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기불전연구원장 대림스님(왼쪽)과 <위방가>를 번역한 각묵스님
‘선(禪)수행자라면 자고로 첫째, 바른 행실과 행동을 해야한다. 즉 계율을 지켜야한다. 둘째, 감각기능들의 문을 잘 보호해야한다. 세째, 음식을 적당히 취해야한다. 네째, 초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깨어있어야한다. 다섯째, 끈기있고 슬기롭게 깨달음을 위한 수행에 몰두해야한다. 여섯째, 어묵동정 일체 행동을 할 때도 알아차려야한다. 일곱째, 숲속이나 외딴 처소 등 한적한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마음챙김을 확립한 가운데 앉는다. 여덟째, 세상에 대한 욕심과 악의와 성냄을 제거하고 생명에 대한 연민심으로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해태와 혼침 없이 청정한 가운데 머문다. 아홉째, 마음을 오염시키고 통찰을 무력하게 만드는 장애들을 제거해 감각적 쾌락들을 완전히 떨치고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열번째,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2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열한번째, 평온에 머물러 마음을 채이고 알아차려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열두번째,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이 내용은 초기불교 경전 <위방가> 12장 ‘선(禪)위방가’에 나오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에서 선수행이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언어도단(言語道斷)’에 따라 교학에 따른 체계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을 중시하지않는 것과 상당히 차이가 있다. 특히 한국의 선이 막행막식을 수용하는 것과도 달리, 계율 즉 바른 행실과 행동을 선수행의 대전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위방가>는 초기불교 교학과 수행의 18가지 핵심 주제를 분석한 논서다. 이를 팔리어 원전 번역에 앞장서운 각묵 스님이 초기불전연구에서 펴냈다.
불교 경전은 크게 승단의 규범을 담은 율장(律藏), 부처와 직계 제자들의 설법을 담은 경장(經藏), 불법(佛法)에 대한 분석과 설명을 담은 논장(論藏)으로 나뉜다. ‘위방가’는 이 가운데 논장에 속하는 일곱 가지 논서(論書), 즉 칠론(七論)의 두 번째에 해당한다.
각묵 스님은 2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책에 담긴 내용은 승가를 위한 전문적인 가르침이어서 일반 불자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면서“그러나 승가가 해야 할 근본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처님께서는 ‘나의 제자는 법의 상속자가 되지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말라’고 하셨는데, 우리 승가는 법의 상속자가 되기보다는 재물의 상속자가 되는 것에더 몰두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불교계가 문화재 같은 재물 상속에 관심을 가지고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기본을 놓치고 있다. 승려의 본분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살려내는 것이라고 본다.”
각묵 스님은 1979년 사미계, 1982년 비구계를 받고 7년간 선원에서 안거한 뒤 인도로 유학을 떠났다. 이어 인도 뿌나 대학교에서 10여년간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등을 배웠으며, 초기불전연구원장 대림 스님과 함께 율장·경장·논장 등 팔리어 삼장(三藏)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각묵 스님은 앞서 경장 5부 중 첫 번째인 ‘디가 니까야’를 교계 최초로 2006년 번역했으며, 2009년에는 ‘상윳따 니까야’를 6권으로 번역해 출간했다. ‘위방가’는 2권으로 출간됐다. 1권은 18장으로 구성된 ‘위방가’ 원문 중에서 1~8장을, 2권은 9~18장을 싣고 있다. ‘위방가’ 18장은 초기불교의 교학, 수행, 지혜, 법 등 네 가지 큰 주제로 구성된다. 각 장은 여러 분석 방법을 동원해 이러한 주제들을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각묵 스님은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해 많은 주해를 달았다.
» 인도 사슴동산(녹야원)에서 대각을 얻은 뒤 최초로 5명의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는 석가모니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
각묵 스님은 제대로 이론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깨달음을 얻으려 하는 한국불교 현실에 쓴소리를 했다.
그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관심을 가지고 그분의 가르침을통해 화두를 해결해야 한다”며 “그런데 지금은 ‘무대포’로 수행하면서 부처님 가르침이라는 기본을 놓친 채 깨달음을 얻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초기불전연구원장 대립 스님도 “초기 불교에서 말하는 온(蘊), 처(處), 계(界), 체(諦), 근(根), 연(緣) 등 수행의 핵심 주제들을 놓치면 선수행이 하늘로 올라갈지, 당으로 내려갈 지 알수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각묵 스님은 “대림 스님도 <청정도론>을 번역할 때부터 너무 무리를 해 몸을 상했고, 나도 뇌수술과 갑상선암 수술을 하면서도 초기 번역을 놓을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라면서 “그나마 우리나라엔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를 공부하고 온 20여명의 실력파들이 초기 불교 경전들을 번역해내 현재 65권의 경율론 3장 저서가운데 20권을 번역해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