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약자들의 절박한 요구 해결해줘야” 호소
프란치스코 청와대 연설…“평화는 정의의 결과” 강조
세월호 유족들에겐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 위로
*“세월호 아픔, 마음속 깊이 간직”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마중 나온 인사들 가운데
세월호를 타고 환갑 기념 여행에 나섰다가 희생된 정원재(61)씨의 부인 김봉희(58)씨의 손을 꼭 쥔 채 왼손을 자신의 가슴에 얹고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꼭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
이날 공항에는 세월호 유족인 고 남윤철 안산 단원고 교사의 아버지 남수현씨와 부인 송경옥씨,
사제를 꿈꿨던 고 박성호(단원고 2학년)군의 아버지 박윤오씨, 김씨 등이
다른 평신도 20여명과 함께 교황을 영접했다. 성남/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빈자와 약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 교회의 사명이라는 그의 가르침은 한국에 도착한 순간에도 행동으로 이어졌다.
로마 바티칸을 출발해 11시간의 긴 비행 끝에 교황은 14일 오전 10시16분 이탈리아 항공기 알리탈리아에서 나와 모습을 나타냈다. 그의 첫 모습은 겸손하고 소박했다. 불필요한 의전을 원치 않은 교황의 뜻에 따라 영접은 소박했다. 트랩을 내려온 교황은 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약자들의 피눈물 같은 붉은 카펫 위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방한을 계기로 우리 국민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전해지고 분단과 대립의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새시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다.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주교단 9명과 인사를 나눈 교황을 32명의 평신도가 영접했다. 그중엔 세월호 희생자인 고 남윤철 단원고 교사의 부친 남수현씨와 송경옥씨 부부 등 유족 4명이 있었다.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손을 잡자 교황은 왼손을 가슴에 얹고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다.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들을 만난 그는 연설에서 평화와 정의,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평화 추구는 이 지역 전체와 전쟁에 지친 전세계의 안정에 영향을 미친다”며 “평화란 상호 비방과 무익한 비판이나 무력시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해 이룰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며 “정의는 우리가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해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하고, 상호 존중과 이해와 화해 가운데 서로에게 유익한 목표를 세우고 이루어 가겠다는 의지를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공동선과 진보와 발전을 경제적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이해할 것도 설파했다. 그는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고,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며 “그들의 절박한 요구를 해결해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인간적·문화적으로 향상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계속 강화되기를 희망하며, 오늘날 절실히 필요한 ‘연대의 세계화’에서도 이 나라가 앞장서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어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주교단과 만나서도 “성공과 권력이라는 세속적 유혹에 빠지지 말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되어 희망의 지킴이가 될 것”을 촉구했다.
그는 “희망의 지킴이가 된다는 것은 사회의 변두리에서 사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시행하여, 예언자적 증거가 명백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한국 교회가, 번영되었으나 매우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어 사목자들이 기업의 능률과 세속적 기준을 따르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취하려는 유혹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한편 교황방한준비위는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릴 시복식에 식장 안전벽 안에서 농성중인 세월호 유가족 600명을 초청해 함께 행사를 하기로 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