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아침 바닷길로 농로를 따라 등교하는 아이들과 함께 학교로 걸어가는 순천 사랑어린학교 김민해 촌장
» 폐교터인 사랑어린학교 마당에 선 김민해 촌장
남들 버는만큼 벌어야하고, 남들 쓰는 만큼 쓰고싶다. 그 소비에 맞춰 지출을 늘이려다보면 늘 삶이 쫓기게 마련이다. 일할 마음이 나지않아도, 병이 나도 일을 쉴 수도 없다. 그러다보니 행복의 수단이었던 소비를 위한 돈벌이가 삶의 주인이 되고, 정작 삶은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그래서 돈과 소비에 주인 자리를 빼앗긴 영혼은 휴식과 여유가 없이 피폐해지고만다. 개인의 삶 뿐만이 아니다. 선의를 위해 시작된 교육기관도 사회복지시설도 엔지오도 수단인 돈이 우위를 점해 본말이 전도된 경우가 적지않다.
전도되지않는 삶을 사는 곳이 있다. 전남 순천시 해룡면 하사길5 사랑어린학교다. 순천만 인근 폐교터에 자리잡은 이 학교는 초중등 과정 50명의 학생과 교사인 배움지기 7명, 그리고 학부모들과 마을사람들이 어우러지는 공동체다. 지난달 27일 사랑어린학교를 찾아 김민해(62) 촌장을 만났다. 개신교 목사지만 여기서는 다른사람들처럼 그도 예외없이 닉네임으로 불린다. 그의 닉네임 ‘두더지’는 어둠 속에서 개벽 세상을 도모하는 혁명가의 느낌이 풍긴다.
» 식사를 담는 공동체원들
» 식사 전 기도하는 사랑어린학교 공동체원들인 배움지기(교사)들과 학부모들
» 마을인생학교를 시작하면서 기도를 하는 공동체원들
» 사랑어린학교의 배움지기(교사)들과 학부모들, 마을사람들이 함께하는 마을인생학교
» 마을인생학교에서 피리공연을 하는 학부모들
2011년 시작된 사랑어린학교의 운영 방식이 이미 개벽이다. 이 학교는 정해진 학비가 없다. 학년초 2박3일의 수련회 때 학부모들은 분기별로 납부할 돈을 써내고, 학교는 이 예정수입에 따라 교사 월급인 용금과 학교 운영비 등 지출액을 정한다. 그러니 교사 월급과 운영비는 수입에 따라 달라진다. 먼저 지출을 정해놓고 고액의 학비를 일률적으로 정하게 되면, 애초 공립학교와는 다른 삶을 추구한 대안학교조차도 통상 월 70만~1백여만원의 고액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는 금수저들만 다닐 수 있는 학교로 전락할 수 있다. 단지 돈이 없어서 이 학교에 자녀를 보낼 수 없는 일이 없도록 하려, 부잣집 자녀들만 뒷바라지나 하는 일이 없도록 그는 이 원칙을 실행했다.
버는 범위 내에서만 쓴다는 ‘양입이위출(量入而爲出)’은 원래 중국 고전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로 가정경제와 국가경제의 대원칙이었으나 지금은 정반대가 됐다. 지출 예산을 먼저 짜놓고 어떻게든 수입을 맞추고, 안되면 빚을 내서 살아가 볼모가 되는게 현대인의 삶이다. 감히 실제 삶에서 적용할 생각을 하지못하는 것은 ‘자율’에 대한 불신, 즉 인간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이 학교에서도 어느 학부모가 얼마 내는지 서로 알길이 없다. 그런데도 이 학교의 재정은 어느 대안학교보다 탄탄하다. 이 학교는 학생들의 순례여행비와 간식비까지도 정해진게 없다. 모두 낼 수 있는만큼 낸다. 자기 자식것만이 아니라 남의 자식것까지도 마음을 십시일반한다.
» 학교 인근 순천만 바닷가에서 마라톤을 하는 사랑어린학교 아이들
» 농사순례를 떠나 모심기를 하는 아이들과 배움지기들
» 지리산 종주에 나선 아이들이 노고단에서
두더지는 이미 생태·영성 월간지인 <풍경소리>를 그렇게 발행해왔다. 그는 만약 구독료와 원고가 들어오지않으면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는 하늘의 뜻으로 알겠다고 했으나 단 한차례로도 거르지않고 지난 3월로 20년을 넘겼다.
