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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레> 자료
십년쯤 되었을까. 지금 살고 있는 갈전마을에 가을장마가 여러 날 계속되었다. 다행히 벼 수확을 일찍 한 농민도 있었지만 이제야 볏단을 베어 논바닥에 말리는 농민들도 있었다. 볕만 좋으면 2~3일 만에 탈곡을 끝낼 수 있지만 비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논바닥에 누인 볏단이 축축했다.
병철이네 할머니도 벼 한 포기라도 더 말리려고 꾸부정한 허리를 기역자로 더 구부리면서 볏단을 뒤집고 계셨다. 동네 입구 첫 집에 사시는 병철이네 할머니댁은 이전에 전답이 많아 부잣집으로 불리는 집안이었으나 몇해 전 남편을 보내고 아들네 식구와 함께 천연한 웃음을 지으며 사시는 할머니셨다. 늘 마당을 깨끗이 하고 콩알 하나라도 허투루 굴러다니지 않게 한 분이셨다.
그 병철이네 할머니가 넓은 들에서 느린 걸음으로 허리를 폈다 구부렸다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일손을 조금 덜어드릴까 싶어 개울을 건너가서 볏단 뒤집는 작업을 돕기 시작했다. 벼를 뒤집으면서 깜짝 놀랐다. 수확기의 잦은 비 때문에 베어놓은 벼에서 싹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다가 한해 농사 망치겠다 싶은 절망감이 들었다. 볏단을 뒤집고 있는 내 눈에서 눈물이 핑 돌고 속이 먹먹해졌다. ‘이 땅의 농촌을 이런 분들이 지켜내고 있구나.
느린 걸음걸이와 꾸부정한 허리와 쇠약한 목소리와 갈퀴 같은 손바닥과 친구 되어 벼가 자라는구나. 농민은 한 톨의 쌀이라도 금싸라기처럼 대하지 않으면 안 되구나’ 하는 심정이 되었다. 여러 해 농사랍시고 해왔지만 그날 비로소 ‘농민의 마음’이 가슴 깊이 새겨졌다.
우리는 쌀과 채소를 먹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땀과 눈물을 먹는 것이다. 우리는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양식을 먹는 것이 아니다. 값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농민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 알아야 할 것은 하늘의 햇빛 한줌, 빗방울 하나가 우리에겐 그냥 스쳐 지날지 모르지만 농민에게는 절망이요 기도가 된다는 사실 말이다.
김인수 민들레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