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의 인생 1막> 2편
책을 읽는 너에게
친구야!
솔직히 말하면 나는 감정조절이 안되어서 그걸 피하려고 책을 읽기 시작했어. 하나의 도피처였지. 책을 읽게 되니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누구랑 싸우는 일도 없어지고, 또 아이들도 조용히 책 읽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아 좋았어. 밖에 있을 때는 책 한 권이라도 누가 읽으라고 시켜도 안 읽었어.
나를 감추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 나를 사람들은 가까이 하지 않았어. 내 앞에서는 가식을 떨지만 속으로는 날 좋아하지 않았지. 그게 다 보였어. 엄청 힘들 때가 있었는데 누구 한 명 부를 사람이 없었어. 그때 정말 아, 내 성격에 문제가 있구나. 깨닫긴 했어.
시련을 극복한 사람들의 자서전, 세계 위인전, 장편소설, 삶의 지혜, 자존감, 열등감, 자기 극복,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었는데 그 중에 성격파탄자 같은 주인공이 있었어. 그 사람 주변에는 나와 똑같이 사람이 없었어. 책에서는 내 얼굴도 보이지 않는 데 정말 부끄러웠어. 자기 계발서 종류의 책에서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지 타인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라는 글을 읽으면 처음에는 야, 이거 뭔 소리야. 하면서 책을 탁 덮고 집어 던졌으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
*폭력에 시달리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도희야> 중에서.
책을 읽으니까 말하는 게 예전보다는 좀 수월하게 표현을 하게 돼. 전에는 말을 해도 버벅거리고, 사람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을 하지 못했어. 그러면서도 성격이 엄청 시끄러웠어. 왠지 불안하여 한 곳에 가만히 있지를 못했어. 심지어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것도 못했어. 방방 뛰어다니고 이리저리 쏘다니길 즐겼어. 그런데 책을 읽으니까 행동에도 변화가 왔어. 내가 얌전해 진거야.
책을 골라 읽다보면 아, 이 내용, 이거 그 얘한테 맞겠다 싶으면 읽으라고 갖다 줬어. 그러면 신기하게도 자기에게 딱 맞는 책이라면서 정말 잘 읽었어. 많이 공감된다고 한다면서.
가끔 옛날 내 모습 같은 아이가 나한테 와서 자기 성격을 어떻게 고치면 좋을까? 물으면 나는 어떻게 하면 고쳐지는가를 얘기해 줘. 그렇게 해서 바뀌는 아이도 있어. 우리 또래는 어른보다 또래가 말해주는 걸 더 잘 듣지 않니? 예전의 나라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거야.
“니 성격 고칠 필요는 있는데 고치지 않아도 돼? 그냥 니 성격 다 보여줘. 싸가지 없고, 지금처럼 아이들한테 나쁘게 하고 다녀.”
나는 책을 빨리 읽지 않아. 장편소설은 읽다보면 그 스토리가 저절로 전개가 되는데 머릿속에서는 장면을 그리면서 읽어. 자기계발 도서는 중간 중간 좋은 글, 도움이 되는 글에 밑줄을 긋고 1, 2, 3으로 번호를 매겨. 그것을 독후감을 쓸 때 이용하면 오래 기억에 남게 돼. 요즘 센터 아이들도 엄청 독후감을 쓰는데 독후감을 쓰고 나면 뿌듯하고, 그 내용을 안 잊어버려.
책을 읽다보면 예전에 읽었던 스토리가 막 섞여. 예를 들면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신데렐라를 읽었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생각하면 신데렐라 이야기에 백설공주 이야기랑 막 섞여 있어. 그런데 독후감을 쓴 책들은 시간이 지나도 줄거리가 명확하게 기억이 돼. 저번 달에는 민정이랑 나랑 독후감을 제일 많이 써서 상으로 닭강정을 먹었어.
아이들은 커가면서 해야 되는 것, 안 해야 되는 것을 생활 속에서 어른들에게 배우고 습득하면서 자라. 그런데 나는 부모에게 그런 과정 없이 천방지축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하고 살았어. 그러나 지금은 날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다이어리에 그 전날 내일의 할 일 칸에 적어. 저녁이 되면 하나하나씩 체크를 하고 내일 할 일을 또 적어. 만약 그날 못 한 것은 그 다음 날로 미뤄. 그것 때문에 아, 오늘 내가 안 했네. 어떡하지? 하고 계속 생각하면 복잡해지니까 가차 없이 그냥 다음 날로 넘겨.
