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프란치스코와 함께 온 ‘사회·종교계 변화 바람’
신뢰 잃은 정권과 종교계 향해
권위주의 타파 요구 들끓어
행동하는 교황에 ‘메시아’ 역할 기대
“한국사회 목마름 채워줄 수 있을것”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을 하루 앞둔 13일 오후 시복식이 열릴 예정인 서울 광화문광장에 십자가가 세워지는 등 행사 준비가 한창이다. 김태형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몰고 올 바람이 한국 사회와 종교의 변화에도 기폭제가 될 수 있을까. 교황의 방한에는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요구하는 세월호 특별법 통과를 위한 숨통을 트여주길 기대하는 간절한 목소리와 함께 권위주의 문화를 타파하는 데 기여해 주리란 바람도 나온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기대는 우리 사회의 어둠을 일거에 몰아줄 것을 바라는 메시아 신드롬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 장동훈 신부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 우리 사회 약자들이 처해 있는 상황의 절박성이 이런 현상을 낳고 있다”며 이렇게 진단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 우리 사회 인문학적 기반이 총체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교회적으로 표현하면 인간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의 존엄을 잃어버린 시대다. 정권이 신뢰를 잃었다. 힘을 가진 자들이 진실을 은폐할 수 있고, 거짓도 참으로 만들 수 있게 해 절차적 민주주의까지도 불신하게 했다. 약자들이 아무리 울고 불고 떠들어도 전지전능한 신 같은 권력은 눈도 꿈쩍하지 않는 데서 오는 무기력감에, 교황이 좀 해결해주기를 원하는 메시아주의로 분출되고 있다.”
장 신부는 “누구나 다 듣기 좋은 관념적인 이야기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기 어렵다”며 “지금까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발언을 해온 교황 개인에 거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국민의 걱정을 덜어주기보다는 국민을 걱정시키는 한국 종교계의 변화를 이끄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불자로서 시민행성 대표인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사람은 자기 몸의 아픈 부분에 관심이 쏠리는데도 고통받는 이들에 대해 무관심한 채 일신의 평안만 모색하는 병증에 걸린 한국 종교인들에게 종교가 무엇을 해야 하고, 종교인이 머물 곳이 어디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분이 프란치스코 교황”이라며 “낮은 곳으로 향하는 교황의 모습에서 인도의 브라만과 가톨릭의 사제 계급을 깨고 나온 불교 승려와 개신교 목사들이 다시 사제주의적 종교인으로 돌아가버린 자신들을 성찰해 원래 자리가 어디인가를 각성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기만 대우받으려는 이기적 권위주의를 벗어나 낮은 자세로 자비롭게 봉사하는 종교인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는 기대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초청하고서도 그의 메시지를 부각시키지 못한 가톨릭을 비난하는 소리도 나온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연구실장은 “광화문 시복식에서 복자에 오를 초기 순교자들은 이 땅을 개혁하려 한 이들이어서 현대에도 인권·도시빈민·환경 분야에서 개혁을 이끈 한국 천주교회뿐 아니라 교황의 언행과도 일치하는 것인데, 이를 살려내기보다 희생과 순교에만 초점을 맞춰 상상력이 빈곤하다는 인상이 든다. 교황이 광화문에서 가톨릭 교세를 자랑하기 위해 오는 듯이 보여지기도 한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함께해온 교황처럼 약자들에게 헌신한 한국 천주교의 정신을 부각해 정당성을 얻는 기회로 활용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 이야기로 끝낸다는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 이후 보수 성향 추기경들의 등장으로 급격히 보수화한 한국 가톨릭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지 주목된다. 교황방한준비위원회를 이끄는 유경촌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는 “교황의 방한이 한국 사회에 목마름을 채워줘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한국 가톨릭에도 쇄신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