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유럽(500-1500/1700)에 살았던 신심 깊은 여인들은 종교적인 신비나 환시 체험에 많이 빠졌다. 이런 여인들에 대한 관심사는 대개는 두 부류인 마녀인가? 성녀인가? 에 대한 이분법적 해석이었다. 어떤 해석이 내려지느냐에 따라 이들의 삶은 천국과 지옥을 왕래했다. 이들 중에는 마녀로 찍혔다가 성녀로 추앙 받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성녀로 추앙 받던 이들이 하루 아침에 마녀로 찍힌 경우도 있었으니 말이다. 마녀가 성녀로 추앙 받는 경우를 보자; 마녀로 고문당하거나 장작불에 처형당했던 이들이 생전이나 사후에 새로운 해석이 따르지 않았었더라면, 이들은 교회에서 영원히 마녀로 배척 받았을 것이다. 그 반대로 성녀가 마녀로 된 경우는; 이들의 비밀이 생전에 들통나지 않았더라면, 이들은 교회에서 영원히 성녀로 머물렀을 거다. 이렇게 마녀냐? 성녀냐! 를 해석하는 꼭지점에는 주로 당시 교회수장들의 취향과 독선적인 판단이 작용했다. 이런 연구의 기초는 가톨릭적인 신학분석이 아니고 종교 현상학적인 연구물이다. 말하자면 1900년경부터 신학에서 떨어져 나온 종교학이라는 딸 덕택에 이런 연구의 기틀 마련이 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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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여인은 스페인에서 태어난 막달레나 폰 크로이쯔(1487-1560)다. 번역하자면 '십자가의 막달레나'다. 그녀는 5살 무렵부터 이상한 징후를 안고 살았다. “빛의 천사”로 가장한 데몬(Dämon:악마/수호령/초자연력)이 그녀의 삶에 나타났다는 거다. 이 데몬은 변덕을 부리며 때론 아주 힘센 동물의 형상으로, 때론 미남소년의 형태로 그녀에게 나타났다. 어느 날은 십자가에 못박힌 형상으로 나타나 그녀에게 나를 따르라! 라고 속삭였다. 괴로웠던 그녀는 몸을 벽에다 대고 못으로 박기까지 했다가 참담하게도 2개의 갈비뼈를 부러뜨렸다. 이 데몬은 달콤하게 그녀를 유혹 했다. 그에게 순종하기만 하면 사람들이 응시하는 그녀의 바같쪽 삶을 늘 거룩하게 꾸며 주겠다고! 이 데몬 덕택이었는지 그녀는 12살 때부터는 완전히 거룩한 성녀로 추앙 받기 시작했다. 가톨릭 여러 성인성녀들과도 통교하는가 하면, 때론 기적을 일으키고, 망아경지는 물론,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예측도 했다. 그녀는 당시의 프란츠 1세 왕이 언젠가 포로로 잡힐 것이라는 기막힌 예측까지 했다. 이런 소문이 나돌자 많은 어른들이 이 어린 소녀를 떼지어 방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7살에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녀가 되었지만 데몬에게 순종하는 그녀의 삶은 여전했다. 데몬의 순종을 거부하기라도 할라치면 그녀는 엄청난 고통의 댓가를 치렀다. 그 반대로 데몬의 순종을 잘 따르면 따를수록 외적으로 보이는 그녀의 삶은 늘 성녀처럼 보였다.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고 여전히 많은 기적도 일으켰다 보니 그녀의 모든 행적은 신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녀를 추앙하며 따르는 이들이 점점 더 불어났다. 여기엔 다양한 계층들이 존재했다. 추기경들, 교황대사들, 그리고 심지어 당대에 유명한 종교재판관까지 그녀를 흠모의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스페인 세빌라의 주교는 그녀를 방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 하였든지 편지로 영성 교환까지 할 정도였다. 스페인 왕이었던 칼 5세도 그의 군사 들에게 축복을 내려달라고 청했는가 하면, 그의 부인은 아들, 미래의 왕이 될 필립 2세의 영세 옷과 투구에다 축성해 달라고 간원 했을 정도다. 이런 축성된 옷을 입으면 왕이 될 아들이 마귀의 공격을 방어 할 수 있다는 종교적인 믿음 때문이다. 후에는 그녀의 거룩한 삶을 전해들은 교황까지도 그녀에게 기도까지 부탁을 할 정도였다. 그녀는 성녀로서 명성이 더 높이 치솟았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녀가 이렇게 높으신 분들의 일들을 처리해 주다 보니 그녀가 사는 수도원에는 도처에서 밀려오는 감사 선물이 날마다 산처럼 쌓여갔다.
