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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두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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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23세-.jpg

81세에 누구도 예상치못한 제2차바티칸공의회를 개최해 1600년간 닫힌

교회의 현대화를 시직한 요한23세 교황 사진 <요한23세 성인교황>(가톨릭출판사)




바오로6세 사진-.jpg

요한23세에 이어 제2차바티칸공의회를 마무리해 교회 쇄신의 초석을 놓은 바오로6세 교황




2차 바티칸공의회 회의장면-.jpg

로마 성베드로성당에서 거행된 제2차바티칸공의회 회의 모습




교황 요한23세의 공의회 서명-.jpg

제2차바티칸공의회 개최에 서명하는 요한23세



요한바오로1세-.jpg

요한23세와 바오로6세의 제2차바티칸공의회 정신 계승을 위해 전임 두 교황의 이름을 합쳐 

요한바오로를 택한 `미소 교황'요한바오로1세. 바티칸은행 비리 조사를 시작한 그는 교황 선출

33일만에 의자에 앉은채로 의문사했다.




라칭거와 요한바오로2세-.jpg 

교황 요한바오로 2세(오른쪽)와 그를 충실히 따른 라칭거 추기경(베네딕도 16세 교황)

 라칭거추기경은 신앙성장관으로서 이런 보수노선을뒷받침했고, 요한바오로2세에 이어 교황으로 즉위해

요한바오로1세의 성인 추대작업을 역사상가장 빠른 시일내에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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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바티칸광장.   사진 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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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성베드로성당 안에 가장 가운데 모두가 볼 수 있게 공개돼 있는 요한23세의 주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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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한지 얼마지나지 않아 곧 성바오로대성당 안으로 옮겨진 요한바오로2세 무덤.  사진 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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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바오로1세를 알현하는 카를 보이티와 추기경. 요한바오로 1세가 33일만에

의문사하자 보이티와 추기경은 교황으로 선출되고, 그는 전임과 같은 요한바오로란

즉위명을 택했으나, 전임 세교황의 교회 쇄신과 정반대의 노선을 갔다.



 [조현의 통통통]


 가톨릭에서 두 교황이 오는 27일 ‘성인’(聖人)으로 공포된다. 제261대 요한 23세(1881~1963, 재위 1958~63)와 제264대 요한 바오로2세(1920~2005, 재위 1978~2005)다. 가톨릭의 본산 로마의 베드로대성당안엔 수많은 성인들을 제치고 이미 그 둘의 주검 또는 무덤이 요지를 차지하고 있다. 둘은 20세기 최고 스타 교황들이다.  


 그러나 둘은 정반대의 인물이다. 요한 23세는 제2차바티칸공의회(1962~65)를 통해 1600년간 닫힌 교리의 문을 활짝 열고 개방한 현대화의 주역이다. 반대로 요한바오로2세는 바티칸의 철문을 다시 닫아 건 인물이다.


 1958년 아무리 교황복을 입혀놓아도 시골 노인네로밖에 보이지않는 77세의 ‘소작농의 아들’이 교황이 됐다. 그 요한23세는 “내가 임시 교황이 될 

것이라지만 내 할 일을 해야겠다”며  ‘아조르나멘토’(현대화)를 선언했다.


 불과 50년 전이지만 그 전까지 전세계 가톨릭 성당에서 사제들은 제단을 향해 신자들에겐 등을 돌린채 라틴어용어로만 미사를 드렸다. 공의회에선 ‘하느님의 백성’을 인류 전체로 확대하고, 선교의 개념을 신자수 늘리기에서 ‘인간의 존엄성 증진과 인류 공동선 실현’으로 변화시켰다.   


 요한23세의 뒤를 이은 262대 교황 바오로 6세(1897~1978, 재위 1963~78)는 미완의 공의회를 성실히 마무리했다. 김수환을 추기경에 앉히고, 미국의 베트남전을 반대했던 교황이다. 1978년 그가 선종하자 ‘벽돌공의 아들’인 65세의 알비노 루치아니 추기경이 교황에 선출됐다. 


그는 즉위명을 요한23세와 바오로6세의 이름을 합친 ‘요한바오로1세’를 택했다. 개혁을 계속하겠다는 뜻이었다. 교황은 다스리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라며 ‘짐’이란 말도 거부한 그는 대관식 때 머리에 쓰는 삼층관을 빈민자선사업가에 선물해버렸다. 미소가 너무 아름다워 ‘하느님의 미소’또는 ‘미소 교황’으로 불린그는 33일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이어 등장한 게 공산권 폴란드 출신의 요한바오로2세였다. 455년 만의 비이탈리아 출신이자 58세로 20세기 최연소 교황이었다. 그는 전임 세교황에 불만을 품고 반격을 노린 보수의 부름에 출실하게 부응했다. 교회 내부에선 변화를 막고, 세상에선 폴란드 자유노조를 지지하며 동구 공산권에 변화를 촉구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서방의 승리를 위한 선봉장이었다.


하지만 독재의 반대자들을 공산주의로 몰아세워 살육을 일삼았던 제3세계 독재자들에겐 우호적이고, 피압박민들의 눈물을 외면했다. 서방언론은 그런 이중성을, 그의 본명을 따 ‘보이티와 시스템’으로 불렀다. 


특히 그가 해방신학을 와해시킨 남미에선 가톨릭의 냉담자가 급증하고 개신교세는 급증했다. 가톨릭의 전근대성에 유럽의 성당도 비어갔고, 젊은 백인 사제와 수녀들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요한바오로2세의 충복으로 전례가 없이 그가 죽자마자 성인 추대작업을 이끈 베네딕도16세는 고국 독일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빠져나가는 현상에 사임을 결심하지않을 수 없었다. 가톨릭은 다시 기로에 서있다.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미래로 갈 것인가.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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