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추석연휴 때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실향민의 한을 달래기 위해 열린
황해도 큰굿 공연에서 김정숙 만신이 굿판을 펼치고 있다. 파주/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열린 눈 트인 귀]
무속이란 말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심성이 담긴 신교, 즉 무(巫)를 원시적이고 속된 것이라는 뜻으로 폄하하기 위하여 만들었다.
그러나 ‘무’가 가진 철학은 지구상 어느 종교 못지않게 숭고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 ‘巫’ 자에서 천지인 합일사상을 도출해낼 수 있고, 또 그 정신을 생생지생(生生之生)으로 압축할 수 있다.
생생지생이란 우주에 존재하는 사물의 가치를 인정하는 정신이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상생(相生)은 두 당사자만 좋으면 그만이지만, 생생지생은 당사자들의 합의 결과가 모든 사람에게도 이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상생이 이분법적인 대립의 논리에서 나왔다면, 생생지생은 조화와 홍익의 정신이다.
이 생생지생의 정신을 정치권이나 남북대화에서 조금이라도 발휘한다면 폭염을 잊게 하는 시원한 바람이 될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정신을 가진 무교가 요즘 연일 비난의 포화를 맞고 있다. 보험금을 타기 위하여 신도를 살인한 무속인, 어려운 사정을 빌미로 거액을 굿값으로 가로챈 무속인, 멀쩡한 사람을 신이 왔다고 내림굿을 시켜 한사람의 인생을 망친 악질 무속인 등 많은 피해 사례들을 볼 수 있다.
특히 무분별한 내림굿은 한사람의 운명을 바꾸어놓을 뿐만 아니라 가족이라는 구성원들에게도 많은 상처를 준다. 그 어떤 범죄보다도 고통과 좌절을 안겨주는 범죄임에도 무속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다. 얼마 전 어느 주부는 결혼 후 아기가 없어 무속인을 찾았다가 여러 번에 걸쳐 8000만원 상당의 피해를 보았지만 고소할 당시부터 어려움을 겪고 도움을 청한 일이 있다. 그 뒤 1년이 넘는 긴 재판 끝에 대법원 판결에서 위법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전체 피해 금액에 대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3000만원에 굿을 하기로 한 부분에만 위법을 인정받았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 사정을 빌미로 거액을 챙기는 악질 무속인들이 판을 치고 있는 이유는 예전에 일부 케이블방송들에서 제작한 무속 프로그램의 영향이 적지 않다.
방송에선 국어사전에도 없는 ‘퇴마사’니 ‘엑소시스트’니 하는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어려움을 다 해소하는 사람으로 비쳤으니, 무속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일반인들은 당연히 방송에 대한 신뢰가 이어져 그 프로에 출연한 무속인을 찾아가게 되면서 사기 피해가 부쩍 늘었다.
이렇게 악질 무속인을 위대한 퇴마사나 엑소시스트로 만든 방송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 시청률 높이기에만 혈안이 되어 방송을 보고 생길 폐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이런 악질 무속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삼신의 가르침인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도록 조언하고 어려운 일을 도와주는 무교인이 더 많기에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무교가 존재하고 그 사제인 무당이 활동하고 있다.
무당이 신을 청할 때 읊는 ‘무가사설’에선 “무당은 만인의 꽃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만인의 꽃이란 보기 좋은 꽃이 아니라 고통과 절망을 이기고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꽃, 피폐해진 정신을 정화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힐링의 꽃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순기능이 바로 민족의 정체성과 심성을 대변하는 무교의 사제인 무당들의 역할이다.
무속인이 무(巫)를 속되게 하는 사람이라면, 무교인은 무(巫)의 정신을 전파하는 사람이다. 30만명으로 추산되는 무교인들이 부디 무속인이 되지 말고 무교인이 되어 사회에서 존경받는 무교의 사제가 되었을 때 비로소 민속신앙인 무속이 민족종교 무교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성제 무천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