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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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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보다 무서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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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이 칼보다 강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말은 쏘아 놓은 화살이다’라는 말도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말들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고 그 말로 인해 상처를 주고 받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오래 전 일이지만 아직도 생생한 기억이 있다. 처음 수녀원에 들어와 첫 서원을 하고 성당에서 소임을 하고 있을 때이다. 당시 성당은 화재로 전소되었고 신부님과 신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새로운 성당을 갖게 되었다. 이를 기념해서 성당 축성 기념으로 서울에서도 무지 유명하다는 수녀님 강사 한분이 오셔서 강의를 하시게 되었다.

  그 수녀님은 강의 첫 머리에 이렇게 좋은 성당 축성식 기념 강사로 자신을 불러 주신데 대해 감사하다며 “길을 잘 닦아 놓으면 문둥이가 먼저 지나 간다더니 제가 그 격이 된 것 같습니다. 송구스럽고 죄송합니다.”라고 하셨다. 순간 나는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을 느꼈다. 그 분의 겸손한 마음의 표시로 그렇게 말씀하신 줄은 알았지만 그 성당은 나환우 마을 공소를 가지고 있었고 그 날 그 강의를 듣기 위해 공소에서도 나환우분들이 20 여명 힘들게 오셔서 그 자리에 앉아 계셨기 때문이다. 나는 그 분들께 고개를 돌려 바라보며 ‘어떻해요? 괜찮아요?’라는 눈 인사를 건넸고 그 분들도 내 마음을 아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씨익 웃어 보이셨지만 두 시간 내내 나는 그 나환우분들의 우울해 하는 모습, 중간 중간 자리를 뜨고 나가시는 모습, 강의가 끝나자 마자 인사도 없이 봉고차를 타고 훌쩍 떠나버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 또한 그 날 강의 내용이 무엇인지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경력 많고 유명한 강사분이라 말씀 드리기는 조심스러웠지만 혹시 앞으로도 또 실수를 하게 되실까봐 강의가 끝난 후 수녀님에게 살짝 말씀드렸다. “저희 성당은 나환우 공소가 있고 지금 그 환우 20 여명이 수녀님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 수녀님이 너무나 당황해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죄송해서 어떻하면 좋겠느냐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지만 내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겐 인사도 없이 총총히 되돌아간 그들의 뒷모습만이 그 날 저녁 강하게 내 마음에 파고 들었다.

  한 부인이 남편을 잃고 동창회를 가게 되었다. 혼자 된 동창을 위로하고자 여행을 함께 가기로 했고 계획을 세우다가 비용이 많이 들것 같아 걱정하는 동창들에게 회장이 ‘걱정마, 내가 과부 땡빚을 내서라도 돈 마련할테니 가자’ 라고 하였다. 그 순간 남편을 사별한 그 부인은 ‘어떻게 혼자 된 내가 있는 자리에서 저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걸까’라고 하며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다시는 그 동창회에 가지 않았다.

  누구도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마치 무심코 던진 돌멩이가 개구리 한 마리를 죽게 할 수도 있듯이 생각 없이 일상안에서 쓰는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화살촉처럼 박히기도 한다는 것이다. 살면서 내가 던진 돌멩이와 쏘아 놓은 화살들은 누구의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가 다시 한번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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