난 요즘 일주일 동안의 목표를 정해. 오늘 하루는 뭘 하겠다. 내일은 뭘 하겠다. 일주일 만에 이걸 다 풀겠다. 하고 미리 짜놓으면 그 시간 내에 목표를 달성하기가 쉬었어. 이렇게 책은 나를 조금씩 조금씩 변화시켰어. 나를 알게 하고, 나를 돌아보게 하고 부끄러워 감추고만 싶었던 나를 인정하게 했어. 부끄럽지 않게. 나는 책 안에서 나보다 아픔이 더 많은 이들을 만났고 힘낼 수 있는 격려의 말들을 들었어.
친구야
법원에서 나에게 5-6호 처분이 내려졌을 때 난 내가 왜 이런 걸 받아야 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재판 받을 만큼 잘못한 게 뭔데. 하면서 억울해서 많이 울었어. 판사님도 참 많이 야속했어.
친구야!
그런 내가 한 달 후 나는 나를 재판한 판사님께 편지를 썼단다. 감사의 편지를. 아마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쓴 감사편지 였을 거야.
판사님께
판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마자렐로 센터에 있는 이현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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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희야> 중에서
친구야!
내가 처음 말했지. 오늘은 진짜 나를 말하고 싶다고. 난 나의 지난날을 “이현지의 인생 1막”이라고 제목을 붙이고 싶어. 그 안에는 슬픔만 있지 않았어. 고마운 분들이 내 곁에 있었어. 나의 친구 은정이, 담임선생님, 아줌마, 경찰관 아저씨들, 이분들에게 난 글로서라도 감사하는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 이게 내가 이 글을 쓴 진정한 이유야.
친구야!
난 작년까지만 해도 아빠를 증오할 정도로 싫어 했어. 아빠 생각만하면 진짜 내 앞에 있는 것처럼 너무 화가 나서 주먹을 쥐고 이를 갈았어. 내가 왜 이렇게 되었나. 그 사람이 뭔데 내 인생이 이렇게 됐는가. 내가 아빠 나이였으면 난 정말 잘 살고 있을 텐데. 아빠는 정말 어른이 아니다. 이랬는데 생각해 보니까 나도 아빠같이 포악하지 않았는가. 아빠 닮아서……. 그런데 할아버지도 아빠가 어렸을 때 아빠한테 그렇게 포악하게 해서 그랬나? 아빠한테만 애정을 쏟지 않았나? 큰아빠, 작은 아빠는 다 잘 사는데 우리아빠만…… 이런 생각도 했어.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친구들한테 난폭하게 대했던 나……. 아빠랑 똑같이 나도 그렇게 한 것이다. 아빠는 나를 때리면서도 사랑은 한다고 했어. 사랑은 안 줬어도 용돈은 되게 많이 줬어. 어디 가서 기죽지 마. 하면서. 강압적인 아빠의 말투는 오히려 있던 기도 다 죽였어. 그런데 그게 사랑이었나 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빠는 속으로 답답한 게 많았던 것 같아. 밥 먹을 때 숟가락, 젓가락이 삐뚤어져 있으면 절대 안 됐어. 자다가도 화장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그 원인을 꼭 찾아야 했어. 아빠가 나갈 때, 들어올 때 오빠와 나는 항상 현관 앞에서 인사해야 했어. 저녁에는 안녕히 주무세요. 아침에는 벌떡 일어나 안녕히 주무셨어요. 밥 드셔야죠. 했어. 이렇게 안 하면 아빠는 무섭게 노려 봤어. 아무 말도 안 하고선. 이런 아빠 때문에 내가 배운 것, 내 몸에 익숙해 있는 인사하는 거. 먼저 물어봐 주는 거. 잘 잤어? 무슨 일 있었어? 또 어디 가든 깔끔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
난,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아. 밥도 내가 하고, 혼자 밥 먹는 것도, 혼자 옷도 사러 가고. 난 혼자 다니는 게 좋아. 난 이런 게 당연할 걸로 알았는데 혼자 하는 걸 못하는 아이들이 꽤 많았어.
돈도 흥청망청 썼어. 한 번 용돈 줄 때 듬뿍 주니까 그걸로 옷 사고, 화장품 다 샀어. 이제는 돈 아낄 줄도 알게 되었어. 아빠처럼 한 번에 다 쓰니까 정말 필요할 때는 아무것도 없었어. 아빠 때문에 깨달은 게 많아.
친구야!
5월이 되면 우리 아빠가 교도소에서 나와. 나도 아빠한테 못난 딸이었어. 지금까지 카네이션 한 번 달아드린 적이 없거든. 일단 아버지랑 살지는 않지만 몇 번 만나서 뭐 하나라도 챙겨드리고, 밥도 몇 번 같이 먹고 그러고 싶어.
남민영 수녀님
현지야 고마워!
현지야 고마워!
현지야 고마워!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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