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3077

문 앞에 사랑을 놓고 가신 집사님

$
0
0


나를 울린 이 사람

문 앞에 사랑을 놓고 가신 집사님


삼십을 넘어서야 신학교를 졸업하고 강원도 한 시골의 작은 교회에 담임 전도사로 부임했다. 교회는 몇 안 되는 노인들만이 지키고 있었다. 몇해 전 큰 수해까지 만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시골 생활은 녹록하지 않았다. 문제는 팍팍한 살림살이만이 아니었다. 온종일 변화 없는 지루함도, 친구 하나 없는 외로움도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일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모를 호박 하나가 문 옆에 놓여 있었다.


호박김미영기자.jpg

*한겨레 자료사진. 김미영 기자


다음날 아침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바깥을 보니 김화봉 집사님이 있었다. 늘 헝클어진 머리에, 후줄근한 행색으로 주책맞은 행동을 하기 일쑤여서 얼마 되지 않는 교인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늘 핀잔을 듣던 분이었다. 예배는 늦거나 빼먹기 일쑤였고, 아침과 저녁으로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벌컥벌컥 문을 열고 사택을 드나들었기에 나에게도 골칫덩이였다.


아마도 내 표정에 마뜩잖아하는 모습이 보였나 보다. 횡설수설 이리저리 말을 돌리던 집사님은 “어제 호박 드셨어요?” 하고 물어왔다. 그는 ‘성경을 잘 모르지만 성경 공부 시간에 무엇이든 처음 수확물은 하나님께 드려야 된다고 배웠노라’고 했다. ‘그런데 너무 보잘것없는 것이라 차마 교회로 가져갈 수 없어 사택으로 가져왔노라’고. 그리고 ‘전도사님 단잠 주무시는데 이까짓 것으로 깨울 수 없어 문밖에 두고 갔노라’고 말이다. 그러고는 ‘죄송하다’고 했다.


일순간 창피함이 몰려왔다. 난 그가 성경이 뭔지도, 믿음이 뭔지도, 신앙생활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한심한 이라고 생각했었다. 동네의 주책거리가 되어 교회에 누를 끼치는 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뒤에도 집사님은 고추가 나는 철에는 고추 한 움큼을, 깨를 심고는 깻잎 한 소쿠리를, 아들아이가 냇가에서 잡아왔다며 잡고기 한 바구니를 아침 문간에 놓고는 돌아가셨다.


이후 알게 된 그분이 살아온 삶은 가엽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너무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살다 시집을 갔으나 남편은 정을 주지 않았다. 집안의 희망이었던 똑똑한 큰아들은 대학 졸업도 마치지 않은 채 연락이 되지 않았다. 또 수해 때문에 살던 집이 무너져 할 수 없이 농협 빚으로 지은 집은 대출금을 갚지 못해 경매로 넘겨야 했다. 그런데도 그 모든 어려움은 그분이 야무지게 생활을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분은 내가 목사가 되어 서둘러 도시 교회로 떠나기 전까지 아침마다 문 앞에 무언가를 두고 가시는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마주칠 때마다 쑥스럽게 웃으시며 ‘죄송하다’ 하셨다. 지금도 호박으로 된장찌개를 끓일 때면 그분이 생각나고는 한다.


강석훈목사.jpg

강석훈 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홍보실장)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3077

Trending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