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여 궁남지
여름에 연꽃축제를 시작한 지자제는 전남 무안이다. 일제 때 조성된 10만평의 회산 저수지에 향기롭고 탐스런 백련이 수없이 피어나지만 아무도 관심 갖는 이가 없었다. 이 얘기를 들은 법정 스님께서 강원도에서 천리 길을 마다 않고 백련 연못을 찾았다. 10만평의 거대한 연못에 푸른 잎이 출렁거리고 바람결에 느껴지는 백련의 향기를 접하였다. 그때의 감동을 신문에 기고했다.
법정 스님의 글을 읽은 독자들이 전국에서 무안군 일로면 복룡리 회산 방죽으로 몰려들었다. 군청에도 끊임없이 문의전화가 이어졌다. 무안군에서는 회산 방죽을 정비해 다음해부터 연꽃축제를 열었다. 무안군에서는 법정 스님과 연꽃축제의 스토리텔링을 담아 백련지 산책길에 법정 스님을 기리는 무소유초당을 건립할 계획이다.
무안군의 연꽃축제가 알려지면서 연꽃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곳이 늘었다. 연꽃단지는 양평의 세미원, 시흥의 관곡지, 함안의 연꽃 테마파크, 부여의 궁남지가 대표적이다. 김제 청운사, 아산 인취사, 강화 선원사, 남양주 봉선사 등에서 연꽃축제를 한다. 처음에 강화 선원사에서 세계 연꽃축제를 연다고 크게 홍보를 했는데 개화기간을 잘못 선택해서 연꽃이 세 개밖에 피지 않은 재미난 일도 있었다. 진짜로 ‘세 개 연꽃’축제가 된 것이다.
연꽃을 좋아해서 전국의 연꽃 명소는 모두 가보았다. 그 중의 최고를 꼽는다면 단연 부여 궁남지다. 올해 들어서만 세 차례나 다녀온 궁남지는 백제 왕궁의 정원조경으로서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백제식 정원이다. 궁남지 중심 정자에서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황금연과 대홍련이 자태를 뽐내며 향기를 뿌린다. 연방죽에는 ‘오가하스연’(대하연)이라는 안내문이 있다. 1951년 3월 일본 치바현에 있는 도쿄대학 운동장 한 켠에서 미라를 발굴하던 오가 이찌로 박사가 연꽃 씨앗 세 알을 발견했다. 연꽃 씨앗은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시카고대학 연구소에 연대 측정을 의뢰한 결과 2000년 전의 연씨로 밝혀졌다. 연씨 세 알을 발아시켰는데 그 중 한 알이 싹이 터 올라 왔다. 보통 식물의 씨앗은 3~4년 지나면 발아가 잘 안된다. 그런데 2000년을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것이다.
치바현에서는 발굴자의 이름을 따서 오가하스연(대하연)이라 이름하고 오가하스 연꽃 테마파크를 조성했다. 1973년 이석호 전 부여원장이 이 연꽃 씨앗을 국내 최초로 들여와 재배에 성공해 2008년 이를 부여군에 기증했다. 오가하스는 그 옛날 백제 땅으로 다시 돌아와서 ‘사비백제연’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로 풀어가는 부여 궁남지 연꽃축제에는 오가하스·사비백제연이란 새로운 화제도 갖게 됐다. 일본 정원의 시조가 백제인이고 일본문화의 뿌리가 백제임을 생각하면 2000년 전의 일본 지층에서 발견된 연씨 세 알과 백제의 인연이 이어질 수도 있다. 이를 뮤지컬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연꽃은 더러운 진흙탕에 뿌리를 내린다. 더러움을 떠나지 않고 더러움을 정화 시키는 작용이 연꽃의 특징이다. 연잎이 아집과 무지의 물을 뚫고 올라온다. 신선한 바람과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맑고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 삶의 지향점을 한여름에 피어나는 연꽃에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