믿지 못할 더 기이한 일도 있다. 1518년 그녀가 임신을 하자 성령의 도움으로 하게 된 임신이라고 그녀는 떳떳하게 표명했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발언인가? 자기가 제2의 마리아가 된 듯이.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이런 발언조차에도 믿음을 가졌다. 오히려 신에게 바치는 그녀의 겸허한 순종이라면서 변함없이 그녀를 공경했다 하니 그녀에 대한 추앙이 당시 어느 정도였을지 충분히 짐작된다.
한번은 그녀는 예수가 죽을 때 어떤 고통을 당했는지를 명상 중에 알아 내고자 했다는 거다. 어느 날 그녀에게 정말 예수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녀는 엉겁결에 예수의 수염을 잡게 되었다는데, 이 때문에 그녀는 신의 은총을 받은 자로 간주 되었다. 그녀에 대한 추앙은 하늘 높이까지 치솟았다.
당시는 많은 가톨릭 성인성녀들은 음식을 먹지 않고 산다는 것이 유행이었다. 막달레나도 마찬가지로 전연 음식을 취하지 않고 다만 성당에서 주는 밀떡(예수의 몸이라고 하는 성당의 영성체)만을 먹고 생존 한다는 거다. 그녀가 음식을 먹지 않아도 생존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데몬이 그녀에게 어떤 가루를 비밀스럽게 먹였다는 데, 그것은 살해된 아이들의 심장으로 만든 거였다나! 그녀는 현시(Vision)때 프란치스코 성인을 만났다고! 고백은 당시의 종교인들이 꼭 해야 하는 의무 중 하나였는데, 현시 속에 나타난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녀에게 고백의무를 직접 면제 해 주었다고 주장한다. 한 동안은 그녀의 손이 성물에 닿기만 하면 예수의 피가 흘러 들어왔다는 거다. 하지만 이런 예가 예수의 피가 아니라 그녀의 생리로 이런 가짜를 만들었다는 것으로 판명 되었다. 데몬의 도움이 없어서 가짜로 판명 날수 밖에 없었는지? 아님 데몬이 그렇게 하라고 은밀한 지시를 내렸는지?
1533년 그녀는 이 수녀원에서 원장으로 뽑혔다. 그녀는 원장으로서 수녀들에게 기이한 태도를 보인다. 공동체 일부 수녀들이 그녀를 거부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당장 체벌에 나섰다. 방법도 기묘하다. 막달레나는 이런 수녀들에게 일단 땅 바닥에 엎드리게 하곤 혀를 내밀게 했다. 그 혀로 땅 바닥 위에 십자가형으로 핥으라고 명했다. 그런 체벌도 단독으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반드시 공동체 수녀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서 핥게 했던 황당한 체벌이었다. 또 있다. 당시는 수도하던 이들은 예수의 고통을 체험한다는 의미로 자기 몸을 채찍으로 때리곤 했다. 이때 끈은 대개는 가죽이나 탄탄한 천으로 만든다. 하지만 막달레나는 쇠로 만든 것이나 가시가 난 수레바퀴를 사용하게끔 하고 횟수도 일주일에 3번으로 정했다. 다 더 경건한 신앙심을 표명하기 위해서란다. 이 채찍질은 일상적으로 어두운 곳에서 이루어졌지만 그녀는 굳이 밝은 곳에서 스스로에게 채찍을 가 하라고 명한다. 서로가 서로를 보면서 컨트롤 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이런 막달레나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1535년에, 다시 1539년에 한번 더 원장직을 맡았다.
수녀원도 인간이 사는 세상이다. 수녀원장이 수녀들을 이런 식으로 다루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기 질투를 품은 반대파가 형성 된다. 그 중 한 수녀가 눈에 뛴다. 원장 선거 때마다 기호 2번으로 등장 했던 수녀다. 3번이나 막달레나가 원장이 되는 동안, 그녀는 이 수녀원안에서 반감을 가슴에만 품고선 조용히 때를 기다렸는데, 드디어 어느 날 그녀에게도 행운의 시기가 당도했다. 1542년의 선거에서는 막달레나가 더 이상 원장으로 뽑히지 않았다. 여기에 그럴듯한 이유가 따른다. 시의 한 유력가문이 그녀를 지원해 주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를 밀고를 했다. 다름 아닌 막달레나의 조상 중에 유대인이 있었으니 그녀에겐 유대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다. (당시는 수녀원이나 수도원 문제에 시 귀족들이 많이 관여했다. 또 하나는 당시에도 유대인들은 유럽인들에게 갖은 핍박을 받았다. 이런 핍박이 천년 간이나 잠복해 있다가 결국 20세기의 참혹한 나찌 사건으로도 터진 것 이다.)
