신들은 이 높은 곳에 계셔서 인간들을 애먹이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했다. 이날 막바지엔 천둥이 치고 우박마저 내려 설상가상이었다.
3일째의 짧은 꼬라길에선 오체투지로 전 일정을 돈 현지인들이 거칠어진 마음을 여미게 했다. 티베트불교에서 가장 보편적인 수행법 중 하나가 ‘생각 전환법’이다. 고통 자체를 없애려는 게 아니라 고통을 통해 마음을 성숙시키는 것이다. 비롯 첫번째 화살을 맞았다 하더라도 혐오와 분노, 갈등을 더해 제2, 제3의 화살을 스스로에게 쏘지 않기 위함이다. 그 오체투지의 고행 속에서도 평화롭게 빛나는 수행자들의 얼굴이 이런 기운을 전해주었다. 서울 홍대 부근에서 초밥집을 하는 유동식(47)씨는 “일찌기 겪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죽을 고생’을 하면서 평소에도 어지간한 일들을 다 편하게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 야크들을 몰고 5630미터 돌마라 고개를 넘어 카일라스 꼬라를 돌고 있는 순례자들
구게왕국 거쳐 다시 라싸 대장정
카일라스 꼬라 순례 뒤 일행은 구게왕국으로 향했다. 9세기부터 17세기까지 지속된 전설 속의 왕국은 황량한 사막 위의 신기루인 것만 같았다. 순례중 6킬로그램 이상 체중이 빠질 만큼 고행을 감당했던 임재택(69) 부산대 명예교수도 흙산 촘촘히 박힌 동굴에서 1천년전의 수행자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 티베트 라싸에서 1500킬로미터 떨어진 인도 라닥 접경에 있는 구게 왕국을 배경으로 선 순례단
인도 라닥과 접경지역인 구게왕국에서 다시 라싸로 돌아오는 여정도 만만치 않았다. 티베트에서만 고원 3000킬로미터를 누비는 대장정이었다. 위기에 대한 여행사의 미흡한 대처 등으로 마음이 요동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고행 중에서 내면 여행도 이어졌다. 정명숙(58)씨는 “26년 전 한 사건의 한 지점에 멈춰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서는 마음껏 울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아들의 갑작스런 희귀병 소식으로 가슴이 미어졌다는 조영애(56)씨는 “티베트인들의 웃음을 보며 내 자신의 고뇌보다 오히려 감사를 깨우쳤다”고 고백했다. 호흡곤란으로 순례 내내 고통을 겪었던 영화 <변호인>과 <강철비>의 양우석(48) 감독은 “생사가 호흡지간에 있다는 말을 글이 아니라 실제로 느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