이런 운영방식으로 ’돈,돈,돈’거리는데서 벗어나 치중하는 본질은 무엇일까. 이들을 지탱하는 철학은 ‘드림정신’이다. ‘태어날 때 이미 모든 것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제 할 일은 도로 내어 드리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부모인 노라(49)는 “처음 학교에 왔을 때 지난 삶을 돌아보는 장문의 자기고백서를 쓰면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타인과 밖에만 머물던 시선을 처음으로 안으로 거둬들여 성찰을 시작했다”면서 “이곳은 아이들만이 아니라 부모와 마을사람들까지 함께 성장해가는 곳”이라고 말했다.
교사와 학부모들은 매월 1박2일씩, 여름 겨울엔 2박3일씩 수련회를 열어 이현주 목사와 도법 스님, 안상수 화가, 박두규 시인, 김용우 무위당사람들 이사, 이귀원 대천마을학교 대표, 최은숙 교사 등을 ’스승’으로 모시고 자신을 단련한다. 또 매일 아침 6시30분와 토요일 밤 7시엔 명상수련을 한다. 목요일과 토요일엔 마을인생대학이 열린다. 일요일 오후3시엔 한님살기교회를 한다. 이 ‘한’님이란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 조상님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광주에서 민중교회를 개척해 목회한 이래 1990년대에서 당시 기존학교에 부적응 학생들로 이뤄졌던 원불교의 영광 성지고에서 마음공부를 가르치고, 다시 강진의 시골 남녁교회에서 목회하고, 실상사 도법 스님을 중심으로 한 생명평화결사의 운영위원장을 한 그는 이미 ’목사’나 ‘개신교’란 틀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의 종교적 도그마때문에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생명을 해치는것도 서슴지않는 종교가 아니라 어떤 수련을 하든 모두 인간 생명을 살리고 돕고, 나를 찾아, 함께 행복해지자는 본질의 추구만이 있을 뿐이다. 매끼 식사 때마다 생태적 감사기도를 올리고, 삼종기도때마다 하는 일을 멈추는데서도 수행심을 놓치지않으려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부모들이 이러니 학생들도 남다르다. 9학년생들을 데리고 스페인 산티아고길을 40일간 순례한 두더지는 “여기서만 있을 땐 과연 아이들이 잘 자라고있는지 몰랐는데 그곳에서 보니 달랐다”고 말했다.
“타학교 학생들은 교사가 음식을 해 바치는데도 날마다 불평불만만 했지만, 우리 아이들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신이 났고, 자기들이 밥을 해서 내게 가져다주니, 외국인들이 보고 신기하고 대견해하며 요리법을 가르켜주기도 하고 음식을 가져다주며 모두 좋아했다.”
» 아침 8시, 낮12시, 오후 6시 세번 종이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모두 기도를 한다.
» 스페인 산티아고를 순례하는 아이들
»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아이들
» 인도 히말라야 다람살라에서 티베트불교 지도자 달라이라마를 만난 김민해 촌장과 아이들
» 김민해 촌장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현주 목사가 이끄는 마음공부 시간
그도 그럴 것이 사랑어린학교 아이들은 아침이면 모두 학교에서 2~3킬로 떨어진 유룡마을에 내려 학교까지 바닷길로 농로와 마을길을 따라 걸어온다. 초등학생들은 개구리나 게를 관찰하고 장난을 치고 노느라 1시간이 넘게 걸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자연공부이자 단련의 시간이다. 28일 아침 산책길은 1~3학년 저학년들만이 함께 했다. 4~6학년생들은 완도 청산도로 순례를 떠났고, 중등과정인 7~9학년생들은 10일간 농사를 짓는 농사순례를 다녀와 귀가해서다. 초등과정생들은 집에서 통학하지만 7~9년생은 마을의 허름한 농가를 빌러 7~10명 단위로 직접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며 살아가니 단단해지지않을 수 없다. 학생들은 매년 하나의 테마를 정해 어른들과 함께 직접 극본을 쓰고 연극을 만들어 공연한다. ‘어린왕자’도 했고, 학생들이 순례에서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던 티베트불교의 지도자 ‘달라이라마’도 연극에 올렸다. 올해의 연극 주제는 마을이다.
두더지는 “무엇보다 자신의 길을 찾게 도와야한다”고 했다. 이 교육관은 틀과 도그마 속에서 문제아, 부적응아로 교교를 세번이나 옮겨야했던 두더지 자신의 신산한 삶을 통해 터득한 것이기도 하다. 두더지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저마다 남의 길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가야해. 그러나 그 길은 홀로 찾을 수 없어. 함께 어울려야 가능해. 그 어울림 속에서 자기 길을 찾아야 돌이 금이 되는거야. 네가 바로 너의 연금술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