막달레나가 다시 평수녀로 되자 말자 그녀는 점점 더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그녀를 늘 못마땅하게 여긴 수녀들이 참았던 울분을 터트리면서 그녀의 험담을 퍼뜨렸다; 그녀가 마치 음식을 전연 먹지 않는 것처럼 가장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녀가 천사라고 대화를 나누는데 그 대상이 흑인이더라, 천사는 늘 희고 아름다워야 하는데 흑인이라면 천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천사가 아니면 무엇 이겠는가? 바로 마귀라는 거다. 이렇게 동료들에게 시달리던 막달레나는 점차적으로 병이 들어간다. 그렇게 그녀를 따르던 높으신 분들이 그 사이에 어디로 다 가버렸는지? 그녀의 행적을 잠자코 바라만 보았던 교회가 이젠 그녀에게 손을 댄다. 일부는 믿을 수 있을지언정 전부 다는 못 믿겠다는 거다. 이렇게 그녀를 그냥 두었다가는 교회에서 이미 인정된 성인성녀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겠다는 게 그 이유다. 그녀는 점점 더 궁지에 몰린다. 궁극에 가서는 전신경련에 빠진다. 보다 못한 고해신부가 나서서 악마를 내쫓는 예식을 거행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후 동료수녀들은 수녀복을 벗긴 채 그녀를 수녀원 밖으로 쫓아내 버린다. 이젠 성녀가 아니라 마녀라는 거다. 이젠 그녀의 갈 길은 너무나 뻔하다. 종교재판에 회부되고 감옥에 갇힌다. 1546년! 그녀의 목에는 밧줄이 감기었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졌다. 불타는 초를 손에 든 그녀를 죽일 예식을 거행했다. 근데 데몬이 도와주었는지 참 기이하게도 이 살인 예식에서 단번에 죽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살은 목숨 이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그녀를 다른 프란치스코 수녀원의 지하에 가둬 버린다. 한때는 살아 있는 성녀로서 공경과 추앙을 받던 그녀가 이젠 악녀라 찍혀 어두컴컴한 감방에서 남은 인생을 마감했다. 이 후 살아있는 동료수녀들은 죽은 수녀들의 묘비까지 파헤쳤다. 죽은 이들 가운데는 살아있을 때 막달레나의 영향을 받아 마귀가 존재 할지도 모른다고! 성녀로 끝없이 추앙 받던 한 여인이 하루아침에 마녀로 찍힌 얘기다.
여기서 한 학자의 ‘만약에’라는 말이 주목된다; 만약에 막달레나가 성녀로 추앙 받던 行들을 들키지 않았었고, 만약에 동료수녀들이 모함하여 그녀를 수도원 밖으로 내몰아 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가톨릭 교회사에 두 번째의 그 유명한 데레사 성녀(1515-1582)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덧 붙였다. 아니 그 유명한 데레사 성녀를 이런 악녀와 비교를 하다니! 종교현상적으로 보면 이렇게 모호하다는 거다. 물론 가톨릭신학 안에서는 완전히 다른 견해겠지만 말이다.
시대가 흘러 그녀를 연구한 후세의 종교학자들은 그녀의 이런 증세를 마녀냐! 성녀냐! 라고 가름하기보다는 하나의 환각적인 히스테리적인 여인 (halluzinierende Hysterikerin)으로 분석했다.
유럽 심성사(心性史) 교수인 딘젤바흐도 의학이 발달된 오늘날에는 이런 부류의 여인들에 대해서 제 3의 잣대를 댈 수 있다고 언급한다. 말하자면 정신적인 치료를 요하는 정신 분열증 등등이다. 하지만 당시는 가톨릭이라는 틀 속에 박혀있던 이분법적인 잣대인 마귀 아니면 성녀로 분류 되었다. 당 시대가 끌어안고 있던 종교적인 잣대로 사람을 이렇게 죽이고 살렸던 거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이런 특이하고 유사한 종교적인 잣대를 가지고 개인의 종교성을 죽이고 살리는 경우도 더러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