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권운동가 정중규 박사 인터뷰
정중규 박사
지난 2011년 가톨릭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출범식에서 휠체어를 타고 함께한 정중규 박사
오는 8월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꽃동네 방문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작은예수회 총원장 박성구 신부는 지난 4일 로마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장애인 인권을 유린한 꽃동네를 방문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교황에게 드리는 공개편지’를 낭독했다. 교황의 꽃동네 방문이 왜 문제가 될까. 이를 들어보기 위해 가톨릭의 대표적인 장애인 인권 운동가인 정중규(56) 대구대 재활정보연구소 부소장을 9일 만났다.
“마더 테레사 수녀와 꽃동네의 오웅진 신부, 평화의 마을의 오수영 신부 식으로 장애인들을 집단수용소에 격리해 수용해 돌보는 것은 장애인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삶 속에서 함께하려 한 예수 그리스도의 장애인관에 어긋나는 것이다.”
사회복지의 얼굴들이 예수의 장애인관과 어긋난다니 이게 무슨 소릴까. 그는 2002년 말 박사학위 논문에서 이미 그리스도교 전반의 장애인 사목(역)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구역성경에선 장애를 죄의 결과로 보거나 장애인을 부정한 것으로 여겨 차별했지만, 신약성경에서 예수는 오히려 장애인을 다가올 종말론적 하느님 나라에 가장 먼저 초대받을 자로 삼고서 치유를 통해 예수운동에 적극 동참시켰다. 예수는 먼저 ‘네가 낫기를 바라느냐?’고 반드시 상대의 의향을 확인한 뒤 치유행위를 했고, 그 결과에 대해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고 말해 그의 권능이 아닌 당사자의 믿음이 치유를 낳은 것임을 주지시키고, 그 후엔 ‘사제에게 치유되었음을 확인받도록 하라’고 했다. 요즘으로 치면 주민증 발급을 통한 공민권 회복과 같은 사회적 재활을 하라는 의미였다.”
정 박사는 그런 예수의 장애인관이 ‘교회의 로마화’와 함께 교회의 자선사업이 제도화하면서 자선사업과 장애인 복지가 결합되는 잘못된 조우가 이뤄졌고, 그로 인해 교회에서 장애인은 사업의 시혜 대상자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본다.
정 박사가 이런 장애인관에 눈뜬 것은 처절한 삶의 결과였다. 대구 출신인 그가 어린 시절 소아마비만 앓지 않았다면 그도 대구 가톨릭 교구의 사제가 됐든지, 사업가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의 할아버지는 포목상을 한 재력가로 왜관 베네딕도수도원 성당을 지어주고, 순심중학교를 설립한 가톨릭 유력 후원자이자 교육가였다. 그의 부친 또한 코오롱과 쌍용 설립자들과 함께 대구의 섬유업계 3인방으로 불릴 만큼 재력가였다. 안성 미리내 성지에 천주성심성직수도회를 설립한 고 정행만 신부는 그의 숙부다.
정 박사는 중학교 1학년 때 부친의 사업이 파산하면서 이중고에 휩싸였다. 그 후 골방에 갇혀 인생에 대한 회의와 절망, 분노만으로 살았다. 21살 세상에 나올 용기를 내기까지 청소년 시절 자살을 시도한 것만도 8번이었다. 그는 사제와 수도자가 되기를 원했지만, 구약의 잣대로 차별하는 고위 성직자들의 거부에 따라 거듭 좌절을 맛봐야 했다.
그는 20대 중반 아버지의 권유로 골방을 나와 건재상을 하며 돈을 벌고, 홀로 공부해 검정고시를 거쳐 방송통신대까지 졸업했다. 이어 40대 중반의 나이로 천안 나사렛대학교 재활복지대학원에 진학했다. 그가 예수의 장애인관에 눈을 뜬 것은 미국에서 시작된 자립생활(IL·independent living) 운동을 접하고서였다. 아이엘은 장애인들이 수용시설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 살면서 자립을 돕는 것으로 장애인 복지의 패러다임을 바꾼 운동이다. 나사렛대에서 아이엘센터 소장을 맡았던 그는 대구대에서도 아이엘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아이엘의 원칙이 센터 소장뿐 아니라 직원의 50% 이상을 중증장애인으로 고용한다. 따라서 많은 중증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고, 자활을 돕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전국 200여개의 아이엘센터는 시설로도 인정을 못 받는다. 예산은 시대에 뒤떨어진 수용시설에 집중되고 있다.”
그는 장애인 복지를 주도하는 그리스도교 성직자들의 장애인관이 바뀌지 않고선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의 미래도 없다고 본다. “1993년 꽃동네에서 바닥에 쏟아진 뜨거운 목욕물에 데어 장애인 10명이 떼죽음을 당했는데 쉬쉬하고 말았다. 한명의 신부만 기억되고, 수천명의 장애인들은 정작 익명으로 살아간다. 과연 누구를 위한 사업일까.”
그는 “수용 장애인 수에 따라 예산이 달라지면서 장애인사업 성직자들은 오히려 장애인들의 독립을 바라지 않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는 “꽃동네에서 내보내주지 않아 탈출하다시피 나온 장애인들이 스스로 어려움을 헤치며 결혼까지 해 새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못미덥더라도 장애인들이 자활하도록 지켜봐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업적 성과를 내려 하기보다는 빈자들과 그저 함께 살아준 정일우 신부 같은 모습이 장애인 복지 성직자에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라고 우려한다. 그는 “장애인들을 위한 삶을 산다면서도 장애인들이 차별을 철폐하라며 목에 쇠줄을 걸고 애타게 시위를 할 때 정작 신부와 수녀는 보이지 않는 데서 현저한 공감의 결여를 볼 수 있다”고도 했다.
“오웅진 신부와 오수영 신부가 사회복지를 시작할 때 순수한 초심이 있었고 많은 이들도 고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달라져야 할 때다. 그런데 교황께서 다시 꽃동네를 방문하면 그런 대규모 수용시설이 앞으로도 바른 장애인사업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고, 장애인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해온 패러다임의 전환은